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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May 19. 2021

한국의 재정구조는 어떻게 발전했나?

공공정책 과정_1970년데 이후 상황

https://brunch.co.kr/@minnation/2462



전환기의 한국재정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1980년대를 전환기라고 한다면 전두환정부에서 부터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특히 전두환 정부는 경제안정화를 위해서 초긴축 재정기조로 전환하는 부분에 있어서 정책적으로 얼마나 효과를 보았는지를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전두환정부는 1981년부터 1988년까지 정치적으로는 억압적 권위주의를 유지하면서도 경제정책은 초긴축정책으로 전환했다. 이것은 사실 권위주의라서 현재와는 다른 방식의 정책적 강압성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박정희 정부는 이미 1978년에 '경제안정화종합시책'이라는 것을 내 놓았고 이것을 더욱 강화하는 측면에서 전두화 정부는 예산팽창을 억제하고 일반회계의 팽창을 억제하는 정책을 썼다. 이것이 경제를 잘 모르지만 김재익을 필두로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한 '엘리트 인사'를 추구한 전두환의 신념이었다. 자신이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경제적으로 안정화 되어 살맛난다'라는 이야기를 국민들에게 들어야 했다.


전두환이 친애했던 경제대통령과 같은 김재익 비서실장



그리하여 1982년 영기준예산제도zero-based budgeting이 도입되었다. 따라서 국회의 심의를 통과한 1982년 예산에서부터 1984년 예산까지 동결되었고 당연히 예산이 필요한 사회적 이익이나 복지에 대해서는 억압적인 방식이 작동할 수 밖에 없었다. 영기준예산제도(零基準豫算制度, Zero-based budgeting)는 예산을 편성할 때 전년도 예산에 기초하지 않고 (0)을 기준으로 원점에서 재검토한 뒤 예산을 편성하는 방법이다. 1970년대 미국에서 기존의 점증주의 예산제도를 비판하며 개발된 예산 제도이다.


이러한 정책은 상당한 효과를 보았다. GDP대비 재정적자가 1981년에는 4.5%에서 1986년에는 0.1%로 줄어들게 되었고 GDP대비 중앙정부 통합재정지출 및 순융자는 1981년에 23%에서 15.9%(1986), 15.3%(1988)로 줄어들게 되었다. 그럼 어떻게 가능했을까? 당연히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를 억제하고 고속도로나 항만 등 다양한 인프라를 구축하지 않았다. 다만, 88고속도로 정도만 구축했다. 더불어서 공공부문에서 공무원들의 임금을 동결했고 농수산 수매가격 인상을 억제 시켰다.


이렇게 예산팽창을 억제하면서 강력한 지출통제를 한 결과 기본적으로 공공재가 공급되지 않아서 물류비용이 상승하게 되고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게 된다. 재정치줄이 줄어들면서 민간생산활동에 대한 보조라는 재정의 기본적인 목적도 달성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 당시 재정지출을 보면 심지어 국방비도 줄게 되고 사회간접자본비욜은 당연히 줄게 된다.



따라서 재정은 불균형하게 비체계적으로 운용되었는데, 특별기금이 다양하게 많아지면서 중앙정부 지출에서 많은 양을 차지하게 되었다. 비전형적인 지출이 증가하면서 일반회계 중심의 재정운용의 포괄성과 투명성이 악화되었다. 국가재정에 대한 전반적인 통제력도 약화되면서 부처간 할거주의가 심화되었다. 예산운용의 단일성도, 일관성도 약화되어 버린 것이다.



경제위기 이후 재정운용


경제위기의 극복과 재정의 운영에 대해서 알아보자. 1997년 말에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외환보유고가 현저하게 떨어지게 되었고 결국 국가부도가 오는 것이 아닌가라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이 당시 세계적인 구조조정의 흐름에 편승하면서 비정규직 양산과 함께 재정운용의 독립성을 잃어 버리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2007년 이후 리만브라더스를 시작으로 한 모기지론의 붕괴는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낳게 되었고 정부는 재정운용에 있어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보통 조세부담률은 GDP대비 조세총액에 100을 곱한 값이다. 국민부담금은 조세총액에 사회보장기여금을 포함해서 동일한 방식으로 나눈 것이다. 이러한 이해에서 경제위기 시기의 재정운용을 보면 국민들의 부담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볼 수 있다.


조세부담률 = 조세총액/GDP × 100

국민부담률 = (조세총액 + 사회보장기여금)/GDP × 100

OECD 통계에서 tax-to-GDP ratio는 조세부담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부담률을 의미한도.

한 나라 국민들이 일반정부에 납부하는 부담금을 측정할 때는 조세부담률 보다는 국민

   부담률을 일반적으로 사용한다고 보면 된다.



신자유주의는 1997년 이전부터 한국정부의 재정운용을 개혁하려는 움직임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끌어들이는 효과에 편승한 부분도 있다. 특히 김대중 정부는 금융, 외환위기와 IMF의 구제금융조건으로 해결을 추구했으며 이과정에서 기금제도를 정비하여 단일유형으로 저리하고 예외로 운영되전 부분을 재정운용 틀 안에서 포함하게 되었다. 그러나 특별회계와 목적세 정비에는 실패하여 예산이 특수한 이익에 편입되어 버리는 봉토fiefdom현상이 발생한다.



김대중 정부는 재정개혁을 통해서 조세감면에 대한 통제를 실행했고 정부회계제도를 개혁하였다. 1999년에는 예비타상성 조사제도도 들여오는 등 다양한 개혁을 시도했다. 그런데 여기서 신기한 점은 '탈권위'를 정부로부터 벗어난다는 의미에서 '시장'으로 이동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것이 신자유주의를 활성화하면서 신공공관리론이 정부운영 방식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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