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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Sep 28. 2020

레비나스의 싸움 1-2

'타자의 얼굴' 강연을 위한 기본 이해 두번째

3. 소유 vs. 향유


주체가 된 존재자가 그럼 어떻게 존재와 관계를 맺게 되는가? 이 고민은 하이데거가 이제 존재로부터 부여받은 주체를 확장해가는 방식과 관련해서 완전히 다른 결말에 다다르게 한다. 존재를 규정하고 존재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들을 하나의 공간 안에 묶어 둠으로써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자들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존재의 조각들이 존재자들에 있다면 그 존재자들을 하나의 공간에 박물관처럼 묶어 놓는 형식으로 '존재를 소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작게는 가정폭력이나 권위주에서부터 크게는 세계대전과 제국주의 역사가 이러한 방식이 실제로 역사 속에서 드러났음을 보여주었다.


1) 하이데거


현상학을 통해서 자신의 지향성이 발휘되어 대상에 대해서 분류하여 이해할 수 있게 된 인간은 그것들을 자신의 체계 안에서 통합하고 종합한다. 그럼 그 안에 존재의 속성들이 보이고 존재를 규정하고 지식의 수준으로 정리하는 순간 지식은 변하지 않는 이론화의 과정을 거쳐서 동시대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하이데거에게 존재자가 주체가 된 이상 주체를 강하게 만드는 것은 곧 존재를 소유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지향성을 통해서 지각된 것들을 자신의 소유로 만드는 것이다. 한 공간에 넣어 놓는 것도 그러한 방법 중에 하나이지만 자본으로 치환하는 것, 제도 안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 조직 안에 묶어 놓는 것 등등이 모두 가능해진다. 그러나 가장 큰 단위에서는 '민족'안에 존재자들을 존재에 귀속시키고 그러한 존재를 '지식과 앎'을 통해서 소유함으로써 특정한 주체는 존재자들을 넘어서 존재까지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마블의 타노스는 하이데거의 현현과 같다. 건틀렛에 인피니티스톤은 존재를 모두 소유한 주체를 이야기하는 것만 같다.



2) 레비나스


그럼 레비나스는 이것을 어떻게 다룰까? 스승인 하이데거에게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향유이다. 인간이 기본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은 무엇인가의 제약된 관계나 소유가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였던 것이다. 더욱이 존재자들은 풀, 바람, 나무, 물, 건물, 물건 등등 모든 것들인데, 그것들과 관계 맺는 방식인 '향유'를 통해서 인간은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예쁜 꽃이 있는데, 예쁜 꽃을 꺽는 순간 나는 그 꽃을 가질 수는 있지만 더이상 꽃이 생명력을 가지고 내게 주는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누릴 수 없다. 소유하는 순간 그것은 출애굽기의 만나와 같이 다 썩어 버리는 것이 되는 것이다. 지식으로 정리해 놓는 순간 그것은 현재를 반영하지 못하게 된다. 현재의 다양한 주체들의 연결과 생명력과 생동감을 잊어 버리게 된다.


인간이 기본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은 무엇인가의 제약된 관계나 소유가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였던 것이다

feat. 성경

인간은 원래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 에덴에 주어졌고 거기서는 하나님이 주신 환경을 향유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인간이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나면서 스스로 노동을 해야 했고, 그 노동의 결과로 소산물을 얻어야만 살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의 단절은 곧 아벨과 가인의 제사 이후에 가인의 살인과 같이 타인을 죽이고 자신만 존재하고 싶은 욕망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어느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존재는 사라지고 '인간은 원래 이런 존재였어'라는 정의만 남아 버리는 것이다.


레비나스는 인간의 기본적인 존재를 세계를 향유하는 존재로 규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세계에 대한 소유가 아니라 세계와 더불어 존재하여 누리고 행복하고 감사하고 공유하는 주체이다. 이렇게 주체 개념이 향유로 정의되면 이제 이러한 향유를 안정감있게 누리고 싶어하는 '공간'의 개념으로 '주거'가 향유하는 인간에게는 필수적일 수 밖에 없다. 자연과 세계는 향유할 수 있지만 인간이 생명을 누리기 위해서는 당연히 거주의 공간에서 온도와 계절과 동물들과 미생물, 곤충들의 존재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레비나스는 인간의 기본적인 존재를
세계를 향유하는 존재로 규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거주의 개념이 등장하면서 '자신의 공간'이 생기고 인간은 그 공간 안에서 다른 존재와 구별해서 자신의 주체성을 지키고 싶은 욕구가 생겨나게 되었고 이것을 지키고 더 확장시키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향유의 공간을 침범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결국 향유하는 인간은, 자신과 동일하게 향유하는 인간과의 교차점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작은 단위에서는 갈등과 폭력이지만, 큰단위로 갈 수록 전쟁과 침략의 형태로 나타는 것이다. 향유에는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메트릭스의 3의 마지막 스미스요원과의 전투 다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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