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신학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만민네이션 Dec 05. 2021

그리스도교를 다시 묻다 2장 _성서의 종교가 아니다

더글라스 존홀_부정신학의 눈으로 바라본 그리스도교

0. 들어가기


부정신학은 철학으로 보면 귀류법에 속한다. 아닌 것들을 다 빼면 진짜가 남는다는 것이다. 더 홀은 캐나다 신학자로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앙의 본질이 미국식 자본주의에 의해서 덮입혀지는 것을 인식하고 자신들의 신앙을 자신들의 현재에서 부활하고 싶어 한다. 마치 데카르트와 같이 방법론적 회의를 통해서 성경, 신앙, 부활, 교회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가지고 온다. 오늘은 두번째 시간으로 '성경' 자체를 신적으로 만들어 버리는 기존 신앙에 대해서 비판한다. 합리적이지 않고 성서문자주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독침을 가한다.


https://brunch.co.kr/@minnation/2746




1. 성서주의와 문자주의


그리스도교의 필요조건은 성경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충분조건은 오히려 문화이고 우리의 삶일 것이다. 성서주의자들은 성경을 필요조건이자 충분조건으로 둔다. 그래서 성경자체에 갖히게 된다. 그리고 성경에서 성경을 검증하는 순환논법에 빠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사고, 이성, 고민이 답이 내려지지 않고 반지성주의에 의해서 '믿음'으로 강요받게 된다. 문자주의는 성서 안으로 들어가서 더 큰 문제를 만들어내는데, 문자가 쓰여진 그대로의 역사를 오늘날에 덧입히는 것이다. 때로는 세대주의가 나타나기도 하고 예언을 완전하게 성취하는 것으로 믿는다. 시대와 맥락에 상관없이 초월적인 문자가 실현된다고 보는 것이다.



2. 북미권의 성서주의


다음과 같은 이유로 미국을 포함한 캐나다에서는 성서문자주의가 승리를 거두게 된다. 따라서 미국식의 신앙이 깊이가 없고 극단적이고, 해석의 여지가 별로 없어지는 대중주의적인 성격들이 점차 축적되어 갔다. 물론 이것은 저자의 생각이다.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도 볼 수 있지만 고민해볼 지점이기는 하다.


단순주의 : 북미권에서는 신학연구와 진지한 성수주석보다는 경건함, 도덕성, 직설적이고 단순한 가르침이 중시되었다.

교파주의 : 교파가 분화되면서 자신들의 교파를 지키기 위한 성서본문을 가지고와서 자신들의 도덕적 입장을 뒷받침하는 도구로 사용한다.

대중주의 : 온건하고 진보적인 그리스도교인들은 점차 설교에서 성서 주해를 배제했고 대신 평범한 종교적 가르침, 대중이 관심 있어하는 주제에 관한 이야기 하면서 청지기적 해석을 강화시켰다.

반계몽주의 : 다윈주의와 과학이론에 대한 반대의식으로 진리를 객관적으로 탐구하려는 학문자세를 추방했다.

미국주의 : 북미권의 그리스도교는 미국주의Americanism과 동맹을 맺었다. 직접적이고 이해가 쉬운, 단편적인 표현만 해주길 원하는 북미권의 특징이 그대로 드러났다. 따라서 미묘하고 오묘하고 다양한 이해를 가지는 성경해석은 배제되었다.

언론의 역할 : 광고와 텔레비전에 의해서 신앙은 매우 단순하고 편향적인 메시지만 전달했다.



3.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가?


종교개혁까지는 사람들은 '성경=하나님말씀'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16세기 이후에 계몽주의와 자유주의의 시대가 찾아오면서 성경을 하나의 역사적인 자료로 보기 시작했다. 성서비평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역사학이 발전해야 한다. 역사로 기록하려면 살아 있는 사람들의 기록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을 살아있는 존재로 치환하는 과정에서 '신화화'할 수 밖에 없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신화의 한 입장을 대변하는 역사적 인물로 축소되었다. 재밌는 사실은 현대주의가 휩쓸고 가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에는 이렇게 보는 관점이 또 다르게 전개된다.


칼바르는 인간의 언어와 하나님의 말씀이 섞여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에 의해서 하나님의 감동으로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그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라는 것이다.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선포될 때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칼 바르트의 관점을 받아들일 것인가는 개인의 자유이지만 바르트의 논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4. 종교개혁에서 성경의 권위


중세시대까지, 아니 종교개혁이 일어나기까지 교회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읽을 수 있었다. 다시 말하면 일반인들은 성경을 제대로 볼 수 없었고 이해할 수도 없었다. 교회의 권위는 성경으로부터 나왔고 성경을 통해서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했다. 그러나 계몽주의시대 이후에는 이성이 권위를 이어 받았다. 이 사이에 종교개혁주의자들이 진행했던 성경의 권위를 높였다는 부분이 다르게 해석되는 양상이 만들어진다. 근본주의와 자유주의 싸움은 결국 종교개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라는 것이다. 더 홀은 2장에서 칼빈과 루터의 이야기를 꺼낸다. 성경에 오류가 있다라는 논의가 시작되지는 않았지만, 칼빈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은 성령께서 말씀이 되게 하실 때라고 했다. 문자로 기록된 말씀이 성령의 감동으로 읽혀지고 선포되어질 때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고 말했다.


https://brunch.co.kr/@minnation/2106



5. 성경을 바라보는 관점


성경을 어떻게 볼 것인가? 역사적으로 비평학에서, 역사학에서, 신학에서 많은 논의들이 있었다. 영감설은 크게 3가지로 나누어진다. 대부분의 보수교단에서도 역동적인 영감설을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축자영감설'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성경의 오류가 없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은 기계적 영감설을 취하는 것이지만 모순적으로 유기적 영감설로 설명하기도 한다. 이 부분은 판단하고 살펴보아야 한다.


기계적 영감설 : 성경은 하나님이 직접 주신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불러주시고 인간이 그것을 받아서 적었다. 여기서는 인간의 노력이나 작용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보통 축자영감설이라고 한다.

유기적 영감설 : 성경은 신적인 기록물이 아니라 인간의 종교적인 작품이라고 본다.

역동적 영감설 : 하나님이 기록하게 했지만, 인간이 쓰게 되었다. 인간의 개성과 필체가 성경에 반영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영감설에서는 기록자가 다르면 다른 방식으로 쓰여진다는 것을 인정한다.


아무리 하나님의 모든 진리를 가장 큰 목소리로 명료하게 공언한다 할지라도 세상과 악마가 공격하고 있는 순간에 침묵한다면 이는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군인의 충성심을 입증하는 순간은 전투가 벌어지는 순간이다. 그 순간 뒤로 물러선다면, 아무리 다른 때 전장에 있어도 소용없다. 오히려 이는 군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비겁한 행동일 뿐이다_루터


6. 종교개혁 사상에서의 성서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구체적으로 고민해보아야 한다. 그럼 종교개혁에서 자유주의도, 보수주의도 나온다면 그들은 도대체 어떤 관점에서 성경을 보았는가? 더 홀은 다음과 같은 요인들로 정리한다.


성서와 성서 연구는 그리스도교인의 삶과 사명의 필수 요소이다.

성서는 결론이 아닌 수단으로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용어를 아무 제한 없이 성서에 적용할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성서의 증언은 영감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 영감을 받은 증언만으로는 우리에게 영감을 줄 수 없다.

성서에는 언제나 얼마나 권위가 있느지 선택해야 할 부분이 있으며 종교개혁가들이 이를 구별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성서에 귀 기울이는 것은 시대정신에 귀 기울이는 것을 포함한다.


신학을 한다는 것은 한 손에는 성경을, 한 손에는 신문을 드는 것을 포함한다
_칼바르트


https://brunch.co.kr/@minnation/2145


7. 성경읽기의 문제


근본주의자들은 성경본문이 무엇을 말하는지 고려하지 않는다. 다시말하면 '맥락'context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정한 본문만을 자신들의 교리에 맞게 강조하는 것이다. 부유함에 대한 본문만 읽는다던지, 세속주의의 욕망을 부축이는 방식으로 성경을 사용한다. 반대로 자유주의자들은 성경자체를 믿지 않기 때문에 신화하거나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핵심인 성경을 제대로 읽으면서 거기에서 다양한 비판과 해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관점에서만 해석하는게 문제이다. 가만히 생각해보자.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우리의 삶에 바로 적용하려고만 하지 않는가? 우리의 세계관 안에 자리잡은 성경, 사회, 국가, 역사, 문화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생각해보는 과정들이 필요하다.


성경은 고증학적, 고고학적인 역사실증주의적인 관점에서만 해석되지 않는다. 성경은 오히려 해석된 역사의 집합이다. 그 자체를 바라본 제자들의 믿음이 가져온 해석이지 그 자체는 아닌 것이다. 신앙의 눈으로 성경을 읽는 것은 중요하다. 고민거리는 창조과학의 관점에서 성경을 바라보는 것이 과연 옳은가?라는 것이다. 믿음과 계몽주의, 역사주의와 사실주의의 관점에서 성경을 오독할수 있는 부분은 매우 많다.


https://brunch.co.kr/@minnation/2130



8. 성경과 그리스도교의 미래


종교개혁자들이 절대적인 권위를 지니고 있다고 여긴 것은 모든 권위를 초월하시는 하나님 한 분 뿐이다. 예언자들은 불타는 덤불에서, 산 정상에서, 꿈에서, 한밤중에, 고난과 추방당한 사람들 사이에서 이 절대적인 권위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믿었다. 우리는 성경을 알아야 한다. 성서주의자들을 불편해하거나 업신여긴다고 해서 이를 이유 삼아 성경을 멀리해서는 안된다. 무수한 사회적 문제가 있다고 해서 자신이 희귀하고 독특한 생각을 발겨했다고 해서, 인터넷이 있다고 성서를 책상이나 탁자 위에 둘 필요가 없다고 여거서는 안된다.


그리스도교는 성서의 종교가 아니다.
그러나 성서 없이는 그리스도교의 미래는 없다.
_더글라스 더 홀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2057680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8543143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07869496


https://brunch.co.kr/@minnation/372


매거진의 이전글 그리스도교를 다시 묻다 5장 _교회가 아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