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의 승진교육이 끝이 났다.
같은 회사에서 두 번 퇴사하고, 세 번째 입사했다.
합쳐보면 입사 교육 3번, 승진 교육 2번, 해마다 한 번씩 치르는 재교육을 합하면, 이 회사에서 치른 교육만 해도 열 손가락으로는 모자랄 판이다.
이 회사에 처음 들어와서 치른 입사 교육은 그야말로 매운맛이었다.
두 달 반 동안의 모든 교육은 영어로 진행된다. 기내 안전, 서비스, 응급조치까지. 그리고 한국인이 같이 교육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영어로 말해야 한다. 생소한 항공영어에 귀에서 거부하는 강한 인도 영어 악센트까지 소화해야 했다.
3시부터 10시 30분까지 교육을 마치고 나서부터 본격적으로 공부는 시작되었다. 오늘 배운 내용을 이해하고, 내 입에서 정확한 단어와 정의가 나와야 했다. 그다음 날 무조건 한 시간 진행되는 복습시간은 긴장감은 퇴근 후 졸림을 쫓아내기에 충분했다.
오죽하면 그때 함께 교육받았던 친구, 언니와 이런 말을 했을까.
'언니, 친구야 내가 고등학교 때 이렇게 공부했다면, 아니 이렇게 공부하는 법을 알았더라면 내 인생이 바뀌었을 거야.'
11일 교육을 끝내고, 비행 가서 써먹을 것들을 따로 모아보았다.
문득, 이런 게 자기 주도 학습인가? 생각이 들었고, 사전적 정의가 궁금해졌다.
자기 주도 학습 (自己主導學習)
[교육 ] 학습자가 학습 참여 여부 결정, 학습 목표 설정, 학습 프로그램 선정, 학습 결과 평가 등 학습의 전체 과정을 본인의 의사에 따라 선택하고 결정하여 행하는 학습 형태.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우와, 이렇게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니. 하나씩 따져봐야겠다.
학습자가 학습 참여 여부 결정 - 회사에서 정해준 승진 교육이지만, 기다려왔으니 참여 여부는 진작에 결정
학습 목표 설정 - 회사에서 학습 목표 정해주는 거 소화하는 정도?
학습 프로그램 선정 - 회사에서 주어지는 교육 말고, 나 혼자 자료를 찾아보고 인터넷을 뒤져본다.
학습 결과 평가 - 필기시험 100, 100, 100, 96점. 실기시험 피드백도 괜찮았다. (왜냐면 이미 4년 가까이했던 일이기 때문에, 그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집에 와서 그날 배웠던 것을 다시 한번 보는 과정에서, 내가 정확하게 아는 내용, 적당히 아는 것 같은 내용, 모른 내용을 구분한다. 적당히 아는 것 같은 것은 적어보고, 녹음기를 틀어놓고 혼자서 말해보면 답이 나온다. 수업을 들을 때는 아는 것 같았는데, 내 입에서 나오지 않으면 나는 그 내용을 정확하게 소화하지 못한 것이다. 모르는 내용은 당연히 말할 필요도 없겠지.
집중력이 아직 살아 있을 때 조금 더 어려운 것 같은 내용을 보고, 가벼운 내용들은 나중으로 미룬다.
마지막까지 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 내용은 적어 두었다가, 리캡 직전에 보면 효과가 좋다.
이 모든 과정을 아무 생각 없이 혼자 해 나가는 게 자기 주도 학습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고 보면 자기 주도 학습은 쉬운 일이 아니다. 졸음과도 싸워야 하고, 학습 목표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하고, 나에게 맞는 학습 방법도 알아야 한다. 서른다섯 살도 자기 주도 학습, 어렵다.
나는 회사에 입사하면 적당한 일상과 월급이 보장되는 줄 알았다. 입사해 보고, 직장도 한 번 잃어보니 공부는 끝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회사에서 내 포지션을 유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도태되지 않기 위해, 그리고 더 나은 나의 미래를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타인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보다, 내가 스스로 선택해서 이루어 냈을 때 더 뿌듯하다는 것도 알아냈다.
지금은 이직에 성공해 토끼처럼 예쁜 딸을 낳고 비행하는 언니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내가 보기에 언니는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저 맨땅에 헤딩하는 그런 스타일의 사람이었고.
주변을 보면 100을 얻기 위해서 100을 정직하게 넣는 사람이 있다. 80을 넣어도 100이 나오는 사람도 있고.
언니와 나는 120에서 150%, 200%를 쏟아부어야지 100이 겨우 나오는 것 같다고 한탄을 했었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우리의 마무리는 100이 나오기까지 120,150,200까지 쏟아부어보자였다.
언니, 진짜 신기한 거 알려줄까? 지금은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보면 80을 넣어도 100이 나오는 똑똑한 사람으로 알아주고 있어. 사실 그전까지 지난 10년 동안 수없이 많은 교육을 해 내고, 나 혼자서 서른 번이 넘는 시험에 응시하고 떨어지면서 단단해진 것을 그들을 몰랐겠지.
어쩌면 우리도 80을 넣어도 100이 나오는 사람의 깊은 노고를 생각하지 못했던 게 아닐까? 우리가 보지 못했던 20은 경험과 혼자서 쓰러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했던 시간이지 않을까 생각해 봐.
언니도 지금은 다른 사람들이 보았을 때, 쉽게 100을 이뤄내는 사람으로 볼 것 같아. 왜냐하면 우린 그만큼의 내공과 경험이 생겼으니까. 누군가가 돈을 줘도 살 수 없는 경험이잖아.
자 두 번째 승진도 축하한다.
다가오는 승진은 부서 이동과 동시에 유니폼 색도 바꿔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