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sire of Nastions_2장 하나님의 왕권 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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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오도노반이 쓴 다양한 책들 중에서 ‘The Desire of Nations’라는 책을 스터디하고 있다.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지만 해외에서는 매우 유명한 책이다. 이 책을 처음 만난 건 칼빈칼리지의 철학교수인 제임스 스미스의 책에서였다. 제임스 스미스는 자신의 책에서 오도노반의 DN을 소개하면서 국가론과 정치신학을 다룬다. 아브라함 카이퍼의 정치신학에 대해서 항상 염두해 두고 있기 때문에 반가웠고 이번에는 전문가들과 함께 스터디를 하게 되었다. 나는 발제를 하지는 않고, 발제하는 것들을 들으면서 정리해보고 있다. 오늘은 오도노반의 정치신학 안에서 특히 ‘권위의 원천에 대해서 다룬다.
처음에는 여호와의 다스림을 통한 권위의 탄생과 함께 왕의 등장으로 만들어진 ’매개자들’이 가진 권위, 제국으로 확장되는 세계화 시대의 왕의 권위 그리고 마지막으로 개인의 권위가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다. 오늘도 매우 흥미로운 지점은 ‘권위’의 진정한 원천은 하나님인데 인간 왕이 탄생함으로써 권위가 다양하게 배분되고 결국 인간의 내면으로까지 흘러가게 된다는 것이다. 누군가 의미를 내서 ’윤리‘를 실천하려면 결국 자신이 섬기고 있는 존재의 ’권위‘에 기반해야 한다. 돈이 권위가 될 수도 있고, 자신이 속한 조직의 명성이나, 자신의 국가가 권위가 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해보니 오도노반이 왜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신학자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오늘은 오도노반의 책 DN의 2장이다.
정치신학의 특징 5가지
정치신학은 종교적 개념과 정치적 개념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탐구하는 학문 분야이다. 그 특징은 다음과 같다.
주권 개념의 재해석: 전통적인 정치적 주권 개념을 신의 주권과 연결하여 재해석하는 것이다. 신적 권위가 세속적 주권의 근원이 되거나, 반대로 세속적 주권이 신의 자리를 대신하려는 경향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예외 상태의 중요성: 법과 질서가 무력화되는 예외 상태를 통해 주권자가 누구인지 드러난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닌 비상사태에서 주권적 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주목하는 것이다.
세속화 과정에 대한 비판적 관찰: 근대 사회의 세속화가 단순히 종교의 쇠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개념들이 정치적 개념으로 변형되는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다.
역사적 개념의 기독교적 뿌리: 정치, 법, 주권 등 근대적 개념들이 사실은 기독교적 교리나 신학적 논쟁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폭력과 질서의 관계 탐구: 정치적 질서가 유지되기 위해 사용되는 폭력의 정당성을 신학적 관점에서 고찰하는 것이다.
올리버 오도노반의 정치신학 5가지 특징
올리버 오도노반(Oliver O'Donovan)은 정치신학을 정치적 삶의 현실에 적용하는 데 중점을 둔 신학자이다. 그의 정치신학 특징은 다음과 같다.
실재론적 원칙(The Realistic Principle): 하나님의 통치가 이미 현실에서 실현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기독교인의 정치 참여가 단순히 이상을 추구하는 행위가 아니라, 이미 작동하고 있는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에 순종하고 참여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복음적 원칙(The Evangelical Principle):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모든 정치적 질서의 근본적인 의미와 목적을 제공한다고 보는 것이다.
부활절 원칙(The Easter Principle): 그리스도의 부활이 정치권력의 패배와 무력화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세상 권력이 궁극적인 승리를 거둘 수 없으며, 진정한 승리는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역사적 종말론적 관점: 오도노반의 정치신학은 역사가 그리스도의 재림과 궁극적인 하나님의 나라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교회의 역할 강조: 국가는 하나님의 통치를 반영하는 수단 중 하나이며, 정치적 질서의 진정한 모델은 교회의 예배 공동체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정치적 자기 이해의 핵심에는 "여호와께서 다스리신다"는 선포가 자리 잡고 있다. 히브리어로 "야훼 말라크"(Yhwh malak)라 불리는 이 고백은 단순한 종교적 수사를 넘어, 이스라엘의 모든 정치적, 사회적 현실을 규정하는 근본적인 선언이었다. 이 선포는 하나님의 통치가 어떻게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경험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계시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오도노반은 이 하나님의 왕권을 구성하는 네 가지 핵심적인 개념적요소를 제시하며 논의를 시작한다. 네 가지 핵심요소는 하나님의 통치, 중재자들, 온땅의 왕, 개인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하나님이 가진 권위가 어떻게 해서 개인까지 넘어가게 되었는지의 볼 수 있는 요소들이다. 이러한 과정의 시작은 ’여호와의 다스림‘이다. 그럼 어떻게 여호와의 권위가 구성되어 있는지를 먼저 살펴보자.
하나님의 통치를 구성하는 세 가지 행위
첫째는 구원(y'shu'ah)이다. 이 단어는 종종 군사적 '승리'로 번역되며, 하나님의 통치가 적대 세력과의 실제적인 갈등 속에서 자기 백성을 위험으로부터 건져내시는 능력으로 나타남을 보여준다. 출애굽 사건은 이 '구원'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물리적 힘을 넘어, 혼돈과 파괴에 맞서 자기 백성을 존재하게 하고 전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창조적 권능을 의미한다. 이 구원은하나님의 변함없는 언약적 사랑인 헤세드(hesed, 인자)의 표현이며, 동시에 온 세상 앞에서 이스라엘의 정당성을 입증하시는 공적 행위, 즉 체데크(tsedeq, 의)의 실현이기도 하다. 이것이 하나님이 통치하는 첫번째 의미인 '구원'이다. 이것은 하나님만 주실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권위를 구성하는 둘째는 심판(mishpat)이다. 심판은 단순히 죄를 처벌하는 행위를 넘어,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를 구별하고 그 구별을 공적으로 명확히 드러내는 '사법적 수행'(judicial performance)을 말한다. 오도노반은 '심판이 있다'는 것은 어떤 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마땅히 수행되어야 할 활동이 역동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강조한다. 아모스 선지자가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 5:24)라고 외쳤을 때, 이는 바로 이러한 사법적 활동의 지속성을 촉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심판은 일회성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한번 내려지면 지속적인 유효성을 갖는 하나님의 행위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율법(torah)은 과거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심판의 기록이자 증언(eduth)으로써, 역사와 분리될 수 없는 영속성을 지닌다.
셋째는 소유(nah'lah)다. 하나님의 통치는 땅과 율법이라는 구체적인 소유를 통해 공동체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물질적 기반을 가진다. 약속의 땅은 하나님의 주권적 선물이자,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갖는물질적 근거였다. 이 소유는 이스라엘 전체에 주어진 집단적 기업(nah'lah)인 동시에, 각 지파와 가족에게 분배된 몫(heleq)이기도 했다. 오도노반은 이스라엘이 이 선물을 소유함으로써 역으로 하나님께 소유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즉, 소유의 경험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매개하는 핵심적인 정치적 현실이었다.
인간의 응답: 찬양 (Tehillah)
하나님의 구원, 심판, 소유라는 세 가지 행위에 대한 인간 공동체의 응답이 바로 네 번째 요소인 찬양(tehillah)이다. 찬양은 단순한 감사의 표현을 넘어,하나님의 통치를 공적으로 인정하고 증언하는 정치적 행위이다.
시편 기자가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시 22:3)라고 노래했을 때, 이는 백성의 찬양 회집이야말로 하나님의 왕권이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정치적 현실임을 의미한다.
공동체는 예배하는 공동체임으로써 정치 공동체가 되며, 그들의 찬양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가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방식으로 이야기하자면 하나님의 왕국의 '목적인'(final cause)이다.
정치적 권위에 대한 세 가지 신학적 정리
오도너번은 이스라엘의 경험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모든 정치적 권위의 본질을 설명하는 세 가지 중요한 신학적 정리를 도출한다. 이 정리들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이론적 틀이 된다.
첫 째, 정치적 권위는 권력(power), 권리 행사(the execution of right), 그리고 전통의 영속성(the perpetuation of tradition)이 하나의 조정된 기관 안에서 함께 보장 될 때 발생한다. 이는 각각 하나님의 구원(권력), 심판(권리 행사), 소유(전통)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세 요소가 분리 될 때 , 진정한 의미의 정치적 권위는 존재할 수 없다.
둘 째, 어떤 정권이 실제로 권위를 획득하고 유지하는 것은 인간의 정치적 과업 의 성취일 뿐만 아니라,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a work of di vine providence in histor y )이다. 섭리의 역사(a work of divine providence in history)이다. 정치 질서는 스스로의 존립 조건을 영원히 보장할 수 없으며, 그 배후에는 역사를 주관 하시는 하나님의 통치가 작용하고 있다.
셋 째, 정치적 권위를 인정함으로 써 , 사회는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을 증명한다.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이스라엘의 찬양 이 그 들 의 정치적 실재를 드러 냈듯 이, 모든 사회는 자신의 정치적 권위를 인정하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드러냅니다. 인정은 권위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권위를 확인하고 그 안 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형상이 없으시며 직접적이지만, 동시에 인간 중재자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나타난다고 본다. 오도노반은 '즉각성'(immediacy)과 '중재'(mediation) 사이의 미묘한 균형이 이스라엘 정치신학의 핵심적인 긴장 관계를 형성한다고 보고 자신의 이론을 전개한다.
모세_단일한 중재자
모세는 구원, 심판, 소유라는 하나님의 왕권의 세 가지 측면을 모두 중재한 유일무이한 대표자였다.
모세는 이집트에서 백성을 이끌어내 승리(구원)를 안겼고, 광야에서 그들의 송사를 다스렸으며(심판), 시내산에서 그들이 소유할 땅과 삶의 방식(율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오도노반은 모세 이후의 미래는 이러한 중재 기능이 여러 인물과 직책으로 분화되는 과정이었다고 설명한다. 모세에게는 진정한 후계자가 없으며, 그의 권위는 율법 속에 감추어진 채로 지속된다.
왕정_중재의 제도화와 갈등
이스라엘의 왕정 제도는 바로 이 분화된 중재 기능들, 즉 군사적, 사법적, 전통 계승의 기능을 다시 하나의 인격체 안에 통합하려는 시도였다. 이로인해 "여호와께서 왕이시니 다른 왕이 필요 없다"고 주장했던 반(反)왕정주의자들과의 신학적 갈등이 발생했다.
하나님의 통치를 대리하는 '형상'을 세우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여기에 도사리고 있다. 오도노반은 이 갈등을 세 가지 기능적 측면에서 분석한다.
첫째, 군사적 기능에서 상비군을 유지하는 왕의 역할은, 신적 주도권에 온전히 의존했던 '거룩한 전쟁'(holy war) 전통과 충돌했다. 선지자 운동은 왕의 군사적 주도권에 비판적이었지만, 결국 왕은 여호와의 승리를 중재하는 유일한 인물로 인정받게 된다.
둘째, 사법적 기능에서 왕은 실패한 사사들을 대신하여 효과적인 심판을 제공할 핵심적인 중재자였다. 솔로몬의 재판은 왕이 하나님의 지혜로 공의를 실현하는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왕의 심판은 지역의 장로, 제사장, 레위인 등 다양한 사법 주체들과의 긴장 관계 속에서 자신의 권위를 확립해야 했다.
셋째, 전통 계승의 기능에서 왕정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소유의 '연속성'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다윗과의 언약은 불안정한 이스라엘과의 언약을 보완하는 안전장치로 여겨졌다. 그러나 신명기 신학자들은 왕이 율법의 수호자일 뿐, 율법 자체를 대체하거나 그 위에 설 수 없다고 보았다. 왕의 권위는 항상 율법의 권위 아래 있었으며, 그 율법의 사회적 목소리는 바로 선지자 운동이었다.
왕과 선지자의 상호작용은 이스라엘의 정치사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역학관계였다.
결론적으로, 이스라엘은 절대주의의 유혹에 맞서 권력 분립 대신, 단일한 정부가 독립적인 율법의 권위(선지자 운동으로 대표되는)에 책임을 지는 구조를 발전시켰다. 이는 정부가 공동체 내에 존재하는 도덕적 전통, 즉 하나님의 통치에 응답해야 한다는 중요한 정치적 원리를 보여준다.
하나님의 통치는 이스라엘에 국한되지 않고 온 땅, 모든 민족에게 미친다. 오도노반은 이스라엘이 자신의 독특한 선택 의식을 주변 민족과의 협력에 대한 희망과 신중하게 균형을 맞추었다고 분석한다.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세상을 심판하소서 모든 나라가 주의 소유이기 때문이니이다"(시 82:8)라는 기도는 단순히 이스라엘의 변호를 넘어, 모든 민족이 동일한 심판의 기준 아래 있음을 의미한다. 이방 민족의 통치자들 역시 약자를 보호하고 정의를 행할 소명을 받았으며, 이스라엘 또한 동일한 기준으로 심판받을 것이다. 아모스 선지자는 이스라엘을 주변의 잔인한 이웃들과 나란히 세워 비판함으로써 이러한 보편적 심판의 원리를 가장 날카롭게 보여주었다.
제국에 대한 예언자적 비판
메소포타미아 제국들의 부상은 이스라엘 선지자들에게 신학적 성찰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들은 제국을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 즉 느부갓네살을 '여호와의 종'으로 보면서도, 동시에 제국의 교만과 폭력성을 비판했다.
제국은 단순히 군사적 위협이 아니라, 바벨탑 이야기에서처럼 인간의 교만과 거인주의(titanism)의 표현이자, 두로의 상업적 번영에서 보이듯 문화적 통합성을 위협하는 존재였다.
다니엘서에 이르면, 연속되는 세계 제국들의 역사는 인간 통치의 점진적인 타락과 '짐승화'(bestialisation)로묘사되며, 이는 결국 하나님의 왕국과의 최종 대결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과정으로 이해된다.
국제 질서에 대한 신학적 원리
이러한 제국 비판으로부터, 미래의 국제 질서는 제국의 통일적 제약에서 벗어난 '다원적 질서'(plural order)가 될 것이라는 희망이 생겨난다.
그렇게 보면, 이스라엘의 회복은 다른 민족들에게도 모델이 될 것이다. 여기서 오도노반은 중요한 신학적 원리를 도출한다.
국제 질서에서 적절한 통일 요소는 정부가 아니라 율법(law)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세계 제국을 하나님의 보편적 통치를 중재하는 존재로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세계 질서는 다원적으로 구성되어야 하며, 세계 제국은 짐승 같은 변형일 뿐이다.
하나님의 세계 통치는 오직 예언자들과 예언자적 백성인 이스라엘을 통해서만 중재된다.
어떤 단일 공동체도 보편적이라고 주장할 수 없으며, 항상 존중하고 만나야 할 '타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오도노반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경험 속에서 '개인'의 개념이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추적한다. 서구적 의미의 원자론적 개인주의와는 거리가 멀지만,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개인은 점차 공동체의 운명을 짊어지는 중요한 주체로 부상한다. 개인성의 의식은 주로 고통의 경험, 특히 부당하게 고난받는다는 느낌 속에서 태어난다. 불평이 주가 되는 시편의 저자들은 부패한 인간 재판소를 넘어 하나님께 직접호소하며 자신의 개별성을 첨예하게 인식한다. 욥기는 이러한 고통받는 개인의 심리를 깊이 탐구한다. 또한 지혜 전통은 왕에게 조언하는 현자(요셉, 다니엘)의 역할을 통해 개인적 통찰력의 중요성을 보여주며, 이 역할은 점차 왕의 양심을 지키는 도덕적 역할로 발전한다고 본다.
이러한 개인의 역할은 선지자, 특히 예레미야의 모습에서 절정에 달한다. 예레미야는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그 아래 있는 백성의 비참함을 동시에 체현하는 '중재적 대표자'로서 극심한 고독을 경험한다. 그는 공동체에 속해 있으면서도 공동체로부터 분리되어, 그 잘못의 고통과 책임을 대리적으로 짊어진다. 이 모습은 제2 이사야의 '고난받는 종'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결정적으로, 예루살렘의 멸망과 같은 공동체 제도의 붕괴 위기는 각 개인에게 신앙적 결단을 요구했다. "바벨론에 항복하는 자는 살리라"는 예레미야의 요구는, 각 개인이 기존의 모든 공동체적 정체성을 넘어 선지자의 목소리에 응답해야 함을 의미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이스라엘의 자기 인식에는 '고백적 자발주의'(confessional voluntarism)의 요소가 자리잡게 된다. 공동체는 이제 혈연이나 지연뿐만 아니라, 각 개인의 신실한 결단을 통해 재구성되는 것이다. 그러니깐 '고백'을 통해서 같은 고백을 하는 사람들이 '같은 정체성'을 갖는 공동체로 다시 구성되는 것이다. 여기서 오도노반은 또 하나의 중 요한 이론적 정리를 이끌어낸다. 공동체 구성원 개개인의 양심은 그 공동체를 형성했던 도덕적 이해의 저장소이며, 제도의 붕괴 위기 속에서 그 공동체를 영속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은 원시적 권리의 담지자로서가 아니라, 공동체 자체의 잊혀 진 목소리, 즉 공동체의 형성적 자기 이해를 회복시키는 담지자로서 존중받는 존재임을 드러낸 것이다. 이로써 오도노반은 국가론에서 뿐 아니라 개인의 '자아론'에서도 도덕적인 질서를 만들 수 있는 재료들을 찾아냈다.
‘권위‘는 신적 영역이었지만, 인간 왕의 등장으로 권위가 소위 말하는 ’유출’된다. 권위가 생성되는 과정에서 왕은 국가를 만들고 국가는 왕의 권위로 사람들 속에서 ‘상상의 공동체’를 만든다. 그리고 이 상상의 공동체인 ’시뮬라크르’를 운영하고 움직이는 요소는 바로 ‘매개자들‘ 그러니깐 중계자들이다. 어떻게 이들이 중계하는가에 따라서 국가는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여기서 오도노반이 보는 관점의 핵심은 이것이 ‘국가들의 열망‘이었다는 것이다. 다시 이야기하면 국가들이 열망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권위’였다. 이것은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고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국가가 ’선‘을 향해서, 더 좋은 정치를 꾸리기 위해서 신적 속성에 집중할 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부정적인 관점에서는 ’국가가 신적 속성이 스스로 없음을 인식하고 신적 속성을 얻기 위한 질투심’에 의해서 권력의 문제와 전체주의의 도래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최근에 더욱 붉어진 극우 자유주의의 파시즘은 자신들이 ’신의 권위‘를 매개하는 사람들이니깐 자신들을 통해서 국가를 운영해야 한다고 하는 논리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오도노반은 다시 ‘부활과 도덕질서‘로 연결된다. 국가가 하나님의 권위를 유지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이 하나님의 권위를 유지시켜주고 또 계속해서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이제 3장으로 넘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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