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오즈 Mar 19. 2022

여러분들이 좋아할 글입니다

고등학교 부록 - 2 | 누구의 도움 없이 대학에 수석 입학하기

4. 자기소개서


    이건 할 말이 많습니다. 대학에 입학한 이후 '수능 만점지를 휘날리는' 입시 사이트에서 제가 합격한 대학의 학생부 종합전형으로 카페 회원들을 대상으로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찾아보니 이미 카페를 탈퇴했음에도 여전히 인기글이더라고요. 대략 100개 이상의 질문을 받았고 그 당시 질문을 주었던 한 학생이 저와 같은 전형에 같은 학과로 합격하여 진학했다는 소식도 들려왔습니다. 제가 해준 거라곤 그저 질문에 답을 해줬을 뿐이지만요, 만나서 밥도 먹었습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수익도 없을 텐데 굳이 귀한 여름방학에 시간을 내어 멘토링을 했는지 궁금하신가요. 이건 중학교 친구의 고등학교 졸업식에서의 대화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날은 중학교 친구들이 자신의 고등학교 졸업식에 와달라고 해서 가는 중이었습니다. 졸업식장에 들어서니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 한 명과 만났습니다. 항상 열심히 하는 친구였고 2월 초의 고3이 저렇게 표정이 좋다는 것. 굳이 대입 결과를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졸업식이 끝난 후 그 친구와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비가 와서 미끌거리는 버스 바닥에 겨우 서있던 제게 그 친구는 조심스레 물어옵니다. 그 친구의 표정만큼 제 표정이 그렇게 밝지만은 않았나 봅니다.


    - 대학 어디 가는지 물어봐도 돼?


    저는 제가 진학할 대학을 말합니다. 놀란 눈치입니다. 그 친구는 영어를 잘했지만 일부러 외고 대신 일반고를 선택한 친구였습니다. 그래서 '외고까지 갔는데 그 대학밖에 못 갔어?'라는 어조인 걸까 마음을 졸입니다. 계속 말하지만 제 대학도 정말 좋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는 오는 게 있다면 가는 것도 있어야 한다는 듯, 제게 자신이 합격한 대학을 알려줍니다. 제가 지원하지는 않았지만 정말 좋은 곳입니다. 두 학교 순위 상으로는 비슷하거든요. "그렇구나 우리 서울에서 만나겠네"하며 대학 이야기를 마무리하려는 그때.


    - 너 입시 컨설팅 어디에서 했어?

    

    입시 컨설팅?

    당연하다는 듯 그 친구는 3학년 시기 중 4개월 정도를 입시컨설팅에 의존했다고 했습니다. 웃으며 거의 400만 원 들었다는 친구의 말에 저는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구나. 이런 것도 있구나. 자신의 친구는 무슨 컨설팅으로 더 많은 돈을 썼다는 말이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최대한 무던한 표정으로 "내가 아는 너라면 너 그거 없었어도 거기 갈 수 있었을 걸?"라며 대화를 성급하게 끝냈습니다.


    2019년 2월. 우울증 증상이 발현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노력했는데 그토록 원하던 대학에 합격하지 못했을 때. <성공은 99 퍼센트의 노력과 1 퍼센트의 영감>. 노력해도 1 퍼센트의 재능이 없으면 실패한다는 말이었구나. 매일 매 순간 생각했습니다. 

    이걸 몰랐다면 되었겠죠. 그렇지만 이미 그 말은 제 속을 미친 듯이 헤집고 다녔습니다. 성공은 노력과 영감 말고도 다른 요소도 있나 싶었습니다. 아님, 이런 것도 노력인 건가요.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던 생각들이 덜컹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버스가 흔들립니다. 멀미를 하는 듯했습니다.


    수많은 얼굴이 스쳐 지나갑니다. 다 잃을 각오 하면서도 미친 듯이 운명에 달려드는 후배들이 떠올랐습니다. 얼굴도 모를 전국의 고등학생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습니다. 그렇게 입시 멘토링을 아무런 대가 없이 시작했습니다. 이미 제가 들은 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입시 카페 멘토링과는 별도로 모교에서 2년간 입시 멘토링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조금 안면이 있던 고등학생 4명에게 본격적으로 입시 멘토링을 시작했습니다. 인연을 굳이 만들지 않았던 저와 고등학교에서 안면이 트일 정도로 만난 사람들은 저와 비슷한 활동을 여러 차례 만날 정도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지치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물어도 다들 입을 모아 "걔는 진짜 열심히 살아요"하며 칭찬하던 친구들로만 진행했습니다. 성적은 굳이 비교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그 친구들이 잘 알테니까요.

    놀랍게도 모두 1 지망 대학에 최초 합격했습니다. 합격한 학과는 상경계열, 인문계열, 사회과학계열, 교육계열 등 다양했습니다. 수시 지원 시기까지 3학년 담임선생님들은 그 학생을 최소 6개월 정도밖에 봐오지 않았으니 자세한 활동 내역을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학생들을 최소 2년 동안 봐왔으니 이미 거의 모든 활동을 다 꿰뚫고 있었습니다. 이것도 학교생활기록부를 같이 읽어본 다음에 대학 선정이랑 자기소개서 작성 방향 정도만 도와준 것이지 대필은 절대 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럴 필요도 없이 자기소개서 방법을 알려주면 알아서 스스로 쓰더라고요. 마지막에 글자 수에 맞추어 글을 함께 수정하는 것으로 제 멘토 역할을 다했습니다. 


    제가 벌써 대학교 4학년입니다. 아는 분들이 이미 대학에 모두 진학했으면서도 지금 제가 진학한 학과, 대학 모두 마음에 들어서 다시 대학에 지원할 필요도 없으니 이제 숨겨둘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니 여기 최대한 다 공개해두고 가겠습니다. 굳이 제 말의 증거들을 올릴 필요가 있을까 싶긴 한데, 믿으실 분들은 믿고 아닌 분들은... 다음 글로!





    우선 제 경험부터 말하겠습니다. 이전에 올렸던 글에서 언급했다시피 고등학생인 제가 자기소개서 초안을 쓴 시점이 2학년에서 3학년 넘어가는 2월이었습니다. 역시나 혼자였습니다. 2학년 담임 선생님은 대학 사이트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대입 자기소개서 작성 방법이나 대학 전형 안내문 정도도 알려주지 못할 만큼 퇴근시간에 민감하신 분이셨거든요. 


    3학년 1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미리 자기소개서를 혼자서 작성해보니 글의 맥락이 이어지긴 하지만 중간에 뭔가 비어있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일단 그럴듯한 글을 완성시키고자 작년에 학교에서 진행했으나 저는 참여하지 못했던 활동들을 가상으로 입력해보았습니다. 꽤나 괜찮은 플롯이더군요. 


    이제 남은 건 그 가상의 내용을 실제 기록으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바로 그 맥락을 이어준 증거들을 3학년 1학기 내내 그대로 수행했습니다. 간단한 보고서 작성이나, 발표 수업에서도 그 주제로 준비했고, 특히 관련 대회가 있으면 공부 시간이 줄어들더라도 무조건 참여했습니다. 


    그 증거들이 조금씩 쌓이면서 글은 더욱 풍부해졌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분량 제한이라는 것이 주어집니다. 온갖 형용구들로 가득한 글들을 보면서 매일 30분씩 다듬기 시작했습니다. 수학 1시간 풀다가 피로하면 15분 자기소개서 다듬기. 이 닦다가 읽을 만한 요점정리 노트가 없으면 자기소개서 2번 더 읽어보기. 이런 식으로 거의 3학년 1학기의 일상이 제게는 자기소개서 작성 자체였습니다. 당연히 8월이 채 되기도 전에 자기소개서가 완성되었습니다. 

    수시 대학 접수 직전. 문턱이 닳을 것만 같이 교무실은 자기소개서 첨삭으로 북새통을 이뤘습니다. 저는 빠르게 제 상담 일정을 뒷 번호 친구에게 넘겼습니다. 그리고 힘겹게 하루가 지났습니다. 미간이 구겨진 상태로 하루를 버티신 선생님께서는 복도에 지나가는 저를 붙잡고선 "그래도 예의상 자기소개서는 한 번 보여줘야 하는 거 아니니?"라며 제 손에 있던 자기소개서 복사본을 요구하셨습니다.


    유심히 읽어보시던 선생님은 "'마르크스'보다는 '맑스'가 교수님들에게 더 익숙할 텐데"라는 말씀만을 건네셨습니다. (마침 그 학과 교수님들의 연령대를 알고 있던 저는 "선생님, 그래도 '마르크스'가 나을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비교적 최근에 개설되어 젊은 교수진을 갖춘 학과로 대학에서 유명했거든요. 면접 준비할 때 그 학과 교수님들 성함과 연령대, 전문 분야 정도는 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이만 수능 공부하러 가겠습니다"라는 말을 선생님께 건네드리고 교무실을 총총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대략 2년간 제가 스스로 터득한 자기소개서를 잘 쓰는 방법은 근거에 기반한 글을 쓰는 것입니다. '으에? 그게 끝?'이라고 생각하는 분들께 "네 그게 끝입니다만"이라고 말하겠습니다. 학생부 종합전형은 특히 자기소개서가 얼마나 충실한 근거에 기반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2년 반 동안 했던 내용을 기반으로 작성해야 합니다. 달리 말하자면 일단 했으면 자기소개서에 넣을 수 있다는 말이지요. 


- 1번

지원할 학과와 관련된 키워드를 학교생활기록부에서 찾는 것이 첫 번째 단계입니다. 수상 목록, 독서, 교과, 비교과 상관없이 지원 학과와 관련된 키워드를 찾습니다. 

정리한 키워드를 학기 순으로 정리합니다. 그러면 흐름이 연결되는 키워드들이 보일 겁니다. 그것을 시간 순으로 이어놓고 자기소개서 1번 내용을 작성하는 겁니다. 

같은 주제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개발하는 것도 좋지만, 넓은 범위에서 좁은 학문 분야로 주제를 좁혀가는 내용도 참 좋습니다.

    만약 이것을 하는 시점이 3학년 8, 9월이다? 그러면 그 키워드를 최대한 끼워 넣어 충실한 흐름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3학년 초 혹은 2학년 말이라면 조금 헐렁한 흐름을 탄탄하게 메꿀 활동을 남은 시간 동안 충실히 하여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해두면 됩니다. (이제 수상목록의 비중은 줄어들 수 있겠지만 다른 비교과에서 충분히 키워드 도출할 수 있습니다)


- 2번, 3번

지금까지 했던 활동 중에서 '이 활동을 한 사람은 일단 이 학교, 아니 전국에 나밖에 없어'하는 내용 두세 개를 정리합니다. 그것이 바로 자기소개서 2, 3번의 키워드가 될 것입니다. 활동의 자부심은 곧 그 활동에 대한 애착이며, 면접 때 그 활동에 대한 어떠한 질문에도 과감 없이 대답할 정도가 된다는 증거입니다. 즉 자기소개서 작성에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대부분 2번에서는 두세 개 정도의 활동을 한 문단씩 적는 편이죠. 각 문단에 적을 활동을 한 줄로 간략히 정리하고, 활동의 발단부터 결말까지 흐름을 명확하게 구성합니다. 

마지막 문장은 당연히 그 활동으로 지원자가 느낀 점이나 지원 학과와 관련된 포부나 계획을 적어두면 좋은 마무리가 될 것입니다.

    3번은 사실 지원자마다 너무 다양해서 크게 말씀드릴 게 없긴 합니다. 그렇지만 1번과 마찬가지로 비교과 활동에서 여러 해를 거듭한 활동이 있다면 그것을 주제로 적는 것을 추천합니다. 예시로 학생회 임원이나 동아리 활동 정도가 있겠네요. 그리고 지원 학과와 관련된 활동 중에서 리더십이나 협동, 배려 등을 실천한 사례가 있다면 전공적합성을 강조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이 작성법이 대부분 합격 비결의 공통분모이긴 했습니다. 역시 전공적합성이 최고였습니다. 그 누구도 3번 항목에 학문 관련된 것을 쓰지 말라는 말을 하지 않았거든요. 뭐 예시로 영어영문학과에 지원한다면 언어 관련 프로젝트에서 있던 일을 추가할 수 있겠죠. 티는 안 나게 전공분야를 강조하자고요.)




    그러나 대입은 자기소개서만 평가하는 과정이 아닙니다. 성적도 여전히 중요합니다. 제가 지원한 사회학과는 당연히 다른 과목보다도 사회탐구 과목 성적을 전공적합성 목록에 포함시켰겠죠? 저의 사회탐구 내신 성적은 전 과목 중에서 가장 성적이 낮았습니다. 이유는 수업 중에 제시된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모순적이게도 교내에서 주최된 사회탐구 관련된 모든 대회에서 수상한 경력이 있었고, 저는 면접 전형에 참여하게 된다면 제발, 성적 이야기는 언급하지 말자며 다짐했습니다. 다행히 수상 내역을 잘 봐주신 덕분에 전공 관련 성적이 낮았음에도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5. 수능


    그리고 저는 수능에 자신이 있었습니다. 저는 1학년 때부터 3학년 7월 모의고사까지는 모의고사 당일에 긴장하지 않았습니다. 1학년 때는 모의고사 난이도가 낮았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았고, 2학년 때부터는 아예 수시로 진학하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보니 너무 자신감에 넘치는 듯한 글이네요. 수정합니다. 1학년 모의고사는 '수능에 비해' 난이도가 낮아 시험 유형 분석이 어렵지 않았기 때문에 시험 당일에 긴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는 제가 정시를 포기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학교 특성상 수시에 집중하는 분위기가 강했는데,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라 그저 '수시랑 정시랑 둘 다 포기하면 안 좋은 거 아니야?'라는 생각으로 둘 다 챙겨 왔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모의고사 공부를 조금 덜 하고 수시에만 집중할 걸 그랬습니다. 뭐 아무튼.) 특히 국어, 영어, 수학, 한국사 성적이 안정적인 편이었습니다. 


수능 전 단기 플랜의 일부입니다. 적은 분량이지만 최대한 하루 안에 모든 과목을 공부하려고 했습니다.



    이유는 확실했습니다. 모의고사 시험 시간이 매우 길었다는 것이죠. 모의고사는 정말 외고의 영어 내신 시험과 대척점에 있습니다. 내신 시험에는 평균적으로 시험지 16페이지 가득히 30문제가 출제되었습니다. 그런데 시험 시간은 고작 50분. 시험 종료령이 울리면 글만 읽었을 뿐인데도 전력질주 달리기한 사람처럼 다들 힘이 풀려 의자에 널려 있을 정도였거든요. 아참 그리고 외고 영어 과목은 두 과목이었습니다. 하하. 그렇지만 영어 모의고사는 중간에 물을 마셔도 괜찮고, 원하는 대로 100분을 분배해서 쓸 수도 있었습니다. 그게 제게는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학년 3월 모의고사부터 3학년 수능까지 매 순간이 제게는 수능과 같았습니다. 아침 식사 시간부터 쉬는시간과 점심시간에 해야할 것들이 이미 명확하게 정해져 있었습니다. 내신 시험으로 모의고사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음에도 항상 시험날이면 비장한 표정으로 하루를 보냈습니다. 이 과정을 열 번 넘게 반복하다 보니 비교적 넉넉한 시험 시간 동안 아는 내용을 천천히 떠올리는 여유를 가지고 시험에 대한 부담감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정시를 그토록 좋아하면서도 제가 굳이 수시로 대학을 진학하려고 했던 이유는 진학하려는 학과가 제게 적합한지 평가받아보고 싶었고, 수시 전형이 수능보다 시기적으로 앞선다는 점에서 한 번의 대입 기회를 잘 써보자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수능 이전에 대학 면접을 보러 서울에 가야 했고, 수능 다음 날이 최종 결과 발표일이었습니다. 그러니 면접 이후 제게 남은 건 수능 공부뿐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컨디션을 수능일까지 균일하게 이어가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수능 시간에 맞추어 해당 과목을 공부하는 것이죠. 특히 제게 가장 도움이 된 방법은 수능 이틀 전까지 기숙사 생활을 했음에도 수능 일주일 전부터 수능 당일 기상 시간에 일어나 보는 것이었다고 자부합니다. 


    저는 극단적인 아침형 인간이거든요. 새벽 5시가 중학교 졸업 전까지의 기상시간이었으나 고등학교 기숙사에서는 6시 반으로 기상 시간이 고정되어 있었던 터라 이전의 생활 패턴을 고집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수능 일주일 전부터 기숙사에서 대략 새벽 4시 반에서 5시 사이에 일어나는 것을 목표로 했고, 예상처럼 꽤 괜찮았습니다. 기상 시간은 1교시 국어 시험 3시간 전으로 설정하여 국어 시험 시작부터 머리에서 사고가 제대로 회전할 수 있도록 5시로 정했습니다. 




    수능 전날 잘 잤습니다. 시험 당일 아침에는 너무 이른 식사로 인하여 소화가 잘 되지 않아 불안했습니다. 그렇게 일찍 무언가를 먹어야 한다는 게 조금 부담이 되더라고요. 복장은 원래 입고 다니던 교복이 여러 겹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교복 그대로 입고 시험장으로 향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먼 곳에서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거지 기준으로 배정된 시험장에 같은 고등학교 친구들은 몇 명 없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중학교 출신 친구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낯선 교복을 입고 귀에는 이어 플러그를 하루 종일 끼고선 책만 읽던 저는 바로 옆 자리에 중학교 친구들이 있다는 것도 잘 몰랐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직접 말을 걸어준 친구 덕분에 인사를 끊임없이 주고받았습니다. 수능날이 이렇게 친구 만나기 좋은 날인 것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는데 말이지요. 중학교 때 친구가 많았다는 걸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인사만 나눴는데도 그 기억이 떠올라 참 좋았습니다. 




    수능이 끝난 이후 수시 면접을 함께 준비했던 같은 반 친구와 전화하며 수능 후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그날이 현재 재학 중인 대학에 최초 합격한 날이기도 했습니다. 그 친구 또한 수능 전에 이미 원하는 대학에 합격한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수능 끝난 뒤 나흘 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던 터라 그 친구는 제 병문안까지 와서 대학 합격을 축하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수능 성적표가 나오는 날. 대부분의 친구들이 잠에 빠졌고, 몇 명은 정시 상담을 하면서 고요해진 교실을 떠나 우리는 복도에서 만났습니다. 배부받은 서로의 수능 성적표를 보았습니다. 점수가 매우 비슷했습니다. '이럴 거면 우리 왜 수시 준비했어?'라며 서로 피식 웃었습니다. 


    분명 수능날에 원래 하던 대로 했습니다. 쉬는 시간에는 원래 보던 것을 봤고, 원래 먹던 것을 먹고, 원래 풀던 대로 풀었습니다. 불수능이라고 불리는 2019 수능을 그렇게 원래처럼 응시했고, 평소보다 훨씬 좋은 성적을 받았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지금까지 받은 모의고사 성적 중에 가장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수능 다음날 합격 통지를 받은 그 대학, 원하던 학과에 정시로 최초 합격할 수 있는 점수였습니다.


    성적표를 보며 계속 들던 생각은 하나. 아마 시험에 대한 부담감이 없어서 예상보다 좋은 성적을 얻었을 테죠. 그 친구도 역시 그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수능은 부담감이 적어야 합니다. 그런 이유에서 아마 수시와 정시를 모두 챙겨야 한다는 말도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학교 규정상 입학 장학금을 이중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수시 전형이 수능보다 이른 시기에 진행되었다는 이유 하나로 수능 점수 장학금 자격 요건을 충족했음에도 뜻하지 않은 수시 전형 수석 합격 장학금을 받아버렸습니다. 웃긴 건 입학 장학금의 존재도 입학 장학금을 받았다는 안내 문자를 받고서야 알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누가 입학 장학금을 꿈꾸겠습니까, 합격만 시켜주면 만사 오케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더 웃긴 건 수능 점수 장학금은 2년 전액인데, 수시 전형은 1학기 전액이라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냥 주는 대로 받으라고요? 당연하죠, 감사함다(꾸벅).




    마지막으로, 솔직해지자면 다른 주제의 글에서 말하겠지만 대학 진학 후 공대 이중 전공을 하겠다는 이유 하나로 수년간 진학을 꿈꾸던 대학에서는 불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대략 5년 정도 꿈꾼 대학에 불합격 통보를 받는다는 건 꽤 힘든 일이더라고요. 그러나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서 알아보니 워낙 합격한 대학과 희망 대학의 명성이나 성취도가 비슷해서 대학 네이밍에 대한 욕심은 접었습니다. 배우고 싶었던 것을 모두 배우려고 간 대학. 그걸 배울 수만 있다면 대학 명성이 그렇게 중요하겠나 싶었습니다. 이런 줄 알았다면 지금 합격한 대학도 희망 대학 중 하나로 둘 걸 그랬습니다. 잘 몰라서 그랬습니다. 뭐, 행복하자고요 하하. 지금은 '맞아 거기 가고 싶어 했었지 나' 정도로 가볍게 넘길 만큼 시원하게 떠나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제 고등학교 기록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전교 1등의 길보다 전교 중간의 성장이라고 봐주시면 좋겠네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글이었기를 바랍니다. 노력하는 것, 다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참고문헌 - 고등학교 1학년부터 대학교 2학년까지의 생각노트


이전 22화 여러분들이 좋아할 글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