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도화 Jun 18. 2024

우문현답

  회식을 주재한 국장은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고기가 구워지는 내내 본인이 왕년에 얼마나 일을 잘했는지, 장관이 자신을 얼마나 총애하는지에 대해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한참이나 떠들었다. 그가 입에서 침을 튀기며 말하는 동안, 나머지 사람들은 영혼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심심한 입을 달래기 위해 밑반찬을 맨입에 주워 먹었다. 무료한 표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럴 땐 차라리 막내 직원처럼 삼겹살 굽는 일이라도 맡는 편이 나았다. 고기 굽기에 집중하면 지루한 회식 시간도 그럭저럭 잘 가고, 굳이 국장의 말에 리액션을 하지 않아도 면책되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불판 위에 고기가 적당하게 익자 국장은 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를 만들었다. 사람들 앞에 술과 고기가 모두 준비되자, 그는 입술 옆에 쌓인 거품을 손으로 슬쩍 닦고는 준비된 건배사를 했다.   


  “자, 제가 우문을 선창 하면 다들 현답이라고 외쳐 주세요. 우문!”


  “현답!!”


  우문현답은 어리석고 수준 낮은 질문에도 정확하고 현명하게 대답하는 경우라는 의미의 사자성어이다. 하지만 공직사회에서는 원래의 뜻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한다.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


  단순한 아재 개그 같지만 탁상공론에 빠지지 말고 현장 중심의 행정을 하자는 좋은 의미를 담고 있어서, 기관장의 공식 연설문부터 술자리의 건배사까지 폭넓게 사용된다. 






  공직자들의 현장 사랑은 단순히 말뿐만이 아니다. 장관의 일정 중 국회를 제외하고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곳은 업계와의 현장 간담회일 정도로, 고위공직자들은 현장을 찾아 소통하는 일을 실제로 중요하게 생각한다. 


  현장 간담회는 장관 취임, 명절, 52시간제 도입과 같은 제도의 변화, 코로나 상황과 같은 경제적 위기 등 실로 다양한 계기로 마련된다. 1년 남짓인 장관의 평균 임기를 고려하면 사실상 취임 때부터 퇴임 때까지 끊임없이 현장간담회만 소화한다고 해도 무리가 없다. 특히 요즘에는 국무조정실의 정부업무평가에 장차관 등의 현장 행보가 평가요소로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현업부서는 특별한 계기가 없어도 현장 간담회를 일 년 내내 만들어 내야 한다. 다른 일로 바쁜 와중에 장관의 현장 간담회를 만들어 내느라 없는 시간을 쪼개는 심정은,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정도로 현타가 오는 일이다.  


  장관의 현장 간담회는 치밀하게 준비된다. 실무진에서 제일 공을 들이는 건 참석자 선정이다. 참석자는 해당 업계를 리드하는 인사를 5명 정도 추려 섭외하는데 정부가 장관의 스케줄에 따라 간담회 장소와 일시를 일방적으로 정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은 장관과 만나는 자리라고 하면 흔쾌히 섭외에 응한다. 현장에서 마주하는 민간의 반응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관의 힘은 아직도 그럭저럭 통한다는 생각이 든다. 


  사무관은 참석자들이 현장에서 발언할 내용을 조율하고, 그 결과를 예상 질답의 형태로 미리 보고한다. 장관이 모르는 논점이 현장에서 우발적으로 등장하면, 그가 망신을 당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는 꼭 장관을 위한 일만은 아니다. 혹여라도 장관이 현장에서 실무진이 가닥을 잡고 있는 방향과 반대로 대답하는 사고를 막기 위해서라도 사전 조율은 필요하다. 그나마 장관급의 경우에는 예상 질답을 정리하는 수준이지만, 총리급 이상의 경우에는 참석자의 동선과 발언 시간, 순서까지 세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이쯤 되면 참석자의 행동과 발언에 어떠한 우연도 개입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간담회 보고자료가 연극의 대본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의문이 들 정도다. 


  사무관의 알량한 권력은 간담회의 내용을 사전에 조율하는 과정에서 나온다. 간담회 이후 조치 계획까지 염두에 둬야 하는 실무자의 입장에서는 마땅한 대응 방안이 없거나 당장 조치가 불가능한 ‘답 없는’ 이야기를 미리미리 걸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참석자 중에 일부는 정부가 간담회를 하자고 해놓고 미리 논점을 게이트키핑 하는데 불만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제한된 시간 안에 복잡한 내용을 말해봐야 장관이 진짜 그 논점을 이해하겠냐는 실무자의 반론 앞에선 보통 할 말을 잃는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관료들이 현장의 목소리가 그대로 전달되지 못하게 장관의 눈과 귀를 교묘하게 가린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실무자가 논점을 조율하지 않고 정말 있는 그대로 현장 간담회를 진행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지는 잘 모르겠다. 대략 2시간의 한정된 시간 동안 장관이 업계의 복잡한 문제를 이해하고, 이를 숙고하여 대응 방안을 내놓기는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또한, 장차관 등 정무직들이 현장에서 정말로 자유로운 토론을 원하는지도 의문이다. 정무직 중에 돌발 발언에 당황하지 않고 유연하게 상황을 넘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생각보다 드물다.


  현장 간담회 준비의 마지막은 보도자료 작성이다. 이런 종류의 보도자료 작성은 어렵지 않다. 육하원칙에 맞춰 작성하고, 마지막에는 장관의 할만한 발언을 한 문장 정도 상상하여 붙이면 된다. 보통은 ‘업계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상투적인 문장이면 되지만, 여기서 창의성을 발휘하라는 국과장의 요구가 있으면 참 난감하다. 밥 한번 먹어본 적 없는 장관의 속내를 사무관 나부랭이가 어찌 안단 말인가? 


  보도자료는 대변인실에서 현장 사진을 포함, 간담회가 시작하는 일시에 맞춰 정부 출입 기자들에게 배포한다. 인터넷 기사를 포함해서 20~30개의 기사가 올라오면 일은 드디어 마무리된다. 장관의 동정을 언론에 잘 드러나게 하는 것이 현장 간담회의 진짜 목적이기 때문에, 장관의 얼굴이 잘 나온 사진을 포함한 기사 하나하나가 정부 부처 입장에서는 일의 성과이다.    






  준비 과정에서 보듯이 장관의 현장 간담회는 업계와의 진정한 소통이 아니다. 잘 짜인 극본과 같은 간담회를 아무리 많이 해도 업계는 자신의 고충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고, 장관 역시 현장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는 장관의 탓만은 아니다. 물리적인 한계가 있는 한 명의 자연인이, 현장의 복잡한 역학관계를 모두 이해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수백 명의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장관을 보좌한다. 관료는 맡고 있는 각 분야에서 장관의 권한을 위임받아 대신 행사하는 셈이다.


  따라서 실제로 현장과 끊임없이 소통해야 하는 주체는 정무직 장관이 아니라 국장급 이하 직원들이다. 특히 보고서의 시작점인 사무관이 현장과 가까워야 문제에 대한 현실적인 정책적 해결 방안이 나온다. 실제로 만나보면 민간에선 대부분 자신의 어려움만 호소할 뿐, 그 문제가 법령 때문인지 예산의 부족 때문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를 정확하게 정의하여 법령을 입안하는 국회나 예산을 편성하는 기재부를 설득할 논리와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관료가 갖고 있는 본연의 전문성이자 고유한 역할이다. 최근에는 국회나 언론도 그러한 역할을 일부 소화하지만 단순히 문제만 제기할 뿐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정책적인 해결 방안을 찾는 단계가 되면 여전히 정부에 공을 넘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대부분 세종시에서 근무하는 중앙부처 공무원은 현장과 소통하기에 대단히 불리한 환경에 처해있다. 현장의 상황을 속속들이 이해하고 있는 업계의 전문가들이 서울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서울은 형식은 50%, 실질은 70%, 전문가는 90%가 몰려 있는 도시다. 당위의 문제를 떠나 그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세종청사와 오송역은 BRT로 30분, 오송역과 서울역은 KTX로 50분이 걸리기 때문에 환승에 소요되는 대기 시간을 합치면 세종에서 서울 출장은 왕복 약 4시간이 걸리는 먼 길이다. 오전에 세종에서 출발하여 서울에서 점심만 먹고 내려와도 반나절은 걸린다는 의미이고, 오후에 회의라도 한 번 하면 하루 종일 걸리는 길이 된다. 


  하루 일정인 서울 출장을 가려고 하면, 사무관은 위아래 양쪽으로 눈치를 봐야 하는 신세가 된다. 그저 서울에서 바람이나 쐬고 오겠다는 건 아닌지 의심하는 과장에게 출장의 필요성을 설득해야 하고, 각종 업무 메일과 자료 작성에 허덕이는 파트너 주무관에게는 괜히 일하러 가면서도 미안하다. 그래서 날이 갈수록 서울 출장은 국회 방문이나 행사 준비, 공식적인 회의와 같이 불요불급한 일이 아니면 주저하게 된다. 솔직히 말해, 공무원 입장에서 보면 현장의 전문가를 만나지 않는다고 구박하는 사람도 없고 그 결과 정책의 디테일이 좀 떨어진다고 해서 월급을 못 받을 일도 없는데 굳이 위아래로 눈치를 봐가며, 왕복 4시간의 지루한 시간을 견디며, 현장과 소통하겠다고 매번 무리하는 사람이 바보 아닌가?


  그러다 보니 중앙 정부에서 담당하고 있는 분야를 속속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어야 하는 사무관조차, 현장과의 소통에 미온적이다. 해당 분야의 이슈와 개괄, 소소한 가십 등 책자나 웹서핑 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유용한 정보를 얻는 데는 직접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일만큼 효율적인 방법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일각에서는 화상회의나 전화 등 비대면 통신 수단을 많이 활용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하지만, 허심탄회하고 솔직한 목소리는 화면을 통해 흘러나오지 않는다.


  공무원이 업계와의 소통을 도외시하면 현장의 문제의식도, 정확한 해결 방안도 흐려진다. 현장과 멀어진 관료가 쓰는 보고서는 구글에 ‘세계 콘텐츠 산업 규모’, ‘메타버스의 발전 전망’ 같은 단어를 검색한 결과를 짜깁기하는 수준에 머문다. 장기적으로 대통령실과 국회가 세종시로 이전한다고 해도 이는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실무자들이 공식적으로 서울에 출장을 가게 될 명분이 줄어들면서, 그나마 출장 사이사이 짬을 내서 만나던 현장과의 만남이 더 어려워질 여지도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22년 기준 서울 도심 지역(광화문 등) 중대형 상가 임대료는 1㎡당 83천 원, 세종은 14.6천 원이었다.(*오피스로 비교하는 것이 더 정확하지만, 세종의 오피스 임대료는 발표하지 않아 중대형 상가 임대료로 비교) 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 정부가 서울에서 세종으로 청사를 이전하면서 임대료 등 경상비를 1/6로 줄였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정부가 공무원에게 쓰는 돈을 줄였으니, 현장과의 소통을 통해 얻는 공무원의 전문성은 좀 희생되어도 괜찮은 걸까? 어차피 민간이 주도하는 세상이니 공공은 현실과 괴리되어도 되는 걸까? 공무원은 세종으로 내려오면서 이전기관 특공으로 받은 부동산 가격이나 오르면 만족하는 존재인가? 경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며 장관 등 고위공직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현장을 방문하라는 대통령의 근엄한 지시를 뉴스로 볼 때마다, 터져 나오는 실소는 멈출 수가 없다.





이전 02화 온콜(On-call)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