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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한동 Jun 11. 2024

온콜(On-call)

  월요일 아침, 주말 내내 늦잠을 자다 등원 시간에 맞춰 일찍 일어난 탓인지 딸아이의 기분은 좋지 않았다. 아침식사도 먹는 둥 마는 둥, 출근 시간에 맞추기 위해 옷부터 입히려 해도 괜히 시간만 끌며 심통이었다. 어린이집에 등원하는 차 안에서도 투정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10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마음은 급하고 기분은 무거웠다. 청사에 도착하는 마지막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는데 전화가 울렸다. 국장이었다. 혼자 조잘조잘 대는 아이를 향해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며 ‘쉿!’ 하고 주의를 주고는, 핸들의 버튼을 눌러 공손하게 전화를 받았다. 매주 월요일 오전 9시에 열리는 실국장회의에 제출한 자료가 문제인가 싶어,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아이를 챙기느라 아침에 제대로 챙겨 먹은 게 없는 터라 식도는 뻑뻑하고 위는 쓰렸다.


  오전 8시 45분. 사무실에 도착했는지 묻는 국장의 질문에, 아직 출근길이라고 답했다. 9시가 출근 시간이기 때문에 지각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근태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사람처럼 목소리가 저절로 기어 들어갔다. 부하 직원의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고 국장은 수화기 너머에서 바쁜 질문을 쏟아냈다. 실국장회의 자료를 국장에게 확인받고 제출한 건 지난주 목요일인데, 왜 회의 15분 전에 이 난리를 치나 싶어 답답한 마음이 올라왔다.  하지만 월급쟁이가 상사에게 멋대로 기분을 드러낼 수는 없는 터라 최대한 성실히 답했다. 그럼에도 끝내 국장은 세부 자료를 보지 않고는 도저히 기억해 낼 수 없는 숫자를 물었고, 나는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확인 후 연락을 드리겠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초조하게 기다리던 좌회전 신호가 들어왔고, 나는 핸들을 급하게 꺾었다. 어린이집 앞에 간신히 도착했지만 상황은 최악이었다. 아이는 차 안의 시간이 지루했는지 신발은 물론 양말까지 동그랗게 말아 벗어던져 놓았고, 어린이집 가방에 넣어 둔 물병이며 알림장도 너나없이 튀어나와 어질러져 있었다. 급한 대로 앞 좌석의 시트 밑으로 고개를 집어넣고 구겨진 양말을 찾아 낑낑대며 급하게 양말만 신기고는 아이를 안고 택배 물건 옮기듯 어린이집 선생님께 전달했다. 사무실에 도착하여 헐레벌떡 컴퓨터를 켜고 자료를 확인하여 국장에게 카톡으로 보고했지만 메시지 옆의 1만 없어질 뿐, 그의 답장은 없었다. 




  202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클라우디아 골딘의 ⌜커리어 그리고 가정⌟에 따르면 가차 없는 밀도로 불규칙한 일정에 대응해 가며 장시간 일할 것을 요구하고 높은 보수를 지급하는 ‘탐욕스러운 일’은, 주말이나 퇴근 후 긴급 호출에 지체 없이 대응할 수 있는 ‘온콜’(on-call) 상태를 요구한다. 문제는 가정에서도 부부 중 누군가는 아이가 갑자기 아프다거나, 연로하신 부모님의 응급 상황을 챙기는 등 급한 일이 있을 때 사무실을 떠나 집으로 올 수 있는 온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골딘 교수는 남녀 성별 간의 소득 격차가 나는 원인은, 남성이 탐욕스러운 일을 유지하여 소득을 극대화하고 대신 여성이 가정의 온콜에 대응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중앙부처 사무관의 일은 (보수가 높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명백히 탐욕스럽다. 예산 시즌에는 출퇴근 시간과 관계없이 기재부의 연락에 언제든 온콜 상태여야 하고, 국정감사 등 국회가 열릴 땐 전날 새벽까지 자료와 질의에 대응해야 한다. 예산과 국회 등은 어느 정도 예측되는 시즌이 있다는 점에서 그나마 좀 나은 편이다. 더 큰 난관은 국무회의, 장관회의, 실국장회의 등 정부 내부에서 돌아가는 각종 회의 준비다. 회의 내용에 자신의 소관 업무가 들어가면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연락이 올지 모르기 때문에 담당자는 늘 바싹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언론 대응 역시 마찬가지다. 일 년 365일,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언론사에서 쉼 없이 생성되는 기사 중 하나에 소관 업무에 대한 삐딱한 내용이 실리면 가차 없이 대변인실에서 장차관 등 간부들에게 해당 기사를 전송한다. 당연히 사무관은 해당 기사의 요지와 사실 관계, 대응방향 등을 검토하여 주말이든 밤이든 즉시 보고하여야 한다. 대부분의 사무관은 직업병처럼 언제 어디에서 누가 자신을 애타게 찾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퇴근 이후나 주말에도 좀처럼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 쉬는 시간에도 최신 기사를 찾기 위해 네이버 창에 ‘문체부’를 검색하고, 시도 때도 없이 기사를 새로고침 하는 것은 사무관의 대표적인 강박증세이다. 


  내가 직장에서의 온콜에 시달리는 내내, 가정에서의 온콜은 맞벌이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아내의 부담이었다. 육아에 기여하는 일이라고는 출근과 동시에 청사 어린이집을 다니는 아이의 등원을 책임지는 일 밖에 없었는데도, 출근 전 불쑥불쑥 상사에게서 오는 연락을 받아내느라 진땀 빼는 날이 많아지면서 그조차 버거웠다. 심지어 공직은 높은 임금과 같은 즉각적인 보상 체계가 작동하는 일자리도 아니다. 그저 장차 ‘고위공무원’의 자리를 주겠다는 어음과 같은 약속으로 유지되는 탐욕스러운 일자리다. (가정에서의 평가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이처럼 지연된 보상에 불만이 덜한 사람일수록 대체로 ‘에이스’ 소리를 들으면서 공직에 잘 적응한다. 이 모든 전후 상황을 퉁쳐서 공직자는 ‘사명감’ 있는 사람이 해야 한다는 논리가 완성된다.




  공직자가 자신의 일에 사명감을 갖는 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좋은 일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책임감을 갖고 일을 완수하려는 마음가짐은 자신의 커리어를 풍부하게 하고 때로는 삶의 이유 그 자체가 되며, 무엇보다 그의 헌신적 노력의 결실은 국민 전체가 누린다. 그러므로 공직이 온콜에 시달린다는 이유만으로 직업 자체의 가치를 폄하해서는 안 된다. 국방과 안보, 안전 등과 관련된 수많은 공직자가 밤낮없이 울리는 연락에도 즉각 대응하기 때문에 우리는 편한 마음으로 발 뻗고 잘 수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다수 중앙 부처의 일이 밤낮없이 돌아가는 상황은, 비효율적이거나 보여주기식 관행 때문이지 정말 그럴 만한 필연적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예를 들어, 비상경제장관회의나 관계장관회의를 주로 일요일에 하는 이유는 각료들이 비상시국에 밤낮과 주말 없이 일하는 모습을 언론을 통해 보여줘야 해서지, 남들 노는 일요일에 회의를 해야 비상시국에 잘 대응하기 때문이 아니다. 국회와 관련된 일은 또 어떤가. 국정감사, 법안, 예산 국회 등 매달 한 번 이상 열리는 상임위 회의 전날, 의원실을 돌아다니며 의원의 질의를 미리 입수하고 전 부처 공무원들이 달라붙어 새벽까지 질의서에 대한 장관의 답변을 미리 준비하는 오랜 관행은 그저 장관의 면을 세워주기 위해서지 국민의 삶을 위해서가 아니다. 국회 상임위에서 장관이 세부적인 사항에 대한 답변을 좀 버벅댄다고 해서 국민의 삶에 악영향을 미칠 리 없지 않은가. 오히려 의원들은 질의를 미리 제공한다는 명분으로, 장관에게 아주 지엽적인 질문도 개의치 않고 한다. 지엽적인 질문의 대부분은 자신의 지역구 관리를 위한 선심성 사업이나 관련된 이익단체를 일방적으로 대변하기 위한 질의이기 때문에, 국민 전체를 대표해야 하는 의회정치의 본령을 생각해 보면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예산 작업도 마찬가지다. 기재부는 예산안을 확정하기 위한 내부 예산 심의를 일요일에 진행하며, 주말 내내 현업 부처의 공무원들을 들쑤신다. 공무원은 국가공무원법의 적용을 받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당 40시간 근무가 원칙인 점을 감안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관행이다. 일하는 방식 역시 구시대적이다. 기재부 예산안이 확정될 때까지 일 년에 최소 3~4차례 차수 별로 예산 심의가 이뤄지는데, 기재부와 현업 부처 간에 심의 값과 세부 변동 사항을 공유할 실시간 체계가 없다. 그래서 숫자가 변동될 때마다 엑셀과 한글 파일을 수정하여 공유하는데, 이에 수반되는 업무 연락과 메일만 적어도 수백 차례이다. 인공지능이 사람의 일도 곧 대체한다는 시대에 받아들이기 정말로 어려운 작업 방식이다. 


  중앙 부처 내부에서 열리는 실국장회의도 반드시 월요일 오전 9시에 할 이유가 없다. 그저 일주일의 시작을 위한 관행이라면 자료 없이 티타임에 준해서 해도 충분하다. 실제로 장관에 따라서는 실국장회의를 자료 없이 진행하거나, 요일을 변경하기도 했다. 반면, 직원 모두가 반드시 장관의 훈시를 들으라는 듯이 회의를 청사에 라이브로 중계하며 간부들을 혼내던 장관도 있다. 실국장회의는 없어져도 무관한 쓸데없는 회의다. 간부들은 장관과 독대하지 않는 상황에서 자신의 주요 보고 사항을 다른 간부들에게 노출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실국장회의는 보고를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그저 그런 사안으로 채워진다. 그런 무용한 회의를 위해, 직원들의 주말과 월요일 출근 시간을 저당 잡을 이유는 어디에서도 찾기 힘들다. 언론 대응 역시 마찬가지다. 기사의 내용이 타당하면 차분히 숙고하여 반영하면 될 일이고, 터무니없는 거짓을 담고 있다면 반론 사항을 담아 정정 보도를 요청하면 된다. 댓글 하나 달리지 않는 인터넷 기사에 즉각 대응해야 한다며, 퇴근 시간 이후에도 대응 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요구하는 공직 사회의 습관은, 그저 간부들이 장관을 향해 언론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연출을 하고 싶어서 아니겠는가.




  공무원은 이 모든 과정을 겪으며 공직사회의 일이란 그저 관습에 따르거나 기관장을 빛내기 위한 거대한 비효율의 반복뿐이라는 학습된 무기력을 체득한다. 주말과 밤낮없이 일하는 자신의 노력이 궁극적으로 국민의 삶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걸 공무원 스스로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공무원은 기본적으로 소극 행정을 지향한다. 근무시간 내내 열심히 일해도 위에서 시키는 거대한 비효율을 감내하기 벅차기 때문에, 스스로 일을 벌여가며 무언가 해보겠다고 나설 시간과 의지가 없어진다. 무분별한 온콜 요구는 공직사회에 소극적인 태도를 뿌리내리게 하기 때문에 결코 공짜가 아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어마어마한 비용이다. 미래에 개선될 여지도 별로 없어 보인다. 즉각적이고 현실적인 보상을 선호하는 MZ 세대에서 공직의 인기가 눈에 띄게 추락하고 있는데도, 조직에서는 무언가 바꿔 보려는 시도조차 없다. 그래도 아직은 공무원 시험의 경쟁률이 수십 대 일에 이르고, 저 연차 공무원들의 퇴직이 현장에서 체감될 정도로 급증한 수준은 아니어서일까. 오히려 간부들의 현실 인식은, 세상사 돌고 돌아 IMF와 같은 경제 위기가 오면 공직의 인기가 다시 높아질 거라는 어처구니없는 소리나 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인사혁신처는 몇 년 전부터 적극행정을 장려하기 위해 업무에 대한 감사나 징계 면책, 우수사례에 대한 승진 가점 등 보상을 주는 ‘적극행정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징계에 대한 두려움이나 보상의 부족은 적극행정을 방해하는 주요 원인이 아니다. 오히려 적극행정제도 그 자체가 정부가 공직사회의 문화를 얼마나 단편적이고 소극적으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시에 불과하다. 적극행정을 위한 핵심은 공직 사회에 만연한 비효율적인 온콜이고, 그걸 과감하게 뜯어고쳐야 한다. 물론, ‘나는 공직생활 내내 야근은 밥 먹듯이 했고 주말 출근도 불사했지만, 국비 유학 시절 아이들에게 2년간 미국생활을 제공한 걸로 아버지로서 할 도리는 다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간부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요원한 일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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