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글라스 존홀_부정신학의 눈으로 바라본 그리스도교
주일 예배가 끝나면 책을 읽으면서 드리는 예배를 다른 곳으로 옮겨와서 드린다. 시대에 따라서 예배의 형식은 달라지고 내용은 어느정도 유지가 된다. 이 곳의 예배는 그런 의미에서 시대적인 흐름을 다르게 타고 있다. 지성에 깊이 들어가서 공유할 수 있는 판단을 해보고, 그것 중에서 우리에게 맞는 것을 찾아보는 것이 우리시대에는 유효하다. 그래서 모임을 시작했다. 사람들과 모여서 책을 읽고 토론하면서도 말씀을 읽고 성격을 묵상한다. 실험적이지만 그래도 한번 해봐야하지 않을까? 하나의 대항문화가 되지 않나?
11월 28일 공동체성경읽기 본문] 창세기 4:1-15 가인과 아벨, 무엇이 참된 제사인가?
지난 주일은 한국교회가 전통적으로 지켜온 추수감사주일이었습니다. 한 해의 수확과 결실을 감사하며 하나님께 제물을 드려왔던 교회의 전통을 생각하면서, 제사(제물)의 의미와 형제살해에 대해 묵상하려고 합니다.
- 가인과 아벨의 제물에는 어떤 차이가 있었는가?: 참된 제물의 기준은 내용인가, 형태인가?
- 왜 하나님은 가인의 제물을 물리치시고, 아벨의 제물을 받으셨는가?: 무엇이 참된 제사(제물)인가? : 제사(예배)인가, 삶인가?
- 제물로 인해 일어난 형제살해, 특히 가인의 아우살인은 어떤 관점에서 비평적으로 읽어야 하는가?
: 우리는 최초의 형제살해를 어떻게 재독(재해석)할 수 있는가?: 문명사적으로, 심리학적으로, 혹은 종교학적으로
- 하나님은 왜 살인자 가인에게 표를 주셨는가?
민네이션, 생각
제사란 무엇일까? 인간의 생각과 정체성이 어떤 '제도'에 담겨서 의식ritual이 되면 그것 자체로 상징적이 된다. 상징적이 된다는 것은 의도와 명분이 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제사'에 담겨진 두 세력간의 싸움이면서 '정당성'의 문제로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아벨을 죽인 가인의 심리적인 상태는 어땠을까? 신권사회에서 전능자의 인정을 받는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은 특혜를 누리는 판도가 달라진다. 가인의 행동을 '신정론'적인 관점에서 '가정사'적인 관점에서 '사회적'인 관점에서 정리할 수가 있다. 가인은 하나님이 안 받으신 제사에 대해서 화가 났다. 자신을 받지 않은 하나님이 얄미웠다. 동생은 그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서로 다투는 끝에 아벨이 살해당한다. 왜 가인은 살해까지 해야했을까? 왜 그런 결말까지 가지고 가야할까? 부모의 가정교육의 문제인가? 아니면 스스로 그렇게 된 것일까?
https://brunch.co.kr/@minnation/2735
기독교는 문화가 아니다. 또한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 그러면서도 문화-종교도 아니다. 무엇이 아닌가를 찾으면 아닌 것들 대부분을 빼면 진짜가 된다. 긍정신학이 나오는 것이다. 조직신학의 관점에서 그리스도교는 종교가 아니라 복음이다라고 말한다. 더 홀은 그런데 틸리히나 칼바르트의 '종교'담론을 '종교'로 보지 않았다는 부분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기독교는 문화도 아니고 종교도 아니다라고 할 때 더 홀은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교'이다. 라고 말한다. 더 홀은 결국 그리스도교의 핵심은 '계시와 예언'이다라고 말한다. 계시를 통해서 우리는 문화가 아니라,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향해서 말씀하시는 것'이 된다. 말씀 안에서 우리는 순종하는 것이다. 문화종교는 결국 인간이 중심이 된, 혹은 문화를 한번 더 입은 우상과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역사나 문화, 국가적 배경에 따라서 그리스도교와 문화를 연결하는 몇가지 방법을 취했다. 그 중에서 더 홀은 반문화anti-culture 혹은 대항문화counter-culture를 이야기한다. 분명 기독교는 서구문화와 동화되어 버리는 것에 대해서는 비판하지만 요더나 하우워어스처럼 급진적으로 가자고 하지도 않는다. 요더는 요즘의 기독교는 '콘스탄틴적 기독교'라고 부른다. 제국주의적인 성경 혹은 국가종교로서 기독교가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Above의 입장이다. 그런데 더 홀은 부정신학을 하기 때문에 대항문화도 아니고 문화적 융합도 아니라고 말한다. 게르하르트 로핑크의 대항문화에 대해서도 들어볼만 하다.
https://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96162
리차드니버, 그리스도와 문화의 5가지 관계
above : 기독교가 문화보다 우위에 있기 때문에 잘 다스려야 한다.
of : 기독교는 문화와 융합되어 있다//
against : 기독교는 분리되어야하고 오히려 싸워야 한다.
paradox : 기독교와 문화는 서로 얽혀져 있다. 그러나 잘 융합되지는 않는다.
transformer : 기독교는 문화 속에서 구조와 방향을 구분하고 방향을 변혁해야 한다. 문화를 변혁해야 한다.
더 홀은 캐나다의 대부분의 교회들이 서구적 삶의 방식을 자신들의 삶과 동일시하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캐나다의 입장에서는 미국의 관습과 미국적 가치를 그리스도교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조금 더 크게 보자면 북미 그리스도인들이 자주 행하는 자신들의 기존의 문화와 기독교의 문화를 융합하려는 부분이 비판점이다. 그리스도교의 미국화와 프로테스탄티즘의 미국화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종교는 예언자적 성격을 띤다. 예수의 가르침과 삶은 종교권력과 항상 충돌하고 예수님의 비판은 신조와 의례, 도덕규범에 대해서 맹렬했다. 그러나 현재 그리스도교는 어떤가? 대항문화는 주류문화에 대항하는 공동체를 만든다. 하위문화sub-culture는 주류문화나 기성문화를 비웃으면서 등장한다. 예를 들면 히피라던지 행위예술과 같은 것들이다. 그리스도교는 대항문화적인 성격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도 아니다.
더 홀의 관점을 받아들여 '문화-종교'의 융합을 비판적으로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한국교회는 어떤 방식으로 서구적인 문화와 닮아 있는가? 가장 큰 부분은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서열화, 교환의식, 부채, 기브앤테이크, 성과주의, 기업식 운영'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자본주의적인 방식이 미국교회에서는 당연한 것처럼 한국교회도 서구식 종교로서 미국의 방식을 가져오면서 비슷하게 진행되고 있다. 국가주의, 개인주의와 같은 부분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또한 한국이 원래 가지고 있던 문화가 기독교와 연결되면서 만들어지는 문화적인 요소들도 있다. 예를 들면 기복신앙이 어떤 부분은 기도의 열심으로 새벽기도나 금요철야와 같은 부분으로 드러나는 것들이다.
오해하지 말자! 기독교와 문화가 어떤 방식으로든 반드시 연결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그 연결이 다른 상황, 다른 컨셉에서 전복되거나 포섭되거나,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문화를 만들어내는 존재는 개인과 사회, 시장과 국가가 있다. 문화종교라는 부분에 대해서도 문화를 만들어내는 주체들이 국가가 되면 국가종교가 되고 개인이 되면 개인주의적인 종교가 되고 사회가 되면 문화와 사회가 융합되면서 문제가 다양하게 발생한다. 다음에서 보는 사회학자 피터버거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피터버거, 엄숙한 집회의 소음
미국사회는 만연한 방식으로 유대-그리스도교 전통에 뿌리를 둔 문화-종교를 소유하고 있다. 대다수 미국인이 덕목으로 여기는 것들은 바로 이 문화-종교에 담겨 있다. 문화-종교들은 엄숙하게 이러한 덕목들이 가치 있다고 승인한다.
그리고 어떠한 정부가 들어서든 문화종교는 이미 그 안에 주요한 목소리로 작동하고 있다. 믿음과 실천에 일정한 차이가 있다하더라도 각 교파는 전체적으로 이 문화-종교의 전달자들이다. 그러므로 각교파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은 사실상 공동의 정치적 신조에 충성을 다짐하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마찬가지 차원에서 교파에서 탈퇴하는 이는 종교적으로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의심을 받는다.
문화와 종교의 연결에서 교회는 대안교회, 대항교회, 대조교회의 형태를 취할 수 있다. 시대와 사회, 문화와 종교에서 어느정도 거리를 두고서 다른 방식으로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대조교회라면 대항교회는 잘못된 문화와 사회에 대해서 맞서서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대안교회는 이 시대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 우리 시대에서 대안 교회는 많이 사라졌고, 대부분이 대조교회라는 명목하에 문화에 적응하지 않지만 대항 문화를 만들지는 못하는 상황으로 전락했다. 더 홀은 앞으로 그리스도인들이 대항문화로써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에 있어서는 담대해야 하지만 겸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167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