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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Nov 13. 2021

서울 사랑

고정희_어둠을 위하여

빨래터에서도 씻기지 않은

高씨 족보의 어둠을 펴놓고


그 위에 내 긴 어둠도 쓰러뜨려

네 가슴의 죄 부추킨 다음에야


우리는 따스히 손을 잡는다

검은 너와 검은 내가 손잡은 다음에야


우리가 결속된 어둠 속에서

캄캄하게 쓰러지는 법을 배우며


흰 것을 흰 채로 버려두고 싶구나

너와 나 검은 대로 언덕에 서니


멀리서 빛나는 등물이 보이고

멀리서 잠든 마을들 아름다워라


우리 때묻은 마음 나란히 포개니

머나먼 등불 어둠 주위로


내 오랜 갈망 나비되어 날아가누나

네 슬픈 자유 불새되어 날아가누나


오 친구여

오랫동안 어둠으로 무거운 친구여


내가 오늘 내 어둠 속으로

순순히 돌아와보니


우리들 어둠은 사랑이 되는구나

우리들 어둠은 구원이 되는구나


공평하여라 어둠의 진리

이 어둠 속에서는


흰 것도 검은 것도 없어라

덕망이나 위선이나 증오는 더욱 없어라


이발을 깨끗이 할 필요도 없어라

연미복과 파티도 필요 없어라


이 어둠 속에서 우리가 할 일은

오직 두 손을 맞잡는 일


손을 맞잡고 뜨겁게 뜨겁게 부둥켜안는 일

부등켜안고 체온을 느끼는 일

체온을 느끼며 하늘을 보는 일이거니


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당당하게 빛나는 별이여


내 여윈 팔등에 내려앉는 빛이여

너로구나 모른 체할 수 없는


아버지 눈물 같은 너로구나

아버지 핏줄같은 돈으로


도시에서 대학을 나오고

삼십평생 詩줄이나 끄적이다가


대도시의 강물에 몸 담그는 밤에야

조용히 조용히 내려앉는 빛이여


정작은 막강한 실패의 두 손으로

한 웅큼의 먹물에 받쳐든 흐--이--땅

여전히 죽지 않는 너로구나


이제야 알겠네

먹물일수록 찬란한 빛의 임재, 그러니


빛이 된 사람들아

그대가 빛으로 남는 길은


그대보다 큰 어둠의 땅으로

내려오고 내려오고 내려오는 일

어둠의 사람들은 행복하여라




가슴아픈일이게도

사람들의 고달픈 일상을 미화하는 것으로는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시급히 처리해야할 문제들


거대란 시대의 흐름이 만들어낸

거리의 네온사인에게서


희망을 찾기란 불가능하지만

결국은 이 시원에서 불어대는 문제를 바꿔야지


고달픈 이들의 삶을 재료로

다른 이들의 가슴을 후벼판 댓가로


받은 찬사와 인정이라면

나는 차라리 꺼져버린 어둠이 되리라


밤에도 잠을 자지 못하고

눈을 감아도 꿈을 꾸지 못하는 이들에게


고달픈게 진실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갈 미래가 오히려


빛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되려면 나는 더 깊은 암흑속으러 들어가


근원을 바꿔어야 한다

더 이상 가난과 고통은 미화되면 안된다


우연이 만들어낸 일들이 불평등이 되지 않게

자연스럽게 도래할 미래를 만들어보자


항상 빚을 진 것처럼

살아온 삶의 마지막을 만들어보자


아직은 어둠을 향하여

걷고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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