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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Mar 13. 2022

기독교, 7가지 종류가 있다

브라이언 맥클라렌_기독교를 생각하다 1장

책의 저자 브라이언 맥클라렌은 혁신적인 기독교 사상가이다. 배타주의, 포용주의, 보편주의자라고 한다. 맥클라렌은 스스로 '관대한 정통'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내고 '정통'에 방점을 찍지만 관대하게 다른 사상과 비판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포스트모던시던, 포스트크리스텐돔(국가종교로서 기독교) 시대에 종교란 무엇인고 정통이라는 것은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우리는 이번 책에서 조금은 넓은 시야에서 다양한 기독교 종파를 알아보고, 다시 정통이란 무엇인지 돌아오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전문가적인 설명이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흥미있게 읽을 수 있다. 스텐리하우어워스를 넘어서 이책을 마치고 다음에는 한나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을 읽을 것이다.


https://brunch.co.kr/@minnation/2880



0. 들어가기


맥클라렌은 자신이 경험한 7가지 종류의 기독교에 대해서 말한다. 한국의 경우 장로교가 지배적이기 때문에 보통은 첫번째 유형인 보수주의 프로테스탄트의 영향을 많이 가지게 된다. 동방정교회라던지, 재세례파와 같은 교파는 거의 경험하기 힘들기 때문에 자신의 믿음이 여기에 가깝다고 하더라도 알기가 어렵다. 우물안 개구리라고 했던가? 7가지 교파에서도 다양한 부분에서 차이점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단논쟁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저자의 이야기처럼 관대한 정통의 관점에서는 그럭저럭 가까울수도 있을 것이다. 보수주의 프로테스탄티즘, 로마카톨릭, 오술절, 동방정교회, 자유주의 프로테스탄티즘, 재세례파, 해방신학을 각각 알아보고 내가, 우리가, 내가 다니는 교회가 어던 교파에 속하는지 생각해보자.



1. 보수주의 프로테스탄트 예수, 죽음으로 개인을 구원하신


보수주의 프로테스탄트들에게 복음의 핵심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다.

예수님은 돌아가시기 위해서 태어났다.

교리에 중심을 두기 때문에 도그마라고 부르면서도 '객관성'이 매우 높다. 주관적인 체험보다는 객관적인 신앙을 가지기 위한 보편화되고 공통화된 교리를 갖게 된다. 이부분이 카톡릭 신앙과 연결된다.

하나님의 무한한 연민과 용서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인간 불의가 사라지는 놀라운 역사가 십자가에서 이루어졌다.

하나님의 자비는 인간악을 덮고도 남았다. 십자가에서 인간악의 강력한 공포가 그보다 더 강력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자비를 만난다.

보수주의 프로테스탄트들은 예수님을 4가지의 비유로 말한다. 법적,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인 관점에서 하나님이 설명된다.


4가지 보수주의 비유

법적 비유 : 하나님은 법관이시고 인류는 유죄 판결을 받아 사형을 언도 받았다. 그런데 인류의 완벽한 대표이신 예수님이 온 인류가 받아야할 사형을 받으셨고 정의가 이루어졌다.

경제적 비유 : 하나님은 선한 주인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종이다. 예수님의 몸값으로 자신을 지불하셨다. 매매행위, 가격, 지불 같은 비지니스 용어가 연결된다.

정치적 비유 : 인류는 왕을 반역했다. 인류가 용서를 받고 시민 자격을 회복하려면 회개하고 하나님의 듯에 다시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인류의 회개와 화해가 이루어지게 하셨다.

군사적 비유 : 인류은 외국열강(죄, 마귀, 죽음이 가장 흔한 적)에게 정복당했다. 이에 예수님은 외국 열강과 싸우다가 죽음으로 패하신 듯하다. 하지만 그 분의 죽음은 결국 적의 파멸로 이어졌다. 이 비유에서는 전투, 패배, 정복 같은 군사 용어가 중요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ZoLAijz32wQ

보수주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전형을 을 보여주는 영상, 어린시절 정말 많이 울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힘이 없으신가?


비판

하나님은 폭군인가? 아들을 죽이는 신의 폭력을 어떻게 정당화할 것인가?

하나님은 자신이 만든 세상에서 만들어 놓고 바꿀수는 없게 되는가? 전지하지 않거나 전능하지 않게 되는 것인가?

하나님과 공중의 권세잡은자들에게서 어떤 권위의 위계가 있는가?

코로나로 인해서 죽어가는 사람들과 건강한 사람들은 어떤 차이가 있어서 그렇게 되는가? 하나님은 편애하시는가?


https://brunch.co.kr/@minnation/2095


2. 로마 카톨릭 예수, 부활을 통해 교회를 구원하신

로마 카톨릭은 의식을 가장 중요시 하면서도 교회를 강조한다.

보수주의 프로테스탄트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개인을 구원하신 역사에 초점을 맞춘다면, 은사주의 교회는 예수님이 성령을 주심으로 계속해서 개인을 구원하신다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신다.

그에 비해 로마 카톡릭은 예수님이 죽음에서 일어나심으로 교회를 구원하신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은 모든 것을 이기셨고 이로 말미암아 교회가 사회의 정의와 불의에 집중해야 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교회적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교황과 사제의 역할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으며 교황의 권위는 그자체로 신성함을 가지게 된다.

특히 로마 카톨릭은 부활과 실천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비판

교회를 중심으로 신앙을 전개할 경우 개인의 은혜와 하나님과의 만남은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닌가? 오히려 교회가 타락할 경우 개인이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을 못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사제나 교황은 과연 신성한가? 인간의 욕망을 완전하게 통제할 수 있는가?





3. 오순절/은사주의 예수, 강력한 임재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순복음교회라고 보통 이야기하는 오순절 주의는 육체성, 물질성, 현세성이 강조한다고 본다.

강력하게 임재하시는 성령님을 중심으로 기적적인 부분을 중요하게 여긴다. 따라서 당연히 체험을 중시한다.

보수주의 프로테스탄튼 예수님이 과거의 죽음으로 미래의 지옥에서 우리를 구원하신다면, 오순절파 예수님은 강력한 현재의 임재로 우리를 구원하신다.

예수님을 진심으로 따라서 성령충만한 사람이라면 초대 교회 성도들이 오순절이라는 절기에 경험했던 것처럼 방언 혹은 미지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순절파에서는 구원받은 기독교인과 성령충만한 사람을 하나의 편으로 보고 구원을 경험하지 못하거나 성령충만한 사람을 다른 한편으로 보는 이분법이 존재한다.


비판

현재성과 물질성 때문에 오순절주의는 번영주의에 빠질 우려가 많지 않은가?

개인과 집단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사회의 변화나 문제, 국가의 부도덕성의 문제에 대해서는 문외하지 않은가?

경험을 어떻게 외재화할 수 있을까? 그것은 오직 고백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어떻게 구분하며 진짜라는 것의 강도는 어떻게 정하는가?

경험을 주시는 않아서 못 받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개인의 신앙이 부족해서인가?


http://reformedjr.com/board01_02/2123



4. 동방정교회 예수, 온 우주를 구원하려 인간으로 오신

동방정교회는 '예전'ritual을 강조한다. 활동적인 신앙보다는 정적인 신앙을 강조한다.

아들예수, 아버지 하나님, 도우시는 성령님의 방점에서 동방정교회는 아들 예수보다는 아버지 하나님을 강조한다. 그래서 창조를 더 강조하는 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구원을 신화로 보는 경향이 있다. 구원의 반대말은 우리의 육체가 썩어지는 것을 말한다면 사멸적인 존재로 남는 것을 말한다. 부활은 예수님을 본받아서 우리도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있게 된다고 믿는다.

십자가를 강조하기는 하지만 부활은 창조의 기쁨으로 다시 돌아가는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다.

영원한 신성에 참여하는 것이 구원의 본질이기 때문에 창조가 중요하게 된다.


비판

예전을 강조하다보면 내면적인 변화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다.

상징을 사용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상징에 묶여 버릴 수 있는 한계도 존재한다.

구원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룰 수 없다는 문제는 어떠한가?




5. 자유주의 프로테스탄트 예수, 온 세상에 복된 삶의 방식을 제시해주신

성경이나 기독교 교리를 이성적으로 받아들인다. 이성적으로 합리적이지 않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합리적이기 때문에 믿을 수 있다. 성경에서 등장하는 초자연적인 사건들은 이성의 눈으로 볼 때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럼 남아 있는 것은 '도덕과 윤리'가 남았고 그것을 이성적으로 따를 것인지가 중요하다.

해방신학과 다른 부분은 인격적인 도덕이라는 부분이고 구조적인 악에 대해서 접근하지 못하는 것이 자유주의 프로테스탄트의 특징이다.

인간은 선한존재이고 얼마든지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사회는 무한히 진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서 칼바르트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근대의 기획'이라고 보고 한계를 말한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사랑과 치유, 정의, 연민의 행위는 온 세상에 복도니 삶의 방식을 제시해준다. 우리 임무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본보기로 온 세상, 그러니까 우리의 개인적 관계 뿐 아니라 우리 세상의 정치 구조와 문화 체제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비판

이성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이 실제로 발생한다. 성경에서도 예수님이 물위를 걸으셨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기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것은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에서는 비 논리적이고 비이성적인 것인데 정말로 이것은 신화인가?

이해되지 않는 이유가 나의 이성의 한계라고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은 나의 잘못인가?

신앙과 이성의 연결은 불가능한 것인가?




6.재세례파 예수, 가르침과 본보기로 구원하시는

재세례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평화'이다. 예수님은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오셨다.

재세례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십자가 사건'이 아니라 십자가의 삶이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를 용서받게 하신 것보다는 오히려 삶의 모범으로서 보여진다.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가르침을 주시는 예수님의 삶이라는 부분에서는 자유주의 프로테스탄티즘과 연결되면서도 십자가 사건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부분에서는 보수주의와 연결된다.

역사적인 예수라는 관점에서 실제로 가르쳐주고, 실제로 삶 속에서 인격적으로 보여주신 예수님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믿는다는 것은 예수를 따르는 것이 신앙의 본질이다.

재세례파는 구속이론, 성경에 대한 문자적 비유와 해석, 성찬식 같은 의식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일상에서  이웃과의 삶 가운데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한느 것을 소명으로 본다.


비판

인간을 보는 관점에서 오직 삶 자체만 있는가? 다시 말하면 일상의 삶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구조와 방향, 정치와 문제들에 대해서 실제로 바꿔야 하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가?

예수님이 실제적으로 구원을 위해서 오셨다고 하는 성경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https://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3449



7. 해방신학의 예수, 억압받는 자들의 편인

해방신학에서 강조하는 것은 '사회정의'와 '구조주의'이다.

배제당한 사람들과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정치적인 활동을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성경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당파성을 가지고 있다.

모든 신앙은 보편적이지 않는다.중립적이거나 객관적일 수 없고 항상 편을 들 수 밖에 없다.

그럼 성경에서는 당연히 가난한 자를 위해서 편을 들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이끄시되 억압 체제에 맞선 제자들의 행동에 특히 관심을 두신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통해 모든 억압받는 사람들의 해방을 위해 일하신다. 예수님의 죽음은 비폭력 저항으로 당시의 부패한 종교 체제와 폭력적이고 불의한 정치 및 경제 권력층에 맞섰다


비판

예수님이 오신 이유는 비단 해방을 위한 것인가?

정치적이고 억압적인 구조가 그렇게 심하지 않은 나라들에서 신앙은 방향성이 뚜렷해지지 않게 되는건 아닌가?

보편적인 신앙은 정말로 불가능한가?


https://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21196



0. 나오기


보수주의 프로테스탄티즘에서 25년을 다니고 지금은 재세례파와 동방정교의 리추얼이 가득한 예배를 드린다. 그러면서도 사회문제에 해방신학적이 관점처럼 변화를 준비하고 있고 일반적으로는 이성을 사용한다. 맥클라렌이 말한 것처럼 '관대한 정통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지혜가 아닐까도 생각된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이것을 통해서 나의 신앙을 따져보고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을 바꿔야하는지 그리고 앞으로 한국교회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지를 고민해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책소개


교파와 교회를 넘어선 21세기 기독교에 대한 새로운 모색

출간하는 책마다 열렬한 환호와 혹독한 비판, 양 극단의 반응을 몰고 다니는 브라이언 맥클라렌의 『기독교를 생각한다』는 진정으로 관대한 기독교 정통신앙을 매력적이고도 도발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저자는 포스트모던 에큐메니컬 선교적 기독교 신앙을 얻고 실천하려는 모든 이들에게 모범적인 모델을 제시한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 둔다. 그리고 예수님의 중심되심이 관대한 정통신앙 특유의 열린 태도와 결합되어 있다. 서두에서는 저자의 신앙 여정을 소개하고 2부에서는 본격적으로 현재 저자의 신앙을 형성하고 있는 다양한 기독교 전통의 장단점을 소개하면서 독자들의 인식을 넓히고자 한다. 또한 이머징 교회 운동의 태동과 ‘이머전스’라는 이름의 기원을 설명하면서 관대한 정통신앙과 이머전몽의 밀접한 상호관계를 보여준다



목차

필리스 티클의 추천사 우리 시대의 95개조 반박문
존 프랑케의 추천사 변해버린 세상과 교회의 변화

프롤로그 당신은 어떤 기독교인인가

0장 이 위험한 책을 읽기 전에

1부 왜 나는 기독교인이 되었는가
1장 내가 만난 일곱 교파 예수
2장 예수를 통해 경험되는 새로운 하나님
3장 예수라면 기독교인이 되었을까
4장 예수는 무엇을 구원했는가

2부 나는 어떤 기독교인인가
5장 나는 왜 선교적 기독교인인가
6장 나는 왜 복음주의자인가
7장 나는 왜 포스트 프로테스탄트인가
8장 나는 왜 자유주의자이자 보수주의자인가
9장 나는 왜 신비주의자이자 시인인가
10장 나는 왜 성경주의자인가
11장 나는 왜 은사주의자이자 관상가인가
12장 나는 왜 근본주의자이자 칼뱅주의자인가
13장 나는 왜 재세례파이자 성공회교도인가
14장 나는 왜 감리교도인가
15장 나는 왜 가톨릭교도인가
16장 나는 왜 환경주의자인가
17장 나는 왜 성육신적 전도자인가
18장 나는 왜 낙심했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는가
19장 나는 왜 이머전트 기독교인인가
20장 나는 왜 끝을 모르는가

에필로그 솔직하게 털어놓는 신념이자 이야기이며 심정
옮긴이의 글 절대주의와 상대주의의 아찔한 균형 잡기


 브라이언 맥클라렌 (Brian D. McLaren)


이머징 교회 운동의 대표주자로 손꼽히는 강연가이며 목회자로, 기독교 지도자들과 사상가들 사이에서 혁신적인 네트워킹 운동가로 맹활약 중이다. 1956년생으로 메릴랜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고등교육 기관에서 교편을 잡았던 그는, 1986년에 학계를 떠나 워싱턴 지역 볼티모어 시에 위치한 혁신적인 초교파 교회 시더릿지 커뮤니티 교회(Cedar Ridge Community Church)의 개척 목사이다.

1980년대 중반 이후로 교회 개척자와 목회자들 사이에서 활발한 네트워킹과 멘토링을 해 오면서, 여러 교회의 설립에 관여했다. 그는 미국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캠퍼스 선교단체나 교회 수련회, 신학교나 컨퍼런스에 강사로 자주 초청받는다. 그의 강연은 포스트모더니즘과 성경 연구, 전도, 변증, 리더십, 지구촌 선교, 교회 성장, 교회 개척, 미술과 음악, 목회자의 생존과 탈진, 종교 간 대화, 생태학, 사회 정의 등 광범위한 주제를 포괄하고 있다.

선교적 기독교 지도자들 사이의 우정을 통해 창조적인 사역을 도모하는 단체 'Emergent Village'에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소저너스(Sojourners)'의 이사와 '레드레터 크리스천(Red Letter Christians)'의 발기인이기도 하다. 또한 '오프더맵(off-the-map.org)', '인터내셔널 팀스(www.iteams.org)', 마스힐 대학원(mhgs.edu) 등에서 섬긴 바 있다. 저서로는 『저 건너편의 교회』『믿음찾기』『나는 준비된 전도자』『세상을 정복하는 기독교 문화』 『The Story We Find Ourselves In, The Last Word and the Word After That』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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