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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부리 Apr 16. 2016

내 아이들

2016.01.19


꿈같은 조리원 생활은 어제 끝났다.

물론 아내와 나는 아직 독립하지 않았다. 바로 처가로 거처를 옮겨, 장인어른, 장모님 등에 ‘빨대’를 꽂고 ‘기생’을 시작했다.

그래도 장모님이 잠자리에 드시는 밤 10시쯤부터 아침까지 또이와 복이는 온전히 아내와 나의 몫이 됐다.

조리원에서 ‘울지도 않고, 칭얼대지도 않으며 잘 자고, 잘 싼다’고 칭송이 자자했던 또복이들은 ‘독립 첫날’부터 본색을 드러냈다.

눕히면 칭얼대고, 젖을 먹어도 칭얼대고, 기저귀를 갈아줘도 칭얼댔다. 물론 엄마, 아빠가 아직 초보라 또복이들의 ‘니즈’를 ‘캐취’하지 못한 이유가 제일 크겠지만.

아내는 밤새 잠을 제대로 못잤지만 난 그래도 비교적 잘 잤다. 아이들의 울음소리는 귀에 들려 벌떡 일어났지만, 칭얼대는 소리 정도는 들리지 않았다. 간밤에 2번 일어난 것이 전부였다.

드디어 평화를 찾은 또복이들


오늘 서울의 기온은 최저 영하 14도였다. 처가의 아파트 베란다 창도 꽁꽁 얼어붙었다. 점심 먹고 출근했지만 정동길에서는 귀가 떨어지는 줄 알았다.

그러나 또복이들이 기거하는 처가 안방은 24~25도를 꾸준히 유지했다. 습도도 60%를 지켰다. 장모님이 오며가며 보일러를 가동해주신 덕분이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적정온도를 완벽하게 만들어주셨다.

영하 14도의 밖과 영상 24도의 방안. 무려 38도가 차이나는 두 공간 사이에는 벽과 베란다 창문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도 그 벽과 베란다 공간이 있어 아이들은 칭얼댈지언정 따뜻하게 먹고 잤다.

앞으로 20년간은 아이들에게 그런 벽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할텐데. 아이들이 추운 날씨도 능히 견딜 수 있을 때까지 벽이 되고, 외투가 되어줘야 한다. 어깨가 무겁다. 그래도 아이들 얼굴 보면 얼마든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다시금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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