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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철학일기

칸트에게 오성이란 무엇인가?

철학아카데미_에밀브르너의 서양철학사 마지막시간

by 낭만민네이션

코로나가 전세계를 휩쓸던 시기 미국에서는 신실재론이 다시 부각된다. 코로나가 유행이 되면서 인간의 주관적인 해석과 무관하게 실재적인 위협이 등장하게 되었다. 탈진실과 상대주의시대에 과학적 사실과 데이터가 코로나의 확산과 해결에 더욱 큰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인간은 코로나 앞에서 무력한 존재였고, 인간의 생각이나 이념보다 과학적인 사실과 물질이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전까지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이해와 존중의 분위기가 한 순간에 바뀌게 되고, 오히려 불확실성 속에서 확고한 기반을 찾으려는 노력이 깊어진다. 이것이 바로 물질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신실재론의 특징은 존재론으로 회귀이며, 그 존재론 중에서도 물질계 혹은 현상계에 더 집중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역사 속에서 거대한 빛을 비췄던 칸트의 '물자체'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신실재론은 사실 칸트에게로 돌아가서 다시 사유한다는 의미에서 신칸트론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긴 시간이었지만 다시 철학아카데미에 다니면서 류종열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있다. 에밀 부르너의 서양철학사를 다루면서 특히 18세기 프랑스철학을 다룬다. 물론 칸트는 프랑스철학자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철학은 독일철학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18세기를 살펴볼려면 독일철학을 봐야 한다. 특히 실재론 혹은 물질계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순수이성비판'과 '물자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신실재론의 주요 특징 및 개념

포스트모더니즘 비판: 신실재론은 모든 것이 주관적으로 구성된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극단적인 상대주의와 구성주의에 반대합니다. 세상에는 인간의 인식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객관적인 실재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세계' 개념의 폐기: 마르쿠스 가브리엘은 '모든 것을 포괄하는 무제약적 총체성'으로서의 '세계' 개념을 부정합니다. 대신 다양한 '의미장(field of sense)'이 존재하며, 각 의미장에서 대상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나타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왼손'은 몸이라는 의미장에서는 신체의 일부지만, 화가의 작업실이라는 의미장에서는 예술 작품이 될 수 있습니다.

존재론적 다원주의: 신실재론은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상상, 픽션, 신화, 도덕적 가치 등도 각자의 의미장 속에서 실재한다고 주장하며, 존재의 위계를 무너뜨립니다. 유니콘이나 마녀처럼 실제 물리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더라도, 그것들이 특정한 의미장 속에서 존재하는 방식이 있다고 봅니다.

인식과 실재의 관계: 인식 주체와 외부 세계를 구분하면서도, 지각이 실재의 장 속에서 우리와 대상이 접촉함으로써 생겨나는 관계(지각의 유출 모델)로 이해합니다. 즉, 우리가 대상을 지각하기 이전에 이미 대상 자체가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디지털 시대의 현실 비판: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정보가 방대해지고 가짜 뉴스와 포퓰리즘이 확산되면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진 현상을 비판합니다. 신실재론은 이러한 '표상의 위기' 속에서 객관적인 실재를 다시 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특히 마르쿠스 가브리엘은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한 우리의 자발적인 노동이 광고 수익 증대에 이용되는 현실을 '디지털 프롤레타리아'라는 용어로 비판하기도 합니다.

마르쿠스 가브리엘(Markus Gabriel): 독일 본 대학교 철학과 석좌교수로, 현재 신실재론의 가장 영향력 있는 주창자 중 한 명이다. 그는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뇌가 아니다', '의미의 장 존재론' 등의 저서를 통해 모든 것을 포괄하는 '세계' 개념을 부정하고, 다양한 '의미의 장' 속에서 객관적인 실재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과 자연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견지한다.

마우리치오 페라리스(Maurizio Ferraris): 이탈리아 토리노 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문서됨의 존재론'과 '다큐멘털리티' 개념을 통해 신실재론을 전개한다. 그는 특히 디지털 시대에 정보와 기록이 갖는 실재성을 강조하며, 우리의 사회적 관계와 현실이 어떻게 문서화되고 구성되는지를 탐구한다. 데리다 철학에 영향을 받았으나 이후 독자적인 신실재론의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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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메이야수는 왜 칸트를 비판했나?


칸트로 들어가기 전에 최근 유행하고 있는 신실재론 혹은 사변적 실재론의 대가인 메이야수에 대해서 알아보고, 메이야수가 칸트를 왜 비판했는지 알아보자. 먼저 메이야수가 칸트를 비판한 핵심적인 이유는 '상관주의(correlationism)' 때문이다. 칸트는 자신의 철학에서 인간의 사유는 주체로서 존재하는 객체들에 대해서 항상 서로에게 상관만 되어 있을 뿐, 인간의 의식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재 자체는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러니깐 물자체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메이야수는 바로 이 상관주의적 입장이 철학을 인간의 유한한 인식 틀 안에 가두고, 진정한 의미의 절대적 실재에 대한 탐구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보았다.


메이야수의 칸트비판

객관적 실재에 대한 접근 제한: 칸트는 우리가 세계를 인식할 때, 우리의 감성과 오성이라는 선험적 형식과 범주를 통해서만 대상을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우리는 현상계(phenomena)만을 인식할 수 있고, 현상계 너머의 물자체(noumena)는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메이야수는 이러한 칸트의 입장이 인간의 인식을 기준으로 실재를 제한하고, 인간의 인식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절대적 실재의 가능성을 배제하는 오류를 범한다고 비판한다.

'선조성(Ancestrality)' 논증: 메이야수는 칸트의 상관주의를 반박하기 위해 '선조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는 인간이 존재하기 훨씬 이전의 사건들, 예를 들어 빅뱅, 지구 탄생, 생명체 출현 등과 같은 과학적 사실들을 우리가 객관적으로 다룰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만약 모든 존재가 인간의 의식에 상관되어 있다면, 인간이 존재하기 이전의 사건들은 어떻게 객관적으로 알려질 수 있겠는가? 메이야수는 과학이 다루는 이러한 '선조적' 사실들이야말로 인간의 의식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절대적 실재의 존재를 증명하며, 이는 상관주의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형이상학적 탐구의 봉쇄: 칸트 이후의 상관주의적 철학은 '물자체는 알 수 없다'는 결론을 통해 형이상학적 탐구의 가능성을 봉쇄했다고 메이야수는 비판한다. 그는 상관주의가 철학이 절대자에 대해 사유하는 것을 포기하게 만들었고, 이는 결국 상대주의와 허무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메이야수는 사변적 사유를 통해 절대자에 대한 사유를 회복하려고 시도한다.

인간 중심주의적 관념론: 메이야수는 칸트 이후의 상관주의 철학을 인간을 중심으로 실재에 접근하려는 일종의 관념론으로 비판한다. 그는 칸트의 '비판' 이후의 철학이 "프톨레마이오스적 반혁명"이라고 비판하며, 주관의 표상 작용으로 세계를 환원하는 칸트의 초월적 관념론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아니라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에 가깝다고 본다.


메이야수는 칸트가 설정한 인간 인식의 한계, 즉 '상관주의'가 인간의 의식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절대적 실재에 대한 탐구를 방해하고 있다고 보았다. 사실 칸트철학에서 '신'과 같은 영혼의 문제는 더 이상 다룰 수 없고, 인간의 주관이 모든 것들을 설명할 수 있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관념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칸트의 물자체, 아프리오리, 주지주의는 궁극적으로 철학의 가능성을 제한했다고 메이야수는 비판한다. 그는 '선조성'과 '우연성'을 통해 칸트적 상관주의를 극복하고, 인간의 인식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절대적 실재를 사유하려는 시도를 한다.


쿠엔틴 메이야수(Quentin Meillassoux) 주요 주장

메이야수(Quentin Meillassoux)는 현대 프랑스 철학의 주목받는 인물로, 1967년생이다. 그는 '사변적 실재론(Speculative Realism)'이라는 새로운 철학 운동의 핵심 주창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사변적 실재론은 칸트 이후 서양 철학에서 지배적이었던 상관주의(correlationism)를 극복하고, 인간의 의식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절대적 실재(absolute reality)를 다시 사유하려는 시도이다.

상관주의 비판: 메이야수는 칸트 이래로 서양 철학을 지배해 온 상관주의를 가장 강력하게 비판한다. 상관주의란 '생각 없는 존재는 없고, 존재 없는 생각은 없다'는 주장으로, 인간의 사유(주체)와 존재(객체)가 항상 서로에게 상관되어 있을 뿐, 인간의 의식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재 자체는 알 수 없다는 입장이다. 메이야수는 이러한 상관주의가 철학적 한계를 설정하고, 우리로 하여금 절대적 실재에 대한 접근을 포기하게 만든다고 본다.

우연성(Contingency)의 절대화: 메이야수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필연적 이유 없이 우연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어떤 것도 필연적으로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으며, 심지어 비필연성(non-necessity) 자체만이 유일한 필연성이라고 본다. 즉, 모든 것이 다르게 존재할 수도 있었고, 심지어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절대적 우연성은 전통적인 철학적 필연성의 개념을 전복시킨다.

형이상학적 유물론: 메이야수의 철학은 일종의 형이상학적 유물론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는 수학적 실재론을 옹호하며, 세계의 근본적인 실재가 수학적 법칙과 같은 합리적 구조를 가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의 주장은 경험적 세계의 우연성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근본적인 질서가 존재할 수 있음을 나타낸다.

메이야수의 철학은 현대 철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주관주의와 상대주의에 대한 비판적 대안을 제시하며, 과학적 실재론과 형이상학적 탐구의 가능성을 다시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그의 급진적인 주장, 특히 절대적 우연성에 대한 강조는 논란의 여지를 남기기도 한다.



2. 칸트에게 오성은 무엇인가?


오성이라는 말은 한국어로는 이해가 잘 안간다. 그러나 칸트에게 오성은 영어로 Understanding이다. 그러니깐 세상을 이해하는 것은 이미 인간에게 주어져있으며 인간이 다른 동물과의 차이를 보이는 특징이기도 하다. 칸트가 보기에 오성은 인간의 인식 능력 중 핵심적인 부분이다.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단순히 대상을 이해하는 능력을 넘어, 감각적 경험을 질서화하고 개념화하여 객관적인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사유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칸트는 인간의 인식을 감성, 오성, 그리고 이성으로 구분한다. 칸트의 이러한 논증은 한번에 나온게 아니라고 다양한 논문과 책들을 통해서 하나하나 밝혀낸다. 먼저 오성은 다음과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


생애와 저술들

불에 관한 논문(De Igne, 1755) (1755년[서른하나])

형이상학적 인식의 초기원리들에 대한 새로운 해명(1755)」

자연학적 단자론 (1756)

자연 철학에서 기하학과 결합된 형이상학에 대한 용법, 1부 자연학적 단자론(1756)

감각적 세계와 지성적 세계의 원리들과 형식에 대하여(1770)[마흔여섯] 취임논문

물리학, 힘, 운동과 정지 등에 관하여

지리학, 지구회전, 지구, 지진, 바람 등에 관하여

천문학, 자연과 하늘에 관하여

순수이성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 1781, 재판: 1787년)

학문으로서 등장할 수 있는 모든 장래의 형이상학을 위한 서설(1783)

세계시민주의 관점에서 보편사의 관념(1784)

인간 종의 개념규정(Bestimmung des Begriffs der Menschenrace, 1785)

풍습들의 형이상학의 기초(1785)

자연과학의 형이상학적 최초 원리들(1786)

자연권의 원리에 관한 고트리프 후펠란트의 탐구에 관한 검토(1786) Naturrechts

실천이성비판(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1788)([예순넷])

철학에서 목적론적 원리의 사용에 관하여(1788)

판단력비판(Kritik der Urteilskraft, 1790)([예순여섯])

신학에서 모든 철학적 탐구의 좌초에 관하여(1791)

순수[이법]이성의 한계 내의 종교(1793)[종교, 이법 안에서]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1795)

풍습들[윤리]의 형이상학(1797)

역량들의 충돌(1798)


칸트는 생각보다 많은 저술을 남겼다. 아마도 시골에서 할 일이 별로 없어서 매일 고민하고 산책하면서 자신이 말하는대로 '오성'을 통해서 자신의 이성을 발달시키고 이것을 '감성'으로 다시 피드백해보는 시간을 가진 것은 아닐까? 대략 유럽의 철학자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론'적 개념은 언제나 '박사논문'혹은 '교수자격 취임 논문'에 들어 있다. 아래와 같이 칸트가 쓴 책들을 보면 칸트가 가지고 있는 순수이성, 실천이성, 판단력비판의 관점에서 볼 수 있다. 먼저 책들을 한번 쭉 훑어보자. 대략 1755년부터 시작해서 자연과 물질, 이성과 생각, 신념과 세계에 대해서 다양한 저술을 남겼다. 이를 통해서 먼저 '오성'에 대한 이해를 가져보면 앞으로 펼쳐갈 칸트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해볼 수 있다.


칸트에게 오성의 핵심 역할

개념화 능력 : 오성은 감성으로 주어진 혼돈스러운 감각 자료들을 특정한 개념(concepts) 아래로 포섭하여 질서를 부여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다양한 색깔과 형태를 감각적으로 받아들일 때, 오성은 그것들을 '책', '의자', '나무'와 같은 개념으로 묶어 인식하게 한다.

선험적 성격 : 오성은 경험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 선천적으로 내재된 능력이다. 칸트는 오성이 지닌 선천적인 개념들을 범주(Categories)라고 불렀다. 이 범주들은 경험에 앞서 존재하며, 모든 가능한 경험을 구성하고 인식하는 데 필수적인 틀을 제공한다. '인과성', '실체', '양', '질' 등이 오성의 순수 범주에 해당한다.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능력 : 감성이 대상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능력이라면, 오성은 대상을 적극적으로 사유하고 구성하는 능동적인 능력이다. 오성은 범주를 통해 감각 자료들을 종합하고 통일하여 하나의 객관적인 인식으로 만들어낸다.

객관적 인식의 토대 : 오성의 역할은 단순히 주관적인 인상을 넘어, 보편타당하고 객관적인 인식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이다. 칸트에게 과학적 지식이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이유도 바로 오성의 선험적인 범주들이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성과의 구별점 : 오성은 현상계(phenomena), 즉 경험을 통해 우리에게 나타나는 세계를 인식하는 능력이다. 오성은 감각적으로 주어지는 것에 한정되어 작용하며,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진리를 낳는다. 이성은 물자체(noumena)나 '세계 전체', '영혼', '신'과 같은 초경험적인 이념들을 다루는 능력이다. 이성은 경험의 한계를 넘어 사유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칸트에 따르면 이성의 순수 사변적 사용은 객관적인 인식을 낳지 못하고 오류(이율배반)에 빠지기 쉽다. 이성의 진정한 역할은 이론 인식이 아니라, 주로 실천 이성(practical reason)으로서 도덕적 판단과 행위를 이끄는 데 있다.



3. 교수취임 논문_감성계와 지성계의 형식과 원리들에 관하여


칸트가 1770년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의 논리학 및 형이상학 정교수로 임명되면서 제출한 취임 논문은 '감성계와 지성계의 형식과 원리들에 관하여(De mundi sensibilis atque intelligibilis forma et principiis dissertatio'이다. 이 논문은 라틴어로 작성되었으며, 칸트 철학의 핵심적인 전환점이자 이후 그의 비판 철학, 특히 기념비적인 저서인 '순수이성비판'의 사상적 토대를 마련한 매우 중요한 저작으로 평가받는다. 이 시기 이후 칸트는 '비판적 시기'로 진입하게 되며, 이는 서양 철학사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칸트 저작의 위대함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지금까지 세계가 이해해오던 방식을 뒤집어서 감성과 지성의 영역이 어떻게 분리되는지를 교수취임 논문에서부터 주장하낟.


칸트는 이 논문에서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를 근본적으로 두 가지 영역으로 명확하게 구분한다. 첫째는 감성계(mundus sensibilis)이다. 이는 우리의 감각 기관을 통해 직접적으로 경험하고 지각하는 현상들의 세계를 의미한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맡고, 손으로 만지는 모든 것은 감성계에 속한다. 이 세계는 우리의 감각 능력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형식에 의해 구성되며, 따라서 우리의 인식 주관에 상대적이다. 칸트는 감성계를 "감성적 직관"의 대상이자 "현상"의 세계라고 규정한다. 감성계의 대상들은 우리에게 "나타나는" 방식대로만 인식될 수 있으며, 그 자체로 어떻게 존재하는지는 감성적으로 파악할 수 없다. 감성계는 우리가 보통 오감이라고 하는 부분을 가리킨다. 사실 나는 한때 칸트에 대한 몰이해로 이러한 감성계가 '오성'의 핵심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와서 보니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것도 같다.


둘째는 지성계(mundus intelligibilis)이다. 이는 감각적 경험을 초월하여 오성에 의해서만 파악될 수 있는 세계이다. 지성계는 감각적 속성이 제거된 순수한 사유의 대상이며, 사물 그 자체의 본래적인 모습, 즉 물자체(Ding an sich)가 존재하는 세계이다. 칸트는 이 논문에서 지성계가 "감각적 주관성에서 벗어난" 세계이며, "그 자체로 존재하는 사물들의 세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동시에 칸트는 인간의 오성이 물자체 자체를 직접적으로 인식할 수는 없다는 한계를 암시하기 시작한다.여기서 조금 더 이해가 필요하다. 감각으로 우리는 '데이터'를 얻지만 그것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을 가지고 나름대로 자신의 지성계 내부에서 세계를 다시 프로젝션해야 한다. 그러니깐 자신이 모든 데이터로 자신이 세계를 이해한 정보의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칸트는 물자체는 알 수 없고 그것을 인식하는 것 자체만 알 수 있다고 했다.


원료는 감성계이지만 그것을 구성하는 것은 바로 지성계인 것이다. 여기에서 바로 '오성'의 개념이 나온다. 인간은 노력하지 않아도 스스로 질서를 지우고, 구분하고, 합치고, 구성한다. 이것이 바로 오성의 능력이다. 나는 이러한 오성의 능력을 감각계 자체로 오해하고 있었던 것도 같다. 교수취임 논문의 가장 혁신적이고 후대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부분은 바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칸트의 새로운 해석이다. 이전까지 많은 철학자들은 시간과 공간을 외부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실재적 실체이거나, 혹은 사물 그 자체의 본래적인 속성으로 여겼다. 예를 들어 뉴턴은 시간과 공간을 절대적이고 독립적인 틀로 보았다. 그러나 칸트는 이러한 전통적인 관점을 완전히 뒤집는다.


칸트는 시간과 공간이 사물 그 자체에 속하는 속성이거나 외부 세계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우리의 인식 주관에 선천적으로 내재된 '순수 직관 형식'이라고 주장한다. 즉, 시간과 공간은 우리가 대상을 지각하고 경험할 때 필연적으로 사용하는 우리 마음의 선험적(a priori) 틀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보든, 그것은 반드시 시간과 공간 안에 존재해야만 우리에게 인식될 수 있다. 이는 마치 색안경을 끼면 세상이 그 색깔로 보이는 것처럼,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 자체가 이미 시간과 공간이라는 형식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의미이다. 이로써 칸트는 자신의 철학적 체계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인 '초월적 관념론'의 씨앗을 뿌리게 된다. 세계를 구성하는 것은 세계를 초월해서 관념 안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인식 능력과 형이상학적 탐구

감성(Sinnlichkeit): 이는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감각적 소재(경험의 내용)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수용 능력이다. 감성은 대상을 직관하는 능력이며, 시간과 공간이라는 순수 직관 형식을 통해 감각 자료를 질서화한다.

오성(Verstand / Understanding): 이는 감성적 직관을 통해 주어진 내용들을 개념으로 통일시키고 질서를 부여하는 능동적인 사유 능력이다. 오성은 단순히 대상을 파악하는 것을 넘어, 개념을 통해 대상을 판단하고 인식하는 역할을 한다. 이 논문에서는 오성의 역할이 감각적 경험을 넘어서는 형이상학적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이성(Vernunft / Reason): 이 논문에서는 이성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 아직 완전히 확립되지 않았지만, 이후 칸트의 비판 철학에서 이성은 오성의 한계를 넘어서는 초월적인 이념들을 탐구하고, 도덕적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최고 단계의 인식 능력으로 발전한다.


1770년의 취임 논문은 칸트가 라이프니츠-볼프 학파의 합리론과 뉴턴의 경험론적 과학 사이에서 자신의 독자적인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이 논문은 칸트가 직관과 오성을 명확히 구분하고, 시간과 공간을 주관적 형식으로 이해하며, 형이상학적 인식이 감성적 경험과 구별되는 순수 사유에 기반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이후 '순수이성비판'에서 전개될 초월적 관념론의 핵심 논의들을 예고하고 있다. 이 논문 이후 칸트는 약 10년간의 '침묵의 시기'를 거쳐, 1781년 '순수이성비판'을 통해 자신의 철학적 체계를 완성하게 된다.



4 .어떻게 한 대상이 오성(der Verstand)의 개념에 응답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한 대상이 오성(der Verstand)의 개념에 응답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이마누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의식 중 하나이자, 그의 초월적 관념론과 선험적 종합 판단의 가능성을 설명하는 데 필수적인 물음이다. 칸트는 우리의 인식이 단순히 외부 대상의 자극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오성(der Verstand)의 능동적인 작용을 통해 비로소 객관적인 경험으로 구성된다고 주장한다. 즉, 대상이 오성의 개념에 응답한다는 것은, 대상이 오성의 개념에 의해 구성됨으로써 비로소 인식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아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감성은 그 재료가 되며, 감성을 통해 얻는 자연스러운 데이터는 자동적으로 오성을 통해서 질서지어지고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는 지식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이것을 초감각적인 세계에서 다시 구성함으로써 이성이 만들어 진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볼 때, 그 대상은 반드시 공간 속에 존재하며, 그 변화는 반드시 시간 속에서 일어난다. 시간과 공간은 경험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감각적 경험에 앞서 우리 마음속에 내재된 순수 직관 형식이다. 따라서 감성으로 주어진 감각 다발들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틀 안에 놓여 비로소 현상(Erscheinung)으로 형성된다. 예를 들어, 빨갛고 딱딱한 감각 다발은 '책상'이라는 현상으로 우리에게 나타나기 위해 시간과 공간이라는 질서 속에 위치하게 된다. 이 현상은 대상 그 자체(물자체, Ding an sich)는 아니지만, 물자체가 우리의 감성적 형식에 의해 가공된, 오성(Verstand)이 사유할 수 있는 유일한 '인식 자료'가 된다.


칸트는 오성에 선험적으로 내재된 순수 개념들, 즉 범주(Kategorien)들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 범주들은 경험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 오성의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사유 형식으로서, 모든 가능한 경험을 구성하는 틀을 제공한다. 칸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표를 비판적으로 재구성하여, '양(단일성, 복수성, 전체성)', '질(실재성, 부정성, 제한성)', '관계(실체-속성, 원인-결과, 상호작용)', '양상(가능성-불가능성, 존재-비존재, 필연성-우연성)' 등 총 12가지 범주를 제시했다. 이 범주들은 마치 우리가 어떤 데이터를 분석하기 위해 특정 프로그램이나 분류 기준을 적용하는 것과 유사하다.


http://www.epicurus.kr/Humanitas_N/424941


자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대상이 오성의 개념에 응답한다는 것은, 감성에 의해 직관된 현상들이 오성의 범주에 의해 능동적으로 통일되고 종합되어 객관적인 인식 대상으로 구성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오성은 감성으로 주어진 현상들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 범주들을 적극적으로 적용하여 현상들을 특정한 방식으로 연결하고 조직한다. 칸트는 이를 '경험의 종합(Synthesis der Erfahrung)'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사건을 경험할 때, 우리는 단순히 시각, 청각 등 분리된 감각 다발들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오성은 '인과성' 범주를 적용하여 그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파악하고, '실체' 범주를 통해 그 사건의 주체를 인식하며, '양' 범주를 통해 사건의 크기를 파악한다. 이렇게 범주가 적용됨으로써 비로소 현상들은 혼란스러운 감각 다발이 아닌, 일관성 있고 의미 있는 객관적 대상으로 구성된다. 즉, 대상이 오성의 개념에 "응답한다"는 것은, 대상이 오성의 범주에 의해 비로소 "인식 가능한 존재"로 구성된다는 의미이다. 칸트에게 경험은 오성의 범주를 통해 현상들이 종합되는 과정이며, 이러한 종합을 통해서만 우리는 객관적인 인식을 가질 수 있다. 이렇게 종합할 수 있는 능력인 '오성'을 통해서 우리는 이제 더 깊고, 복잡한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이성의 작용이다. 모두가 이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 전에 오성의 역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성의 기능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칸트는 이러한 감성으로 주어진 현상들이 오성의 범주에 의해 필연적으로 통일될 수 있는 가능성을 '선험적 조화(a priori harmony)'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우리의 인식 주관이 지닌 선험적인 형식들(시간, 공간, 그리고 오성의 범주)이 외부 대상의 현상과 상호 작용하여 객관적인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 대상이 오성의 개념에 응답한다는 것은 대상 자체가 오성 개념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오성의 순수 범주들이 감성으로 주어진 현상들을 능동적으로 종합하고 통일하여 객관적인 인식 대상으로 구성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칸트는 경험적 대상의 객관성과 보편성을 보장하면서도, 인식의 주관적이고 선험적인 조건을 동시에 강조하는 독창적인 인식론을 확립하게 된다. 이는 서양 철학에서 인식의 주체와 객체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한 혁명적인 통찰로 평가받는다.



5 . 칸트 이후 칸트철학은 어떻게 발전하는가?


이마누엘 칸트의 비판 철학은 18세기 후반 등장한 이후,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서양 철학의 흐름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칸트의 사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크게 후기 칸트주의(Post-Kantianism)와 신칸트주의(Neo-Kantianism)라는 두 가지 주요 흐름이 나타났다. 이들은 칸트 철학에 대한 각기 다른 반응과 계승 방식을 보이며, 그 접근 방식과 강조하는 측면에서 중요한 차이를 드러낸다.


후기 칸트주의: 절대적 관념론으로의 비약

후기 칸트주의는 주로 칸트의 직접적인 지적 계승자들인 독일 관념론의 주요 인물들, 즉 피히테, 셸링, 헤겔을 지칭한다. 이들은 칸트 철학의 특정 측면을 계승하면서도, 동시에 그들이 보기에 칸트 철학이 지닌 내재적인 한계점, 특히 '물자체(Ding an sich)' 개념을 비판적으로 극복하려 했다.

칸트가 물자체를 인식 불가능한 영역으로 남겨둔 것은 철학적 체계의 완결성을 저해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칸트가 설정한 인식의 한계를 뛰어넘어 '절대적인 것'을 파악하려는 시도를 감행했다. 피히테는 '절대적 자아'를 통해, 셸링은 '절대적 동일성'을 통해, 헤겔은 '절대정신'의 변증법적 발전을 통해 세계 전체를 포괄하는 거대한 사변적 체계를 구축하려 했다. 이들은 칸트의 비판 철학을 발판 삼아 사변적이고 형이상학적인 탐구를 통해 절대적인 것을 종합하려 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신칸트주의: '칸트로 돌아가자'는 비판적 계승

신칸트주의는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까지 독일 철학계에서 크게 유행했던 사조이다. 이들은 당시 유럽 철학을 지배하던 유물론, 실증주의, 심리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칸트로 돌아가자(Back to Kant!)"는 슬로건을 내걸고 칸트 철학의 '비판 정신'과 '선험적 방법론'을 다시 살리려 했다. 하지만 이들은 칸트의 모든 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보다는,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칸트의 특정 측면을 재해석하고 현대 학문의 요구에 맞게 발전시키려 했다.


신칸트주의는 크게 두 학파로 나뉜다. 마르부르크 학파는 코헨, 나토르프, 카시러 등을 중심으로 이론 철학(인식론)과 논리학에 중점을 두었으며, 수학적 자연과학의 보편성을 칸트의 선험적 인식론 위에서 정초하려 했다. 이들은 '물자체' 개념이 형이상학적이고 인식론적으로 무의미하다고 비판하며, 이를 철학적 탐구에서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바덴 학파는 빈델반트, 리케르트 등을 중심으로 가치 철학(문화 철학, 윤리학, 미학)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이들은 자연 과학과 구분되는 인문학(문화 과학)의 독자적인 방법론을 칸트의 '가치 판단' 개념을 통해 정초하려 했으며, 객관적인 가치와 문화적 삶의 영역을 칸트의 실천 이성 철학을 통해 설명하고자 했다. 신칸트주의자들은 칸트의 '비판' 정신을 계승하여, 인간 이성의 한계를 설정하고 학문적 지식의 정당성을 밝히는 데 주력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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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칸트주의가 칸트의 비판 철학을 계승하여 사변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절대적인 것을 탐구하고 거대한 체계를 구축하려 했다면, 신칸트주의는 칸트의 인식론적 비판 정신과 선험적 방법론을 통해 과학적 지식과 가치론의 정당성을 확립하고, 당시 유행하던 비합리적인 사조들에 맞서고자 했다고 볼 수 있다. 두 흐름 모두 칸트의 유산을 바탕으로 서양 철학의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어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칸트가 프랑스철학에 미친 영향을 볼 수 있다. 칸트는 여전히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물자체를 진정으로 인식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해서 신실재론자들은 칸트를 비판하면서 넘어서는 방식으로 칸트를 이어가고 있다. 프랑스에서 21세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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