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 후 1년이 지났다.
2022년 10월 26일 내가 있었던 LA 모습이다. 필름 속의 푸른 하늘처럼 나도 모든 것이 먹구름 없이 이 구름만큼 무난할 줄 알았다. 알고는 있었다. 조종사 면접을 보고 나서도 나는 회사의 priority가 아니기 때문에, 현재 승무원 직을 유지하면서 회사가 필요할 때 교육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기다림도 이 과정의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렇게 가을이 지나고 코끝 시린 겨울이 왔고 크리스마스를 보내며 2023년 새해를 맞이했다.
장기전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합격을 했다는 통지서를 받은 후 궁금한 점들이 몇 번 있어서 이메일을 보냈는데 답장이 잘 오지 않았다.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 회사에 직접 가서 궁금한 점들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알려줄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내 앞에 몇 명의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고, 회사의 상황에 따라서 내가 받게 될 기종이 정해질 것이기 때문에 그것도 알려 줄 수 없다고 한다. 나는 그냥 기다려야만 하는 포지션인 것이다. 새해 초까지만 해도 10월의 긍정적임이 남아있었던 터라 뭐라도 해 봐야겠다는 마음이 마구마구 솟구쳐 올랐다. 블로그로 알게 된 승무원 분이 오프라인으로 독서모임을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언제 교육이 시작되어 함께 하지 못할지는 몰라도, 베이스에 있는 동안에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독서모임을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승진을 했다. 승진 교육을 받는 2주, 그리고 예전에 했던 일이지만 일들이 손에 익는 기간까지. 한두 달은 정신없이 바쁘게 시간이 지나갔다. 내 일이 손에 얼른 익어야지 또 무언가 다른 것을 공부할 여유가 생긴 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최선을 다했다.
4월부터는 정말 많은 비행시간을 소화해 냈다. 내 포지션의 사람들이 많이 퇴사를 한 직후라 그런지. 내가 미국 비자를 갖고 있어서 그런지. 사실 궁금증을 던지는 질문에 답을 할 시간도 없이 100-120시간씩 비행을 소화해 냈다. 비행을 다녀오면 쓰러져 잠들었다가 일어나서 하루를 재정비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내가 공부했던 것들을 까먹을 것 같아서 CBT(computer base training)도 구매해서 보기 시작했다. 이 공부라는 것도 내 몸과 마음이 멀쩡해야지 정보를 습득하지.. 휘몰아치는 비행 스케줄 속에서 제대로 손꼽아서 공부를 한 날이 몇 되는지 이야기하기도 부끄럽다.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을 흘려보낸 것보다는 나으니까 그렇게 위로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싱그러운 여름이 찾아왔다.
마음이 울적하고 기다림에 지칠 때면 기분 전환을 시킬 공간에 나를 데려다 놓았다. 그렇게 하루하루 나를 달래며 잘 기다려보자고 이끌어 가고 있었다.
나의 이야기를 블로그에 옮겨 적은 뒤로 익명의 답글 때문에 속이 상한 적도 많았다. 나 역시도 오늘의 이 자리에 있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던 터라 다른 방식으로 도움이 되고자 한 것인데. 나를 네이버, 구글 정도로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돈은 얼마나 들었느냐, 왜 그래서 면접에 합격은 하고 조종사로 일을 하지는 않고 있느냐, 몇 살이냐, 대출은 어디서 받았느냐. 공개적으로 비공개적으로 이렇게 남긴 댓글에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다가 마음을 굳힌 것이, 이런 댓글에는 대답을 하지 말자였다. 뒤에서 내가 뭐 정보 나눈다는 명목으로 블로그를 쓴다느니 뭐라느니 해 놓고서는 저 사람 답글도 안 달아주더라 그렇게 이야기를 해도 나는 할 말이 없다. 먼저 할 말이 없게, 나누어 주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글에는 대꾸하고 싶지 않다.
대신 인사를 건네고 구체적으로 질문을 하시는 분들을 보면 그분들이 얼마나 사전에 준비를 해 오셨는지 느낄 수 있다. 그럴 경우에는 정말 내가 다시 조종사 교육을 시작하는 입장으로 돌아간 마음으로 답변을 해 준다.
내 마음에 여유가 넘칠 때에는 이런 것들도 그냥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는데, 몸과 마음이 다 지친 상태에서는 그게 잘 안된다. 평소 같았으면 읽지도 않고 넘겼을 그럴 대화에 발끈하기도 했다.
나는 내가 승무원으로 일을 하더라도 이 포지션을 떠나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이다. 30분에 한 번씩 조종실에 들어가서 조종실을 보면 이게 내 미래의 일터가 될 것이라고 동기부여를 한다. 좋은 기장님, 부기장님들을 만나면 그분들의 멋진 모습을 담는다. 하지만 하루는 함께 기다리는 동료가 자신의 포지션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면서 나도 함께 동의하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아니, 지금 나도 겨우 하루하루 버티면서 동기부여 할 것을 찾고 있는데 내가 왜?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네가 이야기를 터 놓고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나뿐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할 거면 연락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두 번은 참겠는데 이건 아니지. 네가 어떤 시각으로 너를 바라보고 미래의 일자리를 바라보는지, 그건 너의 선택이고. 나는 내 자리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낼 것이니 나 좀 내버려 둬!
호기롭게 윽박 아닌 윽박을 지르고 몸이 버티지 못해 나흘을 병원 신세를 졌다.
혼자서 열 나는 몸을 이끌고 응급실에 가서 링거를 맞았다.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다. 아니라고 잘하고 있다고 다독이고 있었으면서 속으로는 그게 아니었나 보다.
기약 없는 기다림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올해 들어 제대로 느끼고 있는 중이다. 와장창 깨져버린 유리컵처럼 뾰족하게 조각난 마음들이 발바닥을 쿡쿡 찌르고 있을 때 고마운 사람이 나타났다. 내가 체코에서 공부를 할 때 만난 라일라이다. 오만 출신인 라일라는 자가용 면장만 따고 미국으로 넘어가서 나머지 과정들을 마무리했다. 체코를 떠난 뒤로 연락이 되지 않다가 갑자기 올해 여름 연락이 왔다.
"나 베이스 네가 있는 곳으로 바뀌었어. 우리 만나자."
나는 라일라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몰랐다. 일단 내가 있는 곳을 알려주고 반신반의로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라일라였다. 까맣고 자수 디자인이 들어간 아바야를 입고 있었다. 용감하게 혼자서 오만에서 사우디 국경을 건너서 여기까지 본국에 있는 차를 몰고 왔다. 역시.. 내 친구 라일라 멋지다.
우리 회사가 조종사 부족, 비행기가 부족해서 옆 동네에 있는 회사의 비행기와 오퍼레이팅 할 조종사를 우리 베이스로 데리고 왔다는 것이었다. 그중의 한 명이 내 친구였다. 정말 오랫동안 풀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나갔다. 저가 항공을 거쳐서 메이저로 오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으니 뭉클함과 자랑스러움이 밀려왔다. 이제는 내 이야기를 할 차례. 모든 과정을 다 설명하고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고 얼마 전에는 많이 아팠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눈물이 터졌다. 조용한 커피숍에서 나는 라일라의 어깨에 기대어 꺽꺽 소리 내어 울었다. 가족들 친한 친구들도 걱정할 까봐 다 털어놓지 못한 내 마음을 같은 과정을 겪은 친구에게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으니 감정이 컨트롤이 되지 않았나 보다. 나의 설움이 다 씻겨져 나와 마음을 가다듬을 때 친구의 어깨가 들썩거리고 있음을 느꼈다. 7년을 버텼는데 지금 이 시간 못 견디겠냐고 나를 위로해 주는 친구의 말에 힘이 났다.
다음번에 만날 때에는 조금 더 진행된 상태의 나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호언장담을 하고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친구와의 만남 이후 나는 많이 좋아졌다. 이 모든 과정을 다시 꺼내어 글을 써보자는 새로운 도전도 하게 되었고 또 열심히 독서모임도 하고 있다. 사 둔 CBT도 틈틈이 보고 있고 잠시 모른 척 치워 둔 일기장도 책상으로 복귀시켰다. 다시 가을이 되었다. 매달 말 나오는 로스터를 잘 소화시키고 있고 끼니도 거르지 않고 잘 먹고 있다. 쓰러지지 않게끔 나를 버티게 해 주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는 시간들도 더 자주 갖고 있다.
지지난주에는 회사에서 license verification을 시작하자고 연락이 왔다. 새로운 과정이 열리는 좋은 신호라고 생각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또 기다릴 예정이다. 다음에는 내가 조종교육생으로 전할 수 있는 도움이 되는 이야기로 곧 찾아올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