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브레이너의 서양철학사_19세기 유럽의 유심론
매주 화요일 에밀브레이너의 서양철학사를 듣는다. 오늘은 독일과 프랑스 현대철학이 나오기 바로 전의 시대이다. 과학의 도전에 대해서 정신을 지키기 위한 철학자들의 전략을 살펴보는 시간이다. 매번 그렇지만 혼자 듣는 시간이라서 감사하면서도 부담이 되기는 한다.
19세기 후반 유럽 철학의 가장 중요한 통찰은 과학적 방법론이 지배적인 시대에 형이상학이 살아남기 위해 전략을 세웠다는 것이다. 그것은 물질 세계 너머의 실재를 '경험'과 '내면'의 영역에서 재발견한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들은 정신(페히너)과 무의식(하르트만)을 측정 가능하거나 생리학적으로 추론 가능한 영역으로 끌어들였고, 프랑스의 유심론자들은 도덕적 의식과 자유 의지(시몽, 라슐리에)를 과학적 결정론이 침범할 수 없는 궁극적인 실재로 설정했다. 이는 형이상학이 신이나 이념 대신 인간의 정신적 삶을 존재론적 근거로 삼아 '내면화'를 시도함으로써, 과학 시대에 정신의 우위를 지키려 했던 생존 전략이었다.
이 시기 철학자들은 전통적인 도덕을 외부의 법칙(칸트)이나 계시(종교)로부터 해방시키고, 삶 그 자체의 내재적 힘으로 그 근원을 옮겼다. 니체는 도덕을 삶의 힘에 대한 긍정이자 새로운 가치 창조 행위로 보았고, 기요는 도덕을 생명력의 과잉과 발산이라는 생물학적 충동으로 해석했다. 심지어 로쩨조차도 형이상학적 실재의 의미를 도덕적 가치에서 찾았다. 이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의무의 문제에서 벗어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권능과 자유의 문제로 윤리학의 중심이 이동했음을 보여주며, 이는 20세기 실존주의와 생철학의 주요한 사상적 토대가 되었다. 오늘은 19세기 독일과 프랑스의 형이상학의 변화에 대해서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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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브레이너의 '서양철학사' 7권의 제6장은 형이상학이다. 독일 형이상학의 내용들은 19세기 후반 독일 형이상학이 과학의 발전을 수용하여 경험적이고 내재적인 기반 위에서 실재의 본질을 탐구하려 했던 시대적 전환을 보여주는 것이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에밀 브레이너는 페히너에 대해서 정신물리학을 통해 정신과 물질을 정량적으로 연결하고 만물유심론을 제시한다. 하르트만에 대해서는 생리학적 지식에 힘입어 무의식을 우주의 근원적이고 의지를 가진 실재로 격상시켰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접근들은 전통적인 신학적이고 합리론적 형이상학 대신, 측정 가능한 자연 현상과 심리적 경험 속에서 궁극적인 진리를 찾으려는 시도였다. 지난번에 알아본 진화론이 실증주의로 바뀌어가는 과정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와 함께 로쩨는 기계론적인 존재론 위에서 가치와 도덕을 형이상학적 의미의 중심으로 두어, 실재의 '존재' 문제뿐만 아니라 '의미' 문제를 동시에 다루고자 했다. 또한 스피르는 칸트 철학의 비판적 정신을 이어받아, 인간 이성이 현상계 너머의 본질적인 존재(Noumenon)로 직접 나아갈 수 없다는 인식론적 한계를 명확히 함으로써, 당시 형이상학자들이 취해야 할 비판적 태도를 제시한 것이다. 결국 이 시기의 형이상학은 과학적 방법론, 가치론적 접근, 그리고 인식의 한계에 대한 비판을 통합하려는 다면적인 노력을 통해 전통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것이다.
페히너 (Gustav Theodor Fechner, 1801-1887) : 정신물리학과 만물유심론의 선구자
페히너는 독일의 철학자, 물리학자, 실험심리학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심리적인 현상을 물리적인 측정을 통해 다루려는 정신물리학(Psychophysik)을 창시하여, 심리학을 독립된 과학 분야로 정립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난나 또는 식물의 영적 생명 (Nanna oder über das Seelenleben der Pflanzen, 1848): 이 저술은 그의 만물유심론(Panpsychism)적 경향을 잘 보여준다. 식물에게도 일종의 영혼이나 정신생활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자연 전체를 살아있는 유기체로 보는 그의 세계관을 드러낸 것이다.
하늘과 저세상의 사물들에 관하여_자연관찰의 입장 (Zend-Avesta: Ueber die Dinge des Himmels und des Jenseits, 3권, 1851): 이 책에서 그는 '일원론적 관점'에서 우주를 설명하고자 했다. 물질과 정신이 하나의 근원에서 비롯되며, 우리가 물질세계로 인식하는 것은 정신의 외적 현상이라고 보았다.
영혼은 신 속에서만 더 이상의 문턱이 없으며, 의식은 총체적이다: 이는 전체 우주를 하나의 살아있는 유기체(신)로 보고, 개별 영혼이나 의식은 그 총체적 의식의 부분 또는 표현으로 이해하는 범신론적 혹은 만물유심론적 관점을 나타낸 것이다.
제임스(W. James)에서 만나게 되는 공감(sympathie)의 개념: 페히너의 이러한 만물유심론적 관점은 윌리엄 제임스의 급진적 경험론과 후기 사상에 영향을 주었으며, 특히 모든 존재가 상호 연결되어 있다는 "공감(Sympathy)"의 개념은 존재론적 연결성을 강조하는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물리학에서의 위치: 물리학자로서의 페히너는 동력학자(Dynamiker)라기보다는 기계역학자(Mechaniker)에 가까웠는데, 이는 그가 자연 현상을 측정과 수학적 법칙을 통해 다루는 실험적/정량적 접근을 중시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생리학적 병리학을 참작한 생리학 중형 사전 (Handwörterbuch der Physiologie mit Rücksicht auf physiologische Pathologie)은 그가 의학 및 생리학 분야에도 깊이 관여했음을 보여준다.
로쩨 (Rudolf Hermann Lotze, 1817-1881) : 형이상학과 가치론의 조화
로쩨는 독일의 의사, 철학자로, 19세기 중반의 과학주의와 이상주의적 형이상학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시도한 인물이다. 그의 철학은 신칸트학파와 현상학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가치 철학의 중요한 선구자로 평가된다.
형이상학 (Métaphysique, 1841): 이 초기 저작에서 그는 현실 세계를 단순히 물리적 법칙의 지배를 받는 기계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목적과 가치가 관통하는 세계로 이해하고자 시도한 것이다.
로쩨는 기계론적 자연관을 수용하면서도, 궁극적인 실재는 가치와 의미를 가진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는 물리적 세계가 어떻게 존재하는가(존재론)의 문제와, 이 세계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가치론)의 문제를 조화시키고자 노력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의 사상은 "기계론은 존재의 보편적 형식이며, 가치는 존재의 의미이다"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스피르 (Africano Spir, 1837-1890) : 비판적 형이상학
러시아 출신의 철학자 스피르는 칸트의 비판 철학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인물이다. 그의 철학은 특히 니체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는 현상에서 존재로 이행이 불가능하다고 증명했다: 스피르는 칸트의 구분을 따라,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현상(Phenomenon)의 세계일 뿐이며, 그 배후의 본질적인 존재(Noumenon)나 실재로 직접 이행하여 인식하는 것은 인간 이성의 한계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즉, 그는 진정한 실재를 인식하려는 형이상학적 시도의 비판적 한계를 명확히 제시하고자 한 것이다.
하르트만 (Eduard von Hartmann, 1842-1906) : 무의식의 철학
하르트만은 쇼펜하우어의 의지 개념, 셸링의 무의식 개념, 그리고 헤겔의 이념 개념을 융합하여 독특한 형이상학을 구축했다. 그는 당시 급부상하던 생리학과 자연과학의 성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철학을 전개했다.
무의식의 철학 (Die Philosophie des Unbewussten, 1869): 이 책은 당대 유럽 지식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무의식에 대한 논의를 철학적, 과학적 차원에서 본격화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저술이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된다.
무의식에 대한 논의: 하르트만은 "무의식(Das Unbewusste)"을 우주의 근원적인 실재이자 모든 현상의 원리로 상정한 것이다. 이 무의식은 단순히 개인의 심리적 현상이 아니라, 범우주적(cosmic) 실재이다.
의지를 부여받은 무의식이 우리에게 있다 [내재 의식 인정]: 그의 무의식은 쇼펜하우어의 '맹목적인 의지'와 헤겔의 '이성(이념)'이 결합된 형태이다. 즉, 목적을 가진 의지와 논리적인 이념이 결합된 실재로서, 이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 내부에 내재적 의식(혹은 목적론적 원리)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았다.
동물과 식물에게도 심지어는 분자들 속에도 의식들이 있다: 이는 페히너와 유사하게 만물유심론적 경향을 보여주는데, 무의식은 우주의 근원적 원리이므로, 생명체는 물론 분자와 같은 미시적 존재에도 그 원리(의식적 요소)가 미치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앞선 철학자들의 자연과학들에서 빌려온다: 하르트만은 자신의 무의식 개념을 정당화하기 위해 당시의 생리학, 진화론, 동물 심리학 등의 자연과학적 지식을 광범위하게 동원하여 논리를 전개한 것이다.
후계자: 아르뒤르 드레브스 (Arthur Drews, 1865-1935): 하르트만의 무의식 철학을 계승하고, 특히 종교 비판 및 신화 연구에 적용한 인물이다.
레오폴드 찌글러 (Leopold Ziegler, 1881–1958): 하르트만의 사상에서 영감을 받아 문화 철학과 형이상학을 탐구한 인물이다.
프랑스의 유심론(Le spiritualisme)은 19세기 후반, 독일에서 과학적 형이상학이 대두되던 시기에 실증주의(Positivisme)와 유물론에 맞서 프랑스 철학의 전통적인 도덕적, 정신적 가치를 수호하려 했던 것이다. 쥘 시몽을 중심으로 한 유심론자들은 종교적이고 정치적 보수주의의 반동에 반대하며 자유 의지, 의식의 자유, 그리고 도덕적 자율성을 강조했고, 이를 통해 개인의 내면적 경험과 윤리적 책임을 형이상학적 실재의 근거로 삼았던 것이다. 이러한 유심론의 사상적 기반은 플라톤과 알렉산드리아 학파(신플라톤주의)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통해 강화된 것이다. 아돌프 프랑크, 바쉬로, 시몽 등은 고대 정신주의의 전통을 재발견함으로써, 물질적 현상 너머에 비물질적이고 이념적인 실재가 존재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했던 것이다. 특히 뽈 쟈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주의와 칸트의 엄격주의를 절충하여 도덕적 가치를 통합하려 했고, 그의 상층론은 정신적 세계의 우위를 주장하며 유심론의 핵심 기조를 명확히 했던 것이다. 결국 프랑스 유심론은 정신적 자유와 도덕을 수호하는 것을 시대적 사명으로 삼아, 과학주의 시대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옹호하고자 한 것이다.
쥘 시몽 (Jules Simon, 1814-1896): 자유와 도덕의 옹호자
시몽은 철학자이자 정치인으로, 프랑스 절충주의 철학자 빅토르 쿠쟁(Victor Cousin)의 영향을 받았으나, 이후 도덕과 자유의 문제를 깊이 탐구하며 자유주의적 유심론을 전개한 것이다. 그는 제2제정 시대에 자유주의적 야당 정치인으로도 활동하며 철학과 정치를 결합했다.
자연종교 (La religion naturelle, 1856): 인간 이성에 기초한 보편적 도덕률과 신앙의 문제를 다루며, 계시에 의존하는 전통 종교 대신 이성적 종교를 옹호한 것이다.
의식의 자유 (La liberté de conscience, 1857), 자유 (La liberté, 1859): 인간의 자유 의지와 양심의 절대적 중요성을 강조하며, 개인의 도덕적 자율성이 국가나 교회의 권위에 의해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라불레이 (Édouard René de Laboulaye, 1811-1883): 법학자이자 정치인. 시몽과 함께 프랑스 자유주의 전통을 옹호하며 제2제정의 권위주의에 맞섰던 인물이다.
알렉시스 드 토크빌 (Alexis de Tocqueville, 1805-1859): '미국의 민주주의'의 저자. 프랑스 자유주의 사상의 거장으로, 시몽과 같은 세대의 자유주의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플라톤/알렉산드리아 학파 연구와 유심론의 근원
프랑스 유심론자들은 자신들의 정신적 실재 옹호 논리를 강화하기 위해 고대 철학, 특히 플라톤 철학과 신플라톤주의(알렉산드리아 학파)에 대한 학문적 연구를 심화한 것이다.
아돌프 프랑크 (Adolphe Franck, 1809-1893): 철학과학들의 사전 (Dictionnaire des sciences philosophiques, 1844-1855): 프랑스 철학계의 주요 참고서였으며, 유심론적 관점을 널리 전파하는 데 기여한 것이다.
셰녜 (Albert Chaignet, 1819-1890): 그리스인들의 심리학의 역사 (Histoire de la psychologie des Grecs, 1887): 정신적인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플라톤주의적 심리학의 역사를 탐구한 것이다.
쥘 시몽 (Jules Simon):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역사 (Histoire de l’École d’Alexandrie, 1844-1845): 신플라톤주의의 정신적 전통을 탐구하며 유심론의 사상적 기반을 다졌다.
바쉬로 (Étienne Vacherot, 1809-1897):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비판적 역사 (Histoire critique de l’École d’Alexandrie, 1846-1854): 신플라톤주의를 비판적으로 연구하며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재해석했다.
형이상학과 과학 (La métaphysique et la science, 1858), 새로운 유심론 (Le nouveau spiritualisme, 1884): 유심론을 과학과 조화시키려 했으나, 말년에는 실재가 순수한 이념이나 정신이 아닌 현상 그 자체임을 주장하는 쪽으로 기울어 유심론과 실증주의 사이의 긴장을 반영한 것이다.
유심론의 사상적 배경과 폴 쟈네
유심론(정신주의)은 플라톤의 이데아와 신플라톤주의(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정신적 전통을 배경으로 삼아 비물질적인 실재를 옹호한 것이다. 반면, 이들이 비판했던 물리실증주의(유물론적 실증주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현상에 대한 강조와 스콜라주의의 논리적 분석 전통을 일방적으로 수용하여 물질적 현상만을 실재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다.
뽈 쟈네 (Paul Janet, 1823-1899): 절충주의의 조화_쟈네는 프랑스 절충주의의 대표적 인물 중 한 명으로, 상충하는 철학적 입장을 조화시키려 노력한 것이다
그는 윤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주의 (삶의 목적으로서의 행복)와 칸트의 엄격주의 (의무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 사이에서 도덕적 행위의 목적과 의무를 통합하는 조화를 이루고자 시도한 것이다.
그의 형이상학은 상층론(Supériorisme)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물질적 세계(하층) 위에 정신적 세계(상층)가 존재하며, 후자가 전자를 지배하거나 그 의미를 부여한다고 보는 정신적 실재의 우위를 주장한 것이다.
유심론적 실증주의(Le positivisme spiritualiste)는 19세기 후반 프랑스 철학이 정신(유심론)의 가치와 과학적 경험(실증주의)의 엄밀성을 동시에 붙잡으려 했던 독창적인 시도였다. 라베송은 습관이라는 개념을 통해 물질적 자연과 정신적 자유가 내재적으로 결합되어 있음을 보였고, 라슐리에는 사유 자체에서 실체의 확실성을 찾으며 칸트적 인식을 목적성의 원리까지 확장했다. 이들은 논리와 생리 같은 외부적 결정론 대신 의식과 영혼이라는 주관적 경험에서 궁극적인 실재의 화두를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과학의 시대를 살면서도 인간 정신의 우위와 자율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특히 부트루의 철학은 이러한 유심론적 실증주의의 핵심 통찰을 명료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는 자연법칙이 절대적인 필연성이 아니라 우연성(contingence)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물리적 결정론으로부터 생명과 정신의 영역에 자유의 공간을 확보했다. 이는 우주의 하위 단계(물리)가 상위 단계(정신)를 완전히 지배하지 않으며, 영속성조차도 고정된 실체가 아닌 변화 속에서 유지되는 원리임을 시사한다. 이들 유심론적 실증주의자들은 과학을 부정하는 대신 과학의 한계를 명확히 하고, 그 너머에 있는 창조적 자유와 목적론적 실재를 철학적으로 복원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라베송 (Félix Ravaisson-Mollien, 1813-1900): 습관과 의식의 결합
라베송은 프랑스 유심론의 주요 인물이자 고대 그리스 철학, 특히 아리스토텔레스 연구의 권위자이다. 그의 철학은 단순히 유심론을 옹호하는 것을 넘어, 자연(물질)과 정신(자유)을 내재적이고 역동적인 결합으로 이해하려 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시론 (Essai sur la Métaphysique d'Aristote, 1837): 이 저술을 통해 그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핵심인 형상(Form)과 질료(Matter) 개념을 정신적 원리로 재해석함으로써, 고대 철학에 대한 현대 유심론적 해석의 기초를 놓았다.
19세기 프랑스 철학에 관한 보고서 (Rapport sur la philosophie en France au XIXe siècle, 1868): 여기서 그는 습관(Habit)의 개념을 통해 자연과 정신의 관계를 설명한 것이다. 습관은 무의식적인 자연적 경향이지만, 그것의 근저에는 자유로운 의식적 행위가 있으며, 이 습관을 통해 자연(물질)이 정신의 원리를 내재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자연과 정신의 내재적 결합을 주장하는 핵심 논리가 된다.
쥘 라슐리에 (Jules Lachelier, 1832-1918): 논리적 필연성과 자유의 결합
라슐리에는 프랑스 철학에서 칸트와 유심론을 독창적으로 결합한 사상가이다. 그는 수학과 논리학의 엄밀성을 철학에 도입하면서도, 정신적 실재를 옹호했다. 베르그송을 포함한 후대 프랑스 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실체성이 사유 그 자체 속에 있을 경우만 확실함이 있을 뿐이다: 칸트적 관점을 수용하여, 우리가 확실하다고 여기는 것(실체성)은 외부 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구성하는 사유(Thinking) 과정 그 자체 속에 있다는 관념론적(Idealistic) 입장을 취했다.
경험 가능성과 사유 가능성을 구별하지 않았다: 이는 경험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실증주의적 영역)과 이성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유심론적 영역)을 하나의 인식 과정으로 보려는 시도였다.
귀납법의 기초 (Du fondement de l'induction, 1871): 이 논문에서 그는 칸트의 선험적 형식만으로는 경험의 필연성을 설명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는 인과성의 원리와 목적성의 원리를 구분하며, 인과성은 추상적인 물질적 세계를 설명하는 데 필요하고, 목적성은 구체적인 유기체와 정신 세계를 설명하는 데 필요하다고 보았다.
사유와 도덕의 구별 - 형이상학의 두 종류: 그의 철학은 논리적/인식론적 탐구(사유)와 윤리적/가치론적 탐구(도덕)를 구분하며, 궁극적인 형이상학은 이 둘을 포괄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파스칼의 도박에 관한 노트 : 여기서 그는 파스칼의 '도박(Pari)' 논증을 재해석하며 신의 존재를 실재성(réalité)의 차원에서 논했다. 그가 말하는 살아있는 신은 우리의 실재성이며 유일하고 진실한 실재성으로, 이는 플로티노스의 신플라톤주의적 일자(Hen) 개념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부트루 (Émile Boutroux, 1845-1921): 자연법칙의 우연성
부트루는 라슐리에의 제자이자, 프랑스 철학에서 자유(liberté)의 문제를 과학의 영역으로 확장한 인물이다. 그는 당시의 결정론적 과학관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자연법칙의 우연성에 대하여 (De la contingence des lois de la nature, 1874)에서 자연법칙이 절대적이고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우연적(contingent)이라는 것을 주장한다. 즉, 우주의 더 낮은 단계(물리적)의 법칙들은 더 높은 단계(화학적, 생물학적, 정신적)의 법칙들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더 높은 단계는 낮은 단계에 대해 일정 수준의 자유를 가진다는 것이다.
영속성이란 변화 속에서 영속성이다: 부트루는 변화와 운동을 실재의 본질로 보았으며, 영속성(불변성)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 속에서 유지되는 형태나 원리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정신적 실재가 물리적 결정론에 종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창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다.
과학과 철학에서 자연법칙의 관념 (De l'idée de loi naturelle dans la science et la philosophie, 1895): 이 책에서 그는 과학적 법칙의 진정한 의미를 탐구하며, 철학(유심론)의 관점에서 과학(실증주의)의 한계를 지적하고 정신적 원리의 우위를 재확했다.
에밀브레이너의 7권의 제7장 철학은 단순히 한 철학자의 주장이 아니라, 19세기 말 서양 문명이 당면한 도덕적, 형이상학적 허무주의(Nihilism)에 대한 가장 급진적이고 근본적인 대답이자 전복을 시도인 것이다.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와 바그너의 낭만주의의 영향에서 벗어나, 고대 그리스 문화의 비극적 지혜를 재해석함으로써 새로운 삶의 긍정 철학을 구축했다. 특히 친구이자 고전 문헌학자인 로데의 연구는 그의 초기 사상, 즉 아폴론적인 질서와 형식이 디오니소스적인 충동과 황홀경에 의해 비극적으로 승화되는 예술적 원리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니체의 철학은 전통적인 이성 중심의 관조를 거부하고, 삶 그 자체의 본능적인 힘과 역동성을 궁극적인 가치로 삼으려는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우등 가치들에 대한 비판 (La Critique des valeurs supérieur) : 망치의 철학
니체의 철학은 서양 사회를 지탱해 온 기독교적 도덕과 형이상학적 진리가 사실은 약하고 병든 삶이 강한 삶에 대한 원한(Ressentiment)을 바탕으로 창조한 허위의 가치들임을 폭로하는 '망치의 철학'이었다.
그는 도덕적 행위를 인간이 자신의 강한 충동(quelque chose de soi)을 부정하고 억압하여, 외적인 이상(quelque autre chose de soi)에 굴복하는 "자기절제(autotomie)"의 행위로 정의한다. 인간은 도덕적 행위를 통해 자신의 오류와 나약함에서 벗어난다고 믿지만, 니체에게 이는 삶의 충만함으로부터 멀어지는 최악의 오류인 것이다.
니체는 루소가 문명의 악덕을 나쁜 도덕성 탓으로 돌렸다면, 자신은 그 문명의 병폐와 한탄스러움이 선하다고 추앙받는 도덕성 그 자체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함으로써, 서구 문명의 근본적인 토대를 비판한다.
궁극적으로 그는 스펜서와 다윈의 생존 경쟁이라는 기계적이고 냉정한 자연관에도 적대적이었는데, 이는 삶의 본질을 단순한 생존이 아닌 힘에의 의지라는 창조적이고 발산적인 권능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니체는 모든 고급 문화의 저변에는 인성(감정)이 깔려 있으며, 이 감정이 비극의 고통스러운 탐욕을 낳는, 즉 고통과 긍정이 결합된 디오니소스적 삶의 예술을 가능케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가치들의 전환: 극복자 (La transmutation des valeurs: le surhumain) 884: 권능의 긍정
니체의 비판 철학은 궁극적으로 가치들을 전환하여 초인(der Übermensch)라는 새로운 인간형을 제시하는 데 귀결된다. 극복자는 기존 도덕의 짐을 벗어던지고 권능(힘에의 의지)을 단순하고 전적으로 긍정하며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창조하는 주체다.
니체는 당시의 소시민적이고 안일한 삶을 추구했던 '최후의 인간'을 꾸르노가 제시한 필연성과 우연성의 복합적 세계 속에서 위험과 위대성을 포기한 존재로 풍자한다. 이 전환의 가장 극단적인 시험대는 영원회귀(Der Ewige Wiederkunft) 사상이다.
만약 자신의 삶의 모든 순간과 고통이 영원히 반복된다 할지라도, 그 삶을 전적으로 "다시!"라고 외치며 기꺼이 긍정할 수 있는가 하는 이 사유 실험은 가치들의 전환이 요구하는 삶에 대한 전적인 책임과 긍정의 전형이다.
니체는 나약함과 퇴폐의 흔적이 남아있던 지적 귀족주의를 몰아내고, 자기 지배와 금욕주의를 통해 스스로 강건해지는 진정한 귀족 정신을 제시한다. 따라서 니체는 기존 도덕을 넘어선 새로운 가치를 창조했기 때문에 단순한 비도덕론자(immoraliste)가 아니라, 도덕의 근본적인 전환을 이룬 초극자로 이해되어야 한다.
장-마리 기요 (Jean-Marie Guyau, 1854-1888) : 생명의 발산으로서의 도덕
프랑스 철학자 장-마리 기요는 니체와 거의 동시대에 활동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니체와 유사하게 비도덕론자로 분류되기도 했다.
그는 전통적인 도덕이 의무나 보상과 같은 외적인 근거에 의존하는 거대한 오류를 범했으며, 특히 무의식(l'inconscient)을 무시했다고 비판한다. 기요에게 도덕은 외적인 강제나 이성적 계산이 아니라, 생명(la vie) 그 자체의 내재적인 원리이자 필연적인 발산 충동이다.
생명은 본질적으로 풍요로움(과잉)을 가지며, 이 과잉된 힘은 자신을 타인에게 확장하고 나누려는 자연스러운 경향을 갖는다. 즉, 도덕은 삶의 근원에서 나오는 권능이자 생명력의 확장이라는 점에서 니체의 힘에의 의지와 유사한 맥락을 공유한다.
기요의 이러한 사상은 이후 프랑스 철학에서 앙리 베르그송의 생의 약진(Élan Vital) 사상으로 이어져, 이성적이고 결정론적인 구조를 벗어나 창조적이고 역동적인 생명력을 중시하는 철학적 흐름을 형성한다.
19세기 후반, 실증주의와 물리학적 결정론이 과학의 패러다임을 장악하면서 전통적인 형이상학은 위기에 직면했다.
이 시기 철학자들의 핵심 전략은 외부의 객관적 실재 탐구에서 내면의 주관적 실재 탐구로 중심축을 이동시키되, 이 주관적 실재를 과학적 발견과 경험적 데이터를 활용하여 정당화하는 "과학적 주관화"였다. 독일에서는 페히너가 정신물리학을 창시하여 정신 현상을 정량적으로 다루고 만물유심론이라는 범우주적 정신을 가정했으며, 하르트만은 당시의 생리학적 지식을 적극적으로 동원하여 범우주적 무의식을 모든 존재의 근원으로 설정했다. 이들은 정신이 물질에 내재되어 있음을 주장함으로써, 과학의 언어를 빌려 형이상학을 복원하고자 한 것이다. 한편, 프랑스의 유심론적 실증주의자인 부트루는 아예 자연법칙의 필연성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며, 우연성을 통해 정신적 자유가 물리 세계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존재론적 공간을 확보했다. 이러한 시도들은 과학적 회의주의 속에서 인간 정신과 의식의 존재론적 우위를 지키려는 철학적 투쟁의 결과물이다.
이 시기는 도덕의 근원이 신, 이성, 의무와 같은 초월적이고 외적인 권위에서 삶 자체의 내재적 힘으로 완전히 전환된 시기이다. 니체는 서양 도덕의 본질을 약자가 강한 삶에 대한 원한(Ressentiment)으로 만든 "자기절제" 행위로 규정하며, 기존의 가치 체계를 망치로 부수는 작업을 감행했다. 그는 도덕의 대안으로 권능(힘에의 의지)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초인(Übermensch)를 제시했고, 영원회귀라는 극단적인 사유 실험을 통해 삶의 무조건적인 긍정을 요구했다. 도덕을 부정하는 비도덕론이 아니라, 삶의 충만함을 기준으로 도덕을 재창조하려는 시도였다. 이와 유사하게 프랑스의 기요 역시 도덕을 외적 의무가 아닌 생명력의 과잉과 발산 충동이라는 생명체의 내재적 원리에서 찾았다. 이러한 철학적 움직임은 로쩨가 형이상학적 실재의 의미를 도덕적 가치에서 찾으려 했던 시도와 결합되며, 20세기 실존주의와 생철학에서 논의될 자유, 창조, 책임이라는 새로운 윤리적 화두의 결정적인 기원이 되었다. 다음시간부터는 드디어 베르그송의 철학으로 넘어간다. 프랑스현대철학으로 넘어가기 위해서 오늘과 같은 내용들을 살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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