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머리말_메시지 성경
참다운 인간 공동체를 이루는 것은 긴 시간이 소요되는 복잡다단하고 번거로운 일이다. 한 개인이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는데도 최대한 지혜와 인내와 용기를 발휘해야 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성장하는 것은, 낯선 사람이나 비열한 원수들은 말할 것도 없고 부모와 형제자매와 이웃들과 더불어 성장한느 것조차도 대단히 복잡한 일이다. 민수기는 그처럼 녹록치 않은 성장 과정 속으로 우리를 밀어 넣는다. 성경의 이 부분에 수록된 사건들을 읽다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에 속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생생히 실감하게 된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일상생활에서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고, 자신과 타인안에 있는 죄를 다룰 줄 알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면서 복된 미래로 나아가는 인간 공동체를 가리킨다. 이 모든 일에는 환상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구름이 성막 위로 올라갈 때면 이스라엘 백성이 행진했고 구름이 내려와 머물 때면 백성이 진을 쳤다_민수기 9장 17절
우리 가운데 상당수는 낭만적으로 묫된 영성을 마음속에 그리며 좋아한다. 이를테면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시니 모든 것이 세상과 제대로 이루어지네"(로버트 브라우닝)와 같은 식의 생각말이다. "제대로"되지 않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이나 자신을 탓하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상황을 헤쳐 나가고, 종종 성질을 부리고, 다른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거룩하게 사는 것이 훨씬 쉬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헛된 생각일 뿐이다. 하나님께 지음 받은 인간이 되어 순종하는 믿음과 희생적인 사랑의 삶으로 부름 받는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보여주는 기본 교재인 성경 어디에도, 사는 것이 쉽다거나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암시하는 대목은 없다. 따라서 우리는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
우리는 조직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공동체 안에서 함께 지낼 때는, 업무를 분담하고 지도자를 임명하고 물품목록을 갖추어 두어야 한다. 수를 세고 목록을 작성하고 명부를 갖추는 것은 기도와 가르침과 정의만큼이나 하나님의 공동체로 살악나느 데 꼭 필요한 요소이다. 정확한 계산법은 하나님의 백성이 갖추어야할 덕목이다. 우리는 관계측면에서도 도움이 필요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인도하심과 명령을 받는 사람들이, 싸우고 말다툼하고 불평하고 반역하고 간음하고 도둑질하는 등 많은 죄를 범한느 남녀 무리와 함께 있음을 알게 된다. 함께 살아가는 데는 도움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데는 사려 깊은 훈련이 필요하다.
수를 세는 일과 다툼이 민수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그것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데 있어서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처럼 결코 낭만적이지 않은 세부사항을 받아들이도록 우리의 상상력을 훈련시켜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가는데 꼭 필요한 책이 바로 민수기이다.
민수기 머리말_메시지 성경
공동체는 '공유된 정체성'과 '지속적인 관계'를 가진다. 공동체를 이룬다는 것은 정체성을 공유하는 것을 넘어서 계속된 만남을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공동체를 이루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고 좋은 계획이 있어도 좀처럼 되지 않는다. 정체성은 '이야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이야기는 '사건'을 함께 경험하고 그에 대한 해석을 서로 나누면서 조금씩 만들어진다. 그래서 민족정체성과 같이 집단이 공유하는 정체성은 역사를 배운다고 공유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사건을 거치면서 서서히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나눌 때 정체성은 공유되고 서로 하나가 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체는 아직 아니다.
지속적인 만남을 갖는 가운데 수 많은 싸움과 이권다툼, 갈등과 위기를 넘어서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관계가 한 번 삐끗하게 되면 오랫동안 회복하기 힘들거나 아니면 공동체가 깨지는 상황이 되어 버린다. 현대사회에서는 이러한 일이 너무 빈번하다보니 가장 기본적인 공동체인 '가정'도 쉽게 깨져버리고 사회의 구성요소들은 언제나 공동체가 아니라 '일정한 목적달성'을 위한 '사회조직'으로 설정된다. 사회조직으로 설정되면 자연스럽게 사건이나 이야기, 해석이나 공유가 필요한게 아니라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목표를 달성했는지만 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다양한 문제들이 양산될 수 밖에 없다. 공동체는 어쩌면 그 자체로 사회문제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성경에서는 공동체가 어떻게 공동체가 되어가는지에 대한 사건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사건에 대해서 성경의 저자가 혹은 그 사건의 당사자들이 하는 이야기와 해석이 나온다.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서 '교회공동체'는 자신들이 경험하는 '지긋지긋한 문제들'이 지금뿐 아니라 공동체의 역사에 항상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만남의 기본이 결국은 '하나님의 공동체인 삼위일체'가 보여주신 사랑과 공의와 헌신과 약속과 섬김이라는 것을 조금씩 배워간다. 아주 극소수의 공동체만이 이것들을 지키면서 공동체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 공동체의 원형을 배우기에 민수기는 아주 훌륭한 책이다. 우리 사회가 다시 공동체가 가진 사랑과 애정과 서로를 섬기는 모습을 회복하는 일을 시작하려면 '공동체의 모형'이 필요하다.
한국교회는 어쩌면 공의와 정의의 실현보다 더 먼저는 '공동체'의 회복이 진행되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자본주의의 영향으로 모든 것들을 상품으로 만드는 마법이 진행되지만 그것이 저주가 되지 않고 변화의 시작이자 문제의 자각으로 본다면 공동체 안에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사건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공동체가 아니라 지역사회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에 반응하면서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그러니 우리끼라 자화자찬하는 부활정과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교회가 있는 곳의 문제들을 공동체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거기에 반응하는 공동체여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하나님은 민수기와 같이 공동체의 숫자를 세는 과정이 바로 광야의 시작이며, 그 숫자에는 교회공동체가 있는 모든 지역의 사람들을 세시는 것이다. 자칫하면 교회가 주변의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공동체로 생각하지 않고 스스로만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예 선을 넘어서 지역주민들이 교회의 예배를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해버릴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둘 중에 하나다. 성경을 안 읽었거나, 믿음이 없거나. 공동체의 수를 세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있는 모든 지역의 사람들을 공동체로 부르신다. 그래서 전도는 사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전하는 것을 넘어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부르는 초대와 같은 것이다. 마치 성경에서 예수님이 시장에 가서 잔치에 초대하는 비유를 하시는 것과 같다.
지속적인 만남과 함께 만드는 정체성을 이루는 공동체를 만들라.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민수기와 같은 하나님의 헤아림이 시작되는 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