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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금 Aug 03. 2024

김칫국만큼 대충 살기로 약속해

집밥을 할 때 메인 요리 하나, 국 요리 하나 이렇게 두 가지는 꼭 만드는 편이다. 남편은 밥과 메인 요리 하나만 있어도 잘 먹는 사람이기에 국 요리는 안 해도 된다고 하지만, 나는 일부러 굳이 굳이 국 요리를 만든다.

회사에서 점심을 식당밥으로 해결하면서 밥을 조금 떠 국에 살짝 적셔 먹는 습관이 생겼다. 반찬은 모르겠지만 회사 식당의 국은 항상 맛이 좋았다. 국의 맛을 알아버렸기에 내가 요리 담당자인 우리 집에서도 국은 빠져 안 되는 법.


마트에 갈 시간이 없어 집에 있는 음식들로 국을 끓여보기로 했다. 목표는 스팸 김치찌개.

식용유 살짝 두른 냄비에 송송 썬 파와 다진 마늘, 잘게 깍둑 썬 스팸을 넣고 달달 볶는다.

스팸을 한 캔 다 넣어서 그런지 좀 많지만.. 그래도 남편이 햄을 좋아하니 괜찮다.

어느 정도 재료들이 익었다 싶을 때 잘게 썬 김치를 넣어준다.

김치는 평소에 잘 안 먹는 부분으로 넣는다. 이파리 끝쪽의 초록색 부분을 주로 넣는다. 안 먹는 꼭지 부분도 함께 볶는다. 어느 정도 익은 냄새가 올라오면 물을 양껏 넣어준다.

아, 재료가  많다. 물을 더 넣어야겠다. 그리고 코인 육수 한 알을 넣고, 끓여준다.

재료의 향이 어느 정도 익었을 때쯤 소금으로 간하고 고춧가루를 뿌린다. 그리고 맛을 본다.

역시. 무엇인가 빠졌다.


코인육수로 해결할 수 없는 감칠맛이 필요하다. 정답은 참치액. 나는 참치액을 자신 있게 휘둘러 넣어준다.

남편에게 처음 국 요리를 해줬을 때, 남편은 너무 맛있다고, 왜 이렇게 요리를 잘하냐고 물었다.

사실 내가 요리를 잘하는 게 아니라 이 참치액이 요물인 거다. 국요리를 할 때 참치액은 빠져선 안된다. 간의 부작용이 있다면 모든 국 요리의 맛이 비슷해지고 있다는 거다. 어쨌든 간도, 조미도 참치액으로 해결하기 때문.


김치찌개가 다 끓여졌을 때, 남편은 보자마자 말했다.

이건 김치찌개가 아니라 김칫국인데?

사실 스팸이 많이 들어가서 물을 많이 넣어서 그런가 보다. 찌개든 국이든.. 맛있다고 다면 찮다.


작년 한 해 동안 회사에서 너무 열심히 일했다. 거의 매일 야근하다시피 일한 건 물론이고, 심지어 명절 때도 출근했던 기억이 있다. 선배들이 고생했다고, 잘했다고 어깨를 토닥여줬다. 그때만큼은 속으로 뿌듯했지만, 사실 이에 대한 특별한 금전적 보상은 없었다. 올초 연봉협상까지 지나고 나서야 잠시 까먹었던 사실들이 떠올랐다. 회사는 생계를 위해 다니는 곳이며, 업무에 대한 보상은 칭찬 한마디보다 금전이 중요하다는 사실 말이다.(물론 인정하는 말도 아주 중요하다.)

그래서 올해부턴 '열심'을 버렸다. 그리고 '대충'을 선호하기 시작한다. 대충하되 정확히. 내 시간을 적게 쓰되, 확실히. 이 일은 내 일이 아닌 회사의 일일 뿐이니, 욕먹지 않을 만큼만 하자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건다. 더하려 하지 말고, 그렇다고 덜하지도 말고, 적당히만 해내는 게 스트레스를 덜 받는 지름길이다.

딱 참치액만큼만. 신기하게도 작년처럼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일은 잘 굴러간다.


찌개와 국을 지나 탕이 된 거 같기도 하다..


참치액와 함께라면 국요리만큼 자신 있다.

그래도 참치액의 감칠맛이 지겨워졌을 때에는 다른 조미료를 섞어서 사용해 보기로 한다. 다시다, 미원, 연두... 물론 멸치, 다시마, 말린 새우 같은 천연 조미료가 더 좋겠지만, 난 아직 빠르고 정확하게 맛있는 맛을 포기하지 못하겠다.

아무튼 김칫국이든 김치찌개든 맛만 좋으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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