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
사춘기도 아닌데 여기저기서
나의 정체성을 묻곤 한다
너는 진보냐 보수냐
너는 기독교인이냐 아니냐
너는 우리편이나 아니냐
너는 찬성이냐 반대냐
점점 질문의 강도가 높아지고
나는 더욱 깊숙히서 의문을 꺼낸다
어떻게 그렇게 단호하게
자신들의 의견이 자신들 꺼라고 할 수 있을까?
자신들이 하는 선택이
정말 어떤 의미인지 알고는 있는걸까?
모든 것을 진리차원에서 말하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나는 겨우 살아남는다
항상 그렇지만 반성적으로
나를 돌아본다, 나는 그럼 잘했나??
경계에서 서 있는 사람은 항상
선택의 문제에 놓이게 된다
편가르기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경계에 선 사람은 항상 잠재적으로 적이다
나는 대부분 경계에 서 있다
정말로 모르겠거든 이게 맞는지.
남들이 던지지 않는 질문을 던지고 나면
답을 낼 수 없는 진정성의 차원이 발생하고
결국은 그 시점에 나는 무능력하거나
줏대없는 사람으로 낙인 찍혔다
너는 머하자는 거냐?
왜 우리가 하는 일에 딴지를 거느냐?
숫하게 들어온 질문들에 대해서
잘 대답하지 못했다
나도 정말 그런가 하늘을 한번 쳐다보고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라고 하면서
나름의 그 상황에서 어떤게 더 지혜로울까
이런 고민들을 하고 있었다
물론 말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렇게 경계인을 가만두지 못하는 이들은
자신들이 나누어 놓은 경계선의 중심에서
내편과 다른편, 적과 동지를 구분하고 있었다
에머슨과 같이 자연에게서 배울려고.
나는 경계를 가만히 두고도
새로운 흐름에 계속 적응하는
바람과 하늘과 강가의 잔잔한 파도를 만난다
자연이 서로의 존재를 놓치지 않고
서로 맞물려 함께 걸어가듯이
나 역시 그런 경계인을 경계하는 이들과
그래도 함께 걸어볼려고 노력중이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자아실현의 문제가 될 것이다
나는 그들과도 같이 걷고 싶고
다른이들과도 함께 걷고 싶다
걸어가는 내내 목적지보다
과정에서의 기쁨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니.
아버지에게서 물려 받아서 그런가
아니면 위대한 개츠비의 '닉'에 감명받아서 그런가
우유를 엄청 많이 마셔서 그런가
우유부단한 성격처럼 보이는 현실에서의 현상
이런 글 정도 써 놓고 그래도
나는 다시 경계인의 자리를 선택할 것 같다
기회주의자가 되지 않는 한가지 방법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서 선택하지 않고
직감과 오감에 따라서
전해오는 바람소리처럼 표현하는 것
자기도 자기의 선택이 너무 좋아서
자랑할 수 있는 그런 선택.
경계에 선 사람에게는
항상 양쪽이 다 보이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