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현실로 끌어오기
Ph.D 이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
과학학이란 무엇인가를 배우는 수업에서 질문을 받았다. 독설처럼 보이지만 인사이트를 주시고, 일요일이면 박사과정생들을 불러서 점심도 사주시고 연구지도도 하는 교수님의 이야기라서 생각이 많아진다. 몇일 전 수업에서는 "정말 심각하게 잠이 안와요. gpt-4까지 가면 이제 지식영역의 판도가 완전히 바뀝니다!" 라고 말문을 여시면서 행정의 미래와 지식의 미래를 고민하셨다. 이야기의 핵심은 지금까지 지식을 기반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던 교사나 교수들의 미래가 불안정하다는 것이었다. 사실 교사나 교수만이 아니라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 전체가 완전히 다른 관점으로 바뀌게 된다.
아니 이미 바뀌었다. 쉽게 말하면 1차 산업에서는 '땅'을 기반으로 해서 땅에서 나오는 가치를 통해서 부를 축적했다. 그런데 2차 산업에서는 제조업 기반이기 때문에 '공장기계'와 같은 생산요소가 있으면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여기서 마르크스의 질문은 '잉여가치'를 누가 가져야 하는가? 노동자인가? 자본가인가?라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생산수단을 공유하는 사회주의를 주창하게 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3차 산업으로 넘어가면 이것은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지식'이 땅, 공장기계와 같은 역할을 한다. 지식을 기반으로 부를 창출해서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그런 삶을 살았다. 그리고 지식의 중요성을 너무나 뼈저리게 느끼는 우리의 부모세대는 모든 고등학생들을 대학에 보내고자 했다. 그리고 나는 가나한 산동네의 어린시절을 청산하고 어머니의 눈물을 닦아드리고자 결국 박사과정까지 지원하게 된 것이다.
어머니는 54년에 전라도 해남에서 장녀로 태어나셨다. 7형제가 있었으니 전쟁 직후 얼마나 가난했을까? 결국 초등학교로 최종학력을 마무리하고 산전수전을 다 겪으면서 지금까지 왔다. 신파라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더 드라마 같은 인생을 어머니는 살아내셨다. 그리고 나에게는 언제라도 책은 무한리필을 해주셨다. 너라도 공부해서 '지식사회'에서 부를 얻는 사람이 되어라라고 하는 암묵적인 표현이었다. 책을 이렇게 많이 읽을거라곤 나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사실 나의 고민은 다른 곳에 있었다. 어머니의 아픔이 단지 어머니 혼자만의 아픔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는 일상이다. 어머니와 같이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청소를 하러 나가시면서도 내일의 희망이 없는 분들의 얼굴을 마주한다. 강남에 살면 매일 아침 포르쉐에 명품백을 든 부티나는 아주머니들의 필러맞은 반들반들한 얼굴을 보면서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생각을 하겠지만. 매일 아침 나는 어떤 사명감을 느낀다.
빈곤을 과거로 만들고 말겠다는.
한 번은 부모님과 식사를 하다가 울음을 터트린적이 있다. 나이든 아들이 울음을 터트리니 영문을 모른체 달래시던 부모님이 생각난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개천에서 용나서 아니 개천에서 미꾸라지라도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건 역사 속에서 매번 반복되던 패턴인데 왜 해결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버지께서 "너만 행복하면 된다"라는 말을 꺼내는 순간! "아니 이렇게 힘들게 하는 사람들 그럼 어떻게 하고 나만 행복하게 할라는 거야? 지금도 이렇게 우울한 사람들이 내일도 우울할텐데! 그럼 지금 자라나는 아니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들은 어떻게 하라고!"라면서 울음을 터트렸다. 자아분열이 일어나면서 나는 밥상을 박차고 밖으로 나와서 한참을 서성였다. 시대의 아픔을 경험하고 고독한 인생이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매일 매일 그 일상이 보이니깐.
결국 피할 것인가 아니면 마주할 것인가
피하면 나만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 마주하면 나만 잘 살 수 없다. 아니 나만 그래도 괜찮은 척 살 수는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하는가? 그래서 공부하는 자세가 바뀐 것이다. '배워서 남주자!'라던가 '조금 더 공부하면 더 남을 도울 수 있다'라는 생각에서 더 나아가서 '체계적으로 이 가난을 끊어야 한다!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다른 패턴을 만들어야 한다! 어떤 특이점을 만들어내서 다시는 이전상태로 돌아가지 않도록 해야한다!'이런 생각까지 갔다. 그리고 나서 다시 내가 공부했던 것들을 보니 한가지의 공통점이 있었다. '기술!' 기술이다. 1~3차까지 이전의 패턴을 바꾸고 새로운 세상을 만든 건 기술이었다. 그래서 기술을 통해서 세상은 앞으로 더 발전하거나 혹은 퇴보할 것이다. 그래서 '과학사회학'이라는 박사과정에 들어왔다. 그럼 어떻게 해서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돕고,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게 만들 수 있을까?
시민참여와 전자정부, 새로운 민주주의
그래서 박사과정에서는 미래를 현재로 끌어오는 공부를 하고 싶다. 처음부터 그린 그림이었다. 과거를 밀어내고 현재를 오롯이 살기 위한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기술에 의해서 새롭게 정의하고, 시민참여가 늘어날수록 직접민주주의를 만들어내기. 그 가운데 매개하는 효과를 가진 '전자정부'를 제대로 셋팅하기이다. 핀란드 사례를 통해서 정책실험이 가능한 상태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고민을 한지가 좀 되었는데, 최근 GPT-4가 나오면서 생각했던 것보다 더 쉽게 만들 수 있어서 나는 오히려 더 좋다. 해야할게 너무 많았는데, GPT-4가 해결해주기 때문에 더 목표에 집중할 수 있다. 우리 어머니와 같이 구조적으로 지식에 접근하기 어려워도 쉽게 최고의 지식을 적용할 수 있다면, 전자정부라는 플랫폼만 제대로 설계되면 정책효과는 더 좋아질 것이다. 그리고 정책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고, 실패하지 전에 철회할 수 있다. 예측에서 실제적인 효과로 옮겨올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한마디로 한다면 나는 '기술정치학'을 만들고 싶다. 기술에 의해서 정치적인 합의가 더욱 활성화되고 기술을 통해서 사람들의 의견을 쉽게 모의고 합의할 수 있는 기술정치! 이미 세계적으로 '듣도보도 못한 정치'에서 소개하는 바와 같이 이루어지고 있다. 디사이드마드리드나, 대만의 Gov0와 같은 플랫폼들은 전자정부에 시민참여와 소통이 기반이 된 미래정치를 구현하고 있다. 핀란드의 오로라AI는 빅데이타에서 데이터레이크라는 빅데이터4.0시대로 넘어가서 국민들의 의견이 데이터가 되어서 GPT-4와 같은 프로그램에서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이 모든 것은 과정일 뿐이다. 결론은 '빈곤을 과거로 두는 것이다' 그러니 박사과정 끝나면 무엇을할까? 나는 결국 기술정치를 해야 할 것 같다. 법안발의부터 시작해서 그 과정을 셋팅해서 정책효과성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플랫폼정치. 그리고 그 안에서 시민들의 마음과 몸과 생각이 새로운 미래를 받아들이고 향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사회혁신과 방법론을 만들고 사람들과 끊임없이 실험해보는 것. 지식에 대한 한계가 사라진 지금 더 멀리 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일단 지금은 박사과정에 집중해서 방법론을 익히고 미래를 현실로 가져오기 위한 기술을 익혀야 한다. 더욱 집중력있게. 한주에 보통 10개 넘는 논문을 읽고 분석한다. 버겁고 힘들지만 식탁에서 '울었던 나의 모습'이 계속 떠올라서 또 힘이 나기도 한다.
계속, 함께 걸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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