나를 찾아가는 시간, 다시 시작하기 위해
사람은 자기 자신을
직시하기 힘든 법이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을 제대로
평가할 툴도 없을 뿐더러,
항상 상황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자신과 대면할 때는 얼마나 자신이 부족하고
죄 많은 인간인지를 깨닫게 되기에,
자신의 자존감이 한 없이 바닥으로 추락하는 불상사를 겪게 되기에,
자신을 비춰보는 일은
잘 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자신을 직면하는 사람들은
매우 용기있는 사람이다
정말 극소수의 사람만이
인간의 본성과 인간의 무지함과
인간의 죄악에 대해서 직시했고
결국은 자신이 아무것도
아무런 기초도 없다는 것을 마딱드리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서 헤매고
멈춰서고 포기하게 된다
많은 철학자들과 소설가들이
자살한 이유이겠지
나는 이제 나 자신을 보면서,
자신을 돌아본다는 이 상황 때문에
오히려 나 자신이 숨겨둔 블라인드 스팟을
판도라 상자 속으로 감춰버리는
비극을 경험하고 있다
나도 몰랐던,
너무나 좋은 사람들 곁에 있었기 때문에 몰랐던 사실들을 매우 다각도로 깨달아 가는 중이다
데미안이 여러번
생각나는 시간들이다
함께'의 가치를 해치는
특수성은 다분히 포스트모던적이다.
그것은 나도 나의 세계관이 있고
나의 할일이 있고
동시대 같은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에 참여하지 않는 나름의 이유로
나의 몸에 세로운 규칙을 적용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모두가 청소 할 때,
모두의 시간대에 나의 시간을 맞추지 않고 나의 시간대를 위한 규칙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다른 식으로 말하면,
나의 규칙을 설정해 놓는 것은
더이상 문제 설정의 단계에서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입증책임의 원칙에 의해서 나 자신을 흘러가듯이 놓아두어도 되기 때문이다
많은 변명과 합리적인
입증이 가능하다
그리고 굳이 착한아이 컴플렉스에 의해서 모두를 만족시키려고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게 말하면 마음음 편해지고 삶은 조금 더 여유를 갖는 듯하다
많은 심리학자들이 그렇게 말해주고 나역시도 마음의 안도감을 갖는다
그런데 다시 생각 해보면
돌이켜 보면
시간설정의 자유로움을 누리는 사람은 함께의 가치의 자신의 시간대를 맞추는 것이 가능하고
그 시간 이후에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시간대에 다시 자신의 세계로 돌아올 수 있다
다만,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혹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자기부인의 단계를 거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의 시간은
철저히 나를 바라본 시간이었다
나름의 변명을 맞서보고 발견하고
그리고 가슴아픈 충고에도 멀쩡한듯이 행세했지만
돌아와서 지금처럼 혼자 있는 시간에는
그런 시간이 비극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나는 갈림길에 서 있다
나의 시간대를 버리고 함께의
시간대로 회귀할 것인가
그러면서도 다시 그 시간을 나와서
나의 시간으로 탈출할 수 있는가
어려운 것이다
어렵게 사는 것이다
힘든 것이다
힘든 생활을 하기로 마음 먹는 것이다
양비론의 쌍방향의 비판에도 설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사도바울이 이야기한 풍부에 처할줄도 알고, 비천에 처할 줄도 아는 지혜인 것이다
많은이들이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좀 더 쉽게 살라고 조금 더 여유있게 살라고 요구할 것이다
이젠 알아 버렸으니까
그렇게 되지가 않는다
행동은 요구되고 나 자신이 입증부담의 책임에서 나와서 다시 문제설정의 단계로 나와버렸다
다시 그 질문 앞에 선다,
그럼 어떻게 살 것인가
다시 마음이 불편한 지점으로 돌아간다
돌아가서 다시 살기로 결심한다
자랑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가야 한다
한다라는 말보다 하고 있는 내자신을 발견하는 순간이 오길 기대한다
덧,
시간을 이해하는 방식에 따라서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결정된다
다시 나는 나의 역사를 생각하고
세상의 역사를 바라본다
그 많은 별들의 자리
성좌가 흔들리고 전혀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새로운 문으로 들어가는 시간이다
시간이 왔다
다시 걸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