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오즈 Mar 10. 2022

지하철 대신 고래 면허증

대학교 01 | 지하철

    어린 내가 눈을 뜬다. 쇠가 쇠와 맞물리는 소리,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낯선 사람의 목소리, 이어폰 너머 들려오는 음악 소리. 지하철에 올라탄 지 거의 1시간이 지났다. 지하철을 타고 박물관으로 가는 중이었다. 옷으로 가득한 캐리어를 붙잡고 있던 엄마에게 언제까지 가야 하냐고 묻는다. 엄마는 웃으며, 이제 3 정거장 정도 남았다고 한다. 창밖에 지나가는 풍경에 입을 벌리고선 엄마와 재잘재잘 대화하던 나였다.


    지하철 손잡이에 손이 닿지 않을 정도로 작았던 초등학생은 그렇게 자라 평균 신장을 훌쩍 넘긴 거대한 대학생이 되었다.

    

    이제 목적지까지 몇 정거장 남았는지 알려줄 엄마는 내 곁에 없다. 이제 서울역에서 자취방까지 스스로 가야 한다. 내가 아는 유일한 길은 언니 자취방부터 내 대학교까지의 경로뿐이었다. 그리고, 이날이 '혼자' 지하철을 타본, 아주 역사적인 날이었다.

    내가 살아온 울산은 여러 가지 이유로 지하철역이 존재하지 않았다.* 출발지점과 도착지점을 입력하면 교통수단 소요 시간이 짧은 것과, 환승 횟수가 가장 적은 것까지 아주 상세히 알려주는 지도 앱의 존재를, 이제 서울살이를 시작한 사람이 알리가 없었다. 울산에서는 주로 걸어 다니거나, 버스를 타면 되었기에 지도 앱과 지역 버스 앱만 이용했기 때문이었다.

* 2021년 동해선 전철 노선이 울산 태화강역까지 연장되어 울산에서도 지하철을 탈 수 있게 되었다.


    서울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자취방 근처 지하철역에서 내렸다. 여기서 지금은 당연한데, 그 당시에는 당연하지 않은 상황이 벌어진다.


    지하철 출구가, 여러 개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모두가 예상하는 대로 나는 집과 정반대 출구를 선택하여, 그 역사적인 행보를 마무리했다.



 

   그렇게 지하철 인생이 시작되었다. 자칫하면 반대방향 지하철에 올라타던 1학년, 만석 지하철 칸에서 눈치 보며 다음 정거장에서 내릴 사람을 모색하던 2학년, 지하철 알림 앱 없이도 도착 시간, 환승 구간을 완벽하게 꿴 3학년이 지나 이제는 4학년이 되었다.


    매년 이사를 했던 나에게 지하철역은 자취방 선정 기준 1순위였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대학생활을 하던 언니와 함께 자취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우리의 대학은 서울 정반대 방향에 위치해 있었고, 서로의 대학을 이은 거리에서 중간 즈음에 살자는 제안을 했으나 그곳이 한강대교 한가운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리에서는 집을 짓고 살 수는 없으니, 누군가는 양보와 타협을 해야 했다. 지하철은 놀러 갈 때만 타봤던 나는 그렇게 학교에서 왕복 2시간 반이 걸리는 언니 대학교 근방의 자취방으로 선뜻 결정했다.


    낭패였다.




    2019년. 은근 까마득히 멀어지는 그 시점에 나는 대학교 새내기였다. 울산이 아닌 지역, 심지어 서울이라는 곳에 멀뚱히 추락한 사람처럼 나는 어디에서든 어둑하니 서있기만 했다. 울산에서 온 친구는 없었고, 술과 담배도 안 해서 공통분모가 없으니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조차 어려웠다. 게다가 나만큼 먼 곳에서 '자취'하는 친구는 없었다. 가끔 내 자취방 근방에서 '통학'하는 사람은 있었어도. 그러니 그 먼 거리를 혼자 오가야 했고, 꽤 걸리는 시간에 강의가 끝나면 잽싸게 지하철역으로 달려가는 데 급급했다. 축제나 도서관 밤샘 공부는 내게 사치였다.


    그리고 그 1년 동안 지하철은 나를 죄인으로 만들었다. 지하철에 올라탄 매 순간 나는 짓지도 않은 죄의 존재에 대해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선 내가 2시간 반 동안 사람들 사이에 끼어 제대로 숨도 못 쉬지는 않을 거였다. 손잡이도 잡을 필요도 없이 옆 사람의 몸에 기대어 '당신은 무슨 죄를 지었나요?'**라고 생각하는 게 습관이 되곤 했다.


** 장강명 작가는 소설 «한국이 싫어서»에서 지하철 칸에 꽉 찬 사람들의 생각을 나처럼 묘사했다. 봐봐, 이 정도면 분명 무슨 죄를 지은 게 분명하다. 한 거라곤 개고생 하면서 서울권 대학에 진학한 게 전부인데도.



    술이라. 나는 술 게임이 싫어서 술자리를 멀리하다가 술과도 멀어진 경우다. 그 술 게임은 내게 참 이상했다. 잘하면 술을 안 마시고, 못 하면 술을 마셔야 한다. 뭐지, 원점에 있거나 후퇴하거나, 그 두 경우 중 하나인데 왜 하는 걸까 싶었다. 그 상황에서 동기와의 거리를 좁힐 수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 그러니까 나는 항상 혼자였다. 아하.


    그 술 게임 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바로 '지하철 게임'이었다. 누군가가 "1호선"이라고 외치면 "청량리역", "외대앞역", "서울역" 등을 차례대로 외쳐야 하는 게임이었는데, 내가 아는 건 자취방과 학교 앞 지하철 역이 전부였다.


    그 술 게임이 시작되고 나면 그 자리에 앉은 사람들 중 누가 지방 출신인지 얼굴만 봐도 알게 된다. 당황스러움이 가득하다. 그리고선 "나 지방에서 와서 잘 몰라"라고 말하면 "마시면서~ 배우는~ 게임~"이라며 술을 먹인다. 술자리를 재빠르게 피해 다닌 덕분인지,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오랫동안 지하철역을 잘 모르고 살았다.

    



    면허가 없어서 자가용은 당연히 없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엔 무릎이 너무 좋지 않아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지하철과 버스, 도보뿐이었다. 그중에서 서울은 역시 지하철의 도시였다. 안 가는 곳이 없었다. 소음만 참아내면 멀미도 없이 빠르게 도착하는 괴물이었다.


    나는 1학년이 채 끝나기 전부터 지하철을 '괴성을 내는 철의 괴물'이라고 불렀다. 그 괴물에게서 도망칠 곳은 울산이 유일했다. 서울은 익명의 도시답게 자유롭지만 나 하나의 존재가 부각되지 않는 곳이라고 느꼈다. 나 하나 여기 없어도 잘만 굴러갈 것 같고, 그렇게 나는 두 발을 딛고 설 공간조차 없는 것 같아 우울하기만 했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그 괴물에 올라타는 사람들을 보며 안심했다. 지하철에 올라타면 들려오는 할머니들의 채소 물가 이야기, 옆자리 전화기 너머 들리는 축하의 목소리, 유모차 안에서 칭얼거리는 아이, 책을 읽는 사람들을 보며 그래도 서울도 누군가가 살아가는 곳이긴 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 항상 그런 긍정적인 풍경은 아니었다. 술 취해서 대자로 누워서 자거나, 누군가와 정치 이야기로 고성을 지르며 싸우거나 뭐 그런 것도 있지만 그런 것도 '살아 있으니' 할 수 있는 언행이었다.




    그래서 4학년이 된 지금은 어디에 있냐면 학교 후문 근방의 자취방에 있다. 물론 서울도 사람 사는 곳이고, 자취방을 구할 때 지하철역까지의 거리는 중요하지만 내 자취방 선정 기준에 '지하철역 근방'은 삭제된 지 오래다. 가장 중요한 건 지하철을 빨리 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지하철을 아예 안 타도 되는 곳으로 기준이 변했기 때문이었다. 걸어서 학교를 갈 수가 있다는 게,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고등학교 때까지는 당연했는데 대학교 때도 당연...해야 했다.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아온 3년 동안 그걸 잊고 있었다. 아예 학교 근방에서 자취하면 학교 갈 때 지하철을 탈 필요가 없다는, 그 간단하고도 당연한 사실을. 방을 구할 때 "유레카"를 외칠 뻔했다.




    그렇게 걷는다. 경사가 가파른 탓에 조금만 걸어도 숨을 헐떡이지만 운동이라 생각하며 학교까지 걸어 다닌다. (체력이 바닥인 탓도 있지만 비밀이다.) 어린이 공원도 보이고, 학교 뒷산도 보인다. 내 보폭대로 걷는다. 듣고 싶은 음악을 최저 음량으로 들으면서, 원하는 만큼 숨도 쉬면서 여유롭게 걷는다. 그러다 보면 동네 슈퍼도 보이는데, 채소나 과일을 사서 장바구니에 넣고 경쾌하게 흔들면서 신나게 돌아온다. 지하철에 술에 취해 토를 하는 사람들을 굳이 보지 않아도 나는 살아 있다. 이유 모를 죄의식에 사로잡히지도 않는다.



    - 나는 지금껏 서울에 살아서 잘 모르는데, 울산 사람들은 그럼 어디 갈 때 뭐 타고 다녀?
    - (체념한 표정으로) 응, 울산 사람들은 고래 타고 다녀. 고래 면허증도 필요해. 울산 가면 재발급해야지.***


    뭐 이런 개그가 유행이다. 이런 걸 볼 때마다 '고래를 타고 다닌다니, 진짜 웃기다'보다 '사람들이 진짜 지하철을 이렇게나 선호한단 말이야?'라고 생각하는 나는 여전히 지하철이 당연하지 않은 지역으로 이사하는 그날을 기다린다. 빠르게 돌진하는 소음과 사람들로 가득한 지하철보다는 '천천히'의 미학이 있는 곳으로!   





*** 혹시 몰라서 그러는데 울산 사람들은 고래 등에 올라타는 등 동물 학대를 저지르지 않는다. 근데 고래 면허증 비슷한 건 고래박물관에서 마케팅 차원으로 발급해줍디다. 

    

             


이전 01화 선생님, 근데 왜 서울이에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