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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Sep 15. 2021

청지기로서 인간

생각이 결과를 낳는다_대로우 밀러

어느날 한 일꾼이 이탈리아의 어떤 산에서
큰 덩어리의 대리석을 파내기 시작했다.


그는 여러 주 동안을 그의 통찰력 있는 눈과 강한 손 그리고 팔의 힘으로 계속해서 파 내려 갔다. 마친내, 그 대리석 덩어리는 파내졌고 또 다른 사람이 마차를 끌고 와서 플로랜스 지방까지 운반했다. 그리고 세 번째 사람은 그 돌을 가져와서 그의 작업실 안에 있는 받침대 위에 올려 놓았다. 이 돌을 파내기까지 세 명의 사람들이 열심을 내었다. 세번째 남자가 작업을 하다가 돌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멈췄다가 다시 흠집난 곳을 다듬는 작업을 했다. 마치 그는 그 돌안에 무엇이라도 들어 있는 것처럼 돌을 투사하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큰 덩어리였던 돌이 사람의 형상을 가지게 되었다. 이 돌은 나중에 '다윗상' The david라고 불리웠고, 그것을 만들어낸 사람을 사람들은 미켈란젤로라고 불렀다.



풍요 또는 풍성함이라는 것은 원천적으로
자연자원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풍요로운 창조성에 온다. 인간은 제2의 창조자이며 이성적인 사고와 직관을 이용해서 부를 창출하고 예술을 부흥시키며, 학문을 깊이있게 만든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창의로운 생각은 '시'를 짓는 것이다. 이렇듯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그 잠재성을 가능성의 현실로 끌어내는가는 우리가 사는 시대에서 매우 중요하다. 한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청지기'라는 개념은 애니미즘에서 말하는 '숭배자'라는 인간정의와 다르고 세속주의에서 말하는 '소비자'와 매우다르다는 것이다.



청지기stewardship의 직분을 부여받은 인간을 생각해보자. 청지기의 직분은 성경의 주요한 주제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생각해볼 수 있지만, 먼저 자연세계 안에서 청지기 직을 생각해보자. 이것은 하나님의 도성을 향한 하나님의 역사 안에서 진보를 이루어 가는 것을 이야기한다. 청지기는 그 분의 피조물들을 돌봄으로써 하나님의 이야기가 점차로 열매 맺도록 한다. 성경적 유신론이 바르게 적용된다면 우리에게 풍요로운 생각을 가져다 줄 것이다. 이것을 안다는 것으로만도 말이다.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

애니미즘 : 인간은 자연에 속해있으며 근원적인 영들, 조상들에 대한 숭배자가 된다.

유신론 : 인간은 제 2의 창조자이며 위임받은 권한으로 세상을 다스리고 관리하며, 풍요롭게 만드는 청지기이다.

세속주의 : 인간은 물질적인 풍요를 만들어내며 세상 속에서 누리는 존재이다. 대체로 우리 사회에서 인간은 '소비자'로 불리운다.  


힌두교에서의 창조_다니엘 불스틴

힌두교 신자들에게 있어서, 창조란 세상에 멋진 것들을 들여온 것이 아니다. 창조는 오히려 근본적으로 하나였던 것의 분해와 붕괴를 의미했다.

이성적이고 인자한 창조자가 이 세계를 불가사의한 새로운 형태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단일성을 지닌 자연을 셀 수 없이 많은 형태로 산산조객낸 것이었다.

힌두교 신자들은 우리가 사는 세계의 창조를 초월적인 존재가 자기 스스로를 제한한 것으로 보았다. 그들의 목표는 창조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불교에서의 창조_다니엘 불스틴

부처가 그에게 세상이 언제 그리고 어떻게 창조되었는가를 묻는 사람들을 묵상했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는가?

과연 부처가 되기 위해 구도의 길에 있는 어떤 자가 이 창조의 신비를 알고자 에너지를 낭비하겠는가? 부처는 창조 이전을 목표로 삼았다.

만일 창조자가 존재한다면, 그는 아마도 무자아가 소멸되고 싶은 욕구, 환생을 하고 싶은 욕구, 해탈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노력하고 싶은 욕구를 창조해 낸 이일 것이다.

불교도들의 주님은 무의 하나님이며창조적 인간으로서의 어떤 모형도 제시하지 않는다.


유신론적 우주론

유신론적 우주론은 어떤 창조자에게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유일한 창조자로부터 시작된다. 여기서, 그는 무력한 이신론자의 공상의 산물이 아니다. 창조자는 여전히 그가 지은 모든 것에 능동적으로 개입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집을 직접 설계해서 지으셨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소유로 삼아 계속해서 세워가진다.

다윗은 왕되신 하나님을 예술가로서가 아니라 건축가로서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주께서 옷을 입음같이 빛을 입으시며 하늘을 휘장같이 치시며, 물에 자기 누각으로 들보를 얹으시며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고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 바람으로 자기 사자를 삼으시며 화염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시며 땅의 기초를 두사 영원히 동치 않게 하셨나이다.



생각에 따라 세상이 달라진다

이 세상은 마친내 우리 마음과 지성 속에 들어 있는 것들로 가득차게 될 것이다. 만약, 우리의 지성이 텅 비어 있다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황폐하게 될 것이고, 우리의 마음이 굳어 버린다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자비가 없어질 것이다. 사름은 그 마음 속에 품은 대로 그렇게 된다라고 솔로몬이 말했듯이 사람이 사는 세상도 사람이 마음에 생각하는 대로 된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아래와 같이 이야기를 했다.

인간 본성을 가진 우리들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 안에 위치한다. 이는 그 자연을 그대로 놔두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강한 충동과 부르심을 가지고 인간의 예술을 통해서 자연ㅇ르 일구기 위해서 이다. 또 자연의 능력을 개발하고 완성시키기 위해서이다. 인간의 예술은 자연의 모든 영역에 적용하는데, 이는 자연의 생명체를 파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군다나 또 다른 체제를 병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연 안에 감추어진 채 놓여 잇는 힘을 자물쇠로 열기 위해서이다. 또한 자연에서부터 생겨나는 의지력으 ㄹ통제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시기 전에 그것을 마음에 품으셨고, 그리고 나서 우주를 창조하시기 위해 '일하셨던'것처럼, 우리 인간도 일을 통해서 세계를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부의 근원은 자연이 아니라 바로 인간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삶 속에 더 많이 적용하고 또한 하나님이 주신 은사들을 더 많이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더 많은 풍요를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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