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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지금Minow Apr 06. 2023

바야흐로 퇴사의 계절.

'바야흐로'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이런 뜻이 나온다.


"이제 한창, 또는 지금 바로"라는 뜻이다.

이한철의 "바야흐로 사랑의 계절"이라는 노래를 주야장천 듣는 계절이 왔다.

대학교 4학년 때 교환학생을 중국으로 갔을 때,

함께 403 (쓰링싼)에 살았던 시엔찡이 이 노래를 좋아했다.

갑자기 시엔찡 소환 ㅎㅎ


우리 회사의 financial year 은 지난해 4월부터 다음 해 3월 말까지이다.

그래서 그 1년을 기준으로 비행시간을 측정해 초과 비행수당을 받는다.

나는 입사하고 8년을 이 회사에서 비행을 하면서

초과 비행수당(오버타임)을 받은 기억이 두 번 있나??

워낙 주니어 때에는 비행을 많이 안 했었고, 지금만큼 우리 회사가 비행이

많았던 것도 아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

나는 비행하러 체코에 뛰간다고 몇 달씩 비행을 안하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그렇게 받은 오버타임 수당은 쏠쏠했던 기억이 난다.

공부한다고 체코 하늘에 갖다 바쳤지만 값진 투자였으니.




에어버스 오피스 뷰



비행 초과수당 이외에 또 다른 변화가 있다면 퇴사자들이 부쩍 많아지는 달이기도 하다.

지난 비행에도 사직서를 내고 notice period인 크루가 넷이나 있었다.

지난달 발리 비행에는 그 비행이 마지막이신 한국 크루 분도 있었다.

카타르에서 짐 정리 두 번 해본 사람의 입장에서

4월은 퇴사하기 괜찮은 계절인 것 같다.

나의 첫 퇴사는 8월 말이었다. 380 시드니 만석을 마무리로  26명의 크루들의 이름을 제대로 알지도 못했고,

빵빵 터져버린 메디컬에 누가 내 마지막 비행이었는지 기억도 못 했으리라.

올 때 갈 때 같이 일했던 크루가 내가 벙커에서 쓰는 화장품을 듀티프리에서 사서 내 손에 쥐여주고,

회사에서 돌아오던 버스에서 사무장이 적어준 손 편지.

아직도 내 여권 수첩 안에는 고스란히 접혀져 있다.

다시 8월 퇴사로 돌아와서,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바로 날씨다.

8월의 도하 날씨는 정말 살인적이라서 반납해야 할 물건들을

들고 여기저기 다니다가 건물 밖으로 잠시 나가기라도 하면

등줄기에 땀이 줄줄, 화장이 녹아내린다.

내 코에서 뿜어져 나오는 숨마저 뜨겁게 느껴질 정도니

퇴사를 하고 비행기를 타고 비엔나로 갈 때,

130킬로 짐을 모두 가지고 갈 수 없어 나는 카고로 짐을 부쳤다.

휴가 가는 것처럼, 백팩 하나, 기내용 트롤리, 수트 케이스 하나 들고 퇴사를 했다. 그 부쳐야 하는 짐들을 밤이 되어도 35도가 넘는 날씨에

낑낑거리며 옮겼을 생각을 하면.. 아찔하다.

그래서 내가 혹시라도 다음에 퇴사를 하게 되면

날씨가 선선해지는 날에... 할 예정이다.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 비행 시드니, 그리고 사무장님의 손편지



Notice period를 둔 크루들에게 질문이 쏟아졌다.

다음 목적지에서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계획이 있는지.

목소리 크고 호탕한 캡틴은 미국에 새 직장을 구했다고 한다.

아이들도 커서 대학 졸업도 다 했고, 15년 이 회사에서 일 할만큼 했고

작은 기종으로 출퇴근하면서 남은 조종사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다고 했다.

다른 크루는 남편이 있는 곳으로 가서 좀 쉬고 싶다고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부터 비행을 시작했으니

벌써 11년 차가 되었으니.

쉬면서 다음을 준비하겠다는 계획도, 새롭게 시작할 직장이 있단 것도 멋진 일이다.

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지만 다양하게 살아간다는 것을 새삼 느꼈던 순간이다.

이번에 퇴사하는 동료들을 보면서 응원하는 마음이 들었던 이유는

그들이 떠나는 모습에 있었던 것 같다.

마지막 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해야할 일은 끝까지 해야 한다며

업데이트된 정보들을 읽었다.

그리고 회사에 대한 불만이나 안 좋았던 일에 대해서 남겨진 사람들에게 쏟아붓지 않았다.

가끔 퇴사를 할 때, 회사 욕을 엄청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남겨진 사람의 입장으로.... 썩 듣기 좋지는 않다.


내가 대화를 나눈 동료들은 나에게 이런 말을 해 주었다.

'나를 알아가기 참 좋은 곳이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어떤 것에 행복해하고, 다음을 계획하기 좋은 곳.'이라고.

떠나는 순간까지 멋진 태도를 가진 동료들을 보면

빛날 앞날을 더 응원해 주고 싶다.

그리고 내가 떠나는 순간이 다시 온다면 요란하지 않게, 잔잔하게 이들처럼 떠나리.


좋은 동료를 떠나보내는 동료의 입장에서는 아쉬운 마음이지만,

새로운 시작점에 선 동료들의 입장에서는 퇴사의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 왔을까.

내가 좋아하는 노래의 설렘만큼이나

퇴사하는 그들에게도 설렘 가득하고 좋은 일들이 펼쳐지길 바란다.


'바야흐로 퇴사의 계절'에

당신의 다음 인생 챕터를 응원하는 동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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