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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Dec 17. 2022

노무현으로부터 좋은 정치를 상상하다

읽는 사람들 모임에서 얻는 깨달음

핵심키워드 : 토론공화국, 행정에 진심, 민주주의 3단계론, e지원시스템


0. 들어가기


세계적으로 보수화가 깊어지는 것이 트렌드라고 하더라도 한국정치를 보면 '정말 이건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삼권분립이 무색할만큼 검찰공화국이 되어가는데도 사람들이 박수를 치는 이 현상은 포퓰리즘의 다른 이름인 전체주의로 가는 길 같다. 엘리트주의가 만들어낸 허상이 대한민국의 수구의 장막을 내리는 것 같다. 진지하게 토론하는 문화도 사라지고 태극기냐 아니냐 이런 색깔논쟁이 한국정치를 뒤덮고 있다. 사실 진짜 고민해야하는 것을 고민할 생각도 없이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항변하는 데만해도 시간이 너무 많이 들어 간다. 그래서 오히려 노무현이 생각난다. 노무현이 생각했던 정치는 무엇인가? 추운 겨울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앉아서 강의를 듣다보니 '진보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아직까지, 아니 여전히 '노무현으로 부터 좋은 정치를 상상할 수 있을까?


노무현을 입체적으로 보기 위한 연극



1. 시민에서 시민으로


노무현은 세속의 변호사로 커리어를 시작한다. '여보 나좀 도와줘'라는 책에서보면 노무현은 그냥 평범한 엘리트로 성장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그리 일반사람과 다른 점도 없고 또 뚜렷한 비전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은 언제나 그렇지 않는가? 어떤 사건이 자신의 동기가 되고, 그 동기가 되는 것들을 행동으로 옮겼을 때 자기 스스로를 규정짓는 시간이 되어 버리는. 그게 바로 정체성이 되는 그런 중요한 분기점 말이다. 변호인이라는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는 혹독한 고문을 당하는 청년들을 보면서 비로소 양심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겠지만 노무현은 그냥 국가가 규정한 시민에서 '스스로가 규정한 시민으로서의 양심'을 해방해나가기 시작한다.


시민이란 그럼 무엇일까? 그것은 정치적 자유주의자로서의 시민과 개인적 책임을 가지고 있는 주체로서의 시민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의 이념적 이동은 좌와 우가 아니라 정치적 자유를 가지고 자유시장에서 자유롭게 자본주의를 누리는 시민에서, 개인적인 책임을 가지고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주체로서 움직이는 시민으로 이동한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메를로 퐁티는 이 세상에 인간이 주어져 있지만 세상 속에 같이 존재하는 인간들의 연결성을 볼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들을 대상화시키면서 자기중심적으로 살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대상화를 말하면서 '나도 살아야지'하는 실존주의자의 세속주의는 결국전쟁과 폭력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람 모두가 먹는 것 입는 것 걱정 좀 안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좀 신명나게 사는 그런 세상입니다!


노무현에게 주어진 현실은 더러운 꼬라지가 넘치는 세상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두 겁장이가 되어서 아무도 그 더러운 꼬라지에 대응하지 못하고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사람들은 항상 누군가 나서서 무엇인가를 해주기를 바라지만 자기 자신이 나설려고 하면 리스크를 생각하게 된다. 평범한 시민이었던 노무현이 현실에 무엇인가 변화를 만들어내는 주체적 시민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더러운 꼴'을 가만두고 보는 이 사회에 대한 분노가 반드시 핵심이었을 것이다. 원래 사람은 '진정성'을 갖을 때 목소리에서 빛이 나기 시작한다. 노무현이 진정성을 가지게 되는 시기에서 노무현은 우리에게 물어본다. "언제까지 이 더러운 꼴 보고 살겁니까? 시민 여러분!" 그러니까 말이다. 한숨이 나오면서 뒷걸음질치는 것 언제까지 할 것인가?라는 것 말이다.


나에게도 오늘 노무현을 생각하는 모임에서, 또 노무현을 기리는 시민센터에서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 나는 언제까지 비겁하게 살 것인가? 노무현이 우리에게 아니 나에게 남겨준 것은 무엇인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더러운 꼬라지를 언제까지 두고 볼 것인가? 그런데 그냥 나가서 싸운다고만 될 것인가? 그럼 어떻게 해야하는가? 노무현이 성공하고 실패한 것은 무엇인가? 노무현이 인식한 세상과 내가 인식한 세상은 어떻게 다른가? 노무현의 방법과 나의 방법은 어떻게 다른가? 또 어떤 것이 같은가?


https://brunch.co.kr/@minnation/1813



2. 지역주의와 기회주의를 넘어서


요즘들어 정치는 이슈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 같다. 근본원인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모두가 알지만, 그 근본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과 대안보다는 '현상'자체게 매몰되는 것이 다반사가 되었다. 누군가를 비호하거나 누군가를 꺽어버리는 식의 복수의 정치가 횡횡하는 나라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진짜 우리가 고민해야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이런 고민을 제시하지 않는 정치가 오랜기간동안 계속되었다. 다음세대를 위해서 현재의 정치를 바꾸고자 하는 도전들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노무현은 어떻게 달랐을까?


“열린우리당은 그저 노무현당이 아니라 지역당에서 정책당으로, 전국당으로 향한 나의 도전적 가치였다. 모든 정치적 가치를 바친 가치였다. 전략적으로 ‘탈(脫)호남’함으로써 호남 출신도 정권을 잡을 수 있는 정치구도를 만들기 위한 회심의 전략카드였다”


“지역주의와의 싸움과 기회주의와의 싸움, 이것이 정치를 하는 동안 제게 주어진 두 개의 큰 싸움입니다. 그래서 저는 ‘원칙과 통합’이라는 말을 계속하면서 대통령선거를 치른 것입니다. 저는 원칙에는 매우 까다롭게 매달리지만 통합을 위해서라면 어떤 다른 가치도 희생할 수 있는 정치를 해왔습니다.”


노무현은 시작에서부터 지역주의와 기회주의를 타파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임기 내내 균형발전과 함께 지역주의, 지역감정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혁신과제를 국가운영의 기초로 삼았다.



3. 토론공화국


노무현대통령하면 떠오르는 사건은 '검사들과의 대화'이다. 물론 "이쯤하면 막가자는 소리죠?"라면서 웃는 검사들의 모습이 생각나지만, 노무현이 꿈꾸는 토론공화국의 서막이었다. 노무현은 일선공무원을 만나든 시민들을 만나든 토론을 통해서 민주주의가 발전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디서든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 노무현이 등장하기 전까지 국무회의는 국무조정실에서 준비하기는 하지만 이미 주요한 아젠다는 기재부 예산실에서 세금과 정부예산과 연결된 이슈가 결정되어서 올라왔다. 그러니 힘이 센 기재부나 행안부 같은 곳은 '에헴~'하면서 자기들이 정한 이슈를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부서들이 건드리지 못하도록 했다. 그런데 노무현은 국무회를 시작하고 마치는 모든 순간에 토론으로 정했다. 처음에는 당연히 아무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지나고 지나고 나니, 사람들이 이제 움직이기 시작했고 국무회의는 그야말로 난상토론의 장이 된다.



민주주의는 이런게 아니었을까? 그런데 국무회의가 진행되어도 아젠다 셋팅은 항상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국무회의 이전에 국정과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국정과제회의를 진행해서 아젠다를 힘 센 부서가 독점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매년 4월 정도에는 국가재정전략회의를 했다. 한 마디로 관계부처에서 재정전략을 발표하고 토론을 통해서 정하는 방식이었다. 이론적으로는 예산점증주의와 예산총체주의가 있다. 예산점증주의는 이번년도 예산에 몇%를 증감시키는 방식으로 짜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보통 안정적인 국가에서 조금씩 시스템을 완성해가는 방법이다. 반대로 예산 총체주의는 예산의 총량을 한해마다 새롭게 정리하고 규정하는 것이다. 노무현이 진행한 국가재정전략회의는 총체주의의 관점에서 1박 2일 동안 진행되었다. 각 부처 장차관들은 제공된 추리닝을 입고 현실과 상황을 고려해서 예산을 책정하고 전략을 짜서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여기도 토론이다.



노무현은 단지 여기서 끝나지 않고 행정적으로 e지원 시스템을 도입한다. 전자정부시스템에서 중요한 부분인데, 예를 들면 문서관리카드가 있다. 하나의 보고서가 올라오면 이해관계자들이 그 보고서에 대한 토론내용을 글로 남기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의 보고서에 조선왕조실록처럼 모든 코멘트가 기록되고 논의되면서 하나의 정책결정 자료가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토론은 당연히 자연스러웠다. 이러한 문화가 확산되면서 담당자들은 생각하기 시작한다. 이것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이것을 보는 사람들이 제기할 수 있는 의견을 생각하고 작성해야 했다. 그리고 이것을 축적하고 찾고 구조화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했는데 이것이 바로 e지원 시스템이다. 이제 15년이 지나서 기록물들이 공개될 예정인데 노무현정부시절의 국가기록물은 830만건을 넘어선다. 혀를 내두를 정도다.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9/02/2013090201947.html


노무현대통령의 친필이 적힌 기록물_보고서하나 써도 이정도의 진심이면 이건 좀 심하지 않나? ㅎ



3. 로드맵공화국


노무현의 위대한 점은 이제부터다. 노무현대통령하면 '위원회'가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정책기획위원회, 동부아시대 위원회, 정부혁신지방분구권위원회, 문화중심도시조성위원회 등등 위원회의 시대가 열렸다. 성별, 다양성, 전문가와 학자, 시민들을 참여시켜서 위원회를 운영했다. 이것은 모두 일정한 로드맵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고민하게 만든 것이다. 대통령 소속 위원회들이 결론적으로 총체적인 로드맵의 완성은 국가비전 2030이었다. 이러한 장기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위원회들은 일정을 관리하고 성과를 모아서 비전을 이루어가기 위한 로드맵을 작성했다. 행정과 프로세스에 진심이 대통령이 일을 처리하기 시작하면 이렇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MBTI에서 J성향인 사람들이 노무현을 좋아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로드맵을 가지고 진행하는 가운데 법제화가 필요한 부분은 바로 법제화가 진행된다. 국가재정법,

국방개혁법, 균형발전 3대 입법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특히 노무현은 그전까지 bottom-up방식의 예산기획방식을 top-down으로 바꾸면서 국가재정을 '프로젝트'에 의해서 관리되도록 바꾼다. 하향식 예산제도의 특징은 국가가 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이번년도의 예산을 운영하면서 각계부처에서는 나름대로의 로드맵을 가지고 사업을 진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게 잘 돌아갈려면 당연히 토론공화국은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필요한 것들 중에서는 '정부혁신'으로서 인사혁신과 시스템혁신이 뒷받침이 되어 주어야 했다. 이것을 크게 확대하게 되면 결국 삼권분립에서 무엇이 문제이고 핵심이고 또 지속가능하게 장기비전을 이루기 위한 국가비전이 생긴다. 그러니 2030을 기다면서 아직도 노무현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노무현은 로드맵에 진심이었다. 그래서 그 로드맵에 맞게 정부혁신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시작했다.


노무현 정부혁신

일 잘하고 책임을 다하는 정부 '비전'

청와대 혁신수석실,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일상적 혁신-변화관리 도입

혁신지수개발

정책품질관리제도

위기관리메뉴얼

국가위기관리센터


4. 노무현의 민주주의 3단계론


노무현 대통령은 타협과 토론만 한 것은 아니다. 당여히 자신의 철학에서 볼 때 보수시대의 진보대통령으로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도전과 응전을 한다. 권력은 시장에 있고 문제해결은 정치가 하기 때문에 투쟁을 시작한다. 진보의 기존은 분배와 노동존중과 증세라고 생각했고 민영화와 개방은 필요는 하지만 상재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핵심은 사람이고 시민이다. 민주주의 없이 민주주의자 없이 민주주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다음세대를 이끌어갈 사상과 제도, 시민과 진보적 사상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철학에서 노무현은 민주주의 3단계론을 제시한다.


노무현의 민주주의 3단계론

1단계 반독재민주주의

2단계 투명공정사회의 구축과 지역구도 통합

3단계 대화와 타협의 민주주의


천호선 대표님의 강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107979



0. 나오기


누군가는 갈등을 조장하고 누군가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혁신한다. 최근에 영화로도 만들어진 킹메이커에서 엄창록의 일화가 나온다. '기회를 잡으려면 방법은 선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결국 엄창록은 지역감정의 최초 생성자가 된다. 이러한 천재들의 정치적인 갈등론으로 한국은 아직까지도 지역감정을 넘어설 수 없다. 미국의 샤츠슈나이더라는 학자도 현실주의자의 관점에서 '갈등선'을 긋는것으로 부터 정치가 시작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인정한다고 해도, 현실을 그냥 인정한다고 무엇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계속해서 누군가는 갈등선을 긋고 있을 것이다. 당연히 가만히 있으면 그 선들이 결국 나의 목까지 조를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노무현의 성과는 언론개혁, 국방개혁, 10.4 선언과 같은 통일정책의 혁신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러나 아직도 노무현을 희화하하고서는 놀림거리로 삼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화가 치밀어 오른다. 증거나 판단의 기준도 없이 여전히 어떤 분위기와 편향에 의해서 노무현을 비난하는 사람들. 노무현을 미워해서 화가나는게 아니라 그런 방식으로 정치를 생각하고, 투표를 하고 '보수화'되는 것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화가 나는 것이다. 그럼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상황은 더 악화되고 기회주의나라가 되고, 통일은 물건너가고, 엘리트주의는 심해져서 양극화는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하나 기분에 맞춰서 태극기를 휘날리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국가가 가스라이팅을 하는 시대에 다시 노무현의 좋은 정치를 생각한다. 그러나 생각만 해서는 안된다. 노무현에게서 배우고 노무현을 넘어서야 한다.


결국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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