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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철학일기

계몽주의 시대를 지나면 인식은 어떻게 달라질까?

18세기 프랑스 인식론의 변화_에밀 브레이어의 '서양철학사'

by 낭만민네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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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만에 철학아카데미에 왔다. 지금은 홍제동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지만 8년전에 한참 다닐 때는 경복궁역에 나름대로 핫한 곳에 있었다. 오늘은 류종열 선생님의 서양철학사를 듣는다. 프랑스철학자 중에 '브레이어'라는 철학자가 정리한 책으로 공부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의 제 1권에 나오는 '원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규명한 하늘이 움직이는 변하지 않는 진리였다. 하늘의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해서 원리라고 했다. 그러나 수학과 같은 표면 즉, 인간들의 세계의 논리는 '법칙'이라고 불렀다. 그러니깐 르네상스는 '인간들의 법칙'으로 하늘의 '원리'를 다시 해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수학에서 '부정수'가 나오는 것도 사실은 인간들이 정리한 '법칙'을 하늘에 적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하늘의 '보편'은 부정수가 없지만 인간들의 세계에서는 '공백'이나 '부족함'이 있기 때문에 '부정수가'가 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전칭긍정명제로 환원될 수 있는 것만 진리로 본다.


실제로 이것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언어'이다. 수학은 위에서 본 것처럼 차츰 공리로 바뀌었고, 그 이유가 바로 1800년대 언어학회의 출현이었다. 언어가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언어가 실제로 생각하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언어는 표현하고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유명론 논쟁과 보편논쟁의 결과가 사용된다. 또한 실제하는 것들을 표현하는 땅의 표현인 '법칙'이 18세기 이후에는 맑스, 키에르케고르, 프로이트, 니체에 의해서 '실존'적으로 정립된다. (역시 철학아카데미에 오니깐 수준이 장난이 아니다) 따라서 에밀 브레이어가 주목한 18세기 프랑스철학은 과거로부터는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중세철학을 지나고고 미래로는 추후 등장할 땅의 법칙들이 어떻게 인간의 생각과 자연의 원리를 밝혀내는지의 갈림길에 있었다. 이른바 모든 것들이 찬란하게 빛나는 '빛의 세기'였던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일단은 아래와 같이 다양한 사상들을 이해해야 한다.



아벨라리우스와 유명론

'아벨라리우스'(Abelarius)는 일반적으로 피에르 아벨라르(Pierre Abélard, 1079~1142)를 지칭하는 라틴어식 표기이다. 그는 중세 프랑스를 대표하는 유명한 철학자이자 신학자로서, 특히 보편논쟁(universals controversy)의 주요 인물이다. 그의 철학적 입장은 극단적 실재론(Realism)과 유명론(Nominalism) 사이에서 중간적 입장인 개념론(Conceptualism)을 제시했다.

아벨라르는 신앙과 이성의 관계를 탐구하면서, 이성이 신앙을 뒷받침하고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철학적 접근 방식은 당시 엄격히 교리를 따르는 신학자들에게 많은 논란과 비판을 불러왔다. 대표적 저서로는 『그렇다와 아니다(Sic et Non)』, 『나의 불행의 역사(Historia Calamitatum)』 등이 있다. 특히, 『나의 불행의 역사』는 엘로이즈(Heloïse)와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어 문학적,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아벨라르(Abélard)의 철학은 실재론(realism)과 유명론(nominalism) 사이에서 중도적 입장인 **개념론(conceptualism)**으로 대표된다. 따라서 아벨라르의 철학에 반대되는 입장은 그가 거부한 두 극단, 특히 그와 강력히 논쟁했던 실재론(realism), 또는 그 반대의 극단인 **유명론(nominalism)**이 될 수 있다.


보편논쟁의 주요 내용

실재론(Realism) : 실재론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뿌리를 둔 입장으로, 보편 개념(예: 인간성, 아름다움 등)이 개별 사물들보다 독립적이고 실재적으로 존재한다고 보는 견해이다. 즉, 보편은 단순히 개념이나 이름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본다. 대표적으로 안셀무스(Anselm of Canterbury)나 플라톤주의적 신학자들이 이 입장을 지지했다.

유명론(Nominalism) : 유명론은 보편 개념이 독립적으로 실재하지 않으며, 단지 개별적인 사물들을 지칭하기 위한 '이름'에 불과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대표적인 유명론자로는 중세 후반기의 윌리엄 오컴(William of Ockham)이 있다. 이 입장은 보편적 개념을 언어적·심리적 산물로 보았으며, 실체성이 없다고 강조한다.

아벨라르의 입장: 개념론(Conceptualism) : 아벨라르는 이 두 극단 사이에서 중도적 입장을 택했다. 그에 따르면 보편 개념은 개별 사물과 독립된 실체적 존재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이름에 불과한 것도 아니다. 그는 보편이 인간 정신 안에서 형성된 개념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즉, 개별적 사물의 공통된 특성을 인간의 사고가 인식하고 종합하여 '보편 개념'으로 구성한다는 것이다.


아제브라 대수학과

알제브라 대수학(Algebraic Algebra)이란 일반적으로 대수학의 개념을 한층 추상화한 분야로서, 보통 '추상대수학(Abstract Algebra)' 또는 '현대대수학(Modern Algebra)'으로 알려져 있다. 전통적인 대수학이 숫자와 방정식, 그리고 다항식과 같은 구체적인 계산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면, 추상대수학은 더욱 일반화되고 추상적인 수학적 구조와 개념에 초점을 둔다.

구체적으로 추상대수학은 '군(Group)', '환(Ring)', '체(Field)'와 같은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수학적 구조를 다룬다. 이 구조들은 집합과 연산이 결합된 형태로, 특정한 성질을 만족하는 연산이나 관계를 통해 정의된다. 예를 들어 '군'은 하나의 연산이 결합법칙을 따르고 항등원과 역원을 갖는 구조를 의미하며, '환'은 덧셈과 곱셈이라는 두 개의 연산이 정의되어 있는 구조로서, 정수나 다항식과 같은 예시가 대표적이다. '체'는 환의 특수한 경우로 덧셈과 곱셈에 대해 나눗셈까지 가능한 구조이며, 실수나 복소수가 대표적 사례이다.

추상대수학은 단지 이론적 탐구에만 머무르지 않고, 현대 수학 전체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선형대수학, 대수적 위상수학, 대수적 기하학, 대수적 수론 등 다양한 분야에 추상대수학적 접근법이 필수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알제브라 대수학'이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추상적인 개념을 통해 수학적 구조와 그 성질을 깊이 탐구하는 '추상대수학'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보나벤투라와 토마스아퀴나스의 대립

보나벤투라(Bonaventura)와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중세 스콜라 철학을 대표하는 두 인물이자, 각각 프란치스코회와 도미니코회의 신학 전통을 상징하는 철학자들이다. 이들은 모두 신학과 철학을 밀접하게 연결시켰지만, 신앙과 이성의 관계, 인간의 인식 방식, 그리고 신과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서로 분명히 다른 입장을 보였다.

보나벤투라는 아우구스티누스와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프란치스코회 학자이다. 그는 인간 이성의 능력을 제한적으로 보았으며, 진정한 진리는 인간이 이성적 노력만으로 획득할 수 없고 반드시 신의 은총과 빛, 즉 ‘신적 조명’(divine illumination)을 통해 주어진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그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유보다는 직관과 신비적인 체험, 영혼의 직접적 깨달음과 같은 내면적이고 주관적인 접근법을 더욱 중시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이성은 오직 신앙과 신의 계시의 보조적 역할만을 수행할 수 있을 뿐이며, 인간은 결국 신에게 의존하여야만 참된 지혜에 도달할 수 있다.

반면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인간 이성이 신앙과 조화를 이루며 독자적으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인간의 자연적 이성이 신의 존재와 속성을 일정 부분 스스로 탐구하고 이해할 수 있으며, 이성이 독립적인 영역에서 작동하면서도 신앙과 충돌하지 않고 상호보완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토마스는 인간의 이성적 탐구를 제한하거나 억압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활용하며, 철학과 신학이 조화롭게 결합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결국 두 철학자의 대립은 '신앙'과 '이성'의 관계에 대한 입장 차이에서 기인한다. 보나벤투라는 신앙과 신비적 체험을 최우선으로 삼고, 인간 이성의 한계를 강조하며 신의 계시와 은총의 중요성을 부각한 반면, 토마스 아퀴나스는 인간 이성의 자율성과 능력을 더욱 신뢰하며, 합리적이고 철학적인 탐구를 신앙과 긴밀히 결합하여 보다 폭넓은 신학 체계를 구축하려 하였다. 이 둘의 대립은 중세철학에서 지속적인 논쟁을 낳으며 이후의 서양철학과 신학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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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빛들의 세기, 18세기


데카르트를 통해서 '심신이원론'으로 이전의 철학이 정리가 되었다. 상층부라고 하는 '영혼'과 하층부라고 하는 '물질'을 동시에 생각하려고 했던 데카르트는 이전에 상층부에서 내려왔던 갈릴레이 전통을 받으면서도 하층부 물질에서 오는 자연을 결합하는 사고를 하려고 했다. 심신이원론은 불할해서 생각했다기 보다는 오히려 아리스토텔레스 전통의 '표면층'에 모여 있는 상층부의 하늘과 심층부의 자연과 물질을 결합하는 시도였다. 그러니깐 종합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종합에 있어서 초기이다 보니깐 종합이 아니라 구성이나 배치를 했다. 하늘의 방식이나 땅의 방식을 섞었던 것이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이러한 하늘과 땅의 결합을 '방법서설'을 통해서 땅의 방식인 '수학' 즉 '법칙'으로 풀고 싶었던 것이다.


18세기는 '빛들의 세기'라고 부른다. 그리고 자연에 대해서, 영혼에 대해서, 의식의 인식에 대해서 형이상학적 체계를 벗어나는 실재적이고 경험적인 탐생이 핵심이었던 시대이다. 18세기는 대학 제도 속에서 철학보다, 제도 바깥에서 많은 논쟁이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뉴턴과 존로크이다. 이들이 정리한 '빛의 세기'는 이전까지 '하늘과 땅'의 구분값들을 뒤집어 버린다. 뉴턴은 '물리학'의 관점에서 운동들이 가진 원리들을 '법칙'으로 해석한다. 만유인력의 법칙과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철학자들은 뉴턴이 열어 놓은 세기를 따라간다. 말브랑쉬, 라이프니츠, 스피노자와 같은 철학자들은 거대한 신학적 체계들을 땅의 방식인 '법칙'으로 해석하려고 했다.


보통 낭만주의자들이라고 하는 셸링이나 헤겔, 꽁트는 나름대로 방향을 위로 잡거나 아래로 잡거나 혹은 표층부에 머무르거나 하면서 철학적인 육중한 건출술들을 사용했다. 여기에서 영국의 경험철학은 한마디로 너무나 잘 정리했다. 그들이 정리하는 땅의 법칙, 다시 말하면 철학적으로 볼 때 경험철학이 정리해가는 방식은 매우 합리적이고 '법칙' 의존적인 확장이 가능했다. 이것을 자연철학 혹은 물리학이라고 불렀다. 뉴턴의 사상은 이렇게 약간의 우위를 가지고 되었고 철학자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확산된다. 뉴턴의 방식은 데카르트의 방식과 정확히 반대되었다. 유율들 계산의 발명이나 설명할 수 없는 것에 남겨진 매우 광범위한 부분에서 설명하게 된다. 뉴턴의 역학 역시 신학과 연결된다.


신체 속에 의식이 있다


뉴턴주의자들에게 인력이란 물질의 이의제기할 수 없는 성질이며 고유성이다. 뉴턴의 과학은 결국 우리에게 커다란 불확실성을 남긴다. '나는 가설을 세우지 않는다'라는 말로 물리학을 '실험과 귀납'으로 정리하면서 땅의 방식인 '법칙'에 대해서도 열어 놓은 결말을 만들었다. 이것이 어떻게 보면 뉴턴철학을 자신이 개발한 법칙으로 기계론의 요소들을 불러 모아서 신학과 형이상학을 다시 구성한다. 존로크는 여기에서 더 나아간다. 존로크는 새로운 형이상학을 창조한다. 원래 형이상학은 영혼을 다루는 학문이었고, 물리학은 자연을 다루는 학문이었다. 그러나 로크는 그것을 뒤집는다. 형이상학이 자연을 다루고, 영혼을 오히려 물리학이 다룬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것이 추후에 '유물론'으로 발전하게 된다. 물질과 영혼이 서로 자리를 바꿔어서 신의 개념이 장식하고 있던 형이상학을 자연으로 전치하고, 반대로 영혼개념이 없던 물리적인 자연에 영혼을 부여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것이 표층부의 방법인 '법칙'으로 정리가된다는 것이다.


달랑베르

달랑베르(Jean le Rond d’Alembert, 1717~1783)는 18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수학자이자 물리학자, 철학자로, 계몽주의 시대를 주도한 중요한 지성인 중 한 명이다. 달랑베르는 본래 사생아로 태어나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뛰어난 지적 능력으로 일찍부터 학문적 재능을 발휘하였다. 그는 파리의 가난한 가정에서 성장하면서도 엄청난 독학의 열정을 가지고 수학과 철학을 탐구했다.

달랑베르의 가장 유명한 업적은 디드로(Denis Diderot)와 함께 프랑스 계몽주의의 기념비적 저작인 『백과전서(Encyclopédie)』를 편찬한 일이다. 그는 이 백과전서에서 편집위원으로서 수학, 물리학, 철학 분야의 주요 항목을 직접 집필하고 책임지며, 과학적 이성과 합리적 사고를 강조했다. 이 저작은 단순한 지식의 집대성을 넘어 계몽주의 사상을 유럽 전역으로 확산시키고 중세적 미신과 전통적 편견에 도전하는 사상적, 사회적 혁명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특히 그는 『백과전서 서론(Discours préliminaire)』에서 인류의 지식을 '기억'(역사), '상상력'(문학과 예술), '이성'(과학과 철학)이라는 세 가지 기본 범주로 체계화하여 분류함으로써 이후의 지식 체계화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수학과 물리학 분야에서도 달랑베르는 매우 뛰어난 성취를 이루었다. 그는 특히 역학과 해석학 분야에서 중요한 발견과 발전을 이루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달랑베르의 원리(d'Alembert’s principle)'이다. 이 원리는 뉴턴(Newton)의 운동 법칙을 더욱 일반적이고 수학적으로 세련된 형태로 표현한 것으로, 정역학과 동역학을 통합하는 데 기여했다. 달랑베르의 원리는 물체의 운동을 기술할 때 가상의 힘(관성력)을 도입하여 복잡한 역학 문제를 보다 손쉽게 해결할 수 있게 하였고, 이는 후대의 라그랑주(Lagrange)와 같은 역학자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그뿐 아니라, 달랑베르는 편미분 방정식과 파동방정식 연구에서도 탁월한 공헌을 했다. 특히 파동 방정식을 처음으로 엄밀히 분석하고 일반적인 해법을 제시했는데, 이를 '달랑베르 방정식(d’Alembert’s equation)'이라 부른다. 그의 해법은 소리나 진동과 같은 자연 현상을 기술하는 현대 물리학과 응용 수학의 토대가 되었다. 또한, 함수의 극한과 연속성, 미분 가능성 등 해석학(analysis)의 기초 개념을 엄밀히 규정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철학적 입장에서 달랑베르는 철저히 합리주의적이고 경험주의적이었다. 그는 계몽주의 정신에 따라 인간 이성의 발전과 진보를 믿었으며, 과학적 방법을 통해 미신과 무지를 몰아내고 사회의 진보를 이루어야 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는 볼테르(Voltaire), 루소(Rousseau) 등과 동시대인으로서 교류하며, 이성과 합리성에 기반한 새로운 사회 질서를 꿈꾸었다. 특히 달랑베르는 철학과 과학이 인류의 복지와 진보를 위해 현실 사회와 깊이 연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이러한 생각은 프랑스 혁명의 지적 기반에도 영향을 끼쳤다. 달랑베르는 18세기 계몽주의의 핵심 인물로서 수학과 물리학의 발전을 이루고, 동시에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세계관을 제시한 사상가이다. 그의 철학적 태도는 이후 서양 근대 사회의 형성 과정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수학적, 물리학적 발견들은 오늘날의 과학적 발전을 위한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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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존 로크의 사상체계의 확산과 이신론


로크의 관념들은 점점 확산된다. 달랑베르는 로크가 새로운 형이상학을 창조했다고 했다. 인간의 오성의 능력들과 그것의 한계를 연구하는 로크의 관념들은 제수이트 신부인 뷔피에가 말하는 것과 같이 '형이상학의 대상은 정신의 대상들을 매우 정확하게 분석을 행하는 것이었다.대륙에서도 인식의 기능과 한계에 대해서 연구하는 것은 행위와 실천과 다르다'라고 했다. 여기서 한가지는 정합성은 하늘에서만 온다는 것이다. 연역법은 '원리'를 만들고 찾기 때문에 정합성을 논의할 수 있지만, 귀납법은 실증적인 고증을 통해서만 정리된다. 다시 말하면 귀난법은 법칙만 발견할 수 있고, 인간의 의식을 원리의 차원에서 찾을 수 없다.


로크의 이러한 인식은 우리가 '이신론'이라고 하는 생각을 만들었다. 사유의 규칙과 행위의 규칙에 토대를 마련하고자 보증자 없이 인식이 가능한지를 고민했다. 이것은 데카르트와는 다른 방식이었다. 이신론은 말브랑쉬에 의하면 '신 없는 인식'이었다. 이신론은 '신'이 현실에 관여하지 않고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해지는 이유는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형이상학'을 인간의 신체와 연결해짐으로써 가능해진다. 물론 처음부터 이러한 사상을 따르지는 않았다. 자연종교의 찬성자들이 등장했지만, 일부는 초기 크리스트교에서 진실한 종교를 찾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이신론을 믿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매슈 틴달과 같은 사람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물론 이에 반대하는 윌리엄 워버튼이나 마리 위베르와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로크는 로마를 기억하고 아리스토텔레스를 취하고
프랑스는 그리스를 간직하고 플라톤을 취했다


프랑스어로 '에땅튀'라고 하는 것은 신체나 물체가 '펼쳐지'는 것을 말한다. 펼쳐진다는 것으로 지금으로 치면 부피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에땅튀는 신체의 기본적인 발생요건이자 존재요건이다. 이것을 로크는 영혼과 연결한다. 그러니깐 확장되는 신체는 다시 말하면 영혼의 확장이었다. 이러한 영혼의 확장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물어보는 것이 가능하다. 여기에서 나오는 문제가 바로 '감정'이다. 인간의 몸에 깃든 영혼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매번 일어나는 사건과 상황에서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요동치는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은 스피노자에 의하면 '신의 속성의 연장'이다.


신의 영혼이 육체 안에 있다는 것을 감정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신'을 부르기 위해서 상층부로 올라갈 필요가 없고, 육체 안에서 신의 영혼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이신론'의 핵심이다. 이신론은 신은 우주를 만들고 더 이상 현실에 관여하지 않는다라는 명제를 쓰지만, 이러한 맥락에서 '신은 인간의 육체 안에 자신의 영혼을 넣어 놓고, 더 이상 분리되지 않는다'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신과 육체는 분리되지 않고 신이 곧 육체가 되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측면에서는 '지적설계론'으로 발전하기도 하지만, 프랑스철학에서는 이것을 사람의 육체로, 몸으로 받아서 신의 재현이 아닌, '신의 현현'을 '정동'으로 이어가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이미 신의 영혼이 인간의 감정으로, 더 정확히는 정동으로 몸 안에 들어 있기 때문에 하늘 어딘가에 있는 신을 찾을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보증자 없이도 인식이 가능한가?

홉스에게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자연적인 이기주의자'라는 인간론이다. 홉스는 인간의 이기심을 기본으로 자연상태에서 신이 사라져버린 세상에서 이신론적인 배경을 드러낸 것이다. 인간들의 선한 감정을 샤프츠베리나 허치슨같은 사람들이 이어 받았지만, 결론적으로 같은 형식이었다. 그것은 '도덕감'이라는 것은 어떤 관념도 선제하지 않고 존재한다는 것이다. 디드로 역시 이것을 인정한다. 다시 말하면 신의 속성으로써 감정, 그리고 그 감정의 일부인 도덕감정은 인간의 태생적인 것들이 된 것이다. 맨드빌까지 가면 결국 정념들이 인간도덕성의 동인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연적 이기주의와 사회적 유용성 사이에 완전한 일치가 일어난다. 칸트와 같이 '실천이성'이나 '판단력'이 자기 자신에게 나오는 것처럼, 영국에서도 역시 인간의 도덕감정은 인간의 몸 안에 내제한 것이 된 것이다.



3. 버클리의 인간의식과 저작들


조지 버클리(George Berkeley, 1685~1753)는 18세기 경험론 철학자이자 성공회 주교로, 영국 경험주의를 존 로크와 데이비드 흄과 더불어 대표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철학사상 가장 철저한 형태의 관념론(idealism)을 주장하였으며, "존재한다는 것은 지각된다는 것이다(Esse est percipi)"라는 명제로 유명하다. 버클리 철학의 독특함은 그가 물질적 실체의 존재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오직 마음과 그 마음이 지각하는 관념만이 실재한다고 보았다는 데에 있다. 버클리에 따르면 우리가 실재라고 믿고 있는 세계는 근본적으로 지각과 경험 속에 있는 관념들의 연쇄로 구성되어 있으며,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물질 세계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극단적 관념론은 흔히 '상식' 또는 '일상적 판단'과는 모순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세계는 관념이 아니라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물질적 세계라고 믿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공통적 견해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버클리는 스스로의 철학이 비상식적이거나 비현실적인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는 문제를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따라서 버클리는 자신의 철학이 실제로는 매우 상식적이고 현실적이라는 점을 설득하기 위해 "공통감각(common sense)"이라는 개념을 적극적으로 내세웠다. 버클리에게 있어 공통감각이란 특별한 지성이나 철학적 교육 없이도 누구나 일상적으로 자연스럽게 가지고 있는 판단 능력이나 직관적 이해 능력을 의미한다. 즉, 그것은 복잡한 논리를 거치지 않아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일상적 판단의 기준'이다. 그는 공통감각이 철학적 추론이나 이론보다도 오히려 더 신뢰할 만한 것이며, 따라서 어떤 철학적 입장도 이 공통감각과 조화롭고 일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버클리의 철학에서 관념론은 바로 이 공통감각과 충돌하지 않으며 오히려 가장 합리적으로 공통감각을 설명해주는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버클리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이를 설명한다. 우리가 보는 사물, 듣는 소리, 만지는 촉감 등 모든 감각적 경험은 우리 정신이 수용한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이 관념들을 통해 세계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경험하는데, 굳이 이 관념들 너머에 별도의 독립적 물질을 가정하는 것은 불필요할 뿐 아니라 실제로는 오히려 상식적 판단을 복잡하고 혼란스럽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버클리에 따르면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지각하는 바가 곧 실재한다"고 자연스럽게 믿으며 살아간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사과를 본다고 할 때, 실제 경험하는 것은 사과라는 관념이지 결코 사과라는 '물질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구분을 일상적으로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경험을 신뢰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신뢰가 바로 버클리가 말하는 '공통감각'이다.


이처럼 버클리는 공통감각을 통해 자신의 철학이 실제로는 결코 기이하거나 비상식적이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했다. 물질적 실체를 부정한다고 해서 현실이 사라지거나 왜곡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관념론이 더 자연스럽고 상식적이라는 것이 버클리의 주장이다. 그는 공통감각을 중시하는 이런 접근법을 통해 관념론의 난점인 회의주의나 비현실성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이후 스코틀랜드의 토마스 리드(Thomas Reid)와 같은 철학자가 발전시킨 '상식 철학(common sense philosophy)'의 발전과도 중요한 연결 지점을 형성한다. 결국 버클리의 공통감각은 급진적 관념론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버클리가 제시한 핵심적 개념이다. 버클리는 이를 통해 자신의 철학이 현실을 왜곡하거나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을 더욱 충실하게 반영하고 설명하는 일상적이고 합리적인 관점이라는 점을 철학적으로 입증하려 했다. 이는 버클리 철학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로서, 그의 철학이 현실과 상식으로부터 분리되지 않고 오히려 이 둘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개념이다.


죠지 버클리는 한마디로 상층부의 철학자이다. 그 말은 플라톤주의자라는 것이다. 1707년에 인문학 석사학위를 받고 '인간 인식의 원리들에 관한 논문'을 썼다. 1709년에는 '신시각론'을 쓰고 1713년에는 '휠라스와 필로누스의 세편의 대화록들'을 썼다. 1720년에는 인식에 관하여를 쓰면서 뉴턴의 물리학을 공격했다. 그리고 반대로 신플라톤주의와 플로티노스를 연구했다. 버클리는 실제로 데이슨에 가깝다. 신이 없어도 신의 감각이 인간안에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을 프랑스어로는 '상티망'이라고 하고 센서 즉 감각이라고 한다. 이는 신이 존재하는 것을 믿지만 자신의 감각은 자신의 안에서 생겨나고 그것은 영혼이 주는 것이기 때문에 신이 없어도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공통장소의 책'에서 철학적 관념들을 잘 정리한다.


내면화된 추억이 진짜이고, 외부의 감각은 사라지는 가짜이다



인간 인식의 원리들에 대한 논문 (An Essay Towards a New Theory of Human Understanding, 1710)

이 책은 버클리 철학의 이론적 핵심이자 그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이 책에서 물질의 존재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며,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모든 존재는 오직 관념(ideas)이며, 관념은 지각(perception)에 의해서만 성립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감각을 통해 인식하는 대상들이 실제 외부에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 주체의 정신 안에서 형성된 관념일 뿐이라는 점이다. 물리적 세계의 독립된 실존을 인정하는 기존의 형이상학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버클리는 특히 존 로크의 '간접적 실재론'을 비판하면서, 지각되지 않는 물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나무가 숲에서 쓰러질 때 아무도 듣지 않으면 소리가 나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답한다. 그리고 이러한 존재의 지속성은 유한한 인간의 지각이 아니라, 무한한 신의 지각에 의해 보장된다고 설명한다.

즉, 세상은 ‘신의 정신 안에 유지되는 관념의 연속’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우리는 그 일부를 지각하고 있을 뿐이라는 관념론의 종교적 형태를 제시한다. 이 저작은 근대 철학에서 실재와 인식, 감각과 존재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신시각론 (A New Theory of Vision, 1709)

버클리는 이 저작에서 시각이라는 인간 감각의 작동 방식에 대한 독창적인 이론을 제시한다. 그는 당시 학계에서 당연시되던 ‘깊이 지각(depth perception)은 시각 자체에 내재되어 있다’는 주장을 부정하고, 깊이 인식은 시각과 촉각의 결합된 경험을 통해 학습된 것이라고 본다. 즉, 인간은 사물과의 거리나 입체감을 시각만으로 파악하지 않으며, 어린 시절부터 촉각, 운동, 위치 경험 등이 반복적으로 연합되면서 시각 정보의 의미를 학습한다는 입장을 제시한다.

그는 특히 광선의 수렴이나 망막상의 크기 변화 등 시각적 신호만으로는 거리나 깊이를 판단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시각 지각은 인지적 해석과 경험적 기억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당시 광학 중심의 물리주의적 시각 이론에 대한 철학적 반박이며, 이후 심리학과 인지과학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 책은 버클리 철학의 출발점이자, 그가 감각 경험을 물리적 실재보다 더 확실한 존재 근거로 간주하게 된 계기로 기능한다. 또한 이 저작은 나중에 나오는 '인간 인식의 원리들' 및 '휠라스와 필로누스'의 사유적 기반을 제공하는 중요한 전조가 된다.


휠라스와 필로누스의 세 편의 대화록들 (Three Dialogues Between Hylas and Philonous, 1713)

이 대화록은 버클리의 철학을 보다 친절하고 설득력 있게 설명하기 위해 대화 형식을 차용한 저작이다. ‘휠라스’는 물질 실재론자(하일레: 물질), ‘필로누스’는 정신 중심의 관념론자로 설정되어 있으며, 사실상 버클리 자신의 철학적 입장을 필로누스를 통해 설명한다. 이 책은 『인간 인식의 원리들』보다 쉽고 명확한 문체로 쓰여 있어서 버클리 철학에 대한 입문서로도 자주 사용된다.

대화의 핵심 주제는 물질세계가 정신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다. 버클리는 필로누스의 입을 빌려, 지각되지 않는 존재는 존재할 수 없다는 논리를 전개한다. 휠라스는 계속해서 반론을 제기하지만, 필로누스는 예리한 논증과 예시로 그 반론을 하나하나 반박한다. 이 책은 ‘감각으로 인식된 모든 것들은 실제 물질이 아니라 관념에 불과하다’는 버클리의 관념론을 가장 명료하게 보여주는 문헌이다. 또한 ‘신의 지각에 의해 사물의 지속성이 보장된다’는 신학적 관념론도 철학적으로 정제된 방식으로 제시된다.


운동에 관하여 (De Motu, 1721)

이 라틴어 저작은 물리학과 철학의 접점에서 버클리의 독특한 입장을 보여주는 글이다. 그는 당시 지배적이던 뉴턴 역학 체계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면서, 물리학에서 사용되는 ‘운동(motion)’ 개념이 실체적이거나 본질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운동은 ‘사물의 본질적 속성’이 아니라, 우리 감각이 인식하는 변화의 양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버클리는 과학적 설명이 마치 본질을 말해주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현상을 기술하는 데 그칠 뿐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물리학의 수학적 모델은 인간 감각의 규칙적 패턴을 기술할 수는 있지만, 그 자체가 존재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는 비판이다. 그는 물리학에서의 ‘힘(force)’이나 ‘인력(gravity)’ 같은 개념도 실체가 아니라 인간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개념적 도구에 불과하다고 본다. 이 글은 버클리의 관념론이 단지 인식론에 머무르지 않고, 당시 과학철학의 중심 이론까지 포괄하여 비판하고 재구성하려는 야심찬 철학적 시도임을 보여준다.


알키프론, 세심한 철학자 (Alciphron, or the Minute Philosopher, 1732)

이 책은 종교적 회의주의, 무신론, 자유사상(liberalism)의 확산에 대응하려는 버클리의 기독교 철학 옹호서이다. ‘알키프론’은 당시 영국 계몽주의 사상가들을 상징하는 회의주의자이며, 그의 주장은 인간 이성의 자율성과 종교의 불필요성을 강조한다. 이에 맞서 ‘에우프라노르’는 기독교 신앙, 도덕, 전통의 합리성과 실용성을 변호한다.

이 대화체 저작에서 버클리는 단순히 신앙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는 도덕적 질서와 사회적 유대의 기반으로서 종교의 필요성을 철학적으로 논증하며, 언어, 감각, 사회 규범 등을 종교적 의미망 속에서 재해석한다.

특히 그는 언어가 현실을 단순 지시하는 도구가 아니라, 정신적 관념과 사회적 질서를 연결하는 상징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신학과 언어철학을 융합한 독창적 접근을 제시한다. 이 책은 신앙과 이성의 화해 가능성을 보여주며, 당대 계몽주의와 기독교 사이의 긴장을 철학적으로 조율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시각론의 옹호와 설명 (The Theory of Vision Vindicated and Explained, 1733)

이 책은 초기 저작인 '신시각론'에 대한 비판에 대응하여, 그 이론을 보다 명확히 설명하고 보완한 저작이다. 버클리는 비판자들이 자신의 이론을 오해하거나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보고, 시각 인식이 어떻게 경험과 기억, 감각 간의 연합을 통해 구성되는지를 더욱 정교하게 설명한다.

그는 특히 인간의 시각은 외부 사물을 직접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 간의 규칙적 연결을 통해 의미를 추론하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즉, 인간은 시각 자극만으로는 세계를 인식할 수 없으며, 오히려 언어처럼 작동하는 해석 체계 속에서 사물을 이해하게 된다.

그는 이 책에서 시각을 일종의 ‘언어(language of nature)’로 보면서, 자연과 신, 인간 인식 사이의 상징적 관계를 철학적으로 제시하였다. 이 책은 지각 이론과 신학, 언어철학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매우 독창적인 작업이며, 이후 기호학, 인지과학, 신경철학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4. 버클리의 '공통장소의 책'의 철학적 관념들


이제 공통장소의 책에 대해서 더욱 깊이 알아보자. 이를 통해서 이신론이 죠지 버클리를 통해서 어떻게 확대되고 발전되는지를 더욱 면밀하게 볼 수 있다. 공통장소(The Commonplace Book)의 책은 조지 버클리가 남긴 사적 철학 노트, 즉 아이디어의 스케치북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정식으로 출판된 저작은 아니지만, 버클리 철학의 사상적 형성과 전개 과정, 그리고 그의 심층적인 관심사와 철학적 직관이 집약된 텍스트로 평가된다. '공통장소의 책'에 담긴 철학적 관념들은 그의 주요 저작들보다 자유롭고 실험적이며, 종종 급진적이고 도발적인 사고 실험들이 등장한다. 다음은 '공통장소의 책'에서 드러나는 핵심 철학적 관념들을 간단하게 정리해본 것이다.


존재는 지각됨이다 (Esse est percipi)의 전개와 내면화

공통장소는 버클리의 대표 명제인 "존재란 지각되는 것이다(esse est percipi)"가 이론화되기 이전, 그것이 어떻게 점진적으로 형성되어가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그는 물질적 실체의 불필요성과 개념적 모순을 끊임없이 검토하며, 모든 실재가 정신의 작용 혹은 관념의 인식 대상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여기서 버클리는 존 로크의 이원론(물질/정신의 분리)을 비판하고, 실재 개념의 단일화를 통해 철저한 관념론(idealism)을 구상한다.

또한 그는 이 노트에서 ‘지각되지 않는 사물이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반복하며, 그에 대한 회의적 태도를 철저히 검토한다. 그 결과, 실재는 오직 지각의 영역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고, 이 지각은 결국 신의 항구적인 지각에 의존함으로써 사물의 연속성을 보장받는다고 보는, 이후 형이상학적 이상주의의 씨앗이 싹트는 장면을 확인할 수 있다.


언어의 본질과 인식의 매개로서의 기능

버클리는 '공통장소' 에서 언어가 현실을 묘사하는 도구가 아니라, 인식을 구성하는 상징체계라고 본다. 그는 단어와 외부 대상 사이의 일대일 대응관계를 부정하고, 오히려 언어는 정신이 관념들을 정리하고 작용하는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언어를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지각과 인식의 구조를 형성하는 매개체로 보는 매우 현대적인 시각이다.

그는 특히 종교적 상징, 수학적 기호, 일상 언어를 구분하면서, 각각이 지각된 관념을 어떻게 ‘구성’하는지를 분석한다. 이러한 언어철학적 관심은 훗날 그의 저서 '알키프론'과 '시각론의 옹호와 설명'에서 더욱 체계적으로 전개되며, 비트겐슈타인, 퍼스, 데리다와 같은 20세기 언어철학자들과의 연결 가능성도 암시한다.


의지와 신의 역할에 대한 신정론적 사유

공통장소에는 버클리의 신론적 사유(Theological Reasoning)가 철학적으로 심화되는 흔적이 강하게 나타난다. 그는 물질을 부정하면서 동시에 신의 적극적 역할을 철학적으로 재구성한다. 단순히 신을 실재의 보증인으로 놓는 데 그치지 않고, 신이 모든 지각을 발생시키는 적극적 주체이며, 인간은 그 지각을 ‘참여’하는 존재로 규정한다. 즉, 신은 우주적 관념의 유일한 실체로 자리 잡는다.

버클리는 신의 존재를 경험적으로 추론하려고 시도하기보다는, 존재의 합리적 조건으로서 신을 설정한다. 이러한 입장은 후대의 칸트나 헤겔의 이성신론보다는, 형이상학적 실천주의에 가까운 ‘생활철학적 신학’으로 해석될 수 있다. '공통장소'에서는 신의 의지가 자연의 질서와 규칙을 창조하고 유지하는 힘으로 작동하며, 인간은 그것을 인식함으로써 도덕적 질서에 참여하게 된다고 본다.


감각의 상대성과 인식의 불확실성에 대한 탐구

공통장소의 한 특징은 버클리가 감각 자체에 대한 불신과 철저한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인간 감각이 항상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며, 심지어 착각, 환각, 착시를 통해 자주 오도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이를 감각 전체의 부정으로 이끌지 않고, 오히려 감각의 상대성과 지각의 주관성을 철학적 기초로 삼는다.

이러한 분석은 그가 후속 저작에서 ‘감각의 언어론적 구조’를 전개하는 토대가 된다. 감각은 신이 인간에게 주는 ‘상징’이며, 그것을 해석하는 방식이 곧 인식이다. 이로써 그는 실증주의적 경험론과 구분되는 해석적 경험주의의 선구자적 입장을 마련한다. 그의 사유는 현대 인지철학이나 구성주의 심리학의 선행 이론으로 간주될 수 있다.


시간과 운동에 대한 미시적 사유

공통장소에는 버클리의 시간, 변화, 운동에 대한 철학적 단상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는 뉴턴의 절대시간 개념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시간이란 관념들의 연속적 변화일 뿐이라고 본다. 이는 후속 저작 『운동에 관하여』에서 보다 체계적으로 전개된다. 그는 또한 운동도 물체의 속성이 아니라, 관념 간의 위치 이동에 대한 인식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이는 물리적 실체에 대한 의존을 거부하고, 모든 실재를 지각과 정신 내 작용으로 환원하는 버클리의 일관된 관점을 다시금 드러낸다. 시간 역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연속성을 경험하는 방식’에 불과하다. 이 점은 훗날 베르그송, 하이데거, 메를로퐁티 등의 시간과 의식에 대한 현상학적 사유와 맞닿는 대목이다.


철학적 회의주의와 경험주의 사이의 균형 실험

공통장소는 단순한 개념 정리의 노트가 아니라, 철학적 회의주의의 실험장이다. 버클리는 데카르트식 회의주의와 로크식 경험론을 오가며, 그 둘 사이의 간극을 메우려 한다. 그는 인간 정신이 외부 세계를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신과 규칙적 감각 경험을 통해 안정된 질서를 부여받는다는 점에서 일종의 실천적 낙관주의를 갖는다.

그는 결국 지식이란 정신이 감각을 해석하는 습관과 신의 규칙을 따르는 행위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며, 이는 후기 저작의 기반이 된다. 이처럼 『공통장소』는 형이상학과 인식론, 종교철학, 언어철학의 융합을 예고하는 풍부한 실험의 장이자, 버클리 철학의 생성 과정 자체를 보여주는 드문 철학사 문헌이다.



5. 인간 인식의 원리들과 휠라누스의 세 편의 대화록들


죠지 버클리의 비물질론(immaterialism)은 그의 철학 전반을 관통하는 중심 사상으로, '인간 인식의 원리들에 대한 논문(1710)', '휠라스와 필로누스의 세 편의 대화록들(1713)'에서 가장 체계적이고 명확하게 제시된다. 두 저작은 모두 “존재란 지각되는 것이다(Esse est percipi)”라는 명제를 바탕으로, 전통 철학이 전제해온 ‘물질적 실체’ 개념을 철저히 해체한다. 하지만 이 두 책은 비물질론을 드러내는 방식에 있어 차이를 보인다. '원리들'은 논문 형식의 이론 중심 저작으로, 철학적 정합성과 논리 구조의 엄밀함을 강조하고 있으며, '대화록들'은 대화체 형식을 통해 일반 독자와의 철학적 소통을 지향하면서 보다 설득력 있고 실천적인 논증을 제시한다.


'원리들'에서 버클리는 모든 존재는
지각에 의해 성립된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감각을 통해 관념을 받아들이고, 그 관념들을 종합함으로써 세상을 인식한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관념들이 외부에 실재하는 물질에서 유래한다는 주장을 부정한다. 로크가 말한 1차 성질과 2차 성질의 구분도 거부하며, 감각을 통해 주어지는 모든 특성은 결국 정신에 속하는 것이므로, 실재하는 물질이라는 개념은 불필요하다고 본다. 따라서 우리는 감각되는 대상을 ‘존재한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감각되지 않는 어떤 물질적 실체를 상정하는 것은 철학적으로 모순이라는 입장이다. 이때 버클리는 신의 존재를 도입하여, 인간이 지각하지 않더라도 신이 항상 모든 사물을 지각하고 있으므로 세계는 연속적으로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이런 점에서 '원리들'은 철저히 형이상학적이고 신학적 기반 위에서 비물질론을 논증하고자 한다.


반면 '대화록들'은 휠라스와 필로누스라는 두 인물 간의 대화를 통해 비물질론을 보다 일상적이고 구체적으로 전개한다. 이 책은 ‘휠라스’가 물질 세계의 실재성을 옹호하고, ‘필로누스’가 버클리의 관념론을 대변하는 인물로 설정되어, 물질의 존재 여부를 둘러싼 철학적 논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필로누스는 휠라스의 주장을 하나하나 반박하며, 감각되지 않는 물체는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특히 이 대화에서는 회의주의에 대한 반론이 두드러지는데, 필로누스는 감각된 관념만을 실재로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감각을 불신하는 실재론보다 더 안전하고 분명한 철학적 입장임을 주장한다. 물질을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감각과 인식을 불확실하게 만들고, 회의주의로 빠지게 한다는 역설을 통해 관념론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대화록들'은 또한 비물질론이 현실과 단절된 추상이 아니라, 오히려 감각 경험과 일상의 세계에 더 밀착된 실천 철학임을 보여준다. 필로누스는 사물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가 관념적이고 정신적인 방식으로 구성된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그는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실제로 우리 정신 안의 관념이며, 이러한 관념은 신이 일정한 규칙에 따라 인간에게 부여한 것임을 강조한다. 따라서 세상은 무질서한 주관적 환상이 아니라, 신의 질서 안에서 구성된 지각적 체계로 해석된다. 이러한 점에서 '대화록들'은 단순한 형이상학적 논증서가 아니라, 관념론을 일상과 윤리, 종교에까지 연결시키는 철학적 해설서로 읽힌다. 결론적으로 '원리들'과 '대화록들'은 동일한 철학적 토대를 공유하지만, 서로 다른 방식으로 비물질론을 설명하고 설득한다. 전자가 논리적 일관성과 개념 정합성을 바탕으로 한 철학적 체계를 지향한다면, 후자는 대화와 직관을 통해 읽는사람의 이해와 동의를 유도하는 설득의 철학을 실천한다. 두 저작은 함께 읽을 때 버클리 철학의 이론적 깊이와 실천적 확장성을 모두 체험할 수 있으며, 비물질론이라는 급진적인 철학이 단지 추상 이론에 머무르지 않고, 경험·지각·신앙의 세계를 새롭게 조직하려는 노력의 결과임을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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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기독교에서 흔히 이신론이라고 이야기 하는 신학적인 사조에 대해서 알아 보았다. 사실 에밀 Brainer의 서양철학사의 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계몽주의의 시대 라고 하는 18 세기 다시 말하면 빛의 세기에 대해서 존 로크와조지 버클리의 이론에 대해서 알아 보았다. 오랜만에 철학 아카데미를 가서 너무 재밌었지만 한편으로는 2시간 동안 이해 하느라 진땀을 뺐다. 앞으로 칠 주 동안 에밀 Brainer의 사상을 더 알아 보고 18 세기 부터 시작된 프랑스 이 신론에 전통들을 더 깊이있게 다루 고자 한다. 존경하는 교수님의 상 칭 부 표 칭 부 심층 부에 대한 이해가 에밀 Brainer 뿐만 아니라 서양철학사 전체를 이해하는데 매우 유용한 시간이었다. 이것을 정리하는데 일주일이나 걸렸는데 오늘 또 가서 강의를 들어야 된다. 배우고 또 배우고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그래서 결국 현실을 인식하는 새로운 관점을 만들어 나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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