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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철학일기

의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처음읽는중국현대철학_모우쫑산의 양지감함론

by 낭만민네이션

0. 들어가기


현대중국철학의 시작은 '아편전쟁'으로부터 시작한다. 아편전쟁에서 들이닦친 서양의 도전에 대해서 왜 중국은 대응하지 못했을까? 어떻게 하면 같은 문제가 생겼을 때 대응할 수 있을까?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이런 고민을 시작한 중국의 현대 철학자들은 나름대로의 대안을 만들었다. 서양의 사상과 기술을 빨리 받아들이자고 하는 철학자도 있었고, 과거로 가서 오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보자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옌푸와 같은 학자들은 얼른 서양의 기술을 배워서 부국강병을 이루자고 했고, 슝스리와 탕쥔이같은 철학자들은 유교에서 우리에게 알려주는 대안이 있다고 주장했다. 사실 이러한 고민은 어디서나 가능하다. 왜 우리는 졌을가? 왜 우리는 잘하지 못했을까? 왜 우리는 문명화가 되지 않았을까? 이런 고민들.


오늘은 이런 고민에 정점에서 공자와 맹자를 되살려서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고 했던 모우쫑산을 만난다. 40이전까지 칸트철학에 심취해있던 모우쫑산은 40세대가 넘어가면서 중국철학으로 회귀한다. 그리고 '물질자체'라고 하는 인간이 인식론을 넘어서 접근할 수 없는 부분을 '도덕철학'으로 해결한다. 인간의 직관은 사물을 인식만하는 게 아니라 실제 사회를변화시키는 것이다. 주차철학의 핵심을 벗어나서 모든 것이 '마음'에 있다고 말하는 모우쫑산의 철학을 통해서 사회를 변화시키는 근본적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자. 나름대로 중요하지만 어려운 흐름이 이어질 것 같다. 좀 더 깊게 들어가보자.


현대 신유가의 거두, 모우쫑산(牟宗三)

생애: 모우쫑산(1909년~1995년)은 중화민국 산둥성 출신으로, 20세기 중화민국과 홍콩에서 활동한 현대 신유가(新儒家)의 대표적인 학자이다. 그는 1933년 국립 베이징 대학 철학 본과를 졸업하고 슝스리 등 당대 석학들에게서 수학하며 학문적 기틀을 마련하였다.

주요 활동 무대: 중일 전쟁과 국공 내전 이후 1949년 타이완으로 이주하였으며, 이후 국립 타이완 사범대학, 홍콩 대학, 홍콩 중문 대학 등에서 가르치며 중국 현대철학의 주요 지평을 형성하였다.

학문적 위치: 그는 량수밍, 펑유란 등과 함께 신유가의 거두로 꼽히지만, 창의적인 사상 체계와 학술적 견해를 통해 중국 현대철학사에서 독보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 중국 철학계에서 활발히 논의되는 주제들은 상당 부분 모종삼의 사상체계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다.

사상적 특징: 초기에는 칸트, 헤겔 등 서양 철학, 특히 칸트의 도덕철학에 깊이 몰두하였다. 이러한 서양 철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중국 유가철학의 도덕론 성격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대표적으로 주희 철학을 공맹 도덕철학의 정통에서 벗어난 계통으로 규정하기도 하였다.



1. 모우쫑산 철학의 발전과정


한 철학자의 사상이 시작되는 지점은 흥미롭다. 어떤시대에 태어나서 어떤 문제의식을 가졌는가가 가장 중요하지만 어떤 사건을 만나는가도 위대한 철학자들에게는 발화의 지점이자 발아의 발판이 된다. 더 나아가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스승을 만나는가에 따라서 문제에 대해서 자신이 그릴 수 있는 대안적인 사회와 희망적인 미래에 대한 상이 달라진다. 같은 문제를 다르게 해결할 수 있고, 다른 문제를 같게 해결할 수도 있다. 원리와 실천에 있어서 다양한 원리를 하나의 실천방법으로 풀어낼 수 있고, 다양한 실천방법이 하나의 원리에서 나오기도 한다. 모우쫑산의 철학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이렇게 이론이 되는 '이'와 그것의 실천이 되는 '기'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모우쫑산이 대학을 가던 시절에 베이징 대학은 예과와 본과로 나누어져 있었다. 예과는 철학을 전공하기 위한 예비과정으로 철학사 전반과 함께 동서양의 철학의 기본 개념을 배운다. 예과 2학년 때 주자의 '이심론'이 담견 '주자어류'를 읽었다. 주자는 객관적원리인 '이'와 인간의 마음인 '심'을 분리하고, '이'를 '심'의 위에 두었다. 이 부분은 후에 모우쫑산이 주자가 '공자-맹자-왕양명'으로 이어지는 유가 도덕철학의 전통에서 멀어졌다고 보는 근거가 된다. 주자는 마음에 대한 '이'의 우위를 이야기했는데 모우쫑산이 보기에 이것은 도덕적 형이상학의 근원이 마음에 있다고 보는 전통 유교의 도덕철학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와 같은 이해를 통해서 현상계인 '기'와 초월계인 '이'에 대한 개념이 이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본과에서는 서양철학에서 논리학과 버트런트러셀의 철학에 집중했다. 25세에 철학과를 졸업하고나서는 서양의 변증법적 유물론과 논리학에 집중하였고, 10년간의 고민을 정리하여 '논리전범'을 출판한다. 논리전번은 형식논리학의 관점에서 분석의 표준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1970년대까지 다양한 책들을 출간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책을 꼽으라면 '현상과 물자체'이다. 1975년 출간된 이 책에서 사물자체에 접근할 수 없고 인식할 수 없다는 칸트의 주장을 비판하면서 유가의 도덕적 실천과 직관은 물자체에 접근할 수 있다고 보았다. 사물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성질'과 우주의 이치인 '리'가 하나로 만나게 되는 도덕적 실천을 통해서 이 둘은 떨어진게 아니라 직접적으로 연결할 수 있게 된다.


'논리전범'의 세 가지 핵심 내용

형식 논리학의 엄밀한 재정립 : 이 책은 서양 고전 논리학부터 당대의 현대 논리학에 이르기까지의 기본 원리를 철저하게 분석하고 정리하였다. 개념, 판단, 추론(삼단논법 등)과 같은 논리학의 기초 구조를 엄밀한 형식으로 제시하여, 중국 학자들이 분석적이고 체계적인 사고방식을 습득하도록 돕고자 하였다. 이것이 바로 책 이름에 있는 '전범(典範, 표준)'의 의미이다.

칸트 인식론의 논리적 기초 제시 : 모종삼은 논리학을 단순한 사고 규칙이 아닌,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 나오는 인간 인식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도구로 보았다. 그는 논리학을 통해 인간의 지성(知性)이 경험 세계를 어떻게 개념화하고 질서화하는지 그 형식적인 틀을 탐구하였다. 이는 그의 후기 도덕 형이상학에서 칸트와의 대화를 시도하는 학문적 준비 과정이었다.

중국 사유의 현대화 도구 : 궁극적으로 이 책은 중국 전통 철학의 사유 방식이 부족하다고 여겨지던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엄밀성을 보강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였다. 모종삼은 논리적인 사고 체계를 확립함으로써, 훗날 자신이 구축할 유가 도덕 형이상학을 모호하지 않고 체계적인 논리 구조 위에서 정초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주요 저서

심체와 성체(心體與性體) : 이 책은 모종삼 사상의 집대성이다. 그는 왕양명의 양지(良知) 개념을 중심으로 인간의 마음(心)이 단순한 인식 기관이 아니라, 우주의 도덕적 실재와 직결된 창조적인 본체(心體)임을 논증한다. 유학의 정통 흐름을 공자-맹자-양명학으로 보고, 이 계통의 도덕 형이상학을 가장 정교하고 체계적인 형태로 완성한 저작으로 평가받는다.

현상과 물자체(現象與物自身) : 이 저서는 모종삼이 서양 철학, 특히 칸트(Kant)를 어떻게 극복하려 했는지 보여준다. 칸트는 인간의 인식은 감각 경험을 통해 파악 가능한 현상(現象)의 세계에 머무를 뿐, 그 배후의 물자체(物自身)에는 도달할 수 없다고 보았다. 모종삼은 유가(儒家)의 도덕적 실천과 직관을 통해 인간이 물자체의 영역에 접근할 수 있는 '지성의 감성적 직관(Intellectual Intuition)'을 획득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칸트의 이원론을 넘어서고자 하였다.

칸트의 도덕철학(康德的道德哲學) : 모종삼은 칸트의 윤리학을 깊이 이해하고 해설하는 동시에, 유가 철학과의 비교 분석을 시도하였다. 칸트가 순수 이성(지성/과학)과 실천 이성(도덕)**을 분리함으로써 도덕적 필연성을 확보했지만, 결과적으로 인간의 마음을 분열시켰다고 보았다. 이 책은 모종삼이 칸트의 도덕철학을 기반으로 자신의 양지감함론을 전개하여 동서양 사상을 융합할 토대를 마련한 중요한 저작이다.

역사철학(歷史哲學) : 이 책은 모종삼이 단순히 형이상학적 논의에만 머무르지 않고, 인간의 도덕성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탐구한 초기 저술이다. 그는 서양의 역사철학적 사유를 참고하면서도, 중국 문명사 전체를 관통하는 도덕적 주체의 발전 과정을 읽어내려 시도하였다. 이는 그의 철학적 논의가 역사와 문화라는 현실적 맥락 속에서 의미를 갖도록 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중국문화선언(中國文化宣言) : 1958년 모종삼, 장쥔마이, 쉬푸관, 탕쥔이 등 당대 신유가의 거두 네 명이 함께 발표한 선언문이다. 이 선언은 공산화 이후 위기에 처한 중국 전통 문화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중국의 정신 문화가 서양의 민주주의와 과학 기술을 받아들여 미래 세계 문명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였다. 이는 신유가 학자들이 당대의 역사적 격변에 대한 지식인의 책임을 다하려 한 정치·사회적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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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슝스리와 모우쫑산의 만남 그리고 전승관계


신유학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슝스리와 모우쫑산은 1932년 24세 때, 베이징대학에서 스승과 제자로 만난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말하는 슝스리와의 만남으로 중국 철학으로 회귀할 수 있게 되었다. 슝스리와 모우쫑산은 불과와 도교의 이원론을 비판하면서 천지만물의 변화 자체에 주목하고 그것에 더해서 변화에 과정에 대한 의미를 부여한다. 천지만물의 변화에 대한 가치론적 해석은 공자와 맹자를 비롯한 유가철학의 근본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도덕적 실천을 통해서 내면의 도덕심성과 하늘의 초월적인 원리를 서로 연결한다. 이를 '심성천상관통'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표현의 근거는 맹자의 '진심지성지천'과 '중용'에서 '천명지위성'이라고 부르는 표현이다.


맹자가 말한 진심지성지천은 자신의 본심인 도덕적 양심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본모습이 도덕적 본심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덕적 실천을 하면 할 수록 천도의 만물창조와 도덕적 가치가 도일한 것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중용'에서는 초월적인 천도로부터 자신의 도덕적 본성을 도출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천도가 명령하여 부여한 것이 본성이고, 그 본성은 도덕적 본성이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슝스리와 모우쫑산은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도덕형이상학을 세워서 서양철학 전통과 근본적인 차별화를 시도했다. 하늘의 원리인 천도를 알 수 있고 따를 수 있는 것은 본성 안에 천도가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고, 심성은 도덕가치의 주체일 뿐만 아니라 만물이 만물로 존재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슝스리는 맹자가 말한 '진심지성성지천'을 중심으로 도덕형이상학을 수립하려고 했고, 슝스리는 천명지위성을 중심으로 도덕형이상학의 근본체계를 수립하려고 했다. 모우쫑상은 아래서부터 상향식이고, 슝스리는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하강식의 시선을 보여준다. 그러나 두 사람보다 도덕주체의 자각을 통한 도덕가치를 실현하려는 실천우선주의를 견지하고 있다. 이는 인생과 우주, 사람과 하늘, 인생의 진리와 우주의 진리의 통합ㅇ르 추구하는 천인합덕을 보여준다. 슝스리의 가르침에 대해서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모우쫑산은 중국철학으로 돌아와서 과연 중국철학의 엉밀성을 들이댄다면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야하고, 어떤 것은 그대로 두어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이것은 이와 기의 싸움에 대해서 마음의 문제와 실천의 문제로 다가가는 방법이기도 하다.


맹자의 주요 철학

본성(性) 속에 내재된 이(理)의 역할 : 맹자에게 이(理)에 가장 가까운 개념은 인간의 선한 본성(性)과 그 근거인 사단(四端)이다.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에 따르면, 인간의 본성은 인(仁), 의(義), 예(禮), 지(智)로 발전할 수 있는 싹인 사단을 내포하고 있다. 이 사단은 하늘이 부여한(天命) 것이며,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내재하는 도덕적 법칙이다. 주희가 본성을 객관적인 이(理)로 규정한 것과 달리, 맹자에게 이 도덕 법칙은 마음(心) 안에 내재하여 실천을 촉발하는 역할을 한다.

기(氣)의 역할은 감정적 동력과 방해 요소 : 맹자는 기(氣)라는 개념을 사용했지만, 주로 신체적/감정적인 동력이나 정신 상태를 나타내는 데 사용하였다. 맹자가 강조한 호연지기(浩然之氣)는 지극히 크고 굳센 도덕적 기운으로, 의(義)의 축적을 통해 길러진다. 여기서 기는 도덕적 실천을 추진하는 동력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 기(氣)는 또한 육체적 욕구나 감정의 혼란을 통해 도덕적 본성을 가릴 수 있는 방해 요소로도 작용한다.

이(理)와 기(氣)의 관계_본성과 기의 관계 : 맹자는 이와 기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논하기보다 본성(性)과 기(氣)의 관계 속에서 도덕적 수양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맹자는 인간이 선천적으로 선한 본성(이)을 가지고 있지만, 기(氣)의 흐트러짐이나 외부 환경의 영향으로 인해 이 본성이 훼손되거나 가려진다고 보았다. 따라서 호연지기를 기르는 수양은 의(義)를 쌓아 기(氣)를 맑고 강하게 만들어서, 내재된 본성(性)이 온전히 발현되도록 돕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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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유가 도덕론의 완성_칸트와 맹자 그리고 육왕의 도덕론으로 전향


모우쫑산은 젊었을 때부터 나이가 들었을 때까지 칸트철학을 통해서 동양철학 특히 유가철학을 어떻게 합일해볼 것인지를 고민한다. 그 중에서도 윤리학적인 측면에서 '자율도덕론'이 가장 큰 관심사였다. 칸트의 '의지의 자유'와 '지적지각' 이념을 해석하여 사용한다. 도덕실천을 위해서는 반드시 자율도덕론이 있어야하고 그럴려면 외적인 조건에서 제약을 받지 않고 자유의 상태에서 의지가 스스로 시비선악의 표준을 제시해야 한다. 더욱이 도덕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칸트에 의하면 선의지가 있어야 하고, 맹자에게는 양지양능이 있어야 한다. 이를 왕수연과 육구연은 심즉리 '내 마음이 도덕 법칙'이라고 주장했다.


지적지각이란 칸트에서는 존재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지혜의 근원을 의미하며 모우쫑산을 이것을 맹자를 거쳐서 자율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과 지혜라고 말한다. 그러나 칸트가 자유의지를 요청하는데 반해서 모우쫑산은 요청이 아닌 하나의 실제로 드러아는 사실로 이해했다. 우리는 순수한 도덕적 의지에 의하여 도덕법칙을 결정할 수 있고, 또 도덕의지의 자각을 통해서 실체를 증명할 수 있다. 칸트는 이러한 지적지각이 인간에게는 없고 오히려 신에게만 있기 때문에 '물자체'를 인식할 수 없고 인간에 의해서 재인식된 지각만 가질 수 있다는게 순수이성비판이었는데, 이에 대해서 모우쫑산은 '인의내제'라는 표현을 통해서 인의라는 도덕법칙이 본성에 내제되어 있다고 본 것이다.


칸트철학이 모우쫑산에게 끼친 영향

도덕적 자율성(Autonomy)의 확립 : 모종삼은 칸트가 도덕 법칙을 외부의 권위나 경험적 경향성이 아닌, 순수 실천 이성이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자율성에서 찾았다는 점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칸트의 이 개념을 통해 모종삼은 유가(儒家) 철학의 도덕적 주체성이 절대적이며 초월적인 근거를 가진다는 확신을 얻었다. 즉, 도덕은 인간 본성에 내재(內在)하며, 외부의 어떤 힘에도 종속되지 않는다는 유가 사상의 핵심을 현대 철학적으로 재정립하는 데 성공하였다.

논리적 엄밀성과 체계화의 방법론 : 모종삼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서 보이는 엄격한 분석적 방법론과 철학 체계를 구축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받았다. 그의 저서 ‘논리전범’에서 보이듯이, 모종삼은 서양 논리학과 칸트의 선험적 논리학을 깊이 탐구하여, 유가 사상을 단순한 도덕적 언어가 아닌 정교하고 논리적인 구조 위에서 해명하려 했다. 이는 그의 도덕 형이상학을 현대 학문의 언어로 번역하는 데 필수적인 방법론이 되었다.

현상(現象)과 물자체(物自身)의 구별 인식: 칸트가 세계를 현상(인식 가능한 세계)과 물자체(인식 불가능한 실재)로 나눈 이원론은 모종삼의 사상 전개에 중요한 문제의식을 제공하였다.

이 구분을 통해 모종삼은 유가 철학의 도덕적 실천이 칸트의 인식론적 한계를 극복하고, 인간의 도덕적 본성과 우주의 실재(물자체)를 직접적으로 통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논증할 필요성을 느꼈다. 결과적으로 이 이원론은 그의 양지감함론과 '지성의 감성적 직관' 개념을 탄생시키는 비판적 발판이 되었다.




4. 주희철학의 재정립


'이'를 가장 최선의 목표로 본 주희의 철학은 기본적으로 유교에서 말하는 '마음'을 보는 것과 다르다. 심을 근거로 말한 본성은 왕양명(王陽明)이 주장한 양명학(陽明學)의 핵심이었을 정도로 중요하다. 그래서 오히려 마음이 곧 이치라는 말, 심즉리(心卽理)라는 명제로 요약된다. 이 관점에서 본성(性)은 인간의 마음속에 내재된 양지(良知), 즉 선악을 판단하고 실천으로 나아가는 주체적이고 역동적인 도덕 실재이다. 마음 자체가 곧 우주의 도덕 법칙(理)의 근원이므로, 본성은 외부에 있는 정적인 법칙이 아니라 끊임없이 활동하고 창조성을 발휘하는 생명력 그 자체로 해석된다. 따라서 수양은 마음 밖에 있는 이치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재된 양지(良知)를 극대화하는 치양지(致良知)를 통해 이루어지며, 이는 지(知)와 행(行)의 통일을 강조한다. '일체유심조'라는 말도 여기서 나오게 된다. 결국 유교의 전통은 '마음 공부'가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이다.


반면, 이(理)를 근거로 말한 본성은 주자가 확립한 주자학의 핵심이며, 성즉리(性卽理)라는 명제로 표현된다. 이 관점에서 본성(性)은 하늘이 부여한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이치(理) 그 자체이다. 본성은 순수하게 선하고 완전하지만, 마음(心)은 이 이치를 담아 구현하는 기관이자, 물질적 요소인 기(氣)의 영향을 받아 발현되는 영역으로 이해된다. 즉, 본성(性)과 마음(心)이 구조적으로 분리된다. 따라서 수양은 마음을 경건하게 보존하는 경(敬)을 통해 사욕을 막고, 외부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탐구하는 궁리(窮理)를 병행함으로써 객관적 이치를 깨닫는 것을 목표로 한다. 모우쫑산은 마음을 근거로 한 본성의 관점을 이어받아 주자학을 비판한다. 그는 주자학이 이(理)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마음의 도덕적 주체성을 객관적 원리 아래에 종속시키고, 창조적인 생명력을 약화시켰다고 해석하였다. 모종삼에게 진정한 유가의 정통은 마음이 도덕적 실재의 본체임을 강조하는 양명학에 있으며, 이를 통해 '존재임과 동시에 움직이는 실체'로서의 마음의 위상을 확립하려 하였다.


심즉리 (心卽理): 마음이 곧 이치이다

의미: 마음(心)이 곧 이치(理)라는 명제이다. 이 이(理)는 우주 만물의 보편적인 법칙이자 도덕적인 원리를 의미한다.

주장: 왕양명은 주자학이 이(理)를 마음 밖에 존재하는 객관적인 법칙으로 보아 마음을 정적인 기관으로 격하시켰다고 비판하였다. 심즉리는 이 비판에 대한 답으로, 마음 자체가 바로 이 도덕 법칙의 근원이며, 마음 밖에 따로 존재하는 이치는 없다고 선언한다.

결과: 이 명제는 마음을 도덕적 실재의 본체로 확립하고, 지행합일(知行合一)의 근거가 된다.


심즉성 (心卽性): 마음이 곧 본성이다

의미: 마음(心)이 곧 본성(性)이라는 명제이다. 여기서 본성(性)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선하고 완전한 도덕적 본질을 의미한다.

주장: 주자학에서는 본성(性)을 이(理)로, 마음(心)을 기(氣)의 영역으로 나누어 둘을 분리하려 했다. 심즉성은 이러한 분리를 거부하고, 마음의 실체(心體)가 바로 도덕적 본성(性體) 자체임을 주장한다.

결과: 마음과 본성을 하나로 봄으로써, 마음속에 있는 양지(良知)가 곧 인간의 본성임이 명확해지고, 마음의 무한한 창조성이 본성으로부터 분리되지 않도록 보장된다.


두 명제의 관계

심즉리는 마음이 도덕 법칙(理)의 근원임을 선언하여 마음의 권위를 확립하고,

심즉성은 마음이 도덕적 본질(性) 자체임을 선언하여 마음의 실체를 규명한다.

결론적으로, 이 두 명제는 왕양명 철학에서 "마음이야말로 도덕적 실재의 유일하고 완전한 근원"임을 주장하는 핵심 논리이다.


모우쫑산과 주희철학의 차이

형이상학적 본체의 설정 (이/기 대 심/성) : 주희 철학은 세계를 구성하는 원리인 이(理)와 물질적 재료인 기(氣)의 이원론에 기반을 둔다. 주희에게 이(理)는 만물의 궁극적 본체이자 도덕 법칙이며, 정적이고 객관적인 존재이다. 반면, 모종삼은 주희의 스승인 웅십력과 왕양명의 입장을 계승하여 이(理)를 마음 밖에 두지 않고, 인간의 마음 자체인 심체(心體)와 성체(性體)를 도덕적 실재의 근원으로 설정한다. 이 심체는 역동적이며 창조적으로 활동하는 실체이다.

도덕적 주체성의 위치 (성즉리 대 심즉리) : 주희는 성즉리(性卽理)를 주장하여 인간의 본성(性)을 객관적인 이치(理)로 보았다. 이로 인해 마음(心)은 이 이치를 담아 구현하는 도구적 역할을 수행하게 되며, 도덕적 주체성이 객관적 이(理) 아래에 놓이게 된다. 반면, 모종삼은 심즉리(心卽理)의 입장을 취하며, 마음(心) 자체가 곧 양지(良知)로서 도덕적 법칙의 근원임을 강조한다. 모종삼에게 도덕적 주체성은 마음 자체에 내재하며, 스스로 끊임없이 창조하고 발현하는 역동성을 지닌다.

수양론의 방향 (궁리경행 대 치양지) : 주희의 수양론은 궁리경행(窮理敬行)으로 대표된다. 궁리(窮理)는 독서나 격물을 통해 외부 사물의 객관적 이치를 탐구하는 데 중점을 두며, 경(敬)은 이 탐구가 올바르게 진행되도록 내면을 보존하는 보조적 역할을 한다. 모종삼은 이를 객관적 탐구에 치우쳤다고 비판하며, 치양지(致良知)를 핵심으로 하는 양명학의 입장을 따른다. 치양지는 내면의 양지를 온전히 발현하여 지행합일을 이루는 것으로, 주체적인 도덕성의 확충에 주력한다.

현대 문명의 수용 (폐쇄성 대 개방성) : 주희 철학은 이(理)와 기(氣)의 분리 및 심(心)의 주체성 약화로 인해, 모종삼에 의해 과학이나 민주주의와 같은 서구 문명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가 부족했다고 비판받는다. 이에 모종삼은 양지감함론(良知坎陷論)을 제시하며, 양지라는 유가의 도덕적 근원이 스스로를 제한(감함)하여 객관적 지성(과학)과 합리적 제도(민주주의)를 낳았다고 주장한다. 이는 유가 사상을 현대 세계에 개방하고 융합하려는 적극적인 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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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양지감함론


양지감함론은 왕양명의 양지를 우주적인 도덕 실재이자 창조성의 근원으로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양지는 선악을 판단하고 실천으로 나아가는 무한한 도덕적 주체성이다. 그러나 모종삼은 이러한 전통 유가 사상이 서양 문명이 발전시킨 과학과 민주주의를 스스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외래 문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역사적 한계를 인식하였다. 따라서 양지의 궁극적인 도덕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유가 철학의 사유 방식을 현대적 과제에 맞게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감함(坎陷)은 '웅덩이에 빠짐' 또는 '스스로를 낮추어 드러냄'을 의미하며, 양지감함론의 핵심 기제이다. 이는 무한하고 창조적인 도덕적 실재인 양지가 자신의 기능을 일시적으로 제한하거나 자기 부정하는 것을 뜻한다. 양지가 이 감함의 과정을 통해 스스로의 무한성을 유보하고, 외부 세계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분석하는 능력인 객관적 지성의 영역을 독립적으로 형성하도록 허용한다. 이 자발적인 자기 제한이 바로 유가 사상이 현대 문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론적 출구이다.


양지의 감함을 통해 두 가지 중요한 현대 문명적 기능이 발생한다. 첫째, 과학(科學)의 영역이다. 양지가 지성의 영역을 독립시킴으로써, 인간은 객관적인 경험 세계를 합리적으로 분석하고 연구하여 과학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다. 둘째, 민주주의의 영역이다. 양지의 도덕적 힘이 직접적인 통치가 아닌 합리적이고 제도적인 법치를 통해 공적인 영역에 구현되도록 함으로써, 평등과 자유를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를 유가 철학의 틀 안에서 정당화한다. 양지감함론은 양지의 궁극적인 목표를 잊지 않는다. 과학과 민주주의를 통해 현대 문명을 수용하고 합리적인 세계를 구축하는 것은 최종 목적이 아니라, 양지가 추구하는 도덕적 이상을 현실 세계에 온전히 구현하기 위한 중간 단계이자 도구이다. 감함을 통해 분화된 지성과 제도는 궁극적으로 도덕적 실천을 지원하고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며, 모종삼은 이를 통해 유가 도덕 형이상학이 현대적 보편성을 획득하고 완성될 수 있다고 보았다.


도덕 주체에서 지식 주체로의 '전환' (감함, 坎陷)

도덕 주체: 모우쫑산에게 근원적인 실체는 양지(良知), 즉 도덕적 완성을 추구하는 무한한 창조성을 가진 주체이다. 이는 유가 도덕 형이상학의 근본이다.

지식 주체로의 전환: 그러나 이 도덕 주체가 현대 문명(과학, 민주주의)을 수용하기 위해, 자신의 무한한 도덕적 기능을 일시적으로 제한(감함)하고 객관적인 지성의 영역을 독립적으로 형성하도록 허용한다. 이 독립된 지성의 영역을 탐구하는 주체가 곧 '지식 주체'이다.

이는 유가 전통이 부족했던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지식(과학)을 발전시키기 위해, 도덕적 이상이 스스로를 낮추어(감함) 합리적인 이성(지식 주체)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한 자발적인 자기 전환을 의미한다.


본래 도덕 주체로의 '위상 회복'

이것은 감함이 영원한 분리가 아님을 강조하는 부분이며, 양지감함론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지식 주체로의 안주 거부: 지식 주체(과학, 기술, 합리적 제도)는 도덕 주체의 궁극적인 목적이 될 수 없다. 만약 지식 주체에 영원히 머문다면, 서양 철학처럼 도덕과 지성이 분리된 이원론에 빠지게 된다.

즉각적인 회복: 모우쫑산은 지식(知)이 완성되어 그 목적을 달성하면, 지식 주체는 지체 없이 본래의 도덕 주체(양지)로 돌아가 그 위상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학적 지식이나 민주적 제도는 양지가 추구하는 도덕적 완성을 현실에 구현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이 수단이 마련되면, 궁극적인 힘(코스믹 파워)은 다시 도덕적 근원으로 돌아가 인류의 도덕적 이상 실현을 주도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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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우쫑산의 문제의식과 대안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


한국 사회는 유례없는 속도로 민주화와 정보화를 동시에 이루면서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으며, 전통적인 도덕률은 해체되고 합리주의와 개인주의가 충돌하고 있다. 모종삼의 양지감함론은 바로 이러한 도덕적 근원과 현대 문명의 성과(과학, 민주주의)를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따라서 한국 사회의 표면적인 속도 차이에도 불구하고, 물질적 성장 속에서 도덕적 좌표를 상실하고 있다는 근본적인 문제의식에 대해 철학적 해답을 제공할 여지가 있다. 양지감함론의 핵심은 인간의 도덕적 주체성(양지)이 모든 것의 근원임을 재확인하는 데 있다. 이는 기술과 자본의 합리성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도덕적 위기와 인간성 상실 문제에 대한 강력한 대응책이 될 수 있다.


또한, '감함(坎陷)'을 통해 수용된 과학적 사고와 민주적 제도가 궁극적으로 양지가 추구하는 도덕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임을 강조함으로써, 한국 사회의 기술 발전과 민주화가 윤리적 방향성을 확보하도록 이끄는 통합의 원리로서 유효하다. 물론, 모우쫑산의 이론이 한국 사회에 적용될 때 한계도 존재한다. 그의 시대가 '근대화'라는 비교적 단일한 과제에 집중했다면, 현대 한국 사회는 초연결성과 다원성이라는 훨씬 복잡하고 빠른 가치 변화에 직면해 있다. 그의 단일한 양지 개념이 이러한 폭발적인 다양성을 모두 포괄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양지감함론은 유가 사상의 복원 여부를 넘어, 물질적 풍요 속에서 지식과 윤리를 통합하려는 한국 사회에 깊은 성찰과 반성을 제공하는 중요한 철학적 자원으로 기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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