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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영혼일기

초대 받은 사람이 초대하는 식탁

누가복음 14장_함께 걷는 교회

by 낭만민네이션


식탁 공동체에서도 권력이 존재한다. 초대받은 사람의 자리가 정해져 있고, 초대를 실시한 사람의 권위가 보장되어 있다. 누군가에게 베푼다고 하는 것들이 실은 누군가에게 권력관계를 제공하는 것과 같다. 식탁에서 특히나 그렇다. 위계질서가 존재하는 수 차례의 반복된 식탁의 프로세스. 아무리 호의와 칭찬이 있어도 그 식탁은 누가 더 주인과 가까운가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식탁은 한 공동체의 축소판이다. 누구라도 이 식탁에 참여하게 되면 그 역사에 참여하게 된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식탁에 오셔서 모든 질서와 권위를 무너뜨린다. 그리고 새로운 식탁을 세운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되갚을 필요가 없는 식탁. 가난한 사람과 연약한 사람들을 불러서 초대한 사람에게 갚을 수 없을 만한 사람들이 가득찰 때, 그 식탁은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식탁과 달라진다. 누군가에게 은혜를 베푸는 자리이면서도 서로에게 선물이 되는 식탁이 될 것이며, 값없이 받는 은혜의 식탁에서 사람들이 서로 차별이 없는 식탁. 그 식탁은 어쩌면 하나님 나라의 축소판일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맛보는 식탁.


한국 사회에서는, 한국 교회에서는 업적을 기리느라 식탁에 앉으면 장로의 자리, 담임목사의 자리, 세상에서 유명한 박사나 선생들의 자리가 가득하다. 새로온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 죽음에서 겨우 빠져나온 사람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사람들, 값없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사람들. 그들에게 제공되는 식탁은 ‘나는 너네와 달라’라고 하는 식탁이다. 아쉽게도 우리가 이렇게 외인들을 대한다는 것을 느끼지도 못한다. 그야말로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이다. 좋은 일을 꾸준히 하는 사람이 칭찬을 받고, 그 칭찬이 쌓여서 명성이 되고, 명성이 결국 권위가 되는 식탁. 우리는 식탁에 예수님을 초대해야 한다. 초대하는 사람이나 초대 받은 사람이나 예수님과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에 기뻐하게 된다. 그야말로 살리는 식탁이고 사랑이 넘치는 식탁이다.


지위나 권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마음껏 즐기는 식탁. 우리는 그 식탁에 이미 초대 받았고, 이제 자리를 비켜서 다른 사람들이 앉을 수 있도록 성찬의 식탁에 사람들을 초대해야 한다. 우리가 차린 식탁이 아니지만, 그리스도가 차린 식탁에 사람들을 불러와야 한다. 아무나 값없이, 어떤 차별도 없는 상태로 은혜와 사랑이 넘치는 식탁으로 초대 한다. 이것을 보통은 ‘전도‘라고 한다. 그 기쁜 소식을 전하는 시간말이다. ’당신에게도 값없이 와서 먹을 수 있는 식탁이 언제든지 준비되어 있어요!’라고 말하는 식탁의 초대. 초대 받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초대하는 시간. 오늘도 식탁에 그리스도가 웃으시면서 포도주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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