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미래가 아니라면
우리가 미래를 어떤 식으로 그리느냐에 따라
현재의 모습이 달라지고
그날그날 이루어지는 행위의 윤곽과
사고의 품격이 결정된다
미래관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은
무기력하게 살기 마련이다
수 많은 정서적, 정신적 질환과 대부분의 자살이
'미래가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서 일어난다
기독교 신앙의 특징은 언제나 강력하고
분명한 미래관이었다
그 미래관의 가장 구체적인 특징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신다는 믿음이다
메시지_데살로니가전후서 머릿말
우울한 성과주체는 말하자면
자신에 의해 맞아 죽거나 질식당한다
타자의 폭력만
파괴적인 것이 아니다
타자의 추방은 아주 다른 파괴과정을
즉 자기파괴를 작동신킨다
타자의 부정성을 거부하는 시스템은
자기파괴적인 특징을 나타낸다
이러한 폭력의 변증법은
보편적으로 작동한다
타자의 추방_한병철
프로이트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고
라캉을 잘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만나는 가장 큰 타자가
신존재라는 것의 힌트는 얻을 수 있었다
타자의 등장이 매우 낯설어 지다가
어느순간은 지겨워 진다
그리고 점점 자신의 왕국에서
타자를 추방하기에 이른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오히려
미래가 불투명해진다
불투명해진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와 함께
기대가 되지 않는다
내가 행동하고 변화하는 모든 것들이
나의 예상과 기대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새로움은 없고
타자도 없고 결국은 시간도 없다
이렇게 자아가 질식해가는 순간마다
타자는 우리에게 부정성을 선물해준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큰 선물은
미래를 선물로 준다는 것이다
대타자로 하나님은 정말 이상한
예상할 수 없는 타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대할 수 있지만
하나님을 예상할 수 없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믿음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해주실 것이라는 기대에
인생을 싣고 떠나는 여행에서
미래는 매우 불분명하기는 해도
희망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더욱이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약속은 희망을 절정으로 이끈다
인간은 그런 존재이다
타자와 미래가 없으면 살지 못한다
자기 자신에서 일어나는 희망은
언젠가 그 자신을 잡아 먹는다
그러나 더 많은 타자와 조우하면서
만들어가는 희망에는 우울이 없다
함께 그 분의 오심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타자를 삶을 초정해서 살아가는 내내
행복이라는 것이 의식적인 것이 아니라
몸과 몸의 변증법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경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