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00 | 울산 토박이가 서울에 온 이유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지 겨우 이틀. 벌써부터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이 시작되었다. 내 성이 '김'이라는 이유로 학급 번호도 4번. 상담 순서도 4번째였다. 바람이 많이 부는 울산의 한 산 중턱에 있는 학교는 밤이 되면 대입 상담에 참 절묘하게 고요하다. 교무실 좁은 자리를 비집고 들어간다. 의자에 앉자마자 침잠된 분위기 속 마우스 스크롤 내리는 소리가 대략 5분간 이어졌다.
선생님은 내게 정시를 권했다. 아, 학기 성적이 별로라서 그런 게 아니라 모의고사 성적이 내신 성적보다 좋았기 때문이었다. 처음 하는 입시 상담에 지금까지 했던 교내 활동 기록 노트를 보여주겠다고 꼭 쥐고 온 모양새가 무색해졌다. 서울에 있는 명문대의 정시 커트라인 표를 보여주며 Y대학은 이렇고, K대학은 이렇다며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며 사람 식은땀 나는 말투로다가 나를 노려봤다. 겨우 한 시간. 2년 동안의 삶이 정시와 수시, '그것도 5분 만에 나눠질 줄 알았다면 매일 밤샐 정도로 노력할 필요가 있나'라고, 넥타이로 목을 조를 만큼 단단하게 교복을 챙겨 입은 모범생은 생각한다. 멍하게 앉아 있던 내게 선생님은 상담이 끝났으니 (형식상) 질문이 있냐고 물어보셨다. 음, 하고 뜸을 들이는 나를 힐끔 쳐다보며 5번 친구의 생활기록부를 찾기 시작한 선생님. 이제 내가 노려볼 차례다.
선생님, 근데 왜 서울이에요?
선생님의 마우스가 멈췄다. 서울을 가야 (그놈의) 성공을 한다는, 그런 뜨뜻미지근한 답변이면 4년이 지난 지금, 서울에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대답은 지금까지 누군가로부터 들었던 대답과는 조금 달랐다.
사람의 시선이 달라지니까.
선생님의 대답에 5분 동안의 생각이 사라졌다. 사람의 시선. 사람들은 무엇을 볼까. 울산도 꽤나 대도시인데 그냥 사람들이 많은 것 빼고는 다른 게 있을까. 책과 미디어에서 보는 것과는 다른, 무언가가 역시 서울에 있는 것인가. 나는 그렇게 궁금함을 품었다.
1년이 지난 2019년. 두 손에 캐리어 하나씩을 끌며 서울역 에스컬레이터 앞에 섰다. 그래 그 사람의 시선을 느끼려고 내가 왔노라. 어디 한번 보여줘봐라, 하며 지하철에 올라타는 순간.
나는 생각보다 그 시선을 오래, 그리고 깊이 봐야 할 것을 체감했다.
'사람이 많다'는 즉, 각자의 삶 또한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울산 토박이는 그 점을 간과했다.
그렇게 '남의 살에 부대낀다'는 것이 현실임을 4호선에서 경험하면서 나의 서울 관찰기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