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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철학일기

신화의 시대, 영웅의 시대, 인간의 시대

에밀브레이어의 18세기 서양철학사_철학아카데미

by 낭만민네이션

데카르트가 이원론이라고 했을 때, 영혼도 실체이고 신체도 실체라고 생각했다. 한 쪽이 지배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대등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기능도 있고 역량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구분하는 것은 쉬우나 추후에 이러한 이원론을 통합하는 것은 매우 어려워진다. 종합은 끌어모으는 것이고 통합은 서로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합리론자들은 상부인 표면이 중심이고 심층부나 표층부는 실체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생기주의자들은 이원성을 오히려 신체와 영혼 모두 실체로 보고 이것들이 서로 대치된 방식으로 보았다. 다시 말하면 신체 안에 영혼이 있고 영혼의 구성요소에 신체가 들어 있다는 것을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물질신체의 활동적인 측면과 영혼정신의 활동을 구분하는 것은 이중성을 피하기가 어려웠다.


사실 우리도 당장 무엇인가를 구분하고 나면, 다시 합치는데 있어서 애를 먹는다. 분해는 가능하지만 합치는 것, 통합하는 것은 어려워지는 것이다. 18세기 빛의 세기, 계몽주의 시대에는 데카르트를 시작으로 끊임없이 구분하기 시작했다. 신과 인간을 나누고, 인간의 신체와 정신을 나누고, 정신을 상승과 하강으로 나누고, 신체를 시작과 끝으로 나누었다. 또한 도덕적인 것과 인식적인 것을 나누고, 지각과 감성을 나누었다. 이런 관점에서 죠지 버클리는 인식되는 것만 전체라고 여기는 학자들도 나타났다. 존 로크의 경우에는 물리적인 차원에서 증명할 수 있는 것만 인식된 것으로 보는 것도 시도했다. 신기하게도 이런 방식으로 생각하게 된 것도 '그리스로마'의 상층부 전통을 벗어나면서 가능해졌다. 그러니깐 신체나, 물질 자체에서 영혼을 발견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지난 시간 '이신론'의 시작으로 보았다. 그리고 머지 않아서 물리학을 통해서, 과학을 통해서 '신'의 자리도 무너뜨리고 무신론으로 넘어간다. '비물질론'의 정신 자체가 신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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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철학은 기본적으로 '대상화'를 시도하여 신과 우주, 자연과 사물을 고민했다. 그런데 인간을 대상화하기 시작하니깐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인간은 하나의 플랫폼으로 정신과 신체가 하나로 엮여 있고 그 안에 영혼이 연결되어 있었다. 버트란트러셀은 이러한 이해를 가지고 대륙전통의 '합리론'과 영미철학 중심의 '경험론'으로 구분했다. 대상화의 방식이 '정신'과 '경험'으로 확장된 것이다. 물론 이러한 '무한'으로의 확장은 부르노에게서부터 시작되었지만, 후세들이 이렇게 '무한으로 확장'을 이해하고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은 에밀 프레이어의 책 제 4장에서 '크리스티안 볼프', '장바프티스트 비코', '꽁디약'까지 알아보려고 한다.


1. 크리스티안 볼프와 독일 현대 철학의 시작


크리스티안 볼프(Christian Wolff)의 '신, 세계, 인간의 영혼에 관한 합리적 사유(Rationelle Gedanken von Gott, der Welt und der Seele des Menschen, auch allen Dingen überhaupt)'는 18세기 독일 계몽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철학 저작 중 하나로, 이성의 능력을 통해 형이상학적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집필되었다. 볼프는 이 책에서 라이프니츠의 철학을 계승하면서도 더욱 체계적이고 교육적인 형식으로 정리함으로써 철학을 일반 학문처럼 누구나 배울 수 있는 합리적 학문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하였다. 이 저작은 이후 독일에서 철학 교육의 표준 교과서처럼 사용될 정도로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볼프는 철학을 명제와 공리, 증명의 형식으로 구성된 연역적 체계로 보았다. 이 책은 세 가지 중심 주제인 신, 세계, 인간의 영혼에 대한 이성적 사유를 중심으로 전개되며, 각각의 주제는 논리적 원리와 이성의 힘을 통해 설명된다. 그는 '충분 이유의 원리'를 바탕으로 모든 존재와 사건에는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하며, 이성을 통해 그 원인을 추적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신의 존재는 바로 이 원리에 따라 논리적으로 도출되며, 볼프는 신을 이 세계의 궁극적 원인으로 설정한다. 그는 신이 이 세계를 질서 있고 합목적적으로 창조했으며, 인간의 이성은 그 질서를 파악할 수 있다고 보았다.


세계에 대한 볼프의 설명
역시 철저히 합리주의적이다.


그는 세계가 수학적 질서와 인과적 구조를 따르는 체계이며, 이를 이성적으로 탐구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세계관은 자연과학적 방법과도 친화적이며, 당대의 과학 정신과 조화를 이룬다. 인간의 영혼에 대해서도 그는 영혼이 단순한 물질적 존재가 아니라 자율적인 이성적 실체이며, 불멸의 존재라고 주장하였다. 영혼은 사유하고 판단하며 도덕적 책임을 질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이는 물질로 환원될 수 없는 정신적 존재의 본질이라고 보았다. 이처럼 볼프의 철학은 전통적인 형이상학의 주제를 이성의 언어로 재구성하여, 철학을 수학처럼 명료하고 체계적으로 만들고자 한 시도이다. 그는 철학이 과학처럼 논증 가능하며, 교육 가능한 지식 체계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이러한 신념은 철학을 일반 시민 교육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데 기여했고, 독일 계몽주의의 철학적 기반을 제공하였다. 이후 칸트는 이러한 볼프의 체계를 비판하면서도, 그의 영향 속에서 철학을 시작했을 만큼, 이 저작은 계몽기의 철학적 환경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에밀 브레이어는 라이프니츠의 합리적 영속주의의 일환으로 크리스트안 볼프의 표층부의 통합에 대해서 쓰게 된다. 볼프는 '경험심리학'이나 '합리심리학'을 쓰고 이어서 '자연신학'과 '자연신학'을 썼다. 이를 통해서 대상으로써 경험이나 합리성이 자연과 만나서 서로 하나로 통일 되는 것을 증명했다. 또한 표층부인 인간이 만나는 세계에서 인간의 몸이 먼저 있고 그 안에 영혼과 합리성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시작했다. 신에 관해서 영역적으로 풀었다면 신학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볼프는 신에서 출발하지 않고 물질에서 시작했다. 물질이 서로 연결되는 과정에서 상승작용이 일어나서 합리성과 영혼까지 만들어진다고 본다. 볼프는 칸트의 말에 따르면 탁월한 분석가이지만 라이브니츠의 충분율을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철학의 목표는 행복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플라톤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는 따르는 것이었다.


이 말은 볼프가 '수학과 물리학을 통해서 존재론적 선가정으로 부터 연역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존재론은 존재의 주어들을 증명한다. 합리적 심리학은 영혼의 세계를 표시할 수 있는 힘이라고 이야기했고, 볼프의 제자인 빌핑거는 '신, 인간영혼, 세계에 관한 철학적 토론'을 진행한다. 이러한 기획은 상층부에 있는 의식을 표층부로 끌어내려와서 새로운 존재론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볼프는 이렇게 말했다. 우주의 통일성은 우주를 통제하는 신의 외적 통일성 그 이상의 것도 아니다. 우주론은 존재론을 뒤따라서 이런 정의로부터 출발하면서 표층부에서도 철학이 가능함을 증명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합리적 심리학은 '영혼'이 세계를 표상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여기서 영혼은 우리가 느끼고 불러낼 수 있는 논리학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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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니츠의 합리주의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는 데카르트, 스피노자와 더불어 근대 철학의 합리주의(Rationalism)를 대표하는 철학자이다. 라이프니츠의 합리주의는 인간의 이성을 통해 세계의 근본 원리와 진리를 명확히 인식할 수 있다고 믿는 철학적 입장이다. 그는 경험적 감각이나 관찰을 통해 얻어지는 지식보다, 순수한 이성과 논리를 통한 연역적 추론을 통해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라이프니츠의 합리주의 철학에서 가장 독특하고 중요한 개념 중 하나는 ‘모나드(monad)’이다. 모나드는 세계를 구성하는 가장 근본적인 실체로서, 물리적으로 나누거나 분할할 수 없는 ‘단순한 실체(simple substance)’이다. 각 모나드는 독립적이고 자족적이며, 각각의 고유한 관점(perspective)에서 세계 전체를 반영한다. 이러한 모나드들은 물리적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 않지만, 신이 미리 정해놓은 '예정 조화(pre-established harmony)'에 따라 완벽하게 조율된 방식으로 움직이며, 그 결과 마치 서로 상호작용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라이프니츠는 또한 '충족이유율(principle of sufficient reason)'과 '모순율(principle of contradiction)'을 통해 자신의 합리주의를 더욱 명확히 정립하였다. 충족이유율은 모든 존재와 사건은 반드시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원리로, 이성을 통해 세계의 모든 현상과 사건의 궁극적인 이유를 탐구할 수 있음을 나타낸다. 반면 모순율은 명제나 개념이 자기 자신과 모순될 수 없으며, 따라서 이성을 통한 엄밀한 논리적 사유가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라이프니츠의 합리주의는 또한 '최선의 가능한 세계(best of all possible worlds)'라는 개념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에 따르면, 신은 무한한 가능한 세계들 중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조화로운 세계를 창조했으며, 따라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존재할 수 있는 세계들 중 최선의 세계이다. 비록 인간이 느끼기에는 악이나 고통이 존재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더 높은 선(善)을 이루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이며, 신의 완전한 합리성과 지혜에 의해 선택된 최상의 균형 속에 놓여 있다고 보았다.

종합적으로 라이프니츠의 합리주의는 인간의 이성과 논리적 사유가 세계의 본질을 밝히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는 철학적 태도이다. 그는 이를 통해 존재의 본질과 세계의 질서를 명확히 인식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철저히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접근으로 신과 세계,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통합적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했다. 라이프니츠의 합리주의는 이후 서양 철학과 과학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특히 칸트와 같은 후대 철학자들의 비판과 논의를 촉진하는 중요한 지적 자극을 제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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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의 주름

질 들뢰즈(Gilles Deleuze)의 ‘주름(fold, le pli)’ 개념은 그의 후기 저작인 '주름: 라이프니츠와 바로크'(1988)에서 중심적으로 다루어진다. 이 개념은 단순한 물리적 구조를 넘어, 존재와 세계, 주체와 내면, 외부와 내부의 관계를 새롭게 사유하기 위한 형이상학적이고 미학적인 도식으로 작동한다. 들뢰즈는 주름이라는 개념을 통해, 세계는 고정된 실체나 평면이 아니라 끊임없이 접히고 펼쳐지는 운동적 흐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본다. 즉, 존재란 하나의 주름이자, 접힘과 펼침의 과정으로 형성되는 다층적 구조이다. 들뢰즈의 주름 개념은 라이프니츠의 형이상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라이프니츠가 제시한 ‘모나드(monad)’는 단순하고 분할 불가능한 실체로서 세계 전체를 자신의 관점에서 반영하는 존재이다.

들뢰즈는 각 모나드가 외부 세계를 자신 안에 접어두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며, 이 접힘의 작용을 주름이라고 부른다. 모나드는 외부와 단절된 닫힌 실체가 아니라, 외부를 끊임없이 자기 안으로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내면이 형성되는 주름진 존재이다. 이로써 주체란 고정된 자아가 아니라, 외부의 흐름이 내부로 접혀 들어와 구성된 ‘내면화된 외부’가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들뢰즈는 주체를 자율적이고 일관된 존재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주체는 정동, 감각, 기억, 언어, 지각 등의 다양한 외적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접히고 겹쳐진 주름의 집합이다. 주체는 폐쇄적 인격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고 그것을 다시 자기 안에서 굴절시키는 역동적 장이다. 주체란 끊임없이 구성되고 해체되는 움직임 속에서만 존재하며, 이로 인해 들뢰즈의 주름 개념은 전통적인 주체론을 해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주름은 또한 예술과 미학의 영역에서도 중요한 개념으로 기능한다. 들뢰즈는 바로크 미학을 해석하며 주름의 개념을 미술, 건축, 음악에까지 확장시킨다. 바로크 예술은 르네상스의 대칭성과 평면성에서 벗어나 곡선, 굴곡, 다층성을 통해 역동성과 과잉의 감각을 구현한다. 바로크 건축에서 나타나는 천의 말림, 조각의 중첩, 공간의 휘어짐 등은 모두 주름의 미학적 구현이며, 이는 곧 존재의 복잡성과 비정형성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다. 주름은 이처럼 예술에서 형태의 비결정성과 무한한 전개 가능성을 상징한다.

철학적으로 볼 때, 주름은 본질과 현상, 내부와 외부, 정신과 물질, 주체와 객체를 구분하는 이원론적 사고를 해체한다. 모든 존재는 접힘과 펼침의 운동을 통해 자신을 구성하며, 이로 인해 고정된 실체나 중심은 해체된다. 들뢰즈는 주름을 통해 세계를 다층적이며 생성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철학을 본질 탐구에서 생성과 흐름의 철학으로 전환시킨다. 주름은 따라서 단순한 은유가 아니라, 들뢰즈 철학의 존재론, 미학, 주체론을 모두 포괄하는 핵심 사유 도식이다. 들뢰즈의 주름은 존재를 이해하는 새로운 형식이자, 철학과 예술, 주체와 세계를 재구성하는 독창적 개념이다. 그것은 고정된 질서와 본질이 아니라, 끊임없는 차이와 운동, 겹침과 생성의 흐름 속에서 존재가 구성된다는 비본질적 존재론을 지향한다. 주름은 들뢰즈 사상의 정수로서, 그의 차이철학과 비판적 형이상학을 상징하는 개념적 중심이라 할 수 있다.


아날학파란?

아날 학파(L'École des Annales)는 20세기 프랑스에서 등장한 역사학의 새로운 흐름으로, 전통적인 정치사 중심의 역사 기술을 넘어서 경제, 사회, 문화 구조를 장기적 시야에서 통합적으로 이해하려는 역사학적 접근법이다. 이 학파는 1929년 마르크 블로크(Marc Bloch)와 뤼시앵 페브르(Lucien Febvre)가 창간한 역사학 학술지 '아날: 경제사회사 연보(Annales d’histoire économique et socialeㅇ'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들은 역사 연구를 단순히 ‘사건의 나열’이나 ‘위인 중심의 연대기’로 보지 않고, 인간의 생활 조건과 구조, 심성의 변화까지도 포괄하는 총체적 인간학으로서 역사학을 재정의하고자 했다.

아날 학파는 "장기 지속(longue durée)"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역사의 흐름을 세 가지 시간 층위—① 사건의 시간, ② 구조의 시간, ③ 장기적 시간—으로 구분하였다. 이는 특히 제알2세대 대표자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이 주창한 개념으로, 단기적인 사건 중심의 역사를 넘어, 지리, 사회, 경제 구조처럼 느리게 변화하는 심층적이고 구조적인 변화들에 주목하였다. 예를 들어 『지중해와 펠리페 2세 시대의 세계』에서 브로델은 단순한 정치사가 아닌, 기후와 무역, 인구 구조와 문화적 조건 등 여러 층위가 역사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방대한 시간과 공간 범위에서 분석하였다.

아날 학파는 또한 학제 간 접근을 강조하였다. 역사학은 고립된 학문이 아니라 인류학, 지리학, 경제학, 사회학 등과 긴밀히 연결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역사 속 인간의 삶을 총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들은 통계자료, 기록문서, 고고학적 자료 등 다양한 자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고, 심성사(histoire des mentalités), 일상사(histoire de la vie quotidienne) 등 새로운 역사 서술 방식을 열어 나갔다. 특히 제3세대부터는 '개인의 경험'과 '감정의 역사', '상징과 관념의 역사'에까지 관심이 확장되며, 미시사와 문화사의 토대를 형성하였다.

아날 학파는 역사학의 방법과 관점을 혁신적으로 전환한 지적 운동이었다. 이들은 역사란 단순한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 구조와 심성, 환경과 사유의 복합적 상호작용의 이야기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접근은 이후 역사학은 물론, 인문사회과학 전반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현대 역사학이 ‘구조와 일상’, ‘시간성과 인식’이라는 문제를 끊임없이 재구성하게 만드는 이론적 기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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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장 밥티스트 비코와 그의 역사


장-밥티스트 비코(Giambattista Vico, 1668~1744)는 이탈리아의 철학자, 역사학자, 법학자이며, 근대 역사철학의 선구자이자 인문주의적 역사주의를 정초한 인물이다. 그는 계몽주의 시대의 보편적 이성 중심주의와 자연과학적 방법론에 비판을 가하며, 인간의 역사와 문화는 자연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며, 인간이 스스로 만든 세계는 인간의 정신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입장에서 철학과 역사, 문학을 통합적으로 사유하려 했다. 비코의 대표 저작은 '새로운 학문(Scienza Nuova)'이다. 이 책은 역사와 문명, 인간 사회의 발전을 다루며, 인류가 어떻게 신화적 사고에서 합리적 사고로 발전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서사를 제시한다. 그는 역사를 단순한 사건의 나열이나 연대적 사실의 수집으로 보지 않고, 인간 정신의 표현으로 이해하였다.


특히 ‘신화–영웅–인간’이라는 세 단계의 역사 발전 모델을 제시하며, 사회는 처음에는 종교적이고 상징적인 상상력에 기반한 신화적 시대에서 출발하여, 점차 영웅 중심의 도덕적 시대를 거쳐, 이성적이고 평등한 인간 중심의 시민사회로 이행한다고 설명하였다. 이 과정은 단순히 기술이나 제도의 진보가 아니라 인간의 사고 방식, 언어, 법, 시, 제도 전체의 변화를 포함하는 총체적 발전이다. 비코는 “우리는 우리가 만든 것만을 진정으로 알 수 있다(verum factum)”는 명제를 중심에 두고, 수학과 자연과학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므로 진정한 이해의 대상이 되기 어렵고, 반대로 역사와 언어, 신화, 문화는 인간이 만든 것이므로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데카르트적 이성주의와는 대조되는, 인간적이고 해석학적인 역사 이해이다. 그는 이성과 논리를 넘어, 상상력과 시적 언어, 집단 기억 등 문화적 요인들을 역사 해석의 본질적 요소로 여겼다.


장-밥티스트 비코는 역사를 철학적 사유의 정당한 대상으로 재정립하고, 근대적 의미에서의 문화사, 문명사, 인식사의 기반을 마련한 사상가이다. 그는 계몽주의가 간과한 인간 경험의 다양성과 시간성, 상상력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후대의 헤겔, 니체, 딜타이, 콜링우드, 그리고 현대 인문학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역사란 단지 외부 사실의 축적이 아니라, 의미를 만들어내는 인간 정신의 표현이자 해석의 대상이라는 관점을 확립한 점에서, 그는 오늘날 '역사철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비코(Giambattista Vico)의 대표 저작 '새로운 과학(Scienza Nuova)'을 직역하면 “새로운 학문”이 될 수도 있지만, 그의 의도와 철학적 맥락을 고려하면 ‘새로운 과학’이라는 번역이 더 정확하고 적절한 표현이다. 여기서 말하는 ‘과학(Scienza)’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자연과학(science)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간 사회, 역사, 문화에 대한 체계적이고 근본적인 탐구를 의미하는 포괄적 개념이다.


따라서 “새로운 과학”은 인간이 만든 세계, 즉 법, 언어, 제도, 신화, 종교, 철학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의 인문과학적 탐구를 의미한다. 비코는 '새로운 과학'에서 자연과학의 방법론이 인간 세계를 설명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보았으며, 인간의 세계는 인간 자신이 만들었기에, 그것을 이해하는 데는 수학적 증명이 아니라 역사적·문화적 해석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것만을 알 수 있다(verum et factum convertuntur)”는 그의 유명한 명제는 바로 이 점을 명확히 드러낸다. 결론적으로, 'Scienza Nuova'는 단순한 철학적 저작이 아니라, 근대 역사학과 인문학의 방법론적 전환을 예고한 '인간 세계에 대한 과학', 즉 ‘새로운 과학’으로 번역되어야 그 의미가 온전히 전달된다.


인류의 역사는 신화시대, 영웅시대, 인간시대로 나누어진다


우리가 여기서 집중해야 할 것은 비코가 구분한 신화시대와 영웅시대, 인간시대는 위상학으로 보면 상층부와 표층부 그리고 심층부로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그리스로마시대의 신화시대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기반으로 사람들이 형이상학을 중심으로 생각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데카르트 이후에는 심신이원론을 통해서 형이상학과 신체와 서로 분리되고, 이후에 우리가 알아본 볼프와 비코를 통해서 신체보다 더 심층으로 내려가는 것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신체 이하로 물질의 세계를 보게 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시대이다. 인간의 시대인 물질의 시대 구분이 생기면 여기서 칸트의 구분인 '물자체'가 나온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이런 방식의 구분이 그냥 생기게 아니다. 칸트가 말하는 물자체와 인식체계 그리고 헤겔을 통한 변증법등은 이러한 신화시대와 영웅시대, 인간시대가 서로 하나의 통합된 방식으로 이해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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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도르세

콩도르세(Marie Jean Antoine Nicolas de Caritat, Marquis de Condorcet, 1743~1794)는 프랑스 계몽주의의 대표적 철학자이자 수학자, 정치사상가이며, 프랑스 혁명의 주요 인물 중 하나로 꼽힌다. 그는 계몽의 이성, 과학의 진보, 인간 정신의 완성 가능성을 굳게 믿은 낙관주의적 진보사관의 대표적 인물이며, 교육, 평등, 여성 권리, 노예제 폐지에 대해 혁신적 주장을 펼쳤다.

콩도르세는 수학자로서도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그는 확률 이론과 투표 이론에 대한 선구적 연구를 수행했으며, 특히 집단 선택 이론에서 오늘날까지도 회자되는 ‘콩도르세의 역설(Condorcet paradox)’을 제시했다. 이는 다수결 투표에서 개별 유권자들은 일관된 선호 순위를 가지고 있어도, 전체 집단의 선호는 순환 논리를 보이며 비일관적일 수 있음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이로써 그는 민주주의 제도 설계의 복잡성과 제도적 딜레마를 조명하였다.

철학자이자 정치사상가로서 콩도르세의 가장 중요한 저작은 '인간 정신 발전의 역사적 개요(Esquisse d’un tableau historique des progrès de l’esprit humain)'이다. 그는 이 책에서 인류의 역사는 무지와 억압으로부터 이성, 자유, 평등의 실현을 향해 나아가는 진보의 역사라고 보았다. 이 책은 인간 정신의 발전을 10단계로 나누어 설명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마지막 10단계에서는 프랑스 혁명을 통해 진정한 자유와 이성의 시대가 열리고, 교육을 통해 모든 인간이 완전한 발전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관점은 낙관적인 진보사관의 대표적인 표현이며, 계몽주의 정신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콩도르세는 또한 보편 교육을 통해 정치적 자유와 도덕적 개선이 가능하다고 믿었으며, 여성과 빈민, 노예 등 당대 사회에서 배제되었던 존재들에게도 이성과 평등의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여성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지지한 몇 안 되는 계몽주의자 중 한 명이며, 당시에는 급진적이었던 노예제 폐지와 식민주의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이로써 그는 계몽주의의 보편주의적 이상을 실질적으로 확장시킨 철학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는 점점 급진화되는 자코뱅파와 대립하게 되었고, 결국 체포령이 떨어진 후 은신 중 체포 직전에 독극물을 마시고 생을 마감했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 인간 해방과 이성의 진보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으며, 인간 정신 발전의 역사적 개요'는 유언과 같은 책이 되었다.

콩도르세는 계몽주의 이성주의와 진보주의를 정치철학, 역사철학, 교육철학으로 정교하게 발전시킨 인물이다. 그는 인간 이성의 잠재력을 굳게 믿었고, 그 잠재력이 실현되기 위해 필요한 민주주의, 교육, 평등, 자유의 구조를 사유하고 설계하려 했던 사상가였다. 그의 철학은 현대의 공화주의, 시민교육, 인권사상에 중요한 토대를 제공하고 있으며, 계몽주의의 가장 고결하고 인간주의적인 목소리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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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몽테스키외가 말한 법률들의 자연


몽테스키외에게 법은 인간의 의지 이전에 존재하는 어떤 질서이며, 모든 존재와 현상에는 그에 맞는 ‘자연의 법칙’이 있다고 보았다. 그는 “법이란, 사물의 본성으로부터 생기는 필연적인 관계이다”고 정의하면서, 자연법을 단순히 신의 명령이나 형이상학적 명제가 아니라, 현실의 세계가 작동하는 구조적 원리로 이해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자연'이란 물리적 자연만이 아니라, 인간 사회와 문화, 제도, 심성 등이 작동하는 내적 질서와 논리를 포함한다. 따라서 몽테스키외의 "법률들의 자연"이란, 인간 사회가 그 사회의 환경, 기후, 역사, 경제, 종교, 풍습 등과 내적으로 조응하는 법률 체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 개념이다. 이러한 입장은 법의 상대주의적 이해로 이어진다.


몽테스키외는 모든 사회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단 하나의 법이 존재한다고 보지 않았다. 이러한 방식은 상층부에서 내려오는 건설contruction이 아니라 심층부에서 올라오는 구성composition이라고 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전에 볼프에서 비코까지 오면서 상층부가 아니라 표층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루었다. 그리고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으로 가는 과정에서 로마인들의 삶에서 비코로 치면 '영웅시대'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붕괴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심층부에서 올라오는 '구성'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것이다. 이것은 법의 정신에서 삼권분립이 중요한게 아니라 삼권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는 것이 핵심이었다. 오늘날 몽테스키외를 잘못 읽고 있지만 이러한 상층부, 표층부, 심층부의 과정에서 보면 표층부의 바로 아래에서 표층부인 실제 혹은 일상으로 아브젝시옹되는 법이 건설이 아니라 구성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헌법이나 법률은 새로운 구성요건에 따라서 해석을 달리하거나 그 정초를 다시 세울 수 있게 된다.


법률들의 다양성은 '파라독사'로 설명된다


이어서 그는 각 사회의 ‘자연’, 즉 그 사회의 환경과 조건에 따라 다른 형태의 법과 정치체가 자연스럽게 생겨난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사막과 같이 기후가 가혹한 지역에서는 엄격한 규율과 전제주의적 질서가 생기기 쉽고, 온화한 지역에서는 자유롭고 온건한 정치제도가 발달하기 쉬운 것이다. 그는 이러한 '자연적 조건'이 법의 형성과 내용에 깊은 영향을 준다고 보았고, 따라서 법은 특정 사회의 전체적 구조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몽테스키외의 '법률들의 자연'이란, 법이 단순히 인간의 합의나 계약에 의해서만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각 사회의 자연적·문화적 조건과 본성에서 유기적으로 생성된다는 통찰이다. 이러한 시각은 오늘날 법사회학이나 정치인류학의 기초를 형성하며, 법을 고정된 도식이 아니라 역사적·사회적 맥락 속에서 살아 있는 질서로 이해하려는 관점으로 이어진다. 그는 이 개념을 통해 법과 정치, 제도와 인간 정신 사이의 유기적 관계를 설명하고자 했으며, 이는 계몽주의 시대의 보편주의적 경향 속에서도 상대주의적이고 구조주의적인 시각을 제시한 점에서 매우 독창적인 기여로 평가된다.




4. 몽테스키외가 본 로마인들 그리고 자유주의


'로마인들의 위대함과 그들의 몰락의 원인들에 대한 고찰들(Considérations sur les causes de la grandeur des Romains et de leur décadence)'은 몽테스키외가 1734년에 발표한 정치·역사 철학 저작으로, 로마 제국의 흥망성쇠를 정치체제, 도덕, 풍속, 군사, 정복의 논리 등 복합적인 요인을 통해 분석한 작품이다. 이 책은 그의 대표작인 '법의 정신'으로 가는 중요한 사유의 발판이며, 정치와 역사의 관계, 그리고 권력과 자유의 균형 문제를 탐구한 초기의 이론적 시도라 할 수 있다. 몽테스키외는 로마의 위대함이 단지 정복 전쟁의 성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로마 시민의 덕성(virtù), 공화정의 제도, 그리고 시민적 헌신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특히 초기 로마 공화정은 개인보다 공공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덕성, 엄격한 도덕, 절제된 자유, 그리고 국가를 위한 희생정신이 강하게 작동하던 시기였으며, 이러한 정치·도덕적 토대가 로마를 급속도로 성장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로마의 팽창이 자기모순적인 요소를 품고 있었다고 지적한다. 정복이 거듭되면서 부와 권력이 집중되고, 시민의 덕성은 점차 퇴락하며, 공공정신은 사적 이익과 사치, 부패로 대체되기 시작한다.


'고찰들'에서 몽테스키외는 로마의 몰락을 단순히 외부 민족의 침입이나 제국 말기의 황제들의 무능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내부의 제도적 붕괴, 즉 공화정의 쇠퇴, 자유의 소멸, 정치 권력의 집중, 군사력의 사적 이용, 경제 불균형 등이 구조적으로 결합되면서 로마가 스스로 자멸하게 되었다고 본다. 특히 그는 자유와 권력의 균형이 무너질 때 공화정은 반드시 몰락한다고 강조한다. 이 분석은 '법의 정신' 에서 발전된 권력 분립과 법의 지배 원리로 이어지는 중요한 사상적 연결고리이다. 또한 이 책은 역사를 단지 과거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정치적 교훈과 철학적 성찰의 대상으로 삼은 점에서 계몽주의 역사철학의 전형이다. 몽테스키외는 로마사를 통해 모든 제국과 국가가 반드시 직면하게 되는 도덕적 퇴폐와 제도적 붕괴의 위험을 경고하며, 위대한 문명이 스스로를 어떻게 무너뜨리는지를 사유의 도구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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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제국의 위대함이 내부의 자유와 덕성 위에 세워질 때만 지속될 수 있다고 보았으며, 그 위대함이 자신이 만들어낸 힘에 의해 역설적으로 무너지는 과정을 예리하게 분석했다. 이것을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상층부, 표층부, 심층부로 보면 표층부의 위대함이 상층부의 형이상학에 포섭되어 버릴 때 로마와 같은 제국도 멸망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로마인들의 위대함과 몰락의 원인들에 대한 고찰들' 은 고대사의 사례를 통해 근대 정치철학의 핵심 문제들인 권력, 자유, 제도, 도덕, 역사적 필연성을 탐색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저작은 단순한 역사 분석서가 아니라, 정치의 도덕적 기반과 제국의 구조적 취약성에 대한 깊은 성찰이며, 몽테스키외가 훗날 '법의 정신'에서 펼치게 될 권력 분립론과 공화주의적 자유 개념의 이론적 전조로 평가된다. 표층부의 지속과 발전이 법을 통해서 공화정으로 발전하게 되고 공화정을 유지하는 자유주의에 대한 태도로 연결된다.


이러한 입장에서 몽테스키외는 자유주의를 어떻게 해석했을까?


몽테스키외의 자유주의는 근대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초석을 마련한 사상으로, 특히 법의 지배, 권력분립, 절제된 자유의 원리를 강조한다. 몽테스키외는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공동체가 질서 있게 유지될 수 있는 정치 체계를 고민하였으며, 그가 말하는 자유는 무제한적 자율이나 무정부적 자유가 아니라, 법 아래에서 안전하게 보호받는 상태이다. 몽테스키외에게 자유란 단순한 방종이나 모든 것을 원하는 대로 하는 상태가 아니다. 그는 '법의 정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유란, 법이 허락한 것을 행할 수 있는 권리이다." 이는 자유가 법과 제도의 질서 안에서만 보장될 수 있으며, 자의적인 권력의 개입이 배제된 상태에서만 개인은 자유롭다고 보는 입장이다. 따라서 그의 자유 개념은 오늘날 법치주의적 자유주의 또는 제도적 자유주의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특히 공포를 기반으로 한 전제정과 자유는 양립할 수 없다고 보았으며, 권력이 법 위에 군림하거나 제약 없이 행사되는 경우, 시민의 자유는 필연적으로 침해된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자유 개념을 실현하기 위한 몽테스키외의 핵심 정치 원리는 바로 권력분립(separation of powers)이다. 그는 권력은 본성상 남용되기 쉬운 것이므로, 이를 막기 위해선 입법, 행정, 사법의 권력을 분리하고 상호 견제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단순한 행정 기구의 구분이 아니라, 시민의 자유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구조적 장치이다. 각 권력이 고유한 영역을 갖고, 서로를 견제하는 상태에서만 권력은 절제되고, 자유는 유지될 수 있다. 이러한 권력분립론은 오늘날 입헌주의, 대의제, 민주주의 제도의 기초가 되었으며, 자유주의 국가 이론의 핵심 요소가 되었다. 몽테스키외의 자유주의는 또한 중용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그는 극단적인 평등, 극단적인 자유, 극단적인 권위주의 모두가 사회를 위협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자유는 항상 자기 절제와 제도적 견제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의 자유주의는 개인의 권리를 절대화하는 근대적 자유주의와는 구별되며, 질서와 공동체 속에서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려는 현실적·제도적 자유주의라고 할 수 있다.


몽테스키외의 자유주의는 ① 법에 의한 자유, ② 권력의 분립과 견제, ③ 절제된 자유를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 ④ 공포가 없는 상태로서의 정치적 안전, ⑤ 극단을 피하는 중용의 정치철학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그는 자유를 추상적 개념이 아닌, 정치구조와 법적 장치 위에 실현되는 구체적 상태로 보았으며, 이를 통해 근대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실천적 기초를 제공하였다. 이러한 구분은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심층부에서 올라오는 법의 정신이 실은 이미 인간의 신체 안에 있었고 그것들을 귀납법적으로 뽑아내어 구성하는 것이 바로 법의 정신의 핵심이다. 이것을 잘못읽으면 법의 '정신'이기 때문에 사변적이고 추론적인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지난시간부터 우리가 살펴본 이신론적 배경을 이해한다면 '신체화된 정신'이 법의 정신과 만나는 지점이 바로 표층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상층부와 심층부에 어디에도 몰락하지도 않고 표층부를 유지하면서 공화주의를 지키는 요인이 된다.


XL


질들뢰즈와 표층부

질 들뢰즈의 '의미의 논리(Logique du sens, 1969)'는 전통적인 의미 이론을 해체하고, 의미를 존재론적·사건론적 개념으로 새롭게 사유한 저작이다. 들뢰즈는 이 책에서 의미를 단순히 언어적 지시나 해석의 결과로 보지 않고, 존재의 표면에서 발생하는 사건(event)으로 정의한다. 의미는 심층에 숨어 있는 본질이 아니라, 표면에서 일어나는 접힘과 펼침, 충돌과 전이의 운동이다. 이러한 사유를 통해 그는 플라톤적 심층철학과 프로이트적 해석주의, 데카르트식 본질주의를 비판하며, 철학을 심연의 탐구가 아닌 표면의 생성성에 대한 실험으로 전환시킨다.

들뢰즈는 의미를 존재론의 중심 문제로 끌어올리며, 사건이라는 개념을 통해 ‘의미란 존재의 비물질적 변화’라고 설명한다. 사건은 시간과 언어, 신체의 접면에서 발생하는 변형이며, 의미는 그 사건의 효과로 나타나는 흐름이다. 이처럼 의미는 고정된 실체나 개념이 아니라, 차이와 반복의 리듬 속에서 계속 생성되고 붕괴되는 운동 그 자체이다. 의미는 말과 몸, 정동과 힘의 경계선에서 생겨나는 일시적인 접힘이며, 실재와 비실재의 중간지대에 놓인 존재론적 효과이다.

이 책의 독특한 구성은 루이스 캐럴의 언어유희와 정신병리학의 사례를 철학적으로 결합하는 방식에서 드러난다. 들뢰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모순적인 말장난과 유아적 언어 구조, 그리고 강박증, 히스테리, 조현병과 같은 정신병의 언어적 징후들을 분석하면서, 의미는 규범적 언어 질서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의미, 유희, 탈구조화의 틈새 속에서 탄생한다고 주장한다. 의미는 병리적 상태나 상상력의 과잉 속에서도 자기만의 논리를 따라 생성되며, 이는 전통 철학이 배제해온 광기와 어린아이의 언어가 오히려 의미의 생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들뢰즈에게 의미는 단지 해석이나 전달의 문제가 아니다. 의미는 윤리적이며 정치적이며 존재론적인 사건이다. 그것은 실체적이지 않지만 실재에 영향을 미치며, 언어, 신체, 권력, 사회 질서 속에서 지속적으로 작용한다. 그는 이러한 의미의 ‘표면적 존재’를 통해 전통 형이상학이 추구하던 본질 중심의 사고를 해체하고, 의미를 생성의 장, 차이의 운동, 사건의 리듬으로 재구성한다. '의미의 논리'는 들뢰즈 철학의 핵심 개념들—차이, 반복, 시뮬라크르, 되기, 표면—이 응축된 책으로, 철학이 언어와 존재를 사유하는 방식에 근본적인 전환을 가져온 실험적 사유의 성과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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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나오기


오늘은 볼프에서 미코로, 미코에서 몽테스키외로 넘어왔다. 류종열 선생님의 강의는 들뢰즈에서 시작하지만 과거를 상층부, 표층부, 심층부로 나누고 그 과거에서 시작한 이데아와 프시케, 물리적 존재들이 어떻게 변곡점을 지나서 서로 변화를 만들어내고 위치지어졌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강의다. 내가 보기에는 들어본 강의 중에서 최고의 강의이다. 물론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 많은 시간들이 들어가지면 내가 나름대로 완성한 아래 그림은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 10년만에 다시 철학아카데미를 찾으면서 그 동안 잊고 있었던 구조와 구성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오늘은 몽테스키외가 말한 '법의 정신'이 정신이라는 것에 현혹되지 않으면 그것은 오히려 심층부에서 올라오는 법의 실제라는 것을 배웠다. 이 부분을 알고 나면 삼권분립도 이해가 되고 이 후에 법의 정신이 각 나라로 돌아가서 어떻게 구조화되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다음시간에는 꽁이약과 데이비드 흄 그리고 아담 스미스를 이러한 위상학적 관점에서 알아보려고 한다. 정말 끝이 없다. 공부는. 그렇지만 너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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