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브레이너의 서양철학사_베르그송과 실용주의자들
오늘은 지난시간에 이어서 에밀브레이너가 본 19세기 프랑스철학과 함께 미국의 실용주의를 알아보려고 한다. 17세기부터 시작해서 200년간의 사상의 흐름을 보면서 현대철학이 기반한 주요한 개념들이 새롭게 탄생한 것이 아니라 실은, 이미 있었던 흐름에서 종합되거나 정리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근대화에 대한 종합이라던지, 인간에 대한 르네상스적인 정리하던지, 인간 행동을 신의 계시 없이 정리하던지. 그래서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어쩌면 그 분야에 대해서 메타인지를 가지고 전체를 볼 수 있게 만드는 것 같다. 오늘은 베르그송을 잠시 살펴보고, 실용주의의 특징과 소렐까지 살펴보고 넘어가려고 한다. 언제나 끝나지 않은 공부이지만 시간이 될 때 더 자세하게 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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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경의 프랑스는 당시 유럽을 지배하던 실증주의(Positivism)와 과학적 기계론의 한계에 대한 반성이 심화되던 시기이다. 슐리에(Jules Lachelier)와 그의 제자인 부트루(Emile Boutroux)는 이러한 지적 분위기 속에서 정신(esprit)의 자율성과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프랑스 정신주의 전통을 부흥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부트루의 저서 '자연법칙의 우연성(De la contingence des lois de la nature)'은 자연 현상조차도 엄격한 결정론에 종속되지 않음을 주장하며 베르그송 철학의 토양을 마련했다. 또한, 문학계에서는 브륀티에르(Brunetière)와 같은 인물들이 활동하며 지적 풍토를 조성하였고, 정치적으로는 우파 바레스(Barrès)의 국가주의와 고비노(Gobineau)로 대표되는 인종주의 사조가 팽배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 1859-1941)은 시간과 의식에 대한 근본적인 재해석을 통해 기존 철학의 사유 조건들을 변형시켰다. 그의 사상은 과학주의가 포착할 수 없는 생명의 본질과 창조성을 포착하려는 시도였다. 베르그송 사상의 핵심은 첫 저서인 '의식의 무매개적 자료들에 관한 시론(Essai sur les données immédiates de la conscience, 1889)'에서 제시된 순수 지속 개념이다. 그는 당대 심리학이 의식 현상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시간을 시계로 측정 가능한 균질적이고 양적인 공간처럼 취급하는 방식을 비판한다.
베르그송 철학의 특징
순수 지속의 특성: 진정한 의식의 자료는 다수성을 허용하지 않는 질적인 다양체(multiplicité qualitative)이며, 이는 끊임없이 상호 침투하고 융합되는 연속적인 진행(progrès) 그 자체이다. 이는 순수한 질이며, 단절 없이 과거를 현재로 연장하는 기억의 연속적인 삶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순수 지속은 한 인간의 생애 자체와 같으며 성숙하고 늙어가는 전체적인 과정과 일치한다. 진정한 시간은 의식 속에서 느껴지는 비균질적이고 생동적인 흐름이다.
과학적 사유의 한계: 베르그송에게 과학적 사유는 살아있는 개구리를 해부하여 죽은 시체로 만들듯이, 순수 지속이라는 살아있는 시간을 정태적인 공간으로 고정화하는 행위이다.
기억, 지성, 그리고 삶의 원리
'물질과 기억(Matière et Mémoire, 1896)'에서 베르그송은 물질을 이미지로, 정신을 기억으로 규정하며 정신과 물질의 본질적 차이를 강조한다.
기억의 이원성: 그는 기억을 습관적인 기억(운동 기제)과 순수 기억(관념적)으로 분류하며, 뇌는 기억을 저장하는 장소가 아니라 행동을 위한 주의의 기관으로서 순수 기억을 현재의 필요에 맞게 물질화(운동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본다. 플로티노스의 '엔네아데스'(IV, 3, 11)에서 "사람들이 보았던 모든 것의 추억(le souvenir)을 간직한다는 것은 필연적이 아니다"라는 구절은 모든 지각이 이미 기억을 포함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지성의 기원: 그는 지성이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외부에서 개입되거나 데카르트처럼 보편적 기계론의 산물로 보는 관점을 넘어, 생명 자체의 실천적인 기능에서 형성되었다고 본다.
비오스 : 도구 제작과 외부 환경에 대한 적응 등 실행하는 삶(vie pratique)의 의미를 지니며, 지성은 이 실천적 필요를 위해 고체적인 물질 세계에 최적화된 논리(고체의 논리)를 형성한다.
조에 : 생명 원리(principe vital, 정령, 혼)로서, 네오플라톤주의(플로티노스)**의 형이상학과 연결되는 창조적인 생명력이다. 베르그송의 철학은 지성에 의해 왜곡된 실재를 직관(Intuition)을 통해 조에와 같은 생명의 흐름과 합일함으로써 파악하려 한다. 직관은 분석을 배제한 말로써 전달할 수 없는 심적 체험이다.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_창조와 자유의 윤리학
후기 대작인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Les deux source de la morale et de la religion, 1932)'에서 베르그송은 도덕과 종교를 두 가지 원천으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닫힌 원천 (정태적 도덕/종교): 이는 사회적 압력과 집단의 생존을 위한 본능에서 비롯되며, 기존의 규범, 관습, 법률 등에 기반한다. 이는 '근면한 열망'(la frénésie industrielle)과 같은 인간의 실용적이고 기계적인 측면을 반영하며, 개인에게 억압과 부자유를 가져온다.
열린 원천 (역동적 도덕/종교): 이는 온생명(la Vie)의 충동, 즉 생명의 도약이 위대한 신비가들(미스티크)의 정신 속에 직접 발현되는 것으로, 보편적인 인류애와 창조적인 자유에 기초한다. 이는 사회적 규범을 초월하는 초지성적(supranaturel)인 것이며, "금욕적 열망"(la frénésie d'ascetisme)과 같은 열정(le enthousiasme, 신들림)을 통해 새로운 도덕적 지평을 열어젖힌다. 베르그송은 기존의 고정된 도덕 체계보다 시시각각 움직이고 변화하는 유기체적 도덕의 우수성을 옹호한다.
베르그송의 철학은 플라톤 이래 정지된 것을 진정한 존재로 보았던 서구 형이상학의 전통을 깨고, 흐름과 생성, 변화하는 것 자체의 존재론적 의미를 복권시켰다. 그의 철학은 신플라톤주의 형이상학을 인정하며, 지적 해방의 성격을 띤다. 그의 사상은 직관주의라고도 불리며, 러셀이나 비트겐슈타인 등에게는 비판을 받았지만, 노버트 위너와 같은 과학자나 질 들뢰즈와 같은 후대 철학자들에게 과정 철학의 영감을 제공하며 20세기 철학의 주요 흐름을 형성하였다. 그의 철학을 비합리주의라고 공격하는 것을 벗어나기 위해 그의 직관을 새로운 주지주의로 해석하려는 시도도 나타난다.
프랑스에서는 신앙과 이성의 문제를 삶의 행동 속에서 해결하려 한 철학적 흐름이 나타난다. 레온 올레-라프륀(Léon Ollé-Laprune, 1839-1898)은 지적 사색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진리에 행동(L'Action)을 통해 접근해야 함을 역설하며, 프랑스 행동의 철학의 기반을 다진 인물이다. 그의 철학은 신념과 의지가 진리 탐구에 필수적인 요소임을 강조한다. 그의 제자인 모리스 블롱델(Maurice Blondel, 1861-1949)은 1893년 저서 '행동(L'Action)'에서 이러한 사유를 체계화하였다. 블롱델은 사색과 행동의 연관을 새로운 철학적 해결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는 인간이 의식적으로 행하는 모든 행동이 필연적으로 초월적인 의미를 추구하게 되어 있으며, 삶 자체가 신앙적 의미를 찾는 끊임없는 과정임을 논증하였다.
즉, 인간이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 '중립'의 상태는 불가능하며, 모든 행동은 '신을 향한 행동'이거나 '신을 거부하는 행동' 둘 중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조는 가톨릭 모더니즘 논쟁에도 영향을 미쳤다. 라베르톤니에르 신부(Le père Lucien Laberthonnière, 1860-1932)는 신의 존재 증명이나 교리 이해가 추상적 이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은총을 통해서 신이 인간에게 내밀한 삶에 참여하는 체험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르화(Edouard Le Roy, 1870-1954)는 베르그송의 직관주의를 승계한 수학자로서, 지성과 직관 (베르그송) 또는 사색과 행동 (블롱델)의 이중 대립을 인정하며, 지성의 한계를 명확히 하였다. 그는 지성이 당시 고생물학과 인류학에 의해 알려진 사실들, 특히 인간의 진화와 적응 과정 속에서 도구적 역할을 수행했을 뿐이라고 보았다.
프랑스 행동철학의 특징
사색(이론)과 행동(실천)의 근본적인 연관성 강조 : 프랑스 행동철학은 전통적인 철학이 사색이나 이성적 인식에 우위를 두는 것을 거부한다. 이 철학은 인간의 행동(L'Action)을 단순한 사유의 결과가 아니라, 사유 자체의 근원이자 진리 탐색의 출발점으로 본다. 특히 모리스 블롱델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행동(L'Action, 1893)'에서 인간이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 중립 상태는 불가능하며, 모든 삶의 과정이 의미를 찾는 끊임없는 행동임을 논증하였다. 사색이 불완전한 지식을 줄 때, 행동만이 그 지식을 완성하고 진리로 나아가게 하는 열쇠라고 본다.
신앙과 초월성의 문제에 대한 실천적 해결 모색 : 이 사조는 가톨릭 배경과 깊이 연관되어 있으며, 신앙, 초월, 그리고 인간의 자유 문제를 추상적인 이성이 아닌 삶의 실천 속에서 해명하려 한다. 블롱델에 따르면, 인간의 유한한 의지는 그 어떤 행동을 해도 궁극적인 초월자(신)를 향한 무한한 의미를 추구하게 되어 있다. 라베르톤니에르 신부의 사상처럼, 신의 존재나 진리는 단순히 논리적 증명이 아닌, 인간의 내밀한 삶 속에 은총을 통해 참여하는 경험적이고 실천적인 방식으로 확증되는 것이다.
주지주의(Intellectualisme)에 대한 반대와 의지의 강조 : 행동철학은 지성(Intelligence)을 모든 진리의 척도로 삼는 주지주의를 비판하는 사조이다. 이들은 올레-라프륀의 사상처럼, 진리 탐구에 있어서 의지(Volonté)나 신념(Croyance)과 같은 주관적이고 윤리적인 요소가 이성만큼이나 중요함을 강조한다. 르화(Edouard Le Roy)가 지적한 것처럼, 지성은 주로 실용적인 목적이나 도구적 기능을 수행할 뿐, 삶과 존재의 근본적인 진리는 사유를 넘어선 행동을 통해 포착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실용주의(Pragmatism)는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퍼어스(Peirce)에 의해 창시되고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와 듀이(John Dewey)에 의해 발전된 철학 사조이다. 이 철학은 관념이나 이론의 진리를 그것이 가져오는 실제적인 결과, 실천적인 효용성, 그리고 경험적 만족을 통해 규정한다. 즉, 진리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효과적인 생산을 확인하게 하는 귀결에 도달하도록 인도하는 이론이며, 끊임없이 경험 속에서 재확인되는 것이다. 특히 윌리엄 제임스는 진리의 기준을 삶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으로 보았고, 듀이는 사유를 문제 해결을 위한 도구로 간주하는 도구주의로 발전시켰다. 따라서 실용주의는 추상적인 이성이나 사변을 넘어 행동과 실천의 역할을 강조하며, 경험의 흐름 속에서 작동하는 가변적인 진리를 옹호하는 철학이다.
찰스 샌더스 퍼어스(Charles Sanders Peirce)_실용주의의 창시자
실용주의의 창시자인 찰스 샌더스 퍼어스(Peirce, 1839-1914)는 그의 논문 '우리의 생각들을 어떻게 분명하게 하는가(How to Make Our Ideas Clear, 1878)'에서 실용주의의 원칙을 정립하였다.
그는 우리가 어떤 개념을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개념이 초래할 수 있는 실천적 결과, 즉 실험적 조절의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퍼어스에게 실천적 범위란 단순히 실생활의 활용을 넘어, 과학적 실험을 통해 예측하고 검증할 수 있는 범위를 의미한다. 그의 핵심 원칙은 생각이나 개념의 의미는 그 개념이 초래할 수 있는 실제적이고 감지 가능한 효과나 실천적 결과를 통해서만 명확해진다는 것이다.
그는 개념을 정의하기 위해 복잡한 추상적인 사변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그 개념이 유발할 수 있는 "실험적 조절의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어떤 믿음이 참이라면, 그것은 미래의 행동과 경험에 특정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것이다.
퍼어스에게 실용주의는 단순히 '유용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습관을 형성하고 의심(doubt)을 제거하여 견고한 믿음(belief)에 도달하는 과학적 탐구 방법론이었다.
퍼어스는 단순히 실용주의의 한 가지 원칙만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기호학(기호의 이론)과 범주론을 통해 자신의 철학을 하나의 거대한 체계로 구축하였다. 그의 범주론은 경험 세계를 설명하는 세 가지 보편적인 양상, 즉 제1성(Firstness, 순수한 느낌, 가능성), 제2성(Secondness, 사실, 저항, 실재성), 그리고 제3성(Thirdness, 법칙, 습관, 매개)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범주들은 그의 실용주의와 기호학을 관통하는 근본적인 요소이며, 그의 철학을 단순한 실용적 접근을 넘어선 종합적인 형이상학으로 만들었다.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_대중화와 급진적 경험주의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는 실용주의를 대중화하고, 진리의 개념을 더욱 폭넓게 확장하였다. 그는 진리를 ‘효과적인 생산을 확인하게 하는 귀결들에 도달하기를 인도하는 이론’이라고 정의하였다. 즉, 진리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경험의 흐름 속에서 작동하는 가설로서, 실제로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배경과 사상의 종합: 제임스는 원래 자연주의자였고 동물학 교수 아가씨즈(Jean Louis Rodolphe Agassiz)의 제자였으나, 신비주의적이며 초절주의자들의 환경에서 자란 아버지의 영향을 깊게 받았다. 이러한 배경은 그의 철학에 경험주의와 영성주의를 결합하는 독특한 특징을 부여한다.
진리의 두 기준: 진리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데는 두 가지 기준이 있다. 첫째, 세계에 대한 통찰 즉 기존의 진리들과 모순되지 않는 정합성(coherence)을 가져야 한다. 둘째, 실용적 기준 즉 실천적 효용성과 삶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경험의 만족도)을 가져야 한다. 이론의 진실성은 이 두 기준, 특히 삶의 질적 향상이라는 실용적 기준에 의해 끊임없이 재확인된다.
급진적 경험주의와 종교: 제임스의 급진적 경험주의는 감각적 경험뿐만 아니라 종교적 경험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비록 그의 사상이 "조잡하다"는 비판을 받았을지라도 초자연주의에 동의하였으며, 영성주의의 창설자 중 한 명으로서 종교 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의식의 흐름: 그는 의식을 정적인 요소들의 집합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흘러가는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정신의 기능: 심리학은 의식의 구조가 아니라, 환경에 대한 적응과 문제 해결이라는 정신의 기능(Function)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보았다. 그의 저서 '심리학 원리(The Principles of Psychology, 1890)'는 현대 심리학의 고전으로 여겨진다.
제임스-랑게 이론: 정서 이론에서는 '제임스-랑게 이론'을 제시하여, 정서적 경험이 신체적 변화(예: 심장 박동 증가)에 대한 인지적 해석의 결과로 발생한다고 주장하였다.
듀이 (John Dewey)_도구주의와 통일성
존 듀이(John Dewey, 1859-1952)는 실용주의를 도구주의(Instrumentalism)로 발전시켰다. 듀이에게 사유는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도구이며, 진리는 문제 해결 과정에서 얻어진 조정(adjustment)의 결과이다.
이원론에 대한 비판: 듀이는 헤겔의 통일성 사상에 영향을 받아, 전통 철학이 왜 절대적 사유가 이원성으로 분열되는지와 왜 현존의 세계와 구별된 가치의 세계가 나타나는지를 해명하려 했다. 그는 이러한 이원화 현상이 삶의 실제적 경험을 분리하여 사고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사유의 이중화: 듀이는 전기 사유에서 수학적인 것(추상적 진리)과 도덕적인 것(가치)의 이중성을 인정했지만, 궁극적으로는 경험의 통일성 속에서 진리와 가치가 분리될 수 없음을 강조하였다.
듀이는 사유를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도구(Instrument)로 간주한다. 사유는 순수한 사색이 아니라, 개인이 환경에 적응하고 경험 속의 어려움이나 의심을 극복하여 새로운 균형을 이루기 위한 능동적인 과정이다.
듀이는 전통 철학이 현존의 세계와 구별된 가치의 세계를 나누는 이원론과 절대적인 사유가 분열되는 현상을 비판하였다. 듀이에게 경험은 단순한 수용이 아닌, 유기체와 환경 간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이며, 진리와 가치는 이 경험의 통일성 속에서 분리될 수 없다. 초기에는 헤겔의 통일성 사상에 영향을 받았으며, 수학적인 것과 도덕적인 것의 이중화를 궁극적으로 극복하려 했다.
듀이에게 진리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탐구 과정(Inquiry)을 통해 얻어지는 만족스러운 해결책 또는 확증된 주장(warranted assertibility)이다. 어떤 아이디어가 진리인지는 그것이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얼마나 효율적이며 효과적인지를 통해 결정된다.
죠르쥬 소렐은 프랑스의 사회 이론가이자 엔지니어 출신으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유럽을 지배했던 주지주의(Intellectualism)와 합리주의에 강력히 반대한 인물이다. 그는 추상적인 사유나 점진적인 개혁을 통해 사회가 발전할 것이라는 온건한 사회주의자들의 입장을 거부하였다. 소렐은 진정한 사회 변혁은 이성적 분석이 아닌, 노동 계층의 맹렬하고 비합리적인 에너지에서 비롯된다고 보았으며, 이로 인해 그의 철학은 사회적 혁명과 반주지주의 사이에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 그의 사상은 마르크스주의를 혁명적 행동주의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것이다.
소렐 사상의 가장 독창적이고 중요한 개념은 '신화(Mythe)'이다. 그에게 신화는 과학적 사실이나 논리적 예측이 아니라, 사람들의 행동을 촉발하고 집단적인 힘을 결집시키는 강렬한 이미지이자 비합리적인 신념이다. 특히 노동자 계층에게는 총파업의 신화(Mythe de la grève générale)가 가장 중요하다고 보았다. 총파업의 신화는 미래에 노동 계층이 단결하여 자본주의 질서를 한순간에 전복시킬 것이라는 강력하고 영웅적인 이미지를 제공하며, 이는 노동자들에게 일상적인 투쟁을 지속할 수 있는 에너지를 불어넣는 것이다.
소렐은 계급 투쟁에서의 프롤레타리아 폭력을 옹호했다.
그가 옹호한 폭력은 무분별한 테러가 아니라, 계급의식을 고취하고 사회적 경계를 명확히 하는 도덕적 의미를 지닌 폭력이다. 그는 부르주아 계층이 나약하고 타락했으며, 의회 민주주의와 타협을 통해 혁명적 에너지를 약화시키려 한다고 비판하였다. 따라서 노동 계층이 순수한 계급 투쟁을 유지하고 타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의회주의와 타협하지 않는 강력한 폭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소렐은 경제적인 해방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개혁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미래의 사회주의 사회가 단순히 부의 재분배에 그쳐서는 안 되며, 노동과 생산에 기반한 '생산자 윤리'를 회복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이러한 생산자 윤리는 고대 그리스 시민이나 초기 기독교인의 영웅적이고 금욕적인 가치를 계승하는 것으로, 노동자들이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명예를 가지고 창조적인 노력에 헌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이러한 도덕적 윤리야말로 혁명의 도덕적 기반이 될 것이라고 보았다. 소렐의 철학은 생전에는 비주류였으나, 20세기 초 유럽의 여러 급진적 정치 운동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반이성주의(Anti-rationalism), 신화의 중요성 강조, 그리고 행동과 폭력의 옹호는 당시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와 러시아의 레닌을 포함한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소렐은 자신이 의도한 바와는 달리, 좌우파의 급진적인 반주지주의 운동 모두에게 이론적 영감을 제공한 복합적이고 논쟁적인 인물이다.
주지주의 Intellectualism
주지주의는 지성(Intellect)이나 이성(Reason)이 인식과 이해의 주요 원천임을 강조하는 철학적 태도이다.
지성은 최고 가치 : 지성 또는 사유가 인간의 모든 정신 활동 중에서 가장 높은 가치를 지닌다고 본다. 감정, 의지, 감각적 경험 등 다른 정신적 기능보다 지성이 진리에 도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고 믿는다.
의지나 감정의 종속성 : 인간의 의지(Will)나 감정과 같은 비이성적인 요소들은 지성에 의해 인도되거나 통제되어야 한다고 본다. 특히 윤리적 영역에서, 옳은 행동은 선(善)을 아는 지식(지성)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한다. (예: 소크라테스의 '덕은 앎이다').
진리 획득의 내재적 원천 중시이다: 진리나 지식은 주로 외부 감각 경험을 통해서가 아니라, 내재적인 이성적 능력과 명료한 사유 과정을 통해 획득된다고 본다.
합리주의 Rationalism
지식의 선천성(생득관념) 주장이다: 참된 지식은 감각 경험에 의존하지 않는 선천적인(A priori) 아이디어나 생득관념(Innate Ideas)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이성을 통해 도출된 지식만이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진리를 가질 수 있다. (예: 데카르트의 명석 판명한 관념)
연역적 방법의 선호 : 지식을 확장하고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론으로 수학적 모델을 따르는 연역적 추론을 선호한다. 일반 원리나 자명한 공리로부터 출발하여 논리적 필연성을 통해 개별적인 사실들을 도출해낸다. (예: 스피노자의 기하학적 방법)
감각 경험의 불신 : 감각 경험은 종종 불확실하고 오류를 유발할 수 있으므로, 지식의 확실한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본다. 감각 경험은 잠정적인 정보만을 제공할 뿐, 참된 인식은 이성의 능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이 철학적 흐름은 서양 사상의 근간이었던 주지주의와 합리주의의 한계를 동시에 극복하려는 근본적인 시도였다는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 베르그송은 '순수 지속(pure durée)'과 '생명의 도약' 개념을 통해, 실재를 정지되고 공간화된 '존재(Être)'가 아닌, 끊임없이 흐르고 창조되는 '생성(Devenir)'으로 파악했다. 이는 프랑스 행동철학이 사색만으로는 진리에 도달할 수 없음을 지적하고 행동을 윤리적, 형이상학적 탐구의 출발점으로 삼은 태도와 일맥상통한다. 또한, 미국의 실용주의는 진리를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관념에서 해방시켜, 퍼어스의 실험적 조절 가능성과 제임스의 실용적 효용성이라는 '경험 속에서의 작동 가치'로 전환시켰다. 이 모든 움직임은 이성이 아닌 삶, 경험, 직관, 의지, 행동과 같은 동적인 요소를 진리 탐구의 핵심으로 끌어올린 시대적 전환이다.
이 사조들은 진리의 성격을 추상적에서 도구적이고 실천적인 것으로 재정의했다는 중요한 귀결을 낳았다. 존 듀이가 사유를 문제 해결을 위한 도구(Instrument)로 본 것과 죠르쥬 소렐이 노동자들의 총파업 신화에서 혁명의 비이성적 원동력을 찾은 것은, 모두 관념의 가치를 실제적인 효력과 행동 유발력에서 찾았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특히 윌리엄 제임스는 진리의 기준에 '경험의 만족도'와 '삶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포함시킴으로써, 이성의 영역이었던 진리 개념을 윤리와 심리의 영역으로 확장하였다. 이는 철학이 추상적인 사색의 탑에서 내려와 실제 삶의 문제와 인간의 의지 및 감정에 깊이 관여하게 되는 20세기 후반 철학의 실천적 경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이렇게 해서 오늘도 에밀브레이너의 관점에서 실용주의가 도래한 시점을 확인하였다. 점점 현대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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