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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철학일기

절대적 시공간은 어떻게 무너질까?

에밀브레이너의 서양철학사_양자역학과 관념론

by 낭만민네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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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의 대한 전통이 여전히 유럽사회에서 매우 강하게 나타난다. 특히 근대에서 현대까지의 과정은 마르크스에 이르기까지 헤겔이 미친 영향은 엄청나다. 헤겔의 절대 관념론은 19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유럽 대륙뿐만 아니라 앵글로색슨 세계에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이로 인해 독일 외에서도 헤겔 사상을 계승하고 독자적으로 재해석하려는 다양한 신헤겔주의적 흐름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런 방식의 관념론의 확산은 단순히 철학적 유행에 그치지 않고, 각국의 정치, 사회, 종교적 맥락과 결합하며 독특한 형태로 발전하는 양상을 보였다. 오늘은 지난시간에 이어서 앵글로색슨, 이탈리아, 그리고 프랑스와 독일의 주요 관념론자들과 그들의 핵심 사상이 어떻게 확장되고 발전했는지를 알아보려고 한다. 드디어 과학사회학이 나오는 토대까지 가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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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앵글로색슨의 관념론: 브래들리, 보산케, 로이스 (L'idéalisme angls-saxon)


앵글로색슨 관념론은 19세기 중반 이후 영국과 미국 대학가에서 경험주의와 공리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헤겔주의를 수용하면서 강력하게 부상하였다. 이 학파는 인식의 주관성을 넘어선 보편적이고 구체적인 실재로서의 정신(Absolute Spirit)을 탐구하며, 실재와 현상의 관계에 대한 심오한 논의를 전개하였다. 이러한 전통은 현대의 영미철학이 가지고 있는 관련론적인 성격의 기반이 되었으며 이러한 기반에 실용주의가 덧입혀지면서 실용성을 추구하면서도 그 안에 보편을 추구하여 '원리'를 뽑아내는 철학으로 발전하게 된다. 브래들리와 보산케트 그리고 로이스의 철학을 알아보자.


브래들리(Francis Herbert Bradley, 1846-1924)는 옥스퍼드대학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앵글로색슨 관념론의 정점을 찍은 인물이다. 그의 대표작인 'Appearance and Reality (1893)'에서 브래들리는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 세계, 즉 현상(Appearance)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으며 궁극적인 실재(Reality)는 오직 사유 대상으로서의 '정신(un Geist)'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헤겔의 사유 방식을 이어받아 이 궁극적인 실재를 구체적이고 보편적인 통일체로 보았으며, 현상의 모순을 극복하고 실재로 나아가려는 논리적, 형이상학적 과정을 강조했다. 이러한 브래들리의 사상은 범신론(Panentheism)적 경향을 띠는데, 이는 현상의 세계가 궁극적인 정신 안에 통합되어 있지만 정신 그 자체는 현상을 초월한다는 입장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그의 또 다른 저서인 'The Principles of Logic (1883)'은 논리학을 형이상학과 긴밀하게 연결하며, 판단과 추론이 어떻게 실재의 본질을 반영하는지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보산케트(Bernard Bosanquet, 1848-1923)는 사회 철학자로서의 측면이 강하며, 그의 관념론은 사회와 정치적 삶에서 나온 구체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개인의 가치'와 '국가의 역할'을 논하는 데 집중되었다. '논리학(1888)'을 통해 헤겔의 논리학을 영국 사상에 도입하고 해석하는 데 기여했으며, '개인의 가치와 운명(1913)'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실현은 사회 공동체(국가) 안에서만 진정으로 가능하다는 헤겔적인 주장을 펼쳤다. 그의 철학은 당시 영국의 사회 개혁 운동과도 연관되어 있으며, 경험을 단순한 감각 자료가 아닌 합리적인 구조를 지닌 사회적 산물로 해석하는 것이 특징이다.


조시아 로이스(Josiah Royce, 1855-1916)는 하버드대학에서 미국의 관념론을 이끌었다. 그는 유럽 대륙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특히 플로티누스의 신플라톤주의 사상으로부터 깊은 영감을 받아 그의 관념론을 전개하였다. 로이스는 궁극적인 실재를 '절대적 해석자(Absolute Interpreter)'로서의 무한한 정신으로 보았으며, 개인의 지식과 오류는 이 절대적 정신 안에서 궁극적으로 통합되고 해소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윤리학과 종교 철학은 공동체(Community) 개념을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개인은 이 공동체와의 충성(Loyalty)을 통해 자신의 존재 의미와 구원을 발견하게 된다는 사상이다.


이탈리아 관념론 (L'idéalisme italien)

이탈리아 관념론은 주로 신헤겔주의(Neo-Hegelianism)의 형태로 전개되었으며, 특히 이탈리아의 통일(Risorgimento) 이후 민족적 정체성과 관련된 윤리 및 역사 철학 분야에서 두드러졌다.

크로체(Benedetto Croce, 1866-1952)는 철학자이자 정치가로서 이탈리아 관념론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는 칸트의 이원론적인 비판주의를 극복하고 정신 활동의 통일성을 주장하는 절대적 관념론을 제창하였다. 크로체의 철학 체계는 그의 저서 '정신철학'의 네 부분, 즉 미학(표현 활동), 논리학(개념 활동), 경제학과 윤리학(실천 활동), 그리고 역사학(정신 활동의 총체)으로 구성된다. 그는 미학을 직관과 표현의 과학으로 정의하며 예술의 자율성을 강조했고, 역사학을 "살아있는 철학"으로 간주하며, 모든 진정한 지식은 역사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보았다. 크로체에게 실재는 정지된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생성하는 정신의 자기 활동인 것이다.

겐틸레(Giovanni Gentile, 1875-1944)는 크로체와 함께 이탈리아 관념론의 양대 산맥을 이루었으나, 크로체보다 더 극단적인 "행위 관념론(Actual Idealism)"을 주장하였다. 겐틸레에게 철학적 실재는 정지된 사유의 대상이 아니라, 사유하는 '현재의 행위(Act)' 그 자체이다. 그는 모든 객관적인 실재는 주관적인 사유 행위 속에서만 창조적으로 생성된다고 보았으며, 이 사유 행위는 궁극적으로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삶을 통한 창조적 참여(participation)로 이어진다고 강조하였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전체주의적인 성향을 띠며 이탈리아의 파시즘 정권과 연관되어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아믈랑 (Octave Hamelin, 1856-1907)

프랑스의 철학자인 옥타브 아믈랑은 르누비에의 신비판주의를 출발점으로 삼았으나, 플라톤과 헤겔의 사상을 독창적으로 종합하여 프랑스 고유의 관념론을 구축하였다.

종합적 방법론: 아믈랑은 르누비에의 범주론을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수(數)가 단일성(l'unité)과 다수성(la pluralité)의 종합인 것처럼, 철학적 개념들을 어떤 것도 따로 떼어놓지 않고 상호 유기적으로 연관시키는 종합적 방법을 제시하였다. 이는 플라톤의 변증법과 헤겔의 변증법적 방법과 유사하며, 대립하는 항들이 서로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를 호출하며 통일적인 체계를 이루어 나가는 방식으로 사유를 진행한다.

인격성과 우주론: 그의 철학은 궁극적으로 인격성(Personnalité)의 문제에 도달한다. 아믈랑은 인격성을 원인성(causalité)과 목적성(finalité)의 종합을 통해 탄생하는 것으로 해석하며, 이러한 인격적 관점을 우주 전체로 확장하여 우주에 대한 인격주의적 전망을 제시하였다. 즉, 우주 전체가 목적성을 가진 인격체와 유사한 방식으로 조직되고 진화한다고 보았으며, 이는 그의 관념론이 단순한 인식론적 주장이 아니라 전체 세계에 대한 형이상학적 해석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2. 독일 관념론의 현대화


헤겔 사후, 독일에서는 칸트로의 복귀를 주장하는 신칸트학파와 헤겔의 정신을 계승하는 신헤겔주의가 동시에 발전하였다. 칸트로 돌아가면 칸트가 바라본 순수이성과 실천이성의 차원에서 새로운 접근을 해 보자라는 주장이었고, 신헤겔주의는 헤겔의 변증법의 범주를 확대하여 인간의 정신적 삶에 대해서, 도덕에 대해서 다루는 가운데 '신실재론'까지 넘어가게 된다. 아래에 제시된 학자들은 주로 헤겔 우파의 흐름에 속하며, 윤리적, 문화적, 종교적 관점에서 관념론을 재해석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이켄(Rudolf Eucken, 1846-1926)은 예나대학의 교수로 활동하며 190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할 만큼 대중적 영향력이 컸다. 그의 관념론은 '활동적 관념론(Activism)'이라 불리는데, 이는 단순한 지적 사색을 넘어선 인간 정신의 도덕적이고 실천적인 활동을 강조하는 관념론이다. 그는 '현재의 정신적 흐름(1904)'에서 물질주의와 자연주의의 시대적 흐름에 맞서, 인간의 정신적 삶(Geistiges Leben)을 새롭게 발견하고 도덕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오이켄의 관념론은 일종의 정신적 세상에 대한 도덕적 예언으로서의 성격을 띠며,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는 종교적, 윤리적 탐구를 중심에 두는 것이 특징이다.


오이켄(Rudolf Eucken, 1846-1926)


마르크(Siegfried Marck, 1889-1957)는 자유사회민주주의자로서 헤겔의 변증법을 현대 철학의 문제에 적용하려 하였다. 그는 현재 철학에서 변증법(1929, 1931)을 통해, 헤겔의 변증법이 단순한 사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모순을 해결하고 자유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실천적 방법론으로서의 가치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크로네(Richard Kroner, 1884-1974)는 헤겔 철학의 역사적 의의를 재평가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저서 칸트에서 헤겔까지(1921-1924)는 독일 관념론의 발전 과정을 심층적으로 분석하며, 헤겔 사상이 단순한 낭만주의적 사변이 아니라 근대 철학의 정점임을 입증하고자 하였다. 또한 문화철학 서설(1928)을 통해 관념론적 시각에서 문화와 정신의 관계를 탐구하며, 관념론이 20세기 문화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였다.


고띠에의 관념론 (Jules de Gaultier, 1858-1942)

프랑스 작가이자 철학 비평가인 쥘 드 고띠에의 관념론은 니체 사상의 영향을 받아 전통적인 관념론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 특징이다.

도덕적 감성과 형이상학적 감성의 구별: 고띠에는 '칸트에서 니체로(De Kant à Nietzsche, 1900)'에서 도덕적 감성과 형이상학적 감성이라는 두 가지 근본적인 세계관을 구별한다. 도덕적 감성은 세계를 선악의 틀로 판단하며 규범을 중시하는 반면, 형이상학적 감성은 세계를 무가치하고 중립적인 현상으로 바라본다. 그는 이러한 구별을 통해 가치의 창조자로서의 인간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표상들의 실재성: 그의 관념론은 모든 대상과 모든 주체를 무한한 표상들(représentations)의 실재성을 표상하는 수단들로 간주한다. 즉,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는 주체들의 수많은 관념과 표상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표상들 자체가 궁극적인 실재를 반영하거나 구성하는 도구가 된다는 것이다. 이는 전통적인 주관적 관념론을 넘어, 실재 자체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관념들의 망(網)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역동적인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신칸트주의

신칸트주의는 이마누엘 칸트의 비판 철학을 원천으로 삼아 "칸트로 돌아가라(Zurück zu Kant)"를 기치로 내걸었다. 이들은 인간 인식의 한계를 설정하고, 선험적(a priori) 형식을 통해 과학적 지식의 객관적 타당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마르부르크 학파(코헨, 나토르프)는 순수 논리를 통해 자연과학의 기초를 탐구했고, 바덴 학파(빈델반트, 리케르트)는 가치론을 발전시켜 자연과학과 문화과학을 구별하며 윤리 및 역사 철학의 문제를 칸트적으로 재조명했다. 이들의 특징은 분석적이고 인식론적이며, 칸트의 이원론을 일정 부분 수용하면서 논리적 엄밀성을 추구했다는 점이다.

인식론의 재정립: 경험적 사실 너머에 있는 선험적(a priori) 인식 조건과 이성(Vernunft)의 역할을 재확인하고, 인식의 보편적 타당성을 확보하려 했다.

과학의 기초 확립: 과학적 지식의 객관성과 필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칸트의 선험적 형식(A priori Forms)을 재조명했다.

가치와 규범의 문제: 객관적인 가치(Wert)와 규범(Norm)의 영역을 탐구하여, 실증주의가 간과한 윤리, 문화, 역사 철학의 문제를 다루었다.

마르부르크 학파 (Marburg School): 헤르만 코헨(Hermann Cohen), 파울 나토르프(Paul Natorp) 등. 자연과학적 지식의 논리적 기초를 강조하며, 칸트의 초월적 방법론을 순수한 논리(Logik)의 영역으로 환원시켰다.

프라이부르크/바덴 학파 (Baden School): 빌헬름 빈델반트(Wilhelm Windelband), 하인리히 리케르트(Heinrich Rickert) 등. 가치론(Wertphilosophie)을 발전시켜, 자연과학(자연 법칙)과 문화과학(가치 관계)을 구별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신헤겔주의

반면, 신헤겔주의는 G.W.F. 헤겔의 절대 관념론과 변증법을 계승했다. 이들은 칸트가 설정했던 주관과 객관, 현상과 예지 사이의 모든 이원론적 분리를 거부하고, 모든 실재와 사유가 절대 정신(Absolute Geist) 안에서 총체적으로 통일된다고 보았다. 신헤겔주의는 지식을 역사적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발전하고 실현되는 것으로 파악했으며, 윤리, 정치, 문화 등 사회적 공동체의 문제를 중시했다. 특히 영국 관념론(브래들리, 보산케트)은 절대 실재를 통한 통일성을, 이탈리아 관념론(크로체, 겐틸레)은 정신 활동으로서의 창조적 실현을 강조했다. 따라서 신헤겔주의는 통합적이고 형이상학적이며,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총체적 진리를 모색했다는 특징을 가진다.

절대적 통일성: 칸트가 설정한 현상계와 예지계, 주관과 객관, 이성과 경험 사이의 이원론적 분리를 비판하고, 모든 존재와 사유는 궁극적으로 하나의 절대 정신(Absolute Geist) 안에서 통일된다고 보았다.

역사성과 총체성: 지식과 실재를 정태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역사적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발전하고 실현되는 총체적(Total) 과정으로 이해했다.

국가와 윤리: 개인의 자유와 실현은 국가와 같은 유기적인 사회 공동체 안에서만 가능하다고 보며, 윤리적, 정치적 문제를 중시했다.

영국 관념론 (British Idealism): F.H. 브래들리(F. H. Bradley), 버나드 보산케트(Bernard Bosanquet) 등. 절대 실재(Absolute Reality)에 대한 탐구와 윤리적, 사회적 문제에 집중했다.

이탈리아 관념론: 베네데토 크로체(Benedetto Croce), 조반니 겐틸레(Giovanni Gentile) 등. 정신 활동을 통한 창조적 실현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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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과학영역에서 날아온 비판


현대화가 진행되면 19세의 과학 비판은 실증 과학(Positivisme)이 다루는 물질, 생명, 의식의 이행을 인식론적으로 검토하며, 특히 수학, 물리학과 같은 근본 과학들의 기술적 질서(l'ordre technique)와 연역적 이상(l'idéal)의 한계를 논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등장은 유클리드 기하학의 절대적 진리성을 무너뜨리며, 과학적 진리가 하나의 선택된 협약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또한, 열역학의 엔트로피 개념은 물리적 세계의 비가역성을 제시하며 기계론적 결정론에 균열을 일으켰다. 이 모든 변화는 완전한 과학의 연역적 이상이 사라지고, 과학적 진리가 훨씬 더 복잡해진 이상(Idéal complexe)으로 대체되는 과정을 가속화하였다.


협약주의와 실용주의

푸앙카레(Henri Poincaré, 1854-1912):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였던 푸앙카레는 협약주의(le conventionalisme)의 대표자이다. 그는 과학적 사실의 기계적 설명이나 기하학적 공리는 실험적 사실에 의해 강제되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들이 실용적으로 가장 편한(commodes) 협약들을 선택하여 구성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뉴턴 역학의 법칙은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현상을 가장 단순하고 편리하게 설명하고 예측하기 위해 과학 공동체가 합의한 규칙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는 과학 이론의 실재론적 해석을 거부하고 도구주의(Instrumentalisme)적 관점을 옹호하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피에르 뒤앙(Pierre Duhem, 1861-1916): 뒤앙 역시 물리학 이론을 현실에 대한 설명이 아닌, 실험적 인식들로부터 요약되고 분류된 단순 표상들을 담는 일종의 편리한 카탈로그로 보았다. 그는 물리학 이론의 이중 개념작용의 역사를 추적하며, 이론이 객관적 실재를 반영한다는 견해 대신, 이론은 일관성과 논리적 단순성을 추구하는 인간 정신의 구성물임을 강조했다. 뒤앙은 또한 홀리즘(Holism)을 주장하며, 하나의 실험이 특정한 가설을 결정적으로 반증할 수 없고, 이론 전체가 함께 검증되거나 수정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밀로(G. Milhaud)와 르화(E. Le Roy): 이들은 근대 과학의 법칙들이 아직 결정론의 틀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판하며, 과학 법칙의 근저에 깔린 필연성과 합의의 관계를 탐구하였다.


협약주의(le conventionalisme)

과학 법칙 및 원리의 합의적 성격 : 협약주의는 과학의 근본적인 원리나 법칙(예: 뉴턴 역학의 법칙, 유클리드 기하학의 공리)이 객관적인 실재의 필연적 반영이 아니라, 과학자 공동체가 현상을 가장 단순하고 효과적으로 설명하고 예측하기 위해 선택하고 합의한 규칙(Convention)이라고 본다. 이는 과학 이론의 절대적 진리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실용성 및 편의성 강조 : 과학적 협약을 선택하는 기준은 그것이 실재에 얼마나 근접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편리하고(commodes) 유용하며(utile) 단순한가이다. 여러 가지 이론이 동일한 현상을 설명할 수 있을 때, 과학자들은 가장 경제적이고 논리적으로 일관성 있는 이론을 선택할 뿐이며, 이 선택은 실용적인 이유에 근거한 것이다.

경험의 구속력 부인 : 협약주의는 경험적 사실이 과학 이론을 완전히 결정하거나 강제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즉, 실험적 사실은 이론이 협약적으로 구성될 때 제한(limitation)을 가하지만, 이론 자체를 유일하게 결정(déterminer)하지는 못한다. 예를 들어, 푸앙카레에게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존재는 기하학적 공리가 경험이 아닌 자유로운 선택의 산물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과학들의 비판과 비판주의

학자들은 주로 칸트적 비판주의(Criticisme)의 시각에서 과학적 개념, 특히 원자론과 결정론의 근사치적 성격과 허구(Fiktion)로서의 역할을 탐구했다.

안껭(Arthur Hannequin, 1856-1905): 그는 '아톰의 가설에 관한 비판적 시론(1908)'에서 원자 가설의 근사치적 성격을 비판하였다. 안껭은 게이뤼삭의 법칙이나 뒬롱-프티의 법칙 등이 완전한 진리가 아니라, 특정 조건 하에서만 유효한 근사치 법칙임을 지적했다. 즉, 과학적 개념들은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필요한 도구일 수는 있지만, 그 자체가 형이상학적 실재는 아니라는 것이다.

바이힝거(Hans Vaihinger, 1852-1933): 그의 철학은 "마치 ~처럼(Als-ob)"의 철학으로 유명하며, 과학적 개념들 중 상당수는 논리적으로 모순되거나 검증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생명적 필연성에 의해 사용되는 허구(Fiktion)라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수학의 허수나 과학의 이상 기체 개념 등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지만, 사고를 편리하게 하고 실용적 가치를 제공하기 때문에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취급된다는 것이다.


편광과 복굴절에 관한 푸엥카레의 주장


4. 양자역학이 가져온 비결정론


20세기 초, 물리학에서 일어난 두 가지 혁명, 즉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의 상대성 이론과 플랑크(Max Planck), 보어(Niels Bohr) 등으로 대표되는 양자역학의 출현은 수세기 동안 견고하게 유지되어 온 전통적인 뉴턴 역학 및 기계론적 세계관의 기초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 특수 상대성 이론(1905년)과 일반 상대성 이론(1915년)은 우주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시간, 공간, 질량이 관찰자의 속도나 중력장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실재임을 입증함으로써, 절대적인 시공간의 존재를 부정하였다. 특히 뉴턴적 결정론의 핵심 기반이었던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관찰과 절대적 실재에 대한 믿음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며, 과학적 진리가 하나의 보편적 법칙이 아니라 관찰 맥락에 의존하는 상대적 구조일 수 있다는 인식론적 전환을 강요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과학 철학자들로 하여금 실재(Reality)와 관찰(Observation)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도록 만들었다.


양자역학의 발전은 과학의 전통적인 핵심 원칙인 인과적 결정론(Causal Determinism)에 결정타를 날렸다.

1900년 플랑크의 양자 가설과 이후의 연구들은 미시 세계에서 에너지가 불연속적인 양자(quanta) 형태로만 교환되며, 입자의 위치나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알 수 없다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로 이어졌다. 이로 인해 미시적 세계의 현상은 확률적이고 비결정론적인 성격을 띠는 것으로 밝혀졌다. 과학 법칙은 더 이상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절대적인 도구가 아니며, 단지 가능성의 분포를 기술하는 통계적 규칙일 뿐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이러한 비결정론(Indeterminism)의 출현은 푸앙카레의 협약주의와 바이힝거의 허구주의 같은 과학 철학적 흐름을 강화했다. 즉, 과학적 개념과 법칙은 실재의 본질을 표현한다기보다는, 단지 복잡한 현상을 다루기 위해 인간 정신이 부여한 편리하고 실용적인 협약이나 허구일 수 있다는 해석이 힘을 얻게 된 것이다.


양자역학과 아인슈타인

양자역학의 충격: 1900년 플랑크의 양자 가설과 1913년 보어의 원자 모형 발표 등으로 대표되는 양자역학은 과학의 결정론(Déterminisme)을 무너뜨렸다. 미시 세계에서 사건들은 예측 불가능한 비결정론적 성격을 띠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이는 과학 법칙이 허구 또는 합의된 것처럼 생각하는 데 습관화되어 있던 당시 사상가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제 과학 법칙은 실재의 깊이를 표현하지 못하고 단지 편한 합의로 이용에 성공하는 도구일 뿐이라는 인식이 강화되었다.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의 상대성 이론: 1905년의 특수 상대성 이론과 1915년의 일반 상대성 이론은 시간, 공간, 질량에 대한 뉴턴적 절대 개념을 무너뜨리고, 관찰자의 상태에 따라 물리량이 달라지는 상대적 시공간의 개념을 도입하였다. 이는 절대적 실재에 대한 믿음을 더욱 약화시켰다.

푸앙카레 협약주의의 재조명: 양자론의 불확정성과 불연속적 실재성은 푸앙카레의 협약주의를 더욱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였다. 원자론이나 불연속적 실재성에 대한 개념은 정신에 의해 부여된 사물의 관점, 심지어 편리한 단순 허구일 수 있다는 해석이 힘을 얻게 되었다. 이는 수학에서도 공리론에 대한 형식주의나 논리주의가 직관주의로 전환되는 흐름을 낳았는데, 이 역시 비결정론의 간접적인 영향이었다.



실증주의 과학자들

아벨 레(Abel Rey, 1873-1940): 그는 실증주의의 부흥을 이끌었으며, 과학이 원자 같은 개념을 형이상학적 존재로 간주하지 못하게 되었음을 지적했다. 양자론 이후 원자는 더 이상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관찰 가능한 현상들의 묶음(un faisceau)이나 다발로 생각하도록 강요받았다는 것이다. 이는 과학이 검증 가능한 현상만을 다루어야 한다는 실증주의의 기본 정신을 20세기 과학 혁명에 맞게 재해석한 것이다.

에밀 메이에르손(Emile Meyerson, 1859-1933): 그는 '동일성과 실재성(1908)'에서 과학의 역사는 "동일률(Identité)"을 추구하는 인간 이성의 활동이며, 이 동일성을 통해 실재성을 포착하려는 시도라고 주장하며, 다른 형태의 실재론을 제시했다. 메이에르손에게 실재는 단순히 관찰되는 것이 아니라, 과학 법칙과 이성적 설명 속에 내재된 항상성(Constance)과 통일성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베르(Henri Berr, 1863-1954): 그는 꽁트의 실증주의적 토대 위에 '역사에서 종합(1911)'을 저술하며, 역사를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종합적인 정신의 활동으로 보고자 하였다. 이는 과학적 방법론을 인문학적 영역으로 확장하려는 시도였다. 또한, 베르그송(Bergson)의 실재론은 과학의 양적, 공간적 실재론과 달리, 내재성의 지속(durée)이라는 측면에서 실재를 파악하는 현상학적이고 직관적인 실재론을 제시하며, 당대 인식론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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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함께 다룬 내용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헤겔 관념론의 확산과 과학 혁명에 따른 인식론적 위기라는 두 가지 큰 축을 중심으로 요약될 수 있다. 첫 번째 축은 관념론(L'idéalisme)의 발전으로, 헤겔 철학이 앵글로색슨(브래들리, 로이스), 이탈리아(크로체, 겐틸레), 프랑스(아믈랑) 등지로 전파되며 각 지역의 문화적, 정치적 맥락 속에서 새로운 형태의 정신철학과 실재론으로 변모했다는 점이다. 특히 앵글로색슨 관념론은 절대 정신을 통한 현상의 통일을 추구했고, 이탈리아 관념론은 창조적 활동으로서의 사유를 강조하며 칸트의 이원론을 극복하려 했다. 이는 절대적 이성으로 세계를 파악하려던 전통적인 형이상학의 마지막 불꽃이자, 지식과 실재의 관계를 주관적 사유의 활동 속에서 찾으려 했던 중요한 지적 유산이다.


두 번째 축은 과학들의 비판(La critique des sciences)으로,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의 출현이 과학적 진리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과정을 보여준다. 이 혁명은 절대적 시공간과 인과적 결정론이라는 뉴턴 과학의 두 기둥을 무너뜨렸다. 과학 철학자들(푸앙카레, 뒤앙, 바이힝거)은 이 새로운 현실에 대응하여, 과학 이론이 객관적 실재의 재현이라기보다는 가장 편리하고 실용적인 협약(Convention)이거나 단순한 허구(Fiktion)일 수 있다는 협약주의와 허구주의적 인식을 강화했다. 이 인사이트는 20세기 철학 전반에 걸쳐 지식의 상대적, 구성적 성격을 강조하는 흐름을 촉발했으며, 과학적 지식의 위상을 절대 진리에서 가장 성공적인 예측 도구로 전환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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