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나는 그 누구에게도 굴하지 않았다
내년 가을, 결혼하려 한다.
지금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
평생을 함께 할 그 사람을 만났고,
사랑하고 있다.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젊어서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안정된 삶을 영위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과 밤 늦게 헤어지는 아픔을 견디기 힘들었다. 마치 이소라 <청혼>의 가사처럼.
이제 우리 결혼한다. 결혼하게 됐다. 지금 이 말을 꺼내는 이 순간에도 주변 사람들은 반대한다. '미쳤냐'는 반응부터, '젊은 날에 자유를 즐기지 그러냐'는 말, '돈은 모았냐'는 말들. 남의 일이라 판단을 곧잘내리는 걸까. '아니라'며 한사코 말린다.
말릴 수록, 더 내 결정이 옳았다고 믿게 된다. 주변이 가지 않는 길을 걷고자 한다. 자녀를 두고 오롯이 함께 살며 가정에 충실한 젊은 부부를 볼 때마다 더욱 그렇다. 자녀를 가지며 인생의 행복이 늘었다는 그들의 고백은 나의 결정을 확고히 하기에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
후회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게 결혼은 시기의 문제일 뿐, 나는 이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될 운명이다. 어차피 할 결혼이라면 망설일 필요가 없다. 인생에 거칠 단계라면 때가 되면 거쳐야 한다. 그 '때'는 스스로 정하는 것이다. 느리고 빠름이 따로 있지 않다. 현실적인 고려도 마찬가지다. 5년 후, 10년 후라고 해서 재정적으로 확실한 위치에 있을거라고 장담할 수도 없지 않은가.
올해를 지나 결혼을 하고, 딸이든 아들이든 자녀를 갖게 되면 어떨까. 크게 와닿진 않지만 어느 정도 성장했을 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다소 유치하지만, '내가 너와 대화할 수 있는 나이가 조금이라도 더 젊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 줄 아니?'하고 묻고 이렇게 답해주고 싶다.
"내가 결혼을 할 때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더라. 근데 나는 확신이 있었다. 네 엄마와 결혼해서 너를 낳고 한 가정을 꾸리게 되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행복할 수 있을 거란 것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었어. 그 믿음이 결국 우리를 여기까지 이끌었구나. 그래, 나는 정말 행복하단다."하고 말이다. 그럼 그때 내 아들/딸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끝
(누군가의 결혼식에서, 2016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