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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영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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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Jul 17. 2017

성장과 성숙

삼위일체와 공동체

사람이라면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이 있다

예외는 없다


발을 버둥거리고 세찬 울음을 터트리며

우리는 이 거대하고, 복잡하고


훼손되었고, 요구가 많은

그러나 아름다운 세상에 태어난다


날마다 조금씩 우리는

사는 법을 터득한다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잠을 자고

잠에서 깨기를 반복한다


그러다가 어느날 그냥 잠에서

깨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두발로 일어나


걷는 곡예를 보여줌으로써

모두를 놀라게 한다


머지않아 우리는

명사와 동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언어를 능숙하게 사용한다

말하자면 자라는 것이다


부활을 살라_유진피터슨




우리는 자란다

그리고 우리는 성숙한다


자란다는 것과 성숙해지는 것은

외면과 내면이 서로 균형점을 찾는 과정.


그래서 우리는 사춘기의 소년처럼

외면과 내면의 불화로 화를 내기도 한다


우리는 계속해서 자라는 것은 아니다

어느순간까지는 자라고 그 다음부턴


성숙해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진짜로 내가 되는 순간들이 있다


그러나 성장과 성숙이 외부에서

다른 이에 의해서 주어지는 순간


우리의 성숙은 누군가를 위한 성숙

우리의 성장은 무엇을 위한 성장으로


전락해버리면서 자신의 존재의 이유도

결국은 who과 what의 사이의 that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요즘들어 주변에서

미성숙한 사람들을 자주 보는가보다.


나 역시 미성숙하다

중요한건 내가 미성숙하다라는 것을 깨닫고


성숙이라는 것을 목표로,

내 자신이 나'일 때 가장 빚난다는 것을.


성숙은 흔히 마음공부이거나

성숙은 흔히 시련과 고통을 동반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쉽게 피하고

그냥 넘어가려고 하는가 보다




공동체의 시작은 흔히 말하는

초대 교회가 아니다


그렇다고 구약시대의 12지파나

더 올라가서 아담과 하와'의 관계도 아니다


공동체의 시작은 삼위일체

성부와 성령과 성자의 공동체다


여기서부터 우리는 태어나고

자라고 또 배운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실을 듣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한다


우리는 삼위의 공동체 안에서

그 분들이 행하시는 일들을 경험하지만


그것이 삼위 안에서 일어나는지

아닌지를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한마디로, 교리로 굳어져서

더이상 생각하지 않아도되는 시대를 산다


사람들은 더 이상 공동체의

중요성도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삼위의 활발한 공동체는

항상 나에게 현실의 변화를 가지고 온다


모든 것을 관장하시는 인격적인

아버지! 하나님의 세계에서


모든 현실을 주관하고 경험하고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예수님의 세계가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간들의

변화무쌍한 현실에서 성령의 세계와 만난다


우리는 위로부터 하나님의

아래로부터 예수님의 활동에 중간에


성령님과 함께 하루하루를

꿰메어 가는 삶을 사는 것이다


삼위는 서로 배려하고 위해주고

자신의 권한을 포기하고 희생하면서


그렇게 날마다 이 우주를 경영하시고

사랑으로 모든 것을 대하신다


그 공동체 안에서 나는 자유를 맛보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공동체가


어떻게 변화되는지를

어떻게 이루어져가는지를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그 공동체 안에서

내가 누구인지 알고, 다른 사람이 누구인지


내가 속한 곳이 어떤 의미인지를

공감하게 된다


삼위의 공동체 안에서 현실의 교회는

그 공동체를 드러내는 구조가 된다


그래! 교회다, 바로 교회

교회가 바로 삼위의 활동의 시작이다


교회는 나라는 교회에서부터

우리라는 교회까지 다양한 범위이다


그러나 언제나 교회의 기본이

삼위의 공동체가 되지 않는 이상


그 공동체는 공동체가 아니라

이익집단과 같은 목적을 위한 집단이 되어 버린다


너무도 쉽게 모여서 서로 공동의 것을

나눈다는 핑계로 공동체는 이익집단처럼 된다


삼위에게서 배우는 공동체는

항상 희생과 배려와 이해와 책임이 있다


사람들에게서 이것을 배우는 것은

한계가 있다, 언젠간 끝난다


그러나 무한한 인격의 교제가

만들어내는 공동체의 본질은


마르지 않는 샘같이

끝없이 흘러가는 바다와 같이


항상 우리에게 의미를 주고

배움의 기회를 주고


삶의 의미와 공동체의 기쁨을

맛보게 한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나라

하나님의 다스림이라고 보통 부르고


이 다스림을 사는 사람들을

부활을 사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완전히 다른 삶을 사는

예수쟁이들 집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공동체를 살기로 작정한다면

먼저는 배우고 경험하고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희생할 준비와

용서할 준비를 하고 결국 예수님의 말씀처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에서


나 자신을 위치시키는 것이

공동체를 위한 시작이겠다


쉽지 않겠다

그래 쉽지 않다 정말!




위로부터 통치인 바실레이아가

아래로부터의 활동인 에클레시아와 만나


영원한 교제라는 코이노니아까지

우리는 하나님나라 공동체를 살고 있다


나는 그 공동체를 살기에

오늘도 성숙하고


오늘도 성장한 만큼

성숙을 위해서 희생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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