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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Mar 14. 2024

과학기술학에서 정치이론

과학기술학협동과정_과학사회학_찰스소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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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쿤 이후 과학을 바라보는 두 개의 관점이 서로 갈등을 일으킨다. 하나는 과학은 방법론으로 구별될 수 있으며 그 방법론이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영역으로 확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과학이 특수한 문제를 독특한 형태의 활동으로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와 사회에 대한 확장 가능한 모델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과학의 방법론이 정치와 사회 속으로 확장될 수 있고 그 자체로 일정한 영역을 구성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이에 대한 찬성과 반성의 입장으로 나누어져 계속해서 논의가 발전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된다면 기존의 정치영역에서는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이번 장에서는 과학사회학의 영역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비판적인 담론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공동체주의자로 유명하며 '덕 이후'라는 책을 쓰며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공공선'을 교육하고 합의하여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한 메킨타이어. 그는 1970년대 쓴 논문에서 현대의 과학철학을 사로잡고 있는 문제들은 정치사상의 고전적 논쟁들을 반복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쿤은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담론을 이어받았고, 파이어벤트는 자연주의 철학자 에머슨의 부활이며 마이클 폴라니는 보수주의 정치학자인 에드먼트 버크의 변형적인 형태라고 주장한다. (MacIntyer, 1978) 정치이론에서 과학철학, 과학사, 과학사회학의 분야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는 제대로 설명되지 못하고 암호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기술학(STS)은 점차 정치적인 문제에 관여하고 있다. 예를 들면, 통치성, 책무성, 민주적 의사결정 권리, 대표성, 공공영역의 시민사회 구조와 같은 것들이다. 특히 세계화의 과정에서 과학으로 연결된 정치체제는 긴급하게 연결된다.


STS의 정치적 관심사는 자유주의 정식화와 비판을 중심으로 표출된다.


위대한 전통이라고 부르는 과학철학의 비엔나학파와 칼 포퍼의 반증주의, 과학사의 조지 사턴과 과학사회학의 로머트 머턴의 이론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자유주의 정치사항의 가치들을 지탱해 왔고, 과학에 대한 설명을 정식화했다. 위대한 전통 중에서도 폴라니와 쿤의 작업은 공동체주의와 보수주의의 성격을 강하게 풍겼다. 공동체주의는 자유주의에 비하여 공동체를 중심에 두고 있고 인간의 보편성보다는 공동체 안에서 공공선을 중심으로 구성주의적인 성격을 강조하였기 때문에 폴라니와 쿤의 작업과 연결된다. 이 글은 STS발전을 자유주의적 가정들에 대한 비판이라는 측면에서 읽자고 주장한다. 또한 과학에서 대중참여와 관여, 능동적 시민권에 대한 참여민주주의, 공화주의를 통한 과학의 도전을 살펴볼 것이다.


시기적으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세계적으로 확산되었고 이에 따라서 정치담론이 경제적인 요건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다.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써 참여의 문제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문제이며, 새로운 사회운동(NSM)은 정치적 투쟁의 장에서 기술화된 영역과 만나고 있다. STS논쟁과 정치사상의 연계에 있어서 풀러의 과학의 정체, 랭던 위너의 기술적 헌법, 핀버그의 사물의 의회와 같은 논의들이 부각된다. STS를 정치이론으로 볼 때, 지적자원과 모델을 제공하면서도 과학기술을 바라보는 경쟁적 규범이나 정치적 전망이 더욱 확실해질 수 있다.




1. 과학기술과 자유민주주의 질서


'리바이어던과 진공펌프'(1985)을 통해서 새핀 새퍼는 보일과 홉스를 대칭적인 정치이론가로 제시한다. 홉스의 인식론(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과 같은 자연상태에서 인공물인 국가를 계약하기)과 자연철학을 보일의 실험프로그램과 그에 내재한 정치철학으로 연결시켰다. 이들의 논의는 보일이 확립한 과학의 정치체제가 스스로 정치적 성격을 부인하는 것이었고 이러한 역설이 오히려 과학을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보일의 실험장치가 지식의 구성과 권력을 구성을 분리시킴으로써 인가의 권위보다 자연의 권위를 우위에 두었기 때문이다. 지식의 구성에 있어서 자연과학의 발전의 토대가 되었고 권력의 구성으로 정치적인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정치적 성격을 부인하는 것이라는 것은 위에서 살펴본 '공동체주의'적 성격으로써 폴라니와 쿤의 구성주의와 반대된다는 것을 뜻한다.


보일이 확립한 과학의 정체는 이 시기에 등장한 자유주의의 정치적 이상과 강력한 동형화 isomorphism을 이룬다. (Shapin & Schaffer, 1985) 여기서 동형화는 사회학적 제도주의 관점으로 사회가 구성되는 데 있어서 좋은 제도들이 이식되어서 서로 비슷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과학의 정체가 결국 20세기에 와서 자유민주주의 정체와 동형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이들의 해석에 의하면 과학의 정체는 이러한 자신의 정치적 성격을 감추고 자유주의 국가 안에서 서로 대립하는 의견을 절충하는 중립적임 모습과 연결된다. 과학적인 합리성이 논리적으로 서로 다른 정보들을 실험에 의하여 명확하게 귀납법적으로 증명하는 것처럼 자유주의 정치체제는 이런 논의를 국가의 체계 안으로 가져온 것이다.


야론 에즈라희(Ezrahi, 1990)의 논의는 섀핀과 섀퍼의 논의를 발전시켜 서구에서 과학과 자유민주주의 정치문화 사이의 존재하는 핵심 문제들에 해법을 제시한다. 예를 들면, 국가운영에 있어서 행정활동에서 정치를 배제하는 방법이나 공공활동에서 책임을 지어주는 문제, 개인의 자유와 사회질서의 화해를 어떻게 시킬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자유주의 정치는 도구주의, 비인격성, 몰개인화, 질서 정연한 행위능력, 투명성과 같은 과학정체가 가진 규범에 의존한다.  국가활동에 있어서 객관적, 경험적 사실에 근거한 결정, 개인의 편견으로부터 분리된 공무원들을 상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과학은 민주주의의 법률적-합리적 권위에 모델을 제공한다

에즈라히의 주장(Ezrahi, 1990:74)

정치적 자유주의는 실험과학의 시각적 문화를 본떠 정치적 책무성 모델을 만든다.

실험과학이 추구하는 자연에 대한 관찰, 증언, 기록, 해명, 분석, 확인, 반증, 설명, 예시의 방법을 정치에도 사용한다.

대중은 이러한 데이터의 증인이 되어서 논리적으로 판단하고 정부의 관리들과 정치인에 대한 합리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잠재된 정치적 기능을 담당한 과학은 자유주의 정치체제의 기본적인 규범을 제공했다.

미국은 기술공화국(Mcwilliams, 1993)이라고 불릴 만큼 과학과 근대 자유주의 사이의 상호관계를 모여주는 이념국가이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기계의 이미지를 본떠 정체를 만들 것에 불과하고 이것은 이후에 토마스제퍼슨의 공화주의 이상과 갈등을 빚는다. 기계주의 세계관과 도덕주의 세계관의 마찰이 일어난 것이다.

지배적인 운영체제가 된 과학에 근거한 근대 자유주의는 결국 탈정치화와 탈참여를 추구했고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STS가 등장하게 된다.

STS는 자유주의 모델을 밑받침하는 과학의 이미지인 보편주의, 중립성, 비인격성이 과연 유효한지 의문을 던진다.

이러한 의문을 시작으로 STS는 과학 이미지는 물론 국가 운영 특히, 정치에 있어서 새로운 재구성을 제시한다.


발제자의 논의

1920년대에 경제학에서 등장하는 케인즈의 모델도 역시 17세기 이후 근대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뉴턴역학에 근거에 있다. 유체역학의 관점에서 볼 때 소용돌이(보텍스) 이론은 혁명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인간론을 만들어내기도 했으며, 천체의 관측을 국가의 운영방식으로 이해하게 만들기도 했다.

테일러주의라고 부르는 공장운영 시스템은 기계론에 입각한 경영원리였고 이것은 자연과학의 방식을 그대로 관리방식으로 도입한 것이다. 과학이 가진 규범적 성격은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와 사회구성(콩트)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써 STS는 정치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대안적인 성격으로 '재구성' 혹은 '통합'을 이야기한다.

미국의 기술공화국은 근대국가의 형성에 있어서 '민주주의-자본주의-'의 순으로 발전하면서 만들어졌다. 민주주의로 시작된 정체가 당면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 관료제가 도입되었고 이러한 관료제는 행태주의의 성격을 지닌다. 오늘 본문에서 이야기하는 과학의 규범적 원리들을 빌려온 것이다.

철학적인 관점에서 '존재론-인식론-윤리론'으로 확장되는 구조를 파악하면 오늘의 논의가 더 쉽게 이해된다. 기본적으로 인식론적인 관점에서 과학의 방법론을 가지고 왔지만 그 밑변의 '존재'들의 확장이 결국 인식론적인 확장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요인이 된다.

반대로 인식론에서 윤리론 혹은 원리론으로 확장하는 부분에서 근대 자유주의는 과학의 방법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STS는 어떻게 보면 다시 존재론으로 들어가서 새로운 방식의 관점(신유물론과 같은 행위자로써의 존재 전체)이 나오고 그것에 대한 원리들(행위자네트워크)을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Leviathan and the Air-Pump: Hobbes, Boyle, and the Experimental Life (published 1985


2. 20세기의 과학 자유주의


자유민주주의 정치가 과학의 정체에서 가져온 제일 원리에  근거를 둘 수 있었던 것은 인지적, 사회적 질서의 합리성을 추구한 계몽주의 프로젝트의 결과였다. 토마스 재퍼슨이 미국의 독립선언문을 작성하면서도 이야기한 자명한 진리들은 매킨타이어(MacIntyer, 1978)에 의하면 이미 정치사항에서 문제가 시작되었다. 물론 과학철학자들이 그 이후에 문제제기를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자유주의에 근거한 정치철학이 가치다원주의와 연결된 정치적 평등, 정의, 존중, 권리의 세속화와 같은 요소와 만나면서 그전에 가지고 있던 초월적 기준(신, 영혼)과 괴리를 낳기 시작했다.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써 초월적인 토대보다는 실용주의 철학에 기반을 둔 민주주의와 과학의 태도가 등장했다. 바로 존 듀이의 사상이 그것이다. 민주주의는 존 듀이가 보기에는 실천적 활동이며, 추상적 원리가 아니라 일단의 습관들이었다.


존 듀이는 과학을 민주주의의 기치와 연결시키려고 했지만 리프먼과 같은 학자들의 반대에 휘말러 주저했고 20세기의 자유주의는 기술전문가들, 엘리트적인 경향을 가진 반민주적 지식독점의 전문가들이 위세한 형국이 되었다. 1930년대와 1940년대 사이 대공황의 여파와 파시즘의 부상, 공산주의의 확산과 세계대전의 발발은 자유주의에 위기를 가져왔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고자 자유주의, 파시즘, 공산주의는 과학기술을 다른 방식으로 수용했다. 나치의 인종과학을 토대로 만든 우생학이라던지 소련의 과학적 사회주의와 같은 것들이 이러한 위기극복의 시도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유주의'는 칼포퍼와 로버트 머튼을 통해서 STS 내에서 전체주의에 반대하는 대안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전체주의가 사회에 가하는 위협을 방어하고 대립하는 관점에서 자유주의는 새로운 사회를 구성하는 논리로 작동한 것이다. 포퍼의 과학철학은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알 수 있듯이 자유롭고 개방적인 정체라는 급진적 공화주의의 이상을 보여준다. 이는 근대과학의 폐쇄저이고 규율을 강제하는 공동체와는 다른 방식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Fuller, 2003) 이후 에즈라히의 비판점과 연결되는데 과학이 가진 인신론적인 보편주의와 비인격적인 부분이 포퍼의 논의에서도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에즈라히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떤 의미에서 포퍼의 과학적 방법은 민주적 도구주의의 다른 판본이다'라고 할 수 있다. (Ezrahi, 1990:226) 이어서 포퍼의 오류가능주의는 전체주의의 지적토대는 물론 민주주의 정치의 전제들도 침식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머턴은 보편주의, 자유로운 지식 교환 등 자유주의에 가치들과 연결되는 과학적 규범들을 제시했다. 이것은 에즈라히가 표현한 '민주적 도구주의'라고 할 수 있다. 머턴의 과학의 보편주의는 공동체의 규범이며, 그런 의미에서 국지적이고 우연적인 주장으로도 볼 수 있다. 포퍼와 머튼의 사례를 통해서 자유주의의 기반으로 과학을 제시했지만, STS의 관점에서는 자유주의와 과학 모두 문화적으로 위치 지어진 실천이라고 볼 수 있다. 머턴에게서 자유주의에 대한 옹호가 특정한 종류의 사회적 정치적 공동체를 정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치이론과 과학철학, 과학사회학은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모두 유사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인간에게 자명한 기준으로 합리성과 논리성 그리고 보편타당한 실제에 대한 이해가 자유주의자들에게 있다면, 공동체주의자들은 이러한 가치들이 우연적이고 특정 공동체의 내재적인 것이 된다. 마찬가지로 이는 정치에 대한 이해가 다른 것을 표현하는 것과 함께 그 안에 연결된 과학에 대한 시선에 대해서도 다른 것을 보여준다.


발제자의 논평

20세기 위기의 순간마다 그것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존재했다. 모든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으로써 과학이 보여주는 논리는 빠르게 도입되었다. 마르크스주의나 나치즘과 같이 시대에 위기에 반응해서 나오는 대안들은 대부분 과학의 방법론을 담고 있었다.

정치철학을 크게 두 흐름으로 나누자면 공동체주의와 자유주의라고 할 수 있다. 자유주의는 '무연고적 자아'를 기반으로 누구나 어디서나, 언제나 같은 합리성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이다. 반면 공동체주의는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그 사람의 생각과 정체성은 어떤 공동체에 구성원이냐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정치철학과의 연계성에서는 토마스쿤과 같이 정상과학을 추구하는 집단에서 '진리'라고 믿든 것을 보편적인 이론으로 생각하는 것이 공동체주의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누구에게나 어디서도 같은 정답을 얻을 수 있는 원리들은 자유주의의 특징이다. 이러한 인식으로 과학과 정치의 연관성을 생각해 보면 원인관계로 볼 때 두 갈래 모두 가능하다.


알레스데어 매킨타이어


3. 공동체주의, 보수주의, 과학사회학


마이클 폴라니는 자유주의를 옹호하려면 자유주의와 근대주의 인식론 및 과학철학과의 유착관계를 포기해야 한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포퍼의 회의주의에 반기를 들면서 폴라니는 과학과 자유민주주의는 모두 신뢰와 권위에 의존한다고 주장했다. 폴라니는 회의주의에 대한 반발을 확장하면서 회의주의적이고 유물론적인 근대철학이 전체주의로 귀결된다고 주장했다. 과학의 보존과 민주주의의 보존은 전통을 보존해야만 가능했고 자유로운 사회는 자유주의일 뿐 아니라 '심대하게 보수적'이기도 하다. (Polany, 1974:244) 이러한 폴라니의 주장은 과학자 공동체를 모델 정체로 보고 있으며 과학의 사회질서가 자본주의 사회질서와 유사한 형태라고 주장했다.


미국에서는 코넌트에 의해서 '자유방임 공동체주의'라는 담론으로 발전한다. 코넌트는 과학에 정부의 지원을 끌어들여 과학을 냉전기의 군산복합체의 유용한 것으로 만드는데 관심이 있었다. 또한 학계에서 과학자 공동체의 자율성을 유지하려고 했다. 따라서 코넌트는 냉전기 과학과 국가 간 계약을 서로 양대산맥으로 유지시켰다. 코넌트의 이러한 행동은 STS발전에 있어서 쿤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코넌트의 수하였던 쿤은 '자유방임 공동체주의'개념의 계승자이기도 했다. 물론 풀러는 이러한 쿤의 방식을 비판하면서 '정상과학'이라는 개념이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에서 무비판적이고 정치적으로 순응적인 접근을 정당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한다.


칼 만하임이 지적한 대로 보수적 정치와 보수적 사고방식을 구분하는 것은 중요하다. 보수적 사고방식은 보편적인 것보다는 국지적이고, 이론보다는 실천을, 추상적인 것보다는 구체적인 것을 우위에 둔다. 이것은 초역사적, 합리적, 보편적 토대를 두는 계몽주의와는 다르다. 따라서 보수적 사고방식은 세계개선론을 부인하며 인간의 도덕적이고 인지적인 불완성성을 강조한다. (Mannheim, 1985; Oakeshott, 1991:Muller, 1997) 따라서 보수적 사고방식을 수용한 폴라니, 코넌트, 쿤과 함께 에든버러학파의 데이비드 블루어 역시 보수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SSK는 철학과 사회사항의 서로 다른 점들을 합친 것이다. 쿤의 패러다임과 마르크스주의의 이데올로기 비판, 만하임의 총체적 이데올로기 관념, 뒤르켐과 메리 더글러스의 문화 지식, 폴라니의 암묵적 지식까지 다양한 전통들이 포함되어 있다. 보수적이라는 지칭이 후기 근대성의 맥락에서는 의미가 복잡해졌고 전통에 대한 버크식의 가치부여는 신자유주의의 근거가 되면서 경제정책의 기본이 된다. 폴라니는 과학의 인식적 기준이 삶의 형태에 내재해 있는 것으로 간주하면서도 과학이 사회적으로 특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폴라니는 과학이 사회적인 모델을 만드는데 핵심가치이며 과학자 공동체가 하는 일에 무한한 신뢰를 던지기도 한다.



과학지식사회학(科學知識社會學, Sociology of Scientific Knowledge, SSK)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과학지식의 구성요인에 사회적 요인이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밝히고 생성된 과학지식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과학지식사회학자들은 과학을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것으로 여기던 기존의 사고를 벗어나 과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학술적으로 연구해야 할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들은 과학기술로 인해 사회에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뒤, 그러한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과학지식과 사회적 요인 사이의 연관성을 탐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위키피디아)


발제자의 논평

공동체주의의 발전은 쿤을 중심으로 해서 '정상과학'이라는 패러다임으로 고착화되었다. 실험실이라는 특별한 장소에서 관찰되는 소재들과 연구자의 삶이 특별히 과학의 방법을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공동체주의를 뒷받침하는 것은 다름 아닌 보수적인 사고이다. 전통을 중시하면서 다양한 문화에 대한 보존을 중시하는 문화는 결국 '자유방임적 공동체주의'로 흐르게 된다. 이후 이러한 공동체에 대한 맹신으로 과학이 사회 속에서 영향력을 미치는 가운데 '매드사이언티스트'와 같은 윤리적인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자유민주주의의 관점은 오히려 정치적인 부분에서 과학공동체에 대한 공격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 논리적으로 '카르텔'을 붕괴시키겠다는 현 정부의 태도가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국지적이고 공동체적인 성경의 다문화주의는 STS에서는 '보수적인 사고방식'으로 볼 수 있다


4. 비판이론, 다문화주의, 페미니즘


SSK는 만하임을 통해 마르크스주의 이데올로기에 유래했기 때문에 지배적인 자유주의 과학 이데올로기와 관련해서 비판론으로 볼 수 있다. 과학지신의 보편성과 중립성을 외치는 자유주의적 관점에서는 계급적, 전문직업적, 제도적 이해관계가 무시되고 감추어지기 때문이다. 비판적으로 사회문제를 드러내는 도구적 이성으로써 SSK는 프랑크푸르트학파에서 유래된 STS와 연결되기도 한다. 특히 프랑크푸르트 2세대인 하버마스의 비판은 '이데올로기로서의 기술과 과학'과 같이 기술 자체가 이미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


앤드류 핀버그는 이런 관점에서 마르크스주의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은 STS의 후예이다. 특히 일차원적 사고로 유명한 마르쿠제의 분석을 기술에 대해서 적용하면서 비판적 기술이론을 발전시킨다. 핀버그는 기술설계에 편향이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폭로한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방적이고 민주적 관심사를 기술 약호 속에 포함시킬 수 있을지를 목표로 한다. (Feenberg, 1999) 핀버그는 자신의 이론을 도구적 기술이론과 본질적 기술이론으로 구분한다.


핀버그의 비판적 기술이론

도구적 기술 개념은 자유주의 과학 이데올로기를 따라 기술을 주어진 목표로 향하는 중립적 수단으로 여기는 것이며 본질적 기술 개념으로 보기도 한다.

이에 대해서 핀버그는 두 가지 개념을 모두 반대한다.

핀버그는 비판이론을 토해 지배적 가치들을 드러내고 기술설계에 새로운 가치를 기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이데거나 엘륄과 같이 기술 자체가 가지고 있는 편향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서, 기술이 어떤 종류의 가치를 체현하고 충족시기를 원하는지를 민주적으로 결정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험으로의 전환 : 랭던위너 역시 엘륄의 비관적인 반기술적 태도를 거부하면서 사회가 정치적 헌법을 가지고 있듯이 기술적 헌법도 가지고 있으며 양자의 틀을 짜는 것은 인간이 결정한 문제라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서 기술적 의사결정의 민주화의 필요성이 도입된다. (Winner, 1986)


비판이론가들은 공동체주의자나 실용주의자들과 달리 공동체의 규범이나 기성의 실천에서 멈추지 말고, 규범과 실천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평가와 숙고가 항상 가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러한 태도는 페미니즘과 자문화주의적 접근과 연결된다. SKK와 페미니스트 인식론은 보편주의와 중립성이라는 자유주의 관념에 대해서 구성주의적 비판을 가한다. 또한 보편적인 것보다는 국지적인 것을 강조하는 '보수적 사고방식'과도 연결되어 있다. 도너 해러웨이의 '상황적 지식'개념(Haraway, 1991)이나 헬렌 롱기노의 '국지적 인식론' 개념(Longino, 2002)에서 보수적 사고방식과 국지적인 것의 연결을 볼 수 있다.


페미니즘의 경우에는 자유주의가 가지고 있는 보편주의적 합리성, 탈체현된 개별주체, 감성과 주관성을 배제한 인간론을 배격한다. 또한 공동체주의가 가지고 있는 대한 가부장제에 대한 옹호에 대해서도 비판적이 된다. 다문화주의는 과학지식이 '보편적이지 않고 국지적인 것'이라는 인식을 옹호한다. 쿤의 공약불가능성에 대한 패러다임의 복수성이나 롱기노의 '지식 복수형' 개념은 서구의 테크노 사이언스의 패러다임에 도전적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공동체주의에서 유래한 STS의 국지적 감수성은 '차이의 정치학'으로 발전해 왔다. (Young, 1990)



5. 자유주의 이후의 자유주의?


에즈라히는 '이카루스의 추락'에서 자유민주주의 정치의 과학주의적 정당화는 서구에서 파산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중립성, 보편성, 객관성의 이미지는 지식인들 사이에서 지지를 잃었고 오히려 대중의 불신을 불러일으킨다. 공동체주의나 보수적 무정부주의와 같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와는 다른 방식의 정치철학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이론 자체에서는 존롤스가 말하는 '정의론'과 같은 담론으로 이어지기는 한다. 그러나 정의론이 전제하고 있는 절차적인 공평성의 관점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방식으로 정리된다. 1971년에 발표한 정의론에서 주장한 원초적 입장은 1993년에 발표한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한 걸음 공동체주의 쪽으로 물러났다. (Mulhall & Swift, 1993) 물론 롤스의 자유주의적 이상은 과학학 내에서 자유주의 이론을 상대주의와 공동체주의, 다문화주의 비판으로부터 구해내려는 시도이기는 했다.


필립 키처와 같이 질서에 대한 보편성을 전제로 롤스의 이론을 계승하려 했지만, 이 역시 공동체주의에 비판을 견디지는 못하였다. 스티븐 터너는 키처의 모델이 의사결정을 특수한 전문성에 의존하는 한, 완벽하고 평등한 포럼은 불가능하다고 비판한다. 터너가 보기에 오늘날 민주주의의 핵심 문제는 전문가 지식에 대한 의존이다.(Turner 2003b) 터너의 경우에는 전문가들에 의한 담론을 민주적 결정의 핵심으로 놓기보다는 코넌트를 경유하여 다양한 전문가 견해들이 공개적으로 경합하는 자유주의 체제를 만드는 것을 주장한다. 이를 통해서 직접적인 전문가들의 공동체의 의사결정이 아닌 담론만 추출하여 사회적으로 구성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콜린스와 핀치도 과학사회학에 대한 대중의 이해가 탈신비화함으로써 이를 완전히 세속적이고 평범한 것으로 볼 수 있게 해 줄 것이라고 제안한다. 이는 전문가의 활용이 원칙적으로 배관공의 활용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Collins & Pinch, 1996) 전문성은 인정되지만 불완전할 뿐만 아니라 원하는 업무에 전문가를 고용하는  사람들의 선택으로 좌우된다는 것으로 인식된다. 과학의 도구화가 진행됨에도 불구하고 규칙으로서가 아니라 일단의 숙련으로 인식되도록 한다는데 있어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이 진행되려면 서구 민주주의의 사회제도적, 정치적 생활이 근본적으로 재조직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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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과학기술과 참여민주주의


자유주의에서 공공활동에서 도구주의적 정당화가 힘들어지는 이유는 대의제가 전 세계적으로 위기이기 때문이다. (Hardt & Negri, 2005) 반핵운동이나 환경운동 같은 새로운 사회운동은 이전까지 자유주의 담론이 정치의 범위에서 분리시켰던 기술영역을 정치화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일명 새로운 사회운동 NSM은 과학정책 분야에도 도전을 제시한다. 기존의 과학정책 학자들은 경제성장과 기술발전을 아무 문제없는 목표로 받아들이며, 스스로 도구적 유효성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NSM은 성장과 경제적-도구적 합리성이라는 근대주의적 명령에 도전하며 정책엘리트들의 단순한 관료적 선택이 아니라 대중이 참여하는 민주적 문제로 간주하게 만들었다.  


STS와 과학정책연구의 지향의 변화는 '참여'의 아이디어가 가장 중요해지고 있다. 에즈라히가 '공공활동의 탈도구화'라고 부른 것처럼 이제는 공공활동의 도구적으로 사용되던 과학의 기법들이 그 자체로 불신이 되어 버렸다. 전문가의 독재뿐 아니라 사용하는 도구의 몰인간적, 관찰의 다양성 등의 도전으로 인해서 도구적인 성격으로 과학의 기반의 공공활동에 결정권을 가지게 되는 것을 반대하게 되었다. 따라서 NSM은 정신의학의 반대, 환자권, 환경, GMO 반대와 같이 새로운 기술의 정치를 반대하고 있다. 따라서 기술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라는 STS의 주장은 인식론적에 관한 이론적 주장일 뿐 아니라 위험사회를 특징짓는 새로운 정치에 대한 묘사이기도 하다. (Beck, 1995)


오늘날 STS는 과학기술 의사결정과 설계에서 대중참여를 어떻게 이론화하고 실천가능한 구조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해서 관심을 쏟고 있다. (Kleinman, 2000) 기술설계에서 민주적 기구와 참여자의 이해관계 역할을 어떻게 개념화할 것인가에 있다. (Feenberg, 1999) 최근 STS연구에서는 일반시민의 참여가 초기부터 결정과정까지 배제되지 않고 참여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마을회의나, 시민배심원, 합의회의나 시민과학자와 같은 아이디어들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전문가의 범주를 중립적으로 가정하고 그 경계에 시민들이 들어가는 방식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확인된다. 그러나 기존의 정치적, 제도적 구조 위에 이러한 중립적 경계를 덧붙여야 할지 아니면 조금 더 새롭게 영역을 만들어야 할지는 논의가 필요하다.


STS에서 참여의 문제

스티븐 터너는 과학을 실천으로 보는 사회학적 개념이 테일러주의의 작업조직 개념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것을 기술결정은 정치적인 것이라는 STS의 논증과 작업장의 민주주의와 쟁점을 제기한다.(Feenber, 1991)

GMO의 사용, 핵발전소의 입지, 의약품의 사용과 시험에 관해서 의사결정의 참여 문제뿐 아니라 작업장 안에서 권위구조에 대해서도 논쟁 중이다. (Edwards & Wajcman, 2005)

STS는 전문가의 권위를 기술관료적 이데올로기의 산물로 다루지만 로크식의 사유재산권 특히 지적재산권으로 보기 시작하면 그 자체로 열린사회로 가는 자유주의 체계에 보이지 않는 벽이 될 수 있다. (Fuller, 2000b)

소비자, 환자, 지역주민 등 기술은 다양한 사람들을 연결하고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기술적 결정이 참여적으로 내려져야 한다는 관념은 민주주의가 기술만큼 널리 펴져야 하기 때문에 민주적 정체 그 자체에도 문제를 제기한다. 따라서 지역사회, 교육현장, 의료적 맥락에서 민주주의는 확장되어야 한다. (Beck 1995; Hardt & Negri, 2000)

대의제의 위기와 신자유주의의 확산은 국가의 민주적 통제를 전문가에 의한 통제로 대신하게 되며 이러한 대의제의 위기는 과학기술의 민주화 문제가 전면에 부각되는 것을 뜻한다.




7. STS의 언어와 정책의 언어


대의제의 위기에서 제도적 개혁이 기존 구조를 바꿀 수 있는가는 과학과 정치엘리트가 '참여'의 언어를 전유하기 시작한 방식 때문이다. 영국 상원에서 대중의 '관여'를 강조하는 보고서를 발간한 것이나, 영국 정부 통상산업부의 과학혁신국은 기존의 참여에 관한 대중의 과학적 이해인 PUS(Public Understanding of Science) 모델에서 새로운 PEST(Public Engagement with Science and Technology)라는 과학기술에 대한 대중관여로의 전환을 요청한다. 여기서의 문제는 pest가 그 자체로 '해충'을 뜻한다는 것을 넘어서 세계화 속에서 정부가 과학기술정책을 경제전략으로 추구하기 때문에 대중참여가 중요해질까?라는 부분이다. (Jessopm, 2002)


엘리트가 지배하는 체제가 권력의 공동화로 나타나는 지점은 대중의 탈주가 일어나기 곳이다. 지나친 엘리트의 권력집중으로 대중들이 빠져나간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 엘리트는 '관여'라는 이름으로 민주화를 주장하지만 사실은 권력의 약화를 걱정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Hardt & Negri, 2000) 참여의 관점에서 STS의 이론은 충분한 정치적, 분석적 실체를 부여하기 위하여 문제를 희석시키지 않고 잘못된 정당성을 만들어내는 공식정책 언어로부터 질문을 던져야 한다.



0. 나오기


정치철학은 정치의 원리를 만들기 위한 인식론과 존재론을 기반으로 한다. 정치에서 존재론은 기본적으로 정체에 따라서 달라진다. Democray라고 하는 민주주의의 정체는 demos를 존재로 하여 자유주의적인 이상을 가진 시민으로 인식한다. 마찬가지로 귀족정, 군주정, 참주정과 같은 정체는 그 자체로 존재론과 인신론을 담고 있고 이에 따라서 운영원리가 달라진다. 운영원리는 정치제도로 표현되는데 정치제도의 관점에서 STS와 만나는 지점이 발생한 것이 바로 계몽주의 이후 자유주의와의 결합이다. 그러나 곧 인식론의 관점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문제가 생겼고 더욱이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기계론적 세계관이 갖는 문제점이 드러났다.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공동체주의가 등장하면서 구성요소인 인간과 사회는 존재로서 동일하지만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과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은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유주의는 기본적으로 보편적인 인간관을 가지고 있다. 어느 때나 누구에게나 동일한 보편성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을 증명하려면 과학적인 방법으로 실험과 증명이 필요했다. 어디서나 명징한 결과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사회로 확장되면서는 인간의 다양한 감정과 이해관계를 담을 수 없는 문제에 봉착했다. 이에 대해서 쿤과 같은 패러다임과 정상과학이라는 담론이 등장했다. 공동체주의와 자유주의의 논쟁적인 대립처럼 과학과 정치의 연결과정에서도 근대 정치이론의 근간을 제공한 과학의 위상이 계속해서 논쟁의 중심이 되었다.


함께 논의할 주제

1. 과학기술에서 정치이론은 어떤 관계여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STS의 관점에서 정치이론은 STS의 원인인가 혹은 결과인가?

2. 계몽주의 프로젝트로 인한 자유주의 이론과 공동체주의 이론 중에서 우리 시대에 필요한 이론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3. 신자유주의의 폐해로써 전 세계가 무한경쟁으로 인한 엘리트주의가 만연하게 되었는데 NSM의 관점에서 어떤 대안적인 활동을 할 수 있을까?

4. 정치적,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한국적 맥락에서 '과학사회학'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Roger Pielke Jr., University of Colorado



1. 순수과학자 pure scientist


순수과학자는 원인에 대한 결과를 이야기해 준다. 순수과학자는 가치를 집어넣지 않고 통계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raw데이터를 다 보여주는 것이다. 정말 순수한 과학자를 말한다. 가장 기본이 되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2. 과학중재자 science arbiter


과학중재자는 전문가로서 어떤 사건이 발생하거나, 정책이 실행되면 어떤 요인이 발생하는지를 다양하게 보여준다. 퍼실리테이터라고 할 수 있다. A가 원인이 되어서 B가 되었다고 하는 식의 자료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과학중재자는 보통 중립적이라고 생각이 들지만, 어디에 있어도 이런 태도를 지니는 사람들을 말한다. 자신의 의견보다는 문제의 원인과 결과를 분석하는 정도에 그친다.



3. 이슈옹호자 issue advocate


이슈옹호자는 다양한 대안과 주제 중에서 1가지만 보여준다. 그리고 대부분은 자신이 선호하는 혹은 옳다고 생각하는 것만 보여주는 것이다. 지역정치경제에서 사람들이 다양한 의견들이 아닌 하나의 의견만을 가지고 있을 때는 바로 이러한 이슈옹호자들의 활동이 많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한다. 이슈옹호자는 오히려



4. 정직한 중개자 Honest Broker


정직한 중개자는 이슈옹호자가 보여주지 않은 정책의 효과와 문제, 장단점을 모두 보여준다. 대안이 1부터 4까지 있다면 이슈옹호자는 1만 보여주면서 사람들을 설득한다면 정직한 중개자는 1부터 4까지 모두 보여주고 그것들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보여주면서 설명을 해주는 중개자를 말한다.



5. 보이지 않는 옹호자 stealth advocacy


이슈옹호자로 보여지고도 하지만 사실 객관적이지 않고 자신이 선호하는 것들을 숨기고 사람들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보통 노조에 속한다, 사측에 속한다라고 할 경우에는 명확하게 이 사람은 이슈옹호자가 된다. 그러나 자신의 선호를 숨기면서 중립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들을 보이지 않게 움직이는 스텔스모드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사주를 받거나 혹은 어떤 요구를 받았을 때 다른 페르소나를 가졌다가 스텔스모드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https://brunch.co.kr/@minnation/2480

https://brunch.co.kr/@minnation/2414


https://nanomat.tistory.com/222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23416664


책소개


과학기술학은 과학기술의 기원과 동학, 그것이 미치는 영향에 대한 통합적 이해를 추구하는 학제적 분야이다. 지난 40여 년에 걸친 이러한 학문적 발전은 이 분야의 흐름을 개관하고 핵심적인 이론적.방법론적 접근들을 평가하며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쟁점들을 소개하기 위한 포괄적 시도를 낳았고, 이는 세 차례에 걸친 ‘편람’의 발간으로 이어졌는데, 이번에 번역된 것은 에드워드 J. 해킷 등이 엮은 제3판이다.

오늘날 과학기술의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대응과 해결 방안 모색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함의를 갖는 과학기술학의 최신 지식과 연구 동향을 총정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풍부한 참고문헌과 질문들을 제시함으로써 앞으로의 연구 주제나 방향에 대한 길잡이로도 손색이 없다.

이 책은 이제 원숙기에 접어들어 학문적 존중과 제도적 안정을 얻으면서 다양한 과학 관련 활동 영역이나 과학정책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과학기술학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고 있다. 38개의 장들을 크게 5개 부로 나누어 수록하고 있는데, 그 주제가 매우 광범위하게 걸쳐 있는 것은 물론이고 저자들의 면면도 과학기술학의 ‘Who’s Who’를 연상케 할 만큼 매우 화려하다.


목차      


1부 아이디어와 시각?마이클 린치
1. 과학기술학과 실천 프로그램?세르지오 시스몬도
2. 쿤 이전의 과학에 대한 사회적 연구?스티븐 터너
3. 과학기술학에서의 정치 이론?찰스 소프
4. 교과서 사례의 재검토?존재양식으로서의 지식?브뤼노 라투르
5. 사회세계 개념틀: 이론/방법 꾸러미?에이델 클라크, 수전 리 스타
6. 페미니스트 STS와 인공의 과학?루시 서치먼
7. 기술결정론은 죽었다, 기술결정론이여 영원하라?샐리 와이어트
8. 프라무댜의 닭: 탈식민주의 테크노사이언스 연구?워윅 앤더슨, 빈칸 애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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