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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영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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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Jul 12. 2017

밀알과 책임

진정 변화가 일어나길 바란다면 말이다

#1_요한복음 12장 24절~25절

잘 들어라. 밀알 하나가 땅에 묻혀 완전히 죽지 않으면, 한알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나 밀알 하나가 땅에 묻혀 죽으면, 싹이 나서 몇 배의 열매를 맺는다. 마찬가지로, 누구든지 현재의 목숨에 집착하는 사람은 그 목숨을 잃을 것이다. 그러나 앞뒤를 제지 않는 사랑으로 그 목숨을 버리는 사람은 참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2_세상을 변화시키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사회를 변화시키는 방법 혹은 어떤 사람을 변화시키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제도를 바꾸거나(제도론), 직접적으로 사람을 만나거나(행위자론), 문화를 바꾸는 것(문화론) 등이 있다. 제도를 바꾸려는 사람은 전체적인 사고를 가지고 구조를 새롭게 만드는 사람인 반면, 사람을 바꾸려는 사람은 개인의 인격과 배경, 상처와 아픔등을이해하고 접근한다. 문화를 바꾸려는 사람은 대부분 예술이나 미디어를 통해서 문화 전반을 바꾸려고하고 여기서 문화적 변화로 글쓰기나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세가지의 방법론은 서로 영향을 주기도 하고 같이 추구되지만 비중이 달라지기도 한다. 재밌는 사실은 크게보면 위와 같은 방법론에서 어떤 방법론을 취하느냐에 따라서 노선이 달라지고, 경쟁적이 될 수 있으며 방법론의 차이로 싸움이 많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3_변화를 생각하는 사람은 당연히 밀알이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예수님은 밀알의 비유를 하신다. 밀알과 목숨을 서로 비유하면서 자신의 생명을 버리는 밀알처럼 자신의 생명을 버리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고 말한다. 밀알은 죽어야 새싹이 나고, 결국은 열매를 맺는 것 까지 가능해진다. 마찬가지로 자신을 버리고, 부정하고 다른 사람을 세워주거나 공동체를 위하는 사람이 포함된 곳에서는 새로운 생명이, 변화가 일어난다. 변화를 생각하는 사람은 당연히 어느곳에서든 밀알이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밀알이 죽지 않는다면 밀알은 자신의 정체성을 그대로 지킬 수 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무엇인가 생명의 이치인 것 같다. 사람도 자신의 완전함이나 자존감이나 자신감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 주변에서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고, 대부분 그 사람을 떠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변화를 생각하는 사람은 죽어야 한다. 자신이 죽고, 자신의 자존감이 죽고, 인정받으려는 욕구를 죽여야 한다. 제일 쉬운 방법은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자아self를 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의 진리이다. 지금 일어나는 모든 기독교의 문제는 이것이 안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4_막스베버는 책임윤리를 이야기했다.

독일의 유명한 사회학자이자 정치학자인 막스베버는 '소명의로서의 정치'라는 책을 썼다. (후마니타스 박상훈대표가 이야기하는 막스베버 이야기는 여기서 확인하세요! https://brunch.co.kr/@minnation/621) 핵심은 소명을 가진 정치인에게는 신념윤리(자신이 가진 정당성, 윤리, 정의를 실현하려는 욕구)와 책임윤리(자신이 추구해야하는 정치, 사회적인 움직임, 삶의 태도 등이 책임을 지고 실제로 일을 이루어지게 만드는 헌신)가 있다는 것이다. 막스베버는 책임윤리와 신념윤리사에서 책임윤리를 선호한다. 직업으로서, 소명으로서 정치를 하는 사람은 책임윤리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5_예수님은 책임윤리로 다가오신다

그래서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예수님이 책임윤리로 다가오신다는 것이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책임을 완성하시기 위해서, 사랑이라는 책임을 완성하기 위해서 다가오신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가진 신념을 자신이 지키고 있기 때문에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책임윤리의 근원이 생명과 사랑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우리도 그 때부터 책임지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다가가게 되고, 변화를 꿈꾸는 순간부터 자신이 밀알이 되기 시작한다. 책임윤리를 가지고 다가오시는 예수님이 이해가되지 않다가 어느순간 말하는대로 사시는 하나님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게되면 소스하치게 놀라게 된다. 이전에 알고 있던 신에 대한 관념이 완전히 바뀌는 사건이 일어난다. 단지 이런 이야기들만 그러겠는가? 예수님의 대부분의 비유와 이야기, 일들은 항상 이런 새로운 생각들을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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