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대학원 공공정책 전공_커뮤니티 복지제도론
사회적인 영역에서 '사적영역'이 존경의 욕구와 자아실현의 욕구로 상승하려면 결국은 사회적 자본이나 교량자본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한나아렌트가 말한 '전체주의의 기원'에서는 '외로움'이라는 것이 전체주의를 만들어내는 요소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렇게 보았을 때 오히려 사회적 욕구가 채워지지 않을 때, 욕구의 수준은 하위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복지국가'를 볼 때, 사회적자본이나 교량자본과 같은 부분들이 심리적, 정서적 욕구의 하나로 설정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국가재정으로 이러한 정책으로 투입된다면 복지국가 레짐의 특성의 요소들의 바뀌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더군다나 코로나 0년 이후에는 말이다.
고독사의 문제는 아마도 빙산의 일각이다. 우리 사회에 보이지 않은 부분에서 다양한 문제와 대안으로서의 정책들이 얽히 설키 복잡하게 존재하고 있다. 정책들의 기간과 다루는 범위에 있어서도 교집합과 여집합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존엄이라는 측면에서 '고독'이라는 것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를 고민해 보아야 하는가?
한국 복지국가는 현재 성장기에 접어 들었다.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사회지출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한국은 1990년 이래에 매년 12%씩 곡적 사회지출이 늘고 있어서 OECD 평균을 훨씬 웃돌았다.
그러나 복지지출과 사회보장제도의 확충만으로 복지국가의 발전을 담보할 수 없다. 복지국가의 발전을 위해서는 노동시장의 안정화, 거버넌스 구조의 선진화, 지속가능성 등이 뒷받침해야 한다.
현재 복지국가는 남부유럽과 자유주의 국가의 특성을 강하게 보이고 있고, 그리스와 미국을 합친 듯한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가치판단의 영역이기는 하나, 그리스와 미국의 혼합형을 한국 복지국가가 가야할 미래로 여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민주의의 예에서 보듯이 누구나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늘어 내는 것이 복지국가의 1차적 과제이다. 이는 넓은 세원, 그리고 사회보험제도가 원활히 작동하는 기초로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사회보장을 강화하되 사회투자형 복지지출을 늘려 고용률을 높이고 경제와 복지의 선순환 고리를 강화애햐 한다.
자영업에 대한 구조조정과 중견기업의 육성과 서비스산업의 대규모화를ㄹ 통해 임금노동자의 비율을 높여야 한다.
그리고 노동시장 내의 1차적 분배가 평등하게 이루어져야 2차적 분배인 사회보장의 효가가 커진다. 노동시장 내 불평등이 심하면, 아무리 재정을 쏟아 부어도 계층화를 피하기 어렵다. 따라서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완화하고 대기업, 중소기업, 정규직, 비정규직, 그리고 남성과 여성 사이의 격차와 뛰어넘기 힘든 장벽을 제거하여 직업 능력에 따른 이동성을 보장하는게 필요하다.
복지국가의 지속가능성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여성친화적인 근로환경과 아동에 대한 투자에 인색해서는 안되며, 노동인구의 감소가 가시화되는 시점에서는 보다 개방적인 이민정책을 펼ㄹ칠 준비를 해야할 것이다.
정치적으로 손쉬운 빚을 내서 복지를 하기보다는 복지증세의 탄탄한 기반 위에 사회지출을 확대해야 한다.
진보와 친복지주의자들도 국가경쟁력과 성장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세계화와 지식기반경제라는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국가경쟁력을 유지하고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을 등한시 해서는 안된다.
일러한 의식적인 변화는 정치리더십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없이는 이루어지 힘들다. 비교적 최하수준인 거버넌스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정치개혁과 노사정의 합의주의, 그리고 노동운동의 연대성 회복을 위한 노력 또한 절실하다 하겠다.
보편적인 기초연금을 더 높이는 것을 찬성을 하는 이유는 사각지대가 지난 10년간 잘 메워지지 않는다. 보편적인 기초연금을 제공하고 소득 비례성의 부분을 국민연금에서 달성하면서 지속가능성을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기업별 노조의 영향으로 한국은 작은 복지사회라고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이 핀란드보다 프로그램의 갯수는 많다. 그러나 그 프로그램에 사용하는 예산을 보면 GDP대비 한국은 10%, 핀란드는 30%를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20%정도를 더 써야 한다. 비율의 면에서 볼 때 한국복지제도는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 물론 양의 문제는 아니라고 할 수는 있다.
소득비례적으로 연금을 설계하면 노동의 양극화가 사회보험의 양극화로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복지비용은 증가하지만 공공지출에 비례해서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거나 저소득층들에게 분배가 균형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소득에 대해서 간접세, 소득세 등등 조세혜택과 세금을로 다시 가지고 가는 정부에 대해서 덴마크보다 미국이 더 많은 복지지출을 하지만, 사실 민간지출을 보면 미국의 민간지출이 훨씬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이야기는 개인이 보험에 대해서 지출이 많아지기 때문에 지속가능성은 떨어진다는 것이다.
복지예산의 사이즈의 문제가 아니라 비율의 문제이다.
우리는 성공한 국가들의 '원리'들을 배우고, 우리의 상황에서 어떻게 풀어내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제도변수에 있어서 정치적인 변수가 오히려 독립변수가 되는 것은 아닌가? 의도를 파악하는 데 있어서 정치적인 제도가 효과를 나타내는 부분은
코로나 19 이후에 복지국가레짐의 특성은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사회적 합의주의에 의한 복지제도의 지속가능성이 핵심이 아닐까? 정치변수를 상술로 놓기 위해서 제도적인 안정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