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밀뱅크 읽기_신학과 사회이론 1장에서 2장
현대 한국적 맥락에서 세속secular이라는 개념은 공간적 의미였다.
세상이라는 교회 외적인 장소들이 세속적이라고 불리웠으며, 교회는 성스러운 장소가 되었다. 그러나 원래 중세를 지나가는 지점에서 '세속'이라는 것은 '타락과 종말'사이의 '시간'을 의미했다. 따라서 시간개념이 아니라 공간개념으로 보게 되니, 공간자체의 구분이 생겨버린다. 어떤 곳은 성스럽고, 어떤 곳은 세속적이다라고 말할려면 구분의 기준이 필요했고, '성스러움의 의미'가 중요해진 것이다. 그래서 성스러움의 의미를 만들려고 '제사와 의례'가 발전하게 되고, 이것을 시행하고 있는 장소에 성스러움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그래서 교회는 신성한 '곳'이 되고, 세속적인 곳은 교회를 제외한 모든 곳이 되었다.
역설적이게도, 세상이라는 곳과 신성한 곳을 분리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성, 영향력'의 범위가 줄어들게 된 것이다. 어떤 곳은 하나님이 영향력을 미치지만, 어떤 곳은 영향을 못미치게 된다. 그러니 '세속화'는 결국 '탈신성화'가 된다. 세속된 영역이라고 인정하는 순간, 하나님의 영향력도 거두어지는 것이다. 세속화의 패러다임은 결국 스스로를 성스럽게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의 영향력을 제한하게 된 것이다. 정말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그런데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성스러움이 아니라 세속적이라고 말하는 순간 신앙의 영역에서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예를 들어, 사회학의 경우에도 꽁트에 의해서 주창되기는 했지만, 그 방법론으로는 '실증주의'를 바탕으로 했다. 이 이야기는 위에서 이야기한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영향력이 사라진 '사회'라는 공간에서 자신들의 존재의미를 찾는데 있어서 '실제로 존재하는 증거를 바탕으로 존재를 특정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실증주의는 증거를 바탕으로 가능성을 짐장하는 '실용주의'로 발전하기도 하고, 또는 '실존주의'로 귀결되기도 했다. 다시 돌아오면 '영역'의 관점을 철회하지 않는 이상 이러한 탈신성화가 가져온 '공백'을 매우기 위한 활동은 계속 될 것이다. 그 안에 '실증주의'를 넣을 것인지, '실존주의'를 넣을 것인지, 아니면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넣을 것인지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플랫폼으로 바뀐 '세속영영'에 콘텐츠는 무궁무진해진 것이다.
종교개혁은 공적영역에서 개인의 영역으로 하나님을 축소시킨다
문제는 이러한 역사를 모르는 상태에서 대부분의 기독교인들, 특히 한국 보수 기독교는 '신성화'에 집중하면서 세속화를 악마시했다. 그것은 결국 세속영역이라고 부르는 영역에서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으며, 그 곳에 살아가는 사람들까지도 악마시했다. 그러니 마녀사냥은 지금도 여전히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탈신성화영역에서 그럼 어떤 일이 이어질까? 당연히 흔적으로 남아 있던 신성화의 파편들을 몰아내는 작업들을 하게 된다. 특히 이신론의 선구자였던 스피노자의 경우에는 '신학정치론'에서 탈신성화된 정치의 영역에서 완전히 신성화를 벗겨내는 작업을 하게 된다. 말그대로 교회의 '예속'에서 벗어나는 것이 핵심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이라는 '신'을 레퍼런스로 잡지 않고 생각할 수 있을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이것이 스피노자의 고민이자 데카르트의 고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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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기획은 사실 중세로부터 탈피였다. 중세시대가 시간의 개념에서 타락과 종말을 세속으로 본 것을 간파한 근대의 기획자들은 '타락과 종말' 사이의 간극을 인터레그넴이라고 불렀고, 이러한 간격에서 시간을 탈취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스피노자에게서 시작된 '신학정치론'은 그래서 신학이 가지고 있는 종말의 개념을 현재로 가지고 와서 분해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시간을 탈취하려면 사람들이 먼저는 '하나님'과 '시간'을 연결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했는데, 가만히 보니 중세시대의 카톨릭의 전통은 성서해석학에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성서와 교리를 해석해 가면서 자신들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계속 시간은 '세속'적이면서도 그 사이에 하나님이 다시 오실 것이라는 기다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시간을 탈취하기 위한 노력은 사람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만들기 위한 새로운 영역의 발견이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과학영역의 발견이었다. 계몽주의가 자연스럽게 자연적인 시간을 기계론적인 시간으로 바꿔감에 따라서 사람들은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상의 기술들에 대한 관심과 물리학법칙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 결과 사람들의 관심은 '성경'을 읽고 신의 섭리를 해석하는 것에서, 자신이 살고 있는 삶에 효용을 주는 기술과 과학에 집중된다. 마침내 시간의 탈취까지 완성되면서 '세속'이라는 영역이 생겨나고 이에 대해서 반론을 가지고 있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몇가지를 선택해야 했다.
세속화에 대한 계몽주의 시대의 신앙인들의 선택지
시간의 세속화를 반대하기 위해서 일정시간의 하나님께 기도한다 : 새벽기도나 경건시간(Q.T), 수련회와 예배시간, 시간의 십일조 등
공간의 세속화를 반대하기 위해서 거룩한 곳에 머문다 : 수도원에 은둔하기, 교회에서 생활하기, 거룩한 곳에서 명상하기, 세상을 거룩한 곳으로 만들기(성시화 운동)
시간의 세속화에 동조해서 많은 시간을 기술과 과학을 배우는데 사용한다 : 일상생활사의 변화, 과학기술 공부, 발명을 위한 시간, 물리학에 대한 이해
공간의 세속화에 동조해서 공간 속에서 새로운 것들을 작위적으로 만든다 : 국가의 탄생과 사회의 발생,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사회신학, 사회계약
시간과 공간의 탈취를 통해서 '갈등'이 발생했다. 이른바 세속과 성스러움이 한 공간안에서 분리된 것이다. 분리된 공간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시간이 흘러간다. 다양한 시간은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냈다. Muti-transformation이라고 하는 다중변혁은 이러한 관점에서 공간안에서 새로운 시간이 흘러가게 됨을 말했다. 정치학에서 쉽게 말하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처럼, 다른 공간에서 동일한 시간들이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시간과 공간의 싸움이 일어나고 있다. 주도권을 가지는 싸움은 누군가의 말처럼 하나의 방식으로 삶을 정리하는 것을 뜻한다. 중세시대가 만들어져가는 시기에 '신앙'이 하나의 방식이 되었다면. 세속이라는 시기에는 이제 계몽이라는 삶의 방식이 시간과 공간을 재구성하기 시작한다.
말 그대로 대성당의 시대가 찾아왔다! 모든 것들은 돌 위에서
모두 깨어질 것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