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들판에서, 캄보디아에서
나는 지금 머나먼 언덕의 언저리에
불교와 힌두교의 이야기들로
며칠 밤을 새워야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캄보디아 땅에 와 있다
아무도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인류의 시원
태초의 신비처럼 아무도
정의내릴 수 없는 것 같은
앙코르와트의 이야기들과
모든 지식들의 종말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킬링 필드와 뚱슬렝이 존재하는
캄보디아 땅에 와 있다
캄보디아에서
가난을 생각한다
가난은 항상 가난을 규정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만 존재하고
나보다 나은 존재가 있어야만 비교대상으로
나'라는 존재감의 하락을 경험된다
가난은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나를 나로 존재하지 못하게
나의 근본을 흔들어 놓는다
그리고 곧 하나둘씩
사라진다
나의 언어가 사라지고
나의 표정이 사라지고
나의 습관이 사라지고
나의 희망이 사라져서
나의 언어는 외국어가
되어야 하고
나의 표정은 남들에게
가치있는 표정이 되어야 하고
나의 습관은 성공을 부르는
동작이 되어야 하고
나의 희망은 모든 이들이 그런 것처럼
타자의 욕망으로 바뀌어야만 한다
아득한 바다
그러나
그 바다와 그 하늘은
항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허락해 준다
마음껏, 할 수 있는 한 마음 껏
바라보고 감상하고, 기뻐할 수 있다
은밀하게 위대한 창조주의 솜씨가 명확하게
세밀한 자연 속 하나하나에 숨깃들이 있다
다름은 항상 다름을 전제할 수 있는
공동체가 있어야 하듯이
같음은 항상 그 같음을 쫓는 사람들이
있어야만 가능한다면
내가 지금 추구하고 있는
민주주의라는 것
대부분은 같음이라는
전체성 위에 굴러가는 나침반이다
그렇다 나침반
그러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
떠돌이 유령도 몰아내고
엘리트들의 입담도 종용시키고
대립자의 일치를 주장하는
종이쪼가리의 횡포에서도 멀어져서
사람이 사람이 되고
언어 이전에 생명이
법 이전에 노모스가 자연스럽게
우리의 일상에 담기는
오늘
그 오늘 안에서
태어나는 내일의 희망과 두근거림으로
오늘을 살아내길
어느날 캄보디아에 서 있던 그 때
스쳐간 생각들을 적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