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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앙마 Jan 23. 2024

소원을 딱 하나만 빌 수 있다면

한 달 쓰기 챌린지 스물 여덟째 날(2024.01.17의 기록)

#사십춘기, 나를 찾는 매일 글쓰기

#한 달 쓰기 챌린지

#소원을 딱 하나만 빌 수 있다면


 소원이라면 간절히 바라는 것일 텐데, 사실 최근에 무엇인가를 아주 간절히 바라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램프의 지니 같은 것 당연히 없고, 내가 모태에서부터 믿어온 예수님조차 그분 뜻대로 내게 꼭 필요한 시기가 되어야 주신다는 것을 삶으로 체험하며 나이 들어왔다. 

 그러자 언제부턴가 어릴 적 순수했던 간절한 소원은 희미해지고 하루하루 감사 속에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다. 


 그런데 '소원 들어줄 테니 말해봐!'라는 달콤한 주문을 받으니 갑자기 가슴 깊이 숨겨왔던 여러 욕망들이 용솟음친다. 하지만 하나라니?! 딱 하나만 들어준다니 실제가 아닌 줄 알면서도 각 잡고 고민하게 된다.


 고민 끝에 꺼내놓은 현재 네게 가장 큰 소원은 '우리 아빠 무릎 빨리 좋아지는 것'이다. 

 사실 당장 나랑 같이 사는 내 남편 다리도 아킬레스건이 끊어져 수술 후 회복 중이지만 그 사람은 젊고 또 곧 나을 테니 서운하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올해 칠순을 맞으시는 우리 아빠! 

 사실 아빠는 불과 4~5년 전만 해도 산악자전거를 타고 산을 누비실정도로 건강하셨다. 술담배 안 하시고 늘 규칙적으로 운동하시며 부지런히 사셨다. 테니스, 마라톤, 등산, 산악자전거까지 뭘 해도 꾸준히 도전하여 늘 수준급에 이르셨다. 

  

 집안일도 서로 네가 해라 미룰 것 없이 먼저 본 사람이 하면 된다, 식사도 출근이나 외출준비시간이 덜 걸리는 사람이 하면 된다

 는 주의시라 항상 행동이 빠른 아빠가 도맡아 하실 때가 많았다. 퇴직 후에는 봉사활동을 위해 발마사지를 배워 실천하셨고 요리를 배워 사랑하는 엄마를 대접했다. 


 내가 친정 가족여행에 바쁜 남편 빼고 애들만 데리고 참여하면 운전이고 짐 나르는 것 등 힘든 일 다 도맡아주시면서도 애들까지 실제 애들 아빠보다 더 사랑으로 챙겨주셨다.


 그런 아빠의 무릎이 조금씩 고장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제 한쪽 무릎이 많이 안 좋아지셔서 오래 걷지 못하신다. 수술을 최종 보루에 두고 각종 치료와 약을 복용 중이지만 크게 차도가 없으시다. 


 늘 앞서 걸으시며 가족을 살뜰히 챙기시던 아빠가 뒤에서 힘겹게 걷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어릴 적 아니 불과 몇 년 전까지도 아빠는 나의 슈퍼맨 셨다.

 물론 여전히 맥가이버의 손을 가진 아빠는 내가 망가뜨린 것을 뚝딱 고쳐주시고, 차를 타고는 어디든 잘 데려다주신다. 

 

 아빠는 괜찮다고 잘 내색하지 않으시지만, 늘 바쁘게 돌아다니며 활동하셨는데 두 다리로 맘껏 걷고 뛸 수 없음이 얼마나 답답하실까? 


 작년에 시어머님 칠순이라 모시고 튀르키예 패키지여행을 갔다.

 패키지에 포함된 고가의 선택관광을 1~2개 빼고 7박 9일 여행 중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1~2개씩 다 했다. 같은 팀에 어머님 또래 부부는 우리에게 효자라며 어머님을 부러워하셨다. 어머님도 돈이 많이 들어 어쩌나 하셨지만 아이들까지 3대가 함께 한 여행을 많이 즐거워하셨다. 


 어머님과 아빠는 1년 차이시다. 

 그래서 안 그러려고 해도 가끔 비교지옥에 빠진다. 

 어머님 환갑 때는 둘째 임신 중이었음에도 싱가포르와 빈탄으로 다녀오시고도 두고두고 너무 좋으셨다고 회자됐던 여행을 다녀왔었다. 


 그다음 해 아빠 환갑 때는 둘째는 이제 갓 돌이 지난 아기였고 남편은 지역전문가로 외국에 나가 있던 터라 친가 외가 가족 초대해 식사만 하시겠다고 극구 사양하셨다. 물론 식사경비를 대긴 했지만   좀 아쉬웠지만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어 이해했다.

 

 대신 엄마 환갑 때는 꼭 다 같이  가족여행을 가자고 했는데 그땐 남편이 외국 장기출장 중이어서 휴양 위주의 사이판으로 남편 없이 여행을 가게 됐다. 결국 한참 개구쟁이 5살 둘째 아들을 아빠가 다 챙겨주시고 엄마와 딸 둘, 어린아이 둘 뿐이라 여행의 힘든 일은 아빠가 도맡으셨었다.

 늘 아들처럼 사위를 아끼고 예뻐하시는데 중요한 날마다 빠지는 게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좀 속상했다. 게다라 남편은 나랑 달리 철저하게 계획 세우고 잘 실천하는 스타일이라 함께 여행 가면 아빠 못지않게 가족들을 잘 챙길 스타일이다. 그러니 그런 사위의 믿음직한 모습을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도 크다.

 

 그래서 칠순여행이야 말로 아빠가 좋아하시는 거 다 계획에 담아 함께 여행하고 싶었는데, 아빠는 이번엔 올해 수술 계획하신다고 여행을 또 사양하신다.    


 향교에 다니시며 유교 보존에 힘쓰셨던 시골 큰집(아빠 어릴 땐 그때까지 예전 머슴 같은 이가 있었다나? 뼛속까지 양반이라 게으르신 할아버지와 논밭 일구시느라 고생하는 할머니 밑에서) K장남으로 태어나 아들이라고 도시유학을 보내주셨으나 늘 춥고 배고프셨다던 우리 아빠! 스스로 애써서 부모님 도움 없이 가정 이루고 살았음에도 끊임없이 효자노릇 하시고 사셨다. 장남, 남편, 아빠, 직장인으로 살며 늘 고단하셨을 우리 아빠는 여전히 혼자 계신 할아버지를 자주 챙기시는 좋은 아들, 좋은 남편, 좋은 아빠로 사신다. 이젠 아빠 즐겁고 재밌는 삶을 마음껏 사셨으면 좋겠는데 유일한 취미인 운동마저 할 수 없게 만든 세월이 야속하다.


 그래서 빌면 꼭 이루어지는 한 가지 소원이라면 우리 아빠 무릎 수술 잘 돼서 빨리 전처럼 건강해지시는 것이다. 말뿐이 아니라 진짜 이루어지도록 마음 담아 기도해야겠다.


#아빠 올해 수술 꼭 잘되셔서

#내년이라도 꼭 가족여행 함께 해요

#아빠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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