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틀러, 벤야민, 비릴리오, 보드리아의 미디어 연구
지난시간 커뮤니케이션 이론이 시작인 해롤스 라스웰로 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이후 해롤드 이니스와 마셜 맥루언으로 대표되는 토론토학파가 등장하였다. 토론토학파는 특히 미디어의 형식적 요소가 편향을 만든다고 생각했다. 이니스는 시간적, 공간적 편향을 만든다고 생각했었고 이러한 '편향'의 감각을 가지고 와서 맥루언은 인간의 감각 자체에 미디어가 편향을 만든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확장으로서의 미디어는 그 자체로 곧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구텐베르크 은하계'를 구축했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1세대의 관점이 오늘 볼려고 하는 것처럼 키틀러와 보드리야르, 비릴리오까지 가보면 미디어에 대한 해석이 더 확장된다. 오늘은 그 유명한 키틀러의 축음기, 영화, 타자기에서부터 시작해서 발터벤야민의 아우라의 개념 그리고 비릴리오의 질주학까지 살펴보면서 미디어와 인간의 존재성에 대한 탐구를 더 깊게 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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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까지 미디어는 하나의 도구 혹은 트리거였다. 그러나 미디어의 결정론media determinism에서 미디어의 역할과 기능을 다시 배치하자는 미디어 생태학이 등장하게 된다. 미디어 생택학은 사람들이 세계를 이해하는 물리적, 감각적, 지각적, 상징적 환경에서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디어는 인간과 사회 그리고 자연과 가상과 상호 관계를 맺고 서로 의존한다. 미디어는 그 제차만으로 존재하지 않고 인간과 사물과 함께 얽힘과 얽힘으로 변증법적인 발전을 이루어간다는 것이다. 닐포스트만은 미디어 생태학의 대표주자이다. 그는 미디어 생태학 사상에서 다음과 같은 표현을 한다.
미디어 환경이 미래를 주도하는 동력으로 신성화될수록 그리고 그것의 영향력이 결정적이라고 여겨질수록, 그것의 도구적 활용에 매달리고 경주하기보다는, 새로운 기술이 무엇을 위한 것이고 어떤 문제에 대한 해답이며 이것이 가져오는 생태학적 변화가 인간에게 어떠한 의미를 주는지를 질문할 필요가 있다_NeilPostman
이러한 닐포스트먼의 이론은 미디어의 결정론이나 운명론적인 시각에서 탈피해서 어느 한 쪽에 특권을 주지 않고 미디어-인간-문화의 공생 관계를 시도하였다. 이러한 접근은 경험적인 것이긴 하다. 미디어가 영향을 미치는 환경과 범위를 생각해보면 시대마다 문화마다 사람마다 다른데, 어느것 하나로 정리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하나의 이론을 추구하기 보다는 생태계라는 이름으로 미디어가 구축하는 세계를 그려보는 것이다. 국내에도 '오가닉 미디어'라는 책이 등장했었는데 여기서도 유기적인 미디어의 흐름을 생태적인 관점에서 접근하였다.
닐 포스트먼은 20세기 후반 미국의 사회비평과 교육 분야 및 커뮤니케이션 이론가로서 가장 중요한 인물에 속하며, 그의 사상은 이해하기 쉬울 뿐 아니라 실제적이기에 전세계에 걸쳐 많은 추종자를 낳았다. 그는 감화력이 큰 존경 받는 스승이었으며, 40년이 넘도록 뉴욕대에서 교수로 봉직하며 명망 높은 미디어 생태학 이론을 정립하기도 했다_예스 24
최근에 가장 주목받고 있는 미디어 철학자는 독일의 프리드리히 키틀러이다. 키틀러는 미디어 결정론자이면서 유물론자이다. 유물론(materialism)이란 관념론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우위는 실제로 보이는 물질이며 물질의 발전을 통해서 정신이 만들어진다고 믿는 사상이다. 유물론의 입장에서 미디어도 물질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미디어는 그 자체로 의사전달과 같은 기능만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식을 선험적으로 규장한다고 보았다. 키틀러도 당연히 이러한 관점에서 미디어의 기원을 찾아본다.
사실 마셜 맥루언의 경우에는 인간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이해를 가지고 인간이 주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동양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시간의 향기'를 이야기하면서 인간이 미디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주장했다. 이것을 어떻게 보면 낭만주의적인 인간론으로 보았다면 키틀러는 인간의 주체화를 거부한다. 인간은 정신과 영혼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뇌의 활동을 정보처리하는 기계로 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키틀러의 접근은 소위 인간(der sogenannte Mensch), 정보기계(Informationsmaschine) 인간을 문화의 산물로 보았고 기술-인간-권력에 대한 반해석학적(anti-hermeneutic)이고 탈인간중심적인(post-anthropocentrism)이해로 확장되었다.
따라서 키틀러에게 기록 체계로서 미디어는 정보의 저장과 전달 그리고 처리과정을 보여주는 전부다. 이러한 이해 아래서 키틀러는 1800년대 기록시스틈과 1900년대 기록시스템을 하나하나 살펴본다. 1800년대 기록시스템은 인간이 직접 글씨를 쓰다가 인쇄기술이 주도하던 시대였다. 이어서 1900년대 기록시스템은 인간이 만든 기록들을 다른 방식으로 변화시켰다. 기계를 통해서 데이터를 만들어내고 데이터들 간의 구성을 통해서 미디어의 형식이 달라진 것이다. 여기서 키틀러가 집중한 것은 바로 축음기, 영화, 타자기였다. 이른바 기술매체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기술매체는 그 자체로 자율적이고 인간과 같이 주체성을 가진 존재로 인식되었고 마치 신유물론과 같은 비인간행위자로써 미디어가 전제되었다.
키틀러에게 영향을 준 학자는 미쉘푸코와 자크라캉이었다. 특히 자크라캉이 주장했던 '실재계-상징계-상상계'의 RSI 인식론을 미디어와 접목시켰다. (사실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잘 맞는 것 같지는 않다. 내가 보기에는 이미 모든 것들이 실재와 상징, 상상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나눌 수 없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이 플랫폼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는 플랫폼) 그래서 각각을 대표하는 미디어를 규정하고 그것을 통해서 현대의 기록시스템을 다시 분석한다. 축음기는 음악을 기록한 것인데 이것은 실제계와 매칭되고, 영화는 이미지들의 연속프레임기 때문에 상상계와 매칭되고, 타자기는 문자들의 기록이기 때문에 상징계와 연결된다고 보았다.
축음기는 실재계다, gramophone is real
축음기 이전까지 모든 소리는 음계나, 기보법으로만 가능했다.
축음기가 발명되면서 모든 소리는 인간이 판단하고 의미를 부여하든 아니든 실제의 현실음을 내는 그 자체로의 기록으로 바뀌게 되었다.
음성은 소리의 물리적 진동일 뿐 영혼을 담고 있다는 근대음악의 세계관을 해체시켰다.
여기에는 소음까지도 담기게 되면서 그 전까지 현실을 담지 못했던 모든 것들이 녹음되어서 축음기로 나오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소음의 가치를 발전시켰고 축음기 자체가 가진 기능도 바꾸어 놓았다.
축음기는 정신의학과 범죄학 등 지식권력으로 작용하기도 했고 다다이즘이나 무조음악등 기존의 예술에 균열을 만들었다.
축음기는 리듬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해 줌으로써 래퍼토리가 발전하고 재즈 밴드의 장시간 연주도 가능하게 만든다.
축음기가 이미 주어진 기호를 배열하여 정보를 전달하는 문자와 달리 소리를 기호화하지 않고 소리의 주파수적 속성을 그 자체로 기록한다. 키틀러는 '안녕'이라는 인사말과 함께, 전기적 방식으로 등장해 무선음성통신 및 자기방식의 녹음과 재생 매체로 발전하게 되는 소리 기록 및 재생 매체의 기술적이고 물질적인 전제조건을 찾아간다_정찬철(2019)
영화는 상상계다, film is imagine
키틀러는 영화는 실재계가 아니라 상상계로 본다. 인간이 상상하는 것들을 대변하여 새로운 상상을 이미 보여준다.
영화는 1초당 24프레임이다. 영화의 이러한 특징은 연속 사진총을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이후에는 생체역학과 정신병학 분야에도 적극적으로 사용된다. 원래는 병원에서 진료용으로 사용되었다가 히스테리환자의 발작증세를 따라하는 환자들을 보면서 이것을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영화는 쓰여진 문학을 극본으로 바꾸고 극본을 이미지들의 연속체들로 만드는 과정에서 실제가 아닌 상상력의 세계로 들어간다.
영화로 넘어간 미디어의 요소들은 환상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으로 넘겨받아서 재미있고 오락적인 콘텐츠로 다시 태어나면서 시각적 충격과 함께 영화가 이끄는 상상계에 감정이입이 자연스러워진다.
타자기는 상징계이다, typewiter is symbol
타자기는 모든 것이 규격화된 규칙에 맞춰서 인간의 모든 특성이 바깥으로 드러나는 미디어이다.
필사는 저자와 분리될 수 없는 정신성과 진정성, 문학적 환각 효과를 가지고 있다면 타자기는 필연의 개인성이 익명화된 철자로 대체되어서 문자를 초월한 정신적 작용이 아닌 단순한 철자들의 배열이 되었다.
타자기의 등장으로 고전적인 '펜'을 중심으로 하는 남근중심주의가 해체되고 구텐베르크 은하계가 사라지는 계기가 되었다.
여성이 데이터 프로세싱 프로세스에 직접 참여하게 되었으며 담론 생산과 저장은 남성작가-여성타자수-기계로 삼분할 되었다.
글쓰기를 둘러싼 신화가 해체되면서 자저는 문자, 문자가 정신의 옷을 벗고 물질과 정보의 차원으로 전환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발터벤야민은 철학과 시, 정치와 형이상학을 넘어서 신학과 유물론까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후세에게 영향을 미쳤다. 나폴레옹 3세와 오스만 남작의 도시 대정비 사업으로 조성된 파리를 거닐던 산보를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매일 파리의 아케이드를 걸으면서 꿈의 건축물이나 거리, 군중, 신상품, 패션과 유행 그리고 건축이나 테크놀로지에 매혹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했다. 벤야민의 사고는 후대 철학자들에 의해서 '사유 이미지'라고 불렸다. 글을 통해서 현대성을 분석하거나 해체하기보다는 자기가 실제로 보고 걸으면서 메모한 것들을 통해서 소위 말하는 '민속지적'인 방식으로 철학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진정한 문학적 활동을 위해 문학의 테두리 안에 만 머물라는 요구를 할 수 없다. 그러한 요구야말로 문학적 활동이 생산적이지 못함을 보여주는 흔한 표현이다. 문학이 중요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은 오직 실천과 글쓰기가 정확히 일치하는 경우 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포괄적 지식을 자처하는 까다로운 책보다, 공동체 안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더 적합한 형식들, 예컨대 전단, 팸플릿, 잡지 기사, 포스터 등과 같은 형식이 개발되어야 한다. 그와 같은 신속한 언어만이 순간 포착을 보여준다.
_발터 벤야민 선집, 김영옥, 윤미애, 최성만
살아있는 실제들의 움직임을 포착하기 위해서 벤야민은 이미지의 스넵샵을 글로 남긴다. 공동체 안에서 공유되는 매체인 전단지나 팜플렛, 잡지나 기사, 포스터등을 통해서 글의 소재를 얻었다. 물론 이런 방식으로 글을 썼기 때문에 기존의 학계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했다. 사실 벤야민은 지적전통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담고 있었고 현대성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현대성의 방식으로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19세기 대도시 파리에 깃든 현대성에 대한 골상학적 독해를 담은 '파사젠베르크' Passagen-Werk가 집필되었다.
벤야민의 유명한 책 중에는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 있다. 여기서는 사진, 영화에서 보여지는 새로운 기술들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재생산된 결과물들을 만들었다. 특히 예술의 탄생에 있어서도 전통적인 '사실주의 묘사'에서 사진의 등장으로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는 현실을 똑같이 그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오직 한가지만 존재했던 예술작품들은 이제 운명의 시간들을 맞는다. 복제품들이 등장하면서 오직 하나의 작품만이 가지고 있던 '아우라'가 몰락하게 된 것이다. 벤야민의 주요한 개념인 '아우라'를 살펴보면 기술이 등장하면서 아우라가 어떻게 사라지는지를 알 수 있다.
아우라란 무엇인가?
아우라는 원래 신의 입김이나 육체 주위를 맴도는 빛의 너울과 같은 종교적 개념이었다. 기술복제 시대 이전에 아우라는 진품성, 유일성, 일회성, 진정성을 가진 작품에서 풍겼다. 이것은 그 자체로 주술적이고 종교적인 기능을 수행했다. 아우라적 권위의 발새으이 근거는 작품이 가진 물리적 속성에 있었다. 당연히 시간과 공간적으로 복제될 수 없었다. 따라서 특정한 장소에서 특정한 소수에게만 공유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계급적인 것과 아우라는 연결되어 있었다. 작품의 일회적인 존재성” “예술 작품의 불가촉(das Unnahbare)의 마적인 현상”으로 아우라는 "예술작품의 지금과 여기, 그가 존재하는 장소에서의 그의 일회적인 현존재“이면서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어떤 먼 것의 일회적 나타남“을 특징으로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공간과 시간의 특별한 직물”이기 때문에 복제된 예술 작품에는 결여된 것이었다.
그러나 기술이 발달하면서 복제가 가능해진다. 예술작품이 일회성이나 진품성이 아닌 무한한 재생산의 기로에 들어선다. 유일하지도 않고 원본도 아닌 것들이 늘어나면서 누구나 어디서나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제의적인 가치에서 전시적인 가치로 발전하게 되었고 아우라의 몰락은 새로운 형태의 예술이 시작되는 것과 동시에 이미지에 대한 민주적 접근을 높여서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고 보았다. 기존의 회화가 가지고 있던 독점적 위치를 무너뜨리고 누구나 초상화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초상화에는 사실 그 초상화를 그리는 사람의 부와 권력, 사회적인 지위를 보여주었다.
여기서 사진이 가장 중요한 역학을 한다. 사진의 등장으로 전통적인 예술이 탈마법화되는 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특히 외젠 아제 Eugene Atget이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아우라가 완전히 소독되었다'라고 보았다. 예술의 정치화와 사회적 기능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과거의 독점적인 지위를 가진 아우라에 대한 벤야민의 양가적인 감정은 다양한 곳에서 볼 수 있다. 이후에 몇 장의 사진들이 아니라 아예 1초에 24컷의 사진이 지나가는 영화가 등장하면서 아우라 몰락의 완성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건 내 생각인데, 아우라의 부활이 가능할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우라의 특징은 거리와 숭고함에 있다. 기술복제시대에는 아우라는 복제되고 사라지고 소멸되어 버리지만 오히려 아우라가 생성되는 혹은 부활하는 방법을 생각해보면 조금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거리를 만들고 주관적인 경험을 만들고 그에 맞게 느리게 속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폴 비릴리오의 공간의 소멸, 속도의 소멸과 반대로 현실을 구성해보는 과정에서 아우라의 부활이 가능해지는 것은 아닐까?
발터 벤야민_feat. 교보문고
독일 출신의 유태계 언어철학자, 번역가, 좌파 지식인으로서 한때 20세기 독일어권 최고의 비평가로 자처하기도 했다. 베를린의 유복한 가정에서 출생. 프라이부르크, 뮌헨 대학 등에서 철학을 공부하던 중 나중에 평생의 친구이자 유대사상에서 지적 동반자가 된 게르숌 숄렘을 만난다.
전쟁을 피해 스위스로 간 그는 1919년 [독일낭만주의 비평개념]에 대한 연구로 베른 대학에서 최우등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신문과 잡지에 기고를 하거나 번역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한다.
그는 괴테의 소설에 대한 비평문 [괴테의 친화력]을 통해 당대의 보수적인 문예학의 풍토를 비판하기도 한다. 1924년 교수자격논문인 [독일 비극의 원천]을 집필하지만 아카데미 세계로 진출하려던 계획은 결국 좌절하고 만다. 같은 해 알게 된 연인 아샤 라치스 이외에 나중에 베르톨트 브레히트에게서 유물론적 사유의 영향을 받으면서 비평, 번역, 방송 활동을 펼쳐나간다.
1928년 출간된 철학적인 아포리즘 모음집 [일방통행로]는 그가 즐겨 왕래하던 프랑스에서 당시 태동한 초현실주의 운동에서 받은 영향을 보여준다. 또한 그는 나중에 그의 정신적 유산의 관리자가 된 테오도르 아도르노를 비롯해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를 알게 되면서 이들과 지적 교분을 나눈다.
파시즘의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한 유럽에서 스스로 ‘좌파 아웃사이더’로 이해한 그가 택한 길은 교조적 마르크스주의에 거리를 두고, 유대신학적 사유와 유물론적 사유, 신비주의와 계몽적 사유 사이의 미묘한 긴장을 유지하면서 아방가르드적 실험정신에 바탕을 둔 글쓰기를 통해 현대의 변화된 조건 속에서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성찰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이었다.
초현실주의를 비롯해 마르셀 프루스트, 베르톨트 브레히트, 프란츠 카프카, 카를 크라우스, 샤를 보들레르, 니콜라이 레스코프 등에 대한 글 이외에 그는 [생산자로서의 작가]와[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등 정치적 성격을 강하게 드러내는 글을 발표한다.
1940년 벤야민은 당시 뉴욕에서 사회연구소(프랑크푸르트 학파)를 이끌던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지원을 받아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하기 위해 프랑스를 탈출하던 중 스페인 국경 통과가 좌절되자 자결한다. 그로써 그가 13년간 매달렸던 프로젝트, 즉 마르크스의 ‘상품물신’의 구상을 상부구조(문화) 전체에 적용하여 19세기 자본주의와 모더니티의 근원을 고고학적으로 탐구하려던 필생의 저작 [파사주](Das Passagen-Werk)는 미완으로 남는다.
스탈린-히틀러의 밀약을 접한 충격에서 쓴 유물론적 역사철학의 결정체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는 그가 남긴 최후의 글이다. 게오르그 짐멜의 에세이적 글쓰기 스타일이 엿보이는 벤야민은 뛰어난 산문가였고, 모더니티, 매체미학, 언어철학, 역사철학에 대한 글들을 비롯해 인문사회과학의 다양한 모티프들을 풍부하게 담고 있는 그의 사상은 70년대 전집 발간 이래 21세기 들어서도 여전히 주목받고 있으며, 자크 데리다, 조르지오 아감벤 등 현대철학자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러면 아우라고 몰락하고 나서 끝나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 프랑스의 미디어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아우라의 상실이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실체가 없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면서 구조화된다. 이른바 '시뮬라시옹'이라는 관점이 부활하는 것이다. 장 보드리야르는 문자 중심에서 전자 매체, 이미지 중심으로 이행된 사회에 대한 분석을 진행한다. 미디어는 인간 감각을 확장한다는 맥루한과 아우라의 해체가 가져온 민주적 가능성을 논의한 벤야민을 비판적으로 수용한다. 실재가 소멸하는 시대, 가짜기 진품을 대체하고 허상이 진상을 대신하는 시대가 바로 시뮬라크르가 지배하는 시대인 것이다.
맥루한과 벤야민 그리고 보드리야르
매클루언: 인간의 감각은 미디어에 따라 확장된다. 문자와 인쇄술이 시각중심적인 인간을 형성했다면 전자매체(텔레비전)는 모든 감각의 조화와 균형을 회복 시킨다. 두 개 이상의 미디어들이 만나는 순간은 감각 마비 상태에서 풀려나는 자유의 순간이다.
보드리야르: 세계에 대한 독해 체계를 텔레비전이 독점하고 있다. 텔레비전은 이미지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이미지 제국주의를 만든다. 인간이 매체에 매개된 현실에 의존할수록 주체로서 자율성을 상실하게 되며, 미디어는 이전보다 더 교묘한 조작과 통제의 기제로 작동되면서 인간을 억압하고 있다.
벤야민: 기술적 복제에 의한 예술품의 아우라 상실은 예술작품으로 하여금 지금까지 종교적 제의 속에 살아온 기생적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게 한다. 전통적 예술의 탈마법화, 예술의 대중화, 민주화를 가져온다.
보드리야르: 아우라의 상실을 가져온 복제품은 해방의 잠재력을 증대하기보다 자기 재현의 증식으로 이어지면서 실체가 없는 이미지가 실재를 갈취하는 결과를 낳는다.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
미디어에 의해서 매개된 현실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 미디어가 주체가 되어서 자신들이 보여주고 싶은 프레임에 맞는 주체가 배제된 세상을 만들어 가면서 인간의 감정을 주조하게 된다. 미디어의 필요에 따라서 실재의 대체물인 시뮬라크르가 인간의 사상을 지배하는 과정에서 시뮬라시옹이 일어난다. 시뮬라르크는 더욱 실재 같은 파생 실재가 가상 실재로 전환되는 일을 바로 시뮬라시옹이라고 할 수 있다. 시뮬라시옹은 갖지 않은 것을 가진체 한다고 했던 장 보드리야르의 이야기를 주목해보자. 보통 시뮬레시옹의 단계는 '재현의 단계-변형의 단계-은폐의 단계'이다. 마지막에는 이미지나 기호가 지시하는 대상 또는 어떤 실체도 기초하지 않은 단계가 되는 것이다. 영상의 힘이 위력적으로 작용하는 현대사회에서 세계는 성찰적인 거리감을 작동시키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시뮬라시옹의 예들
걸프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 걸프전의 실상은 허상이다. 실제로는 더욱 참혹하고 잔인했다.
이슬람세계는 폭력적이지 않다 : 프레임에 잡히는 것은 이슬람의 일부분이고 전체가 아니지만 이슬람이 결국 세계를 멸망시킬 것이라고 믿게 만든다.
디즈니랜드는 존재하지 않는다 : 존재하지 않는 디즈니랜드를 존재하게 만드는 것처럼 만든다.
내이름은 칸이다 : 영화 '내이름은 칸'에서 주인공은 테러리스트가 아니지만 계속해서 테러리스트로 의심받는다.
폴 비릴리오는 흥미로운 개념을 주장한다. 바로 질주학 dromologie이다. 질주학은 말 그대로 '질주하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이다. 인류는 속도의 광신적 숭배에 빠져 있다. 속도의 사상가라고 불리우는 폴 비릴리오는 원격현전telepresence, 실시간real time이 가져온 시공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비판한다. 매체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지삭의 확대가 지금과 여기라는 인간의 공간을 소멸과 지각의 축소를 초래하게 된다. 폴 비릴리오의 의하면 인간은 속도를 위해서 고속도로를 만들었고 고속도로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속도의 빠르기에 따라서 장소의 개념이 머릿속에서 사라지게 된다.
시간과 공간을 살아내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장소개념과 시간개념을 통해서 자신의 좌표를 설정하고 주체로써 행위의 방향을 결정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점점 더 빠른 속도를 추구하면서 이동시간을 줄이면 줄일수록 자신의 존재론을 잊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폴 비릴리오는 먼저는 공간에 대한 경험이 사라지고 속도가 빨라지면 시각으로도 인식할 수 있는 이미지가 사라지면서 자신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어져 버린다고 비판한다. 그래서 이러한 사회에서 가장 큰 권력의 핵심은 바로 '도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인 것이다. 누가 도로를 막고 있고 만들고 있고 통행료를 받고 있는가에 따라서 권력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1900년도 초에 발표된 '퓨처라마'는 이런 관점에서 도시의 구성은 사실 권력의 재구성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에 일론머크스를 통해서 시발된 '하이퍼루프'는 1500km를 달리는 진공관 속의 기차이다. 여기에 탄 사람들의 기억과 인식은 주체성이 사라질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속도광들의 생각해보면 인간이 자신을 잃어버리는 시기에 다른 사람에 대한 혹은 세계에 대한 소중함이 존재할리가 없다. 이어서 비릴리오는 마지막으로 이러한 것에 더해서 매체가 공간을 소멸시킨다고 주장한다. 운송수단에 의한 공간의 소멸이 이어서 정보통신기술에 의한 공간의 소멸까지 오면 인간의 존재는 더 이상 의미를 찾기가 힘들어진다.
미디어는 맛사지다. 미디어는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지고 있고 이데올로기적이지만 그것을 넘어서 주체적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마치 한 말과 하는말의 차이처럼 만들어진 미디어는 만들어지는 미디어와는 완전히 다른 행위를 한 것도 같다. 미디어의 지배에 대해서 인간은 어떤 대답을 준비하고 있을까? 사실 키틀러의 논의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이미 세상은 그렇게 되고 있는 것 같다. 인간이 처한 상황이 기술에 의해서, 미디어에 의해서 조건지어지는 것이다. 인간이 조건지어진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을 때 키틀러가 이야기한 매체유물론은 빛을 발하는 것도 같다. 인간이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메타인지가 필요하다. 내가 조건지어진 상황에서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라는 고민들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민네이션 생각
아우라의 부활을 생각해보자.
속도의 미학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느리게 살기를 도전해보자.
퓨처라마는 1939년 뉴욕에서 열린 엑스포에서 GM관에서 열린 미래도시 전시관이다.
하이퍼루프가 가져온 인간의 의식의 변화는 어떻게 될까?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사는 인간의 차원은 앞으로 어떻게 바뀔 것인가? 애플비전이나 메타버스와 같은 매체들이 나오는 것 말이다.
알렝 바디우의 '순수다자'와 같이 아우라는 아무리 복제품이더라도 모든 것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https://organicmedialab.com/2012/12/13/organic-media-definition/
https://www.unipres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169
https://brunch.co.kr/@minnation/1386
http://kor.theasian.asia/archives/3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