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동이 고통이 될 때, 비로소 엄마가 될 준비를 한다. 아내는 그렇다. 20주쯤 됐을까. 태동을 처음 느낄 수 있다는 시기에 태동이 느껴지지 않자 우려했다. 금새 우리 아이가 건강하지 않은 건 아닌지 걱정했다.
그랬던 그녀가 지금은 넘치는 태동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딸 아이가 에너지가 넘쳐서 그런 걸까. 주치의는 아무 이상 없다고 안심하라고 하시지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밤낮 잠을 이루지 못하는 아내가 가엽다.
태동이 고통이 됐을 것이다. 아내의 엄마인 장모님도, 우리 엄마도 비록 삼십년 전의 일이라 기억은 뚜렷하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그렇게 아내는 누군가의 엄마가 되고 있다. 나도 그런 아내의 남편이, 한 아이의 아빠가 되어가고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