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 미디어스케이프_과학커뮤니케이션
시공간의 개념은 매번 바뀐다.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고, 사람들의 인식의 변화에 다라서 시간과 공간을 이해하고 또한 구성하는 방식도 바뀐다. 구성의 방식이 바뀌면 그 공간과 시간 안에서 경험이 구성되는 방식도 바뀐다. 공간적 전회가 바로 이것이다. 공간적 전회가 있기 전에 미디어적 전회가 있었고 미디어적 전회 이전에 언어적 전회가 있었다. 오늘은 마르크 오제의 비장소 개념을 중심으로 공간에서 장소로, 장소에서 비장소로, 비장소에서 무장소성으로 왔다 갔다 할 예정이다. 비판적 정보 미디어 분석에서 사용하는 방식으로 미디어에서 어떻게 장소와 비장소의 개념을 다뤘는지를 지난시간에 찾아보았다면, 이번시간에는 시간과 공간의 재구성에 관련해서 모빌리티 개념과 르페브르의 건축학에서의 공간성 등등 조금 더 다양한 방식으로 찾아볼 것이다.
인식론적 전회에서 미디어적 전회로 이어지는 '변환'의 과정은 자연스럽게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것들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특히 1970년대 이후 에드워드 호자에 의해서 주장된 '공간적 전회'(the spatial turn)는 공간이 우리에게 어떤 방식으로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만들어주는지를 알려준다. 에드워드 소자(Edward W. Soja)는 공간에 비해서 시간이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위상학으로 불리는 공간의 분할은 데카르트로부터 시작된 유클리드 공간의 분할이다. 인간의 의식에서 균등하게 분할된 공간개념이 우리가 살아가는 실제를 이루기 시작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공간은 살아있지 않고 고정되며 변증법적으로 전환을 일으키지 않고 죽은 것처럼 묘사되었다. 에드워드 소자는 이러한 공간개념을 바꿔서 살아 있고, 매번 역사적이고 사회적으로 형성되는 존재로 재규정하였다. 이러한 논의가 진행되면서 공간은 장소로 바뀌고 장소는 특정한 맥락에서 다양한 주체들의 향연으로 '연구'의 대상이 된다.
공간적 전회
1970년 에드워드 소자(Edward W. Soja)는 공간적 전회(the spatial turn)를 주장했다.
공간적 전회 이전까지는 시간이 공간에 대한 우월한 특권을 제시하고 공간은 시간에 따라서 추상화되거나 기하학적 측량의 대상이 되었다. 예를 들면 데카르트의 좌표계나 유틀리드의 공간과 같이 말이다.
또한 역사주의적 논리 위에서 공간은 죽은 것, 고정된 것, 비변증법적인 것, 정지된 것으로 묘사되었다. 반대로 시간은 풍요로움, 비옥함, 생생함, 변증법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시간의 우위는 오랜기간 동안 시대적으로 사람들의 생각과 삶의 방식을 규정했다.
그러나 시대정신(zeitgeist)과 마찬가지로 공간을 관통하는 하나의 절대적인 공간정신(Raumgeist) 필요하다는 의식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공간은 역사를 담는 텅 빈 용기(容器)가 아니라, 사회적 과정의 산물로서 인간의 사회관계를 설명하는데 구성적이고 필수적인 요소라고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소자의 논의는 ‘지리결정론’이나 ‘환경결정론’과 차별화를 두고 이었다. 공간적 전회는 역사 변증법을 폐기하는 개념이 아닌 사회-공간 변증법을 개시하는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
에드워드 소자의 공간개념
에드워드 소자(Edward W. Soja)는 공간적 전회(the spatial turn)의 중요한 이론가로, 도시와 공간의 사회적 구성을 연구한 학자이다. 그는 포스트모더니즘, 마르크스주의, 포스트식민주의적 관점을 결합하여 공간적 불평등과 권력 관계를 분석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공간적 전회는 사회과학과 인문학에서 공간(spatiality)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학문적 움직임을 의미한다. 기존의 역사적·사회적 결정론이 시간성과 사회적 구조에 초점을 맞춘 데 반해, 공간적 전회는 공간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와 권력 구조를 형성하는 핵심 요소임을 강조한다. 소자는 이 개념을 더욱 발전시켜 공간(Spatiality), 사회성(Sociality), 역사성(Historicality)이 서로 얽혀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공간이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사회적 실천에 의해 끊임없이 생산(produced)된다고 보았다.
소자는 ‘세 번째 공간(Thirdspace)’ 개념을 제안하며, 기존의 이분법적 사고(예: 도시 vs. 농촌, 자본 vs. 노동)를 넘어서는 새로운 공간 개념을 제시하였다. 첫 번째 공간(Firstspace)은 경험적(real)이고 물리적인 공간이며, 두 번째 공간(Secondspace)은 인식된(perceived) 공간, 즉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 형성된 공간이다. 반면, 세 번째 공간(Thirdspace)은 첫 번째와 두 번째 공간을 포함하면서도, 기존의 사회적·정치적 경계를 넘어서는 변혁적이고 하이브리드적인 공간이다. 이는 소외된 집단(예: 이민자, 하층 계급, 젠더 소수자)이 기존의 공간적 질서를 재구성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소자는 사회 정의(social justice)뿐만 아니라 공간적 정의(spatial justice)를 강조하였다. 그는 도시와 공간이 특정 집단에게 더 많은 기회와 권력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설계된다는 점을 비판하며, 이를 해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대표 저서인 《Seeking Spatial Justice》(2010)에서 그는 공간의 불평등이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킨다고 지적하며, 도시와 공공 공간을 보다 공정하게 조직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현대 도시는 단순한 메트로폴리스(metropolis)를 넘어서는 새로운 형태로 발전하고 있으며, 소자는 이를 포스트메트로폴리스(postmetropolis)라고 개념화하였다. 그는 현대 도시가 글로벌 자본주의와 네트워크화된 경제, 정보화 기술 등의 영향을 받아 재편되고 있다고 분석하였다.
소자는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의 ‘공간의 생산(The Production of Space)’ 개념을 발전시켜, 공간이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구조 결정론에 머물지 않고, 공간이 저항과 변화의 장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특히, 그는 하위주체(subaltern)들이 기존의 공간적 질서에 저항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보았으며, 이러한 저항의 공간이 바로 세 번째 공간(Thirdspace)이라고 설명하였다.
소자의 공간적 전회 이론은 현대 도시 연구, 도시 계획, 젠트리피케이션 분석, 공공 공간의 민주화 등에 적용될 수 있다. 그의 연구는 특히 도시 개발, 부동산 투기, 공간적 불평등과 같은 문제를 분석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공간적 전회의 원천_미셸 푸코(Michel Foucault)
그렇다면 공간적 전회는 어떤 계기를 통해서 일어났을까? 그 힌트는 미쉘푸코의 '권력-지식-공간'의 작용에서 알 수 있다. 푸코는 “공간은 단순히 비어있는 물리적인 터전이 아니며 다양한 권력의 관계들이 상호 교차하고 중첩되며 생산, 강화되는 사회적이며 관계적인 공간”이라고 정의했다.
이어서 푸코는 “(권력은) 공간 전체를 통제하고 싶어 하며, 공간을 해체되고 분리된, 파편화되고 동질화된 상태로 유지하기를 원한다. 말하자면 지배하기 위해 분열시키는 것이다.”라고 정의내린다.
이러한 푸코의 관점은 지배하고 통제하기 위한 공간으로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이 분출된 공간개념이었다. 푸코에게서 많은 부분 빛지고 있는 감옥에 대한 담론은 판옵티콘, Panopticon이라고 불리는 1인감시 감옥과 그와 비슷한 병원과 학교 등이 포함된다.
공간적 전회의 원천_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
앙리르페브르의 특징은 자본주의의 운동법칙을 규명한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적 이론틀을 공간의 영역으로 확대했다는 것이다.
그에게 공간은 특정한 역사적 단계의 생산양식과 맞물려 생산된다. 공간 재편은 자본주의 변동과 권력과 이를 극대화하는 생산수단에 의해 심화된다.
데이비드하비 (David Harvey) 의 공간이론과 비교해보면, 신자유주의의 공간적 조정과 탈취에 의한 축적으로 지리적으로 불균등한 발전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르페브르는 경제환원론적 관점에서 벗어나 소외와 인간적 삶의 회복에 주목했던 초기 맑스의 헤겔적, 인간주의적 사고를 부각시킨다. 이를 통해서 공간은 인간의 행위와 사회의 구조 사이의, 실천적 행위와 공간적 배치 사이의 변증법적 관계를 통해 생산된 ‘사회적 산물’이라고 정의한다.
이어서 국가와 제도, 자본에 의해서 창설된 공간을 비판하지만 그 안의 모순적 힘이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며 차이의 공간을 생산한다고 주장하였다.
삼각체제의 사회공간: ‘공간적 실천’, 공간의 재현’, '재현의 공간'의 삼중 변증법(triple dialect)이 사회적 공간의 틀을 구성한다고 주장했다.
공간적 전회의 핵심은 실천과 재현의 변증법으로 탄생한 재현의 공간일고 할 수 있다. 인간들은 특정한 장소에 살아가고 그 장소에서 행동하고 실천한다. 또한 그 장소에는 공간적으로 기획된 도로와 신호등, 다양한 상징체계들이 쌓인다. 이러한 공간에서 인간의 실천은 매번 재현되고 재생산된다. 이런 방식의 이해가 바로 마르크스가 이야기했던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형성한다는 유물론적 변증법의 핵심이 된다.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의 주장
앙리 르페브르의 삼각체제의 사회공간: ‘공간적 실천’, 공간의 재현’, '재현 공간'의 삼중 변증법(triple dialect)이 사회적 공간의 틀로 구성되어 있다.
“추상공간은 부정성에도 불구하고 , 그안의 모순적 힘이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내며 차이의 공간을 만들어낸다”고 보았다.
공간의생산이란 “개인적이고 개별적인 단위 , 고정성 , 움직임 , 흐름 , 파동등이 서로 침투하고 충돌하는 과정”인 것이다.
“도시는 단순히 지배되고 통제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연대와 소통 , 차이와 횡단의 가능성이 구현되는공간이다.”
“공간을 단순히 주어진 것이 아니라 생산물로서, 더 나아가 생산작용 자체로 파악함으로써, 공간이 지닌 복합성과 활력을 생생하게 드러내야 한다.”
"하나의 지배적인 공간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사회적 관계가 존재하며 사회적 공간은 일일이 열거 할 수 없는 것들의 총체, 그것이 밀푀유처럼겹겹이 층층이쌓인다양성으로부각된다 .”
2.공간/장소 연구의 이론적 지형도_인본주의 지리학
인문주의 지리학(Humanistic Geography)은 인간이 장소와 공간을 어떻게 경험하고 해석하며 의미를 부여하는지를 탐구하는 지리학의 한 분야이다. 기존의 실증주의적 접근이 공간을 객관적이고 계량적인 대상으로 다루며 지리적 패턴과 법칙을 규명하는 데 집중한 것과 달리, 인문주의 지리학은 인간의 주관적 경험, 감정, 기억, 문화적 해석을 강조한다. 즉, 공간이 단순한 물리적 개념이 아니라 인간의 정체성과 삶의 방식에 의해 형성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관점은 현상학과 실존주의 철학의 영향을 받았으며, 인간이 환경을 어떻게 인지하고, 해석하고, 정체성을 부여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중심으로 한다. 인문주의 지리학은 특히 인간이 공간을 단순한 위치로서가 아니라 특정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 장소로 경험하는 방식을 연구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다시 정리하면, 인본주의 지리학은 공간 생산을 권력 작용의 결과물로만 보거나 사회적 결과물(건축물, 체제 등)주목하는 것을 넘어 공간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의미와 그 의미의 변화 과정에 주목하며 발전하고 있는 지리학이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학자로는 이푸 투안(Yi-Fu Tuan)과 에드워드 렐프(Edward Relph)가 있으며, 이들은 공간과 장소의 의미를 탐구하는 연구를 통해 인문주의 지리학을 발전시켰다. 이푸 투안은 인간이 장소에 대해 갖는 감정적 애착을 토포필리아(Topophilia)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는데, 이는 사람들이 특정한 장소에 대해 갖는 애정과 친숙함, 감성적 유대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개인적 기억과 감정이 결합된 의미 있는 장소가 된다. 장소에 내재된 애책은 정주감으로도 발전하고 인간의식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공간은 장소보다 추상적이다.
처음에는 별 특징이 없던 공간은 우리가
그곳을 더 잘 알게 되고 그곳에 가치를 부여하면서 장소가 된다
_이푸 투안
이푸 투안은 무채색의 공간개념에 의미와 가치가 부여되면서 장소가 된다고 보았다. 공간은 움직이나 낯선 행위들의 반복이지만 이것들에 의미가 부여되면서 정치, 안전 인간화된 애책과 구체성을 담은 상징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상징적인 구체성은 자연스럽게 한 사람의 인생에서 '장소'가 주는 특별한 의미를 생성한다. 사실 화가들은 이러한 장소에 담긴 특별한 의미를 재현해내고 재생해 내는 것을 주로 한다. 이를 통해서 화가들은 자신들이 가진 특별한 의미의 장소를 통해 사람들이 장소에 대해 가지고 있는 토포필리아 즉, 애착을 불러오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장소에 대한 애착은 수 많은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그래서 어릴적 기억의 대부분은 장소에 대한 애착에서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에드워드 렐프는 현대 사회에서 발생하는 장소 상실(Placelessness) 현상을 개념화했다. 그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공간이 획일화되고 상업적 목적에 의해 생산됨으로써, 사람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제공하지 못하는 장소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글로벌 브랜드의 체인점, 대형 쇼핑몰, 공항과 같은 공간은 어디서나 유사한 형태를 띠며, 특정 지역만의 독특한 정체성이 사라지는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랠프는 장소성을 place identity, sense of place, place attachment와 같이 표현한다. 이는 장소성의 요소인 물리적 환경(physical environment), 인간의 활동(human behavior), 의미(meaning)를 담고 있다. 르페브르와 비슷하게 장소는 인간의 활동과 물리적인 환경이 변증법적으로 상호교환하면서 의미를 생산하는 곳이다.
이러한 이해가 있다면 장소상실과 무장소성이라는 의미도 역시 쉽게 이해가 될 수 있다. 인간의 활동과 물질적인 공간이 서로 상호작용을 일으키지 않는 장소는 무장소가 되는 것이다. 매일 지나다니는 지하철이나 출퇴근하는 도로가 그것에 해당된다. 반복하지만 어떤 의미를 발생시키지 못하고, 새로운 상징을 만들어내지도 못한다. 특별한 의미를 제공하지 못하는 물리적 공간을 걷는 인간들의 심연에는 무료함과 따분함, 낯설음과 같은 이방인과 추방이라는 상징을 스스로 학습한 결과로 '외로움'이 생긴다. 어디에나 갈 수 있지만, 어디에도 발붙일 수 없는 것이다.
종합해보면 인문주의 지리학은 장소가 단순한 물리적 위치가 아니라 인간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의미를 획득하는 과정을 강조한다. 장소는 인간의 기억, 감정, 경험, 문화적 정체성을 반영하며, 이는 특정한 공간이 개인과 공동체에 미치는 심리적, 사회적 영향을 탐구하는 데 중요한 연구 주제가 된다. 예를 들어, 한 마을에서 오래된 시장이 현대식 쇼핑몰로 대체될 경우, 단순한 공간의 변화 이상으로 지역 공동체의 생활 방식, 문화, 사회적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는 물리적 환경 변화가 인간의 감정과 사회적 관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하는 중요한 사례가 된다.
인문주의 지리학의 접근법은 도시 계획, 환경 심리학, 문화유산 보존, 디지털 공간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되고 있다. 도시 계획에서는 공간이 단순한 기능적 요소를 넘어 인간의 삶과 정체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원칙이 강조된다. 현대 도시재생 프로젝트에서는 단순한 건물 개보수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의 경험과 기억을 반영한 공간 설계가 중요한 요소로 고려된다. 문화유산 보존에서도 단순히 유적지를 물리적으로 보호하는 것을 넘어서, 그 공간이 사람들에게 갖는 감정적·역사적 의미를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또한, 환경 심리학에서는 장소가 인간의 정신적, 감정적 안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다. 연구에 따르면, 자연공간이 풍부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도심의 인공적인 환경에서 생활하는 사람들보다 정신적 안정과 웰빙을 더 높게 경험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공원, 녹지, 광장과 같은 공공 공간이 현대 도시에서 중요한 이유를 설명하는 데 기여한다. 인문주의 지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공간은 단순히 자연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과 정서적 안정에 기여하는 장소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함께 가상 공간에서도 장소 경험이 형성되는 방식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메타버스와 같은 디지털 환경에서 사람들은 현실 세계에서처럼 특정한 공간을 경험하고, 그곳에 정서적 애착을 형성할 수 있다. 이러한 연구는 미래의 공간 개념이 물리적 공간과 디지털 공간의 경계를 넘어서 확장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현대 사회에서 글로벌화와 표준화된 개발로 인해 장소의 의미가 점점 희미해지는 문제가 대두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대안으로 인문주의 지리학이 제시하는 개념들이 주목받고 있다. 획일적인 도시 개발과 상업화된 공간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장소의 고유한 정체성을 유지하고 공간과 인간의 관계를 보다 의미 있는 방식으로 형성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인문주의 지리학은 이를 위한 이론적 틀과 실천적 접근법을 제공하며, 궁극적으로 공간과 장소의 인간적 가치를 회복하고, 인간 중심의 공간 설계를 실현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같은 장소이만 완전히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된다.
거주의 의미에 대해서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자. 거주의 의미를 밝혀내면 우리가 마침내 밝히고 싶었던 공간이 '장소'로 변화하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시작을 하이데거의 정의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건축과 관련해서 건축하기, 거주하기, 사유하기(Building, Dwelling, Thinking)와 같은 표현을 쓴다. 이것은 인간의 존재는 거주의 존재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방식이다. 세계 안에서 인간은 자신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살고 있으며 자신의 내면에서 어떻게 자신을 정의하는지에 대해서 '거주(dwelling)’로 표현한다. 하이데거가 이야기하는 현실에 던져진 존재로서 현존재가 된다. 그리고 그러한 현존재들이 거주하는 곳이 그 존재 자체이다. 또한 현존재가 거주하는 '공간'은 영혼의 집이자 (where one is at home) 존재가 가진 장소(where one has a place)이다.
공간이 장소가 되기 위해서는 '의미'가 필요하다. 의미라는 것은 인간 사회에서는 일정한 스토리와 연결되어 있는 흐름에 연결점들이다. 삶 속에서 다양한 사건과 관계들의 겹칩에서 의미는 무게를 가지게 된다. 다시 말하면 특정한 공간이 장소가 되는 것은 거주라는 지속적인 인간행위에서 의미가 쌓이면서 만들어진다. 거주는 인간이 자신의 실존을 영위하는 시간과 공간이 체험을 통해서 축적되는 것이다. 내가 어딘가에 거주한다고 할 때 인간은 그 거주하는 공간을 자신의 존재감과 같은 것으로 보고 거주하는 곳 자체가 곧 자신이 된다. 그러니깐 장소의 형성은 삶의 형성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면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가 생각하는 공간의 시학에 대해서 살펴보자. 가스통에게 집은 세계 안에 있는 우리 자신이고, 우리가 경험하는 최초의 세계이다. 또한 집은 태어나면서부터 경험하게 되는 인간존재의 둥지이면서 인간이 가진 모든 경험들이 잉태되는 공간이다. 한 인간에게 원시적인 공간이면서 다양한 감정들의 집합체이다. 특히 안란한 복음자리로써 집은 외부의 두려움과 공포에 대해서 지켜주는 피난처이자 보호자가 된다. 거주의 공간은 주거의 공간이면서 개인의 생활공간이다. 개인은 집에서 가족들과 처음으로 관계를 형성하게 되고 정서적인 안정과 애정을 느끼게 된다. 어머니와 함께 연결되는 이미지는 휴식과 행복, 평화와 같은 것이다.
유대감과 소속감을 형성하면서 이웃이나 지역사회와 다르게
인간다운 삶의 원형으로 집은 작용한다.
이에 대해서 엠마누엘 레비나스는 인간들이 외로운 이유는 태초에 창조된 '거주'의 공간을 떠나서 떠돌이가 된, 다시 말하면 노마드가 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이 가진 본원적인 지향은 결국 원초적인 거주의 공간이다. 이를 성경에서 보면 태초의 에던동산이었을 것이다. 인간이 집을 떠나서 다양한 일을 하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이유는 이러한 거주의 공간이 가진 특징 때문이다. 인간의 삶은 거주의 공간에서 형성되고 연결되면서 또 새롭게 변화하고 성장한다. 가스통은 공간의 시작에서 이 부분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제 마르크 오제의 무장소성에 대해서 알아보자. 무장소성(Placelessness)은 특정한 장소적 정체성과 관계를 상실한 공간적 상태를 의미한다. 무장소성은 프랑스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Marc Augé)가 제시한 개념으로, 현대 사회에서 전통적인 의미를 가진 ‘장소’가 사라지고, 익명성과 표준화된 특성을 지닌 공간이 증가하는 현상을 설명한다. 이는 주로 공항, 쇼핑몰, 호텔, 고속도로 휴게소 등과 같은 공간에서 나타나며, 이러한 장소들은 개인의 정체성과 역사적, 문화적 맥락을 반영하지 않는 특징을 가진다.
무장소성은 글로벌화와 도시화, 기술 발전과 같은 요인으로 인해 가속화되며, 사람들은 점점 더 일시적이고 기능적인 공간에서 생활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공간에서는 인간관계가 표면적이고 일시적일 가능성이 높으며, 개인은 장소에 대한 감정적 애착이나 정체성을 형성하기 어려워진다. 이는 현대인의 소외감과 정체성 혼란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장소성은 단순히 부정적인 개념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표준화된 공간은 편리성과 효율성을 제공하며, 특정한 문화나 이데올로기에 얽매이지 않는 중립적인 환경을 조성할 수도 있다. 따라서 무장소성은 현대 사회에서 장소와 공간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중요한 개념이며, 이를 통해 인간과 공간의 관계를 재고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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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소성
무장소성(placelessness) : 산업화로 인해 획일적으로 변해가는 경관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전통적 장소 정체성과 분리된 장소상실의 상태를 말한다.
장소로서의 고유하고 진정성 있는 정체성이 결여된 상태로 장소애를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며, 대부분의 도시들이 이러한 '무장소성'을 가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의미가 축적되지 않고 삶의 속도는 의미없이 가속화된다.
자연스럽게 무장소성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이어지고, 상업화에 따른 장소성의 파괴는 결국 장소의 박탈로 이어진다. 장소상실은 더 이상 장소가 아니라 공간으로 치환되면서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주거의 무장소성
주거의 무장소성(placelessness): 무의미한 공간배치와 건물들의 혼합으로 결국 장소로서의 고유하고 진정성 있는 정체성이 결여된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장소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장소애를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한병철이 '시간의 향기'에서 공유했던 것처럼 '가속화되는 시간'은 의미없고 반복되는 일상의 공간들이 삶의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교외의 분양택지에 살면서 도로변 상점가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그 경관에 깊이 개입할 마음이 없다. 고작해야 교환 가능성에 대한 얄팍한 의미를 부여할 뿐이다. 자가 소유자라도 집을 투자 가치 이상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날 이런 얄팍함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실 이동성이 높고 변화무쌍한 현대 사회에서는 장소와 풍경에 마음을 주지 않는 것이 더 이익이다. 그래야 망설이지 않고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재적인 현현(presence)은 사라지고 표피적이며 가상적인 이미지만 남아 현재(the present)가 되는 ‘오늘의 집‘으로 바뀐다.
실재 공간과 닮아있음과 동시에 실재성을 상실한 아토포스(atopos)이다. 장소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다. 즉, 이것을 무(無)장소, 비(非)장소라고 부른다. 우리의 인생은 얼마나 무장소에 거주하면서, 비장소적인 시간들을 보내는가?
현존재의 의미, 하이데거
현존재는 존재를 물음짓는 존재이다. 하이데거에게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질문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그는 인간을 ‘존재를 물음짓는 존재’로 규정하며, 이를 통해 존재론적 탐구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현존재는 세계-내-존재이다. 인간은 단순히 세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관계를 맺으며 존재한다. 즉, 현존재는 세계 속에서 사물과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현존재는 시간적 존재이다. 인간은 과거, 현재, 미래의 연속성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구성한다. 시간성은 단순한 물리적 흐름이 아니라, 현존재가 자기 가능성을 형성하는 본질적인 방식이다.
현존재는 죽음을 향한 존재이다. 인간은 자신의 죽음을 자각하는 존재이며, 죽음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더욱 본래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죽음을 향한 실존적 태도는 삶을 보다 의미 있게 구성하도록 만든다.
현존재는 타자와 함께 존재하는 존재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공동존재(Mitsein)’로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이해한다. 개인의 존재는 고립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다.
현존재는 본래적 존재와 비본래적 존재 사이에 있는 존재이다. 인간은 사회적 규범과 타인의 기대 속에서 비본래적으로 살아갈 수도 있고, 자기 존재를 자각하며 본래적 존재로 나아갈 수도 있다. 본래적 존재는 자신의 가능성을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존재 방식이다.
현존재는 이해하는 존재이다. 인간은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존재가 아니라, 세계 속에서 사물과 상황을 해석하고 의미를 형성하는 존재이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이해를 통해 현존재가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형성해 나간다고 본다.
가스통 바슐라르의 장소개념
집은 인간의 존재와 상상의 기초 : 바슐라르는 집이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개인의 정체성과 깊이 연결된 공간이라고 말한다. 가스통은 집을 "우리의 첫 번째 우주(our first universe)"라고 부르며, 유년 시절의 기억과 깊은 정서적 안정감을 제공하는 장소로 보고 있다.
공간의 시적 이미지 : 바슐라르는 물리적 공간이 단순히 기능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상상력에 의해 의미를 부여받는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다락방과 지하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인간 심리의 서로 다른 층위를 상징하는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다락방은 이성적 사유와 높은 차원의 사고를 의미하는 반면, 지하는 무의식과 원초적인 감정을 상징한다.
거주는 기억과 상상의 결합 : 그는 우리가 공간을 경험하는 방식이 과거의 기억과 연관되어 있다고 본다. 거주하는 공간은 단순히 물리적 형태를 가진 것이 아니라, 개인의 경험과 감정이 축적되면서 형성된다. 따라서 집은 "기억의 저장소"가 되며, 과거 경험이 현재의 감각과 만나 지속적으로 새롭게 구성된다.
소박한 공간과 친밀성 : 바슐라르는 거주의 본질을 찾기 위해 "작은 공간들"에 주목한다. 예를 들어, 장작불이 있는 벽난로나 구석진 다락방 같은 공간은 단순한 장소를 넘어, 인간이 자기 자신과 더욱 친밀해질 수 있는 공간으로 작동한다. 그는 이를 "소박한 친밀성(intimité modeste)"이라 부르며, 이러한 공간이 우리에게 깊은 심리적 안정을 준다고 말한다.
상상의 공간으로서의 집 : 바슐라르는 집이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상상 속에서 자신만의 거주 공간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즉, 거주는 단순한 물리적 실재에 국한되지 않고, 문학과 시 속에서도 구현될 수 있습니다. 그는 예술과 문학이 이러한 상상의 공간을 구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았습니다.
마르크 오제(Marc Auge)의 비장소(non-place)의 개념은 전통적 장소인 인류학적 장소(anthropological place)와 대조적인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논의에서 비장소는 “어떠한 역사적 의미도 강력한 상징성도 부재한, 단지 이동과 통행만을 위한 공간들” “모든 것이 기호로 이루어진 닫힌 세계“를 말한다. 우리는 흔하게 생각할 수 있는 수단으로 비행기와 버스, 차량을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공간에서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지 않는다. 어떤 장소도 아니다. 특정한 장소와 시간을 규정할 수는 있지만 무의미하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기존의 장소성과 장소의 상실로 구분하는 이분법적 구도를 넘어 장소의 변화로 인해 형성되는 새로운 공간 논리가 지닌 복합성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된다.
비장소에서 계속 생활하고 일하는 사람들의 일상은 어떻게 될까?
그리고 그 일상을 살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는 어떻게 바뀔까? 보통 장소에서 직접적이고 어떤 사건에 매개된 사람들의 일상과는 달리, 비장소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추상적이고 비매개적 거래 과정에서 제스처만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하게 된다. 비장소는 ‘익명성’과 ‘현재성’이 지배하는 공간으로 익명적인 단일한 정체성이 시간과 공간의 겹침 속에서 특정한 계약관계에 놓이게 된다. 버스를 타는 사람은 승객과 서비스 제공자인 운전기사로 만나게 되고, 대형마트에서는 점원과 소비자라는 특수관계로 만나게 된다. 단일한 정체성의 1:1교환은 어떠한 의미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이전 자신이 살아온 정체성과도 연결되지 못한다. 비매개적이고, 비교환적인 동질한 정체성의 관계는 단번의 관계가 정의되고 다시 의미를 부활시키지 못한다.
비장소 이용자들은 자유로운 익명성을 누리는 대신에 스스로는 정체성을 잃어가고 다시 고립된다. 비장소에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파편화되고 비매개적인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다. 자칫하면 이것이 세대의 특징이거나 특정 지역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오히려 반대로 이것이 현상의 이면에 있는 '비장소'가 주는 영향력을 제대로 못 읽는 결과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만에서만 연결되는 정체성은 곧 자신이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존재가 된다기 보다는 다시 회복될 수 없는 관계성의 결핍만 난무하게 된다. 자유가 곧 고립이 되어 버리고 오로지 기능으로써 '이동, 제공, 통과, 연결'과 같은 행위만 남게 된다.
마르크 오제가 생각한 비장소
마르크 오제(Marc Augé)의 비장소(non-place) 개념은 철학적, 인류학적 맥락에서 장소(place)가 가지는 전통적인 정체성(identity), 관계성(relationality), 역사성(historicity)이 제거되거나 희박해진, 초근대성(supermodernity)의 산물로서 익명적이고 기능적인 공간이다.
오제의 비장소 개념을 철학적·이론적 배경에서 이해하려면, 먼저 '장소(place)'에 대한 철학적 논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철학에서 장소는 단지 물리적 공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기억과 경험, 감정과 사회적 관계를 축적하고 형성하며,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의미있는 공간으로 다루어진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존재와 시간』에서 인간의 존재 방식(Dasein)이 장소와 세계 안에서의 의미 있는 관계성을 통해 형성된다고 주장했으며,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는 장소와 공간이 인간의 지각적 경험을 통해 주관적으로 의미화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장소는 단순히 물리적이거나 기능적인 공간을 넘어, 존재론적(ontological)·현상학적(phenomenological) 차원에서 인간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마르크 오제는 이러한 철학적·현상학적 장소 개념에 비추어 현대사회의 새로운 공간성을 주목했다. 오제에 따르면, 현대사회는 근대성(modernity)을 넘어선 '초근대성(supermodernity)'으로 특징지어진다. 초근대성은 과잉(excess)의 시대, 즉 시간의 과잉, 공간의 과잉, 자아성찰의 과잉을 의미한다. 세계화, 기술혁신, 소비문화의 팽창으로 인해 개인들은 끊임없이 장소 사이를 이동하며 삶의 속도가 빨라지고 경험은 파편화된다. 이 과정에서 본래의 장소는 역사적 기억과 공동체적 연대감을 잃어버리고, 그 대신 개인의 이동과 소비라는 일시적이고 기능적인 목적을 위한 공간—즉, 비장소가 출현하게 된다.
비장소는 철학적으로 볼 때, 장소가 가지는 본래의 관계성과 역사성이 제거되면서 현상학적 주체와 세계 사이의 의미있는 연결이 끊어진 공간을 의미한다. 이런 공간에서 개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구성하는 주체(subject)가 아니라, 익명적이고 표준화된 규칙과 신호체계 속에서 이동하고 소비하는 객체(object)로 변환된다. 예를 들어 공항이나 대형 쇼핑몰과 같은 공간에서는 모든 행동과 경험이 표준화된 기호(sign)와 지침(instruction)에 따라 규정되고, 개인은 오직 정체성 증명을 위한 여권이나 신분증과 같은 형식화된 증표로서만 존재를 인정받는다.
이는 철학적으로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정체성과 의미 형성 과정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이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소비사회에서 인간의 존재 방식이 사물화(objectification)되며, 현실과 기호가 혼재되어 진정한 의미가 사라지는 '시뮬라크르(simulacra)' 현상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오제의 비장소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비장소는 전통적인 장소가 가지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의미가 소멸하고, 그 대신 표면적인 기호와 기표(signifier)의 세계로 대체된 공간이다.
결국 오제의 비장소 개념은 현대 철학에서 장소와 정체성의 상실이라는 주제를 통해 인간 존재와 세계 사이의 관계성 붕괴를 진단하는 이론적 틀을 제공한다. 비장소에서 개인은 고유한 역사를 잃고, 타자와의 깊은 관계 맺음을 상실한 채 끊임없이 표류하는 존재가 된다. 이러한 점에서 비장소 개념은 인간 정체성의 위기, 공동체적 연대감의 약화, 존재론적 불안을 탐구하는 현대 철학과 사회이론의 중요한 논의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초근대성(supermodernity, 超近代性)은 프랑스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Marc Augé)가 현대사회를 설명하기 위해 제시한 개념으로, 전통적인 근대(modernity)와 구분되는 새로운 시대적 상황과 특성을 지칭한다. 초근대성은 현대사회의 빠른 기술 발전, 세계화, 정보 과잉 등의 현상 속에서 개인과 사회의 관계성, 역사성, 정체성이 급격히 약화되는 새로운 시대적 상황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초근대성의 개념은 현대 철학과 사회 이론에서 현대인의 존재론적 불안과 사회적 관계의 위기를 진단하는 중요한 이론적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다. 초근대성은 특히 다음의 세 가지 차원에서 근대와 구분된다.
과잉(excess)의 시대
시간의 과잉 (Excess of time) : 초근대성 시대에는 빠른 속도의 기술 발전과 정보의 홍수로 인해 과거, 현재, 미래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모든 사건이 동시적이고 즉각적으로 경험된다. 개인은 지속적으로 과잉된 정보를 소비하며 끊임없이 움직이고 표류한다.
공간의 과잉 (Excess of space) : 세계화(globalization)와 국제 교류, 교통 및 통신 수단의 발달로 물리적·사회적 공간이 무한히 확장된다. 세계는 점점 더 작아지고 접근 가능해지는 동시에, 개인이 거주하거나 경험하는 실제적 공간은 비장소(non-place)로 전환되며 의미를 잃고 파편화된다.
자아성찰의 과잉 (Excess of ego/self-reflexivity) : 초근대성에서 개인은 자신과 타자와의 관계, 정체성 형성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과 자기 탐색을 강요받는다. 하지만 이러한 성찰은 깊은 관계성이나 정체성 형성으로 이어지기보다는 자기중심적이고 피상적인 소비와 자기 전시(self-display)로 귀결된다.
비장소(non-place)의 출현
초근대성은 마르크 오제가 제시한 ‘비장소(non-place)’ 개념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비장소는 장소(place)가 지닌 역사성, 정체성, 관계성이 제거된 공간으로서, 공항, 쇼핑몰, 고속도로 휴게소 등과 같이 일시적이고 익명적인 공간이다. 이러한 공간에서는 개별적 정체성과 역사적 맥락이 사라지고 사람들은 표준화된 신호와 지침에 따라 움직이는 익명의 소비자 또는 이용자가 된다.
초근대성 사회에서는 장소와 비장소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전통적인 공동체적 장소가 약화되고 기능적이며 일시적인 비장소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정체성과 관계의 약화
초근대성 시대는 개인과 사회 사이의 전통적이고 지속적인 관계를 약화시키고, 개인 간의 정체성과 관계 형성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 초근대성 속에서 개인은 끊임없이 이동하고 소비하며, 더 이상 하나의 장소에 뿌리를 내리고 지속적인 관계를 형성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정체성은 단편적이고 순간적이며, 타인과의 관계 역시 깊이 있고 지속적인 교류보다는 표면적이고 일시적인 상호작용으로 변화한다.
초근대성에서 개인은 끊임없이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거나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며, 정체성을 위한 노력이 오히려 역설적으로 진정한 정체성 형성을 방해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근대 이후의 현대사회 조건들을 지칭하는 용어들
탈근대성(post modernity): 근대주의와 구조주의에 대한 반발. 이성을 중시하는 근대성에 대한 정치적 해방. 일률적인 것 거부, 다양성 강조하는 근대성이다. 이는 국민-국가, 정당, 제도, 역사적 전통, 규범적 합의, 이데올로기 등은 20세기 후반의 사회를 응집시키는 역할을 할 수 없다는데서 다른 형식의 근대성을 요구받게 된다. 세계는 형이상학적인 거대담론이 쇠퇴하고 여러 구체적이고 작은 이야기들로 채워진 세계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후기근대성(post modernity): 탈근대성이 탈중심화와 분열, 근대와 단절된 새로운 시대로의 이행을 강조했다면 후기근대성은 지구적 근대의 역사단계들(초기근대-본격근대)전제하고 그에 연속된 역사 단계로 보는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적 변화의 근본이 되는 다양한 제도적 특성의 강화와 확장을 강조, 성찰적 근대화(reflexive modernization)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비근대성(non-modernity): 브루노 라투르가 말했듯이 “우리는 결코 근대인인적 없었다”라고 한다면 근대는 사회를 인간과 비인간 존재를 철저히 구분, 분리하면서 순수하게 인간만으로 이루어진 사회를 상정하고 있다. 그것이 야기한 문제를 해결 위해서는 인간과 비인간 간 하이브리드의 창조를 가시화해야한다는 관점이 있다. 이를 새롭게 현실을 '번역'한다는 의미로 쓰기도 한다. 코드를 읽어내듯이, 다른 언어를 기존의 언어로 번역한다는 뜻에서 말이다.
초근대성(supermodernity): “초근대성으로 옮긴 것은 그 개념에 부여하고 있는 핵심 특징인 과도함을 나타내는데 어떤 선을 넘어섰다는 뜻의 ‘초’라는 용어가 가장 적합하기 때문” (M. Auge, <비장소> 1995/2017, 41쪽) 오제는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세 가지의 과도함의 현상을 통해 초근대성의 특징을 규정 시간의 과잉(역사의 가속화는 시간의 과부화와 사건들의 과잉을 야기. 역사학자들의 어려움), 공간의 과잉(기술발달에 의한 공간의 축소는 역설적으로 공간의 과잉을 초래. 이동, 집중의 과잉. 규모의 변화, 공간의 가상적 준거의 증가), 개인의 과잉(참조의 개인화, 전통적이고 집합적인 방식에 의존하지 않는 개인적 의미 생산 과잉)이 바로 그것이다. 슈퍼모너니티는 인류학에 새로운 역할 부여한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계와 세계를 작동하는 힘을 이해하는 법을 다시 익혀야하고 그 길을 제시하는 것이 인류학의 과제 (M. Auge, 가까운 곳과 다른 곳, <비장소> 1995/2017, 15-56쪽)
존 어리(John Urry)의 모빌리티(Mobilities) 이론을 살펴보자. 존 어리(John Urry)의 모빌리티(Mobilities) 이론은 현대 사회를 구성하는 데 있어 이동성(mobility)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회학적 접근이다. 어리는 전통적인 사회학이 정적(static)이고 고정된(fixed) 장소와 사회적 구조를 중심으로 분석해 온 한계를 비판하면서, 사람, 사물, 정보, 자본 등의 이동이 사회를 구성하는 핵심 원리라고 주장했다. 그는 “21세기 인간은 가만히 머무르거나 멈춰 선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존재”라고 주장하면서 일명 모바일어버니즘(mobile urbanism)을 선포한다. 이것은 도시를 중심으로 한 모빌리티의 증가가 도시와 결부된 자원, 사람, 제도, 정보, 기술, 지식, 자본, 이념 등을 다양한 사회적 공간을 가로질러 이동하고 연결시킨다. 모빌리티의 도시화는 구조(예, 계급, 권력, 시스템 등)에 갇힌 정주적 도시(sedentary city)를 사람과 사물의 자유로운 이동과 흐름에 의한 다양한 관계 맺기(현존과 부재의 관계)로 재구성되는 유동적 도시(flux city)로의 이행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모빌리티시대의 변화
모빌리티 시대에 향수어리고 본질주의적인 집과 같은 장소의 개념이 과연 유지될 수 있는가? 장소, 무장소성, 비장소 개념은 정주주의적인 장소 개념에 의존한 것으로 장소는 변화하는 장소가 아니라 이미 주어진 정적인 장소이며 불변적 장소임을 전제하고 있다.
정주와 이동의 이항대립적 관계 아래, 이동적이고 혼종적이고 경계적(liminal)은 불안정한 것, 불안전한 것, 위협적이고 비정상적이고 예외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것은 모빌리티가 발달하면서 비장소와 장소의 경계는 모호해진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이동성/정주성, 공간/장소, 글로벌/로컬 등의 이항대립을 벗어나는 새로운 경로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한다. 미디어 테크놀로지(무인자동차, 스마트시티,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등 다양한 모빌리티스)의 편의성, 수월성 뿐 아니라 이동 과정에 내재된 의미와 경험하게 된다.
모빌리티 시대의 변화는 이동이 발생하는 장소, 개인의 차별적 이동 능력, 인간과 기계의 결합과 혼종성, 고-모빌리티 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 연구가 주로 이루어진다.
모빌리티의 개념과 특징
이동성 중심 사고(Mobility Paradigm) : 기존의 장소나 정착 중심 사고를 벗어나, 끊임없이 이동하는 개인과 집단, 사물, 정보의 흐름을 분석의 중심에 둔다.
상호 연결성(Networked Mobility) : 모빌리티는 단순히 이동하는 주체뿐 아니라, 이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인프라(교통수단, 통신 네트워크 등)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불균등한 모빌리티(Unequal Mobilities) : 이동의 자유와 능력은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권력 관계에 따라 차등적으로 주어진다. 따라서 모빌리티는 권력과 계급, 인종, 젠더 등과 같은 요소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모빌리티의 5가지 관점
사람들의 신체적 이동(Bodily Travel) : 개인의 일상적인 통근, 여행, 관광 등 사람들의 물리적이고 신체적인 이동을 의미한다.
사물의 이동(Object Mobility) : 소비재, 상품, 원자재, 폐기물 등 물리적 사물들이 국경을 넘나들며 이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상적 이동(Virtual Mobility) : 인터넷과 디지털 통신기술을 통한 정보, 이미지, 메시지의 이동과 흐름을 가리킨다.
상상된 이동(Imaginative Mobility) : 사람들이 미디어, 이미지, 이야기 등을 통해 다른 장소나 문화를 상상하며 만들어내는 정신적, 정서적 이동성을 의미한다.
이동 인프라의 이동(Mobility of Infrastructures) : 도로망, 철도, 공항, 통신망 등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인프라와 기술들이 확산되는 과정을 뜻한다.
장소, 주거(집) 재의미화하기
인본주의 지리학자들이 규정한 장소 개념이 장소가 단지 우리의 신체가 위치한 어떤 곳이 아니라, 우리에게 의미 있는 곳을 뜻한다면 인터넷의 사이버공간에 침잠해 있을 때도 우리의 몸은 어떤 곳에 장소화되어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사이버공간(cyber space), 가상공간(virtual space), 증강된 공간(augmented space), 하이브리드 공간(hybrid space) 등은 장소의 새로운 확장형이며 접속점, 채널 등으로 발전한다.
관계적인 공간이자 혼종적이고 이질적인 양상으로 변이하는 복수의 공간으로 변환된다. 이것은 일종의 들뢰즈적 사유로써 장소의 발견에서 장소 만들기(place-making)로 바뀌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장소의 고유함과 본질적인 장소적 특성을 발견하는 것을 넘어서 장소를 만들어가는 실천 강조하는 방식으로 주거 즉 집의 의미는 다시 생성된다.
house를 친밀하고 뿌리내린 장소로서 home일 수 있도록 하는 규범성을 넘어 어디서, 누구와 살 것인지를 정하고 거기서 살림을 꾸리면서 집 안팎을 유동적으로 구성해 나가는 행위에 주목하는 것이 바로 주거의 재의미화이다.
1인 거주 여성의 home-making 실천들: ‘유사가족 만들기‘, ‘단골집 만들기‘를 통한 집 밖의 장소와의 상호작용, 애착관계 형성, 집의 다중-위치화. 대안적 집 꾸리기와 같은 주거의 재의미화가 이루어진다.
오늘은 장소의 개념과 비장소의 개념 그리고 무장소의 의미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공간을 공간의 특성으로 놓아두면 무장소가 된다.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투영되지도 않는다. 도시는 그럴 가능성이 아주 농후하다. 아무런 의미도 찾지 못하고 그저 지나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의미도 잊어 버린다. 사물의 종말은 사물과 나의 관계의 종말을 이야기한다. 자동차에서 출퇴근으로 3시간동안 차 안제 갖혀 있으면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어 버리게 된다. 자동차와 도로, 신호등과 차선은 모두 무장소의 특징을 갖는다. 물질적인 변증법에 의해서 무장소 속에서 갖힌 인간은 점차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어 버리고 나아갈 방향도 찾지 못한다. 가상의 공간에서 무장소를 장소로 바꾸는 것은 가상공간에 배치된 상징들이다. 영화 레디플레이원과 같이 제작자의 스토리가 담긴 공간에서는 가상공간이라도 장소가 될 수도 있다. 어쩌면 더 나아가서 현실에서 장소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가상에서 그 공간을 재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앞으로의 숙제는 우리는 부지런히 장소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사물의 소멸이 아니라 사물의 재생성을 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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