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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화 Dec 09. 2019

마지막 여행, 공주 공산성

세계문화유산 지정 공산성, 백제의 숨결을 느끼다!

7월 말에 갔다가 목숨을 잃을뻔했던 공주 여행. 안 그래도 더위에 약한데 가장 더울 때 갔다가 정말 숨이 턱턱 막히고 몸이 녹아내려 하마터면 119를 부를 뻔했다. 그때 가려다가 결국 가지 못했던 공산성에 11월이 되어서야 방문하게 되었다. 백제 느낌 물씬 풍겨서 꼭 가보고 싶었는데 산성이다 보니 등산을 해야 되는 코스라서 결국 포기했었는데, 날이 좀 추워지니 가기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도 여러 번 이야기했었는데, 공주는 정말 교통편이 나쁘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걸어서 30분 거리에 위치한 이곳 공산성은 가는 버스가 있긴 한데 배차간격이 정말 악질이다. 주말에 갔는데도 관광객을 전혀 배려해주지 않는 공주시의 모습에 조금 감탄했다. 음... 자차 있는 사람들만 오라는 건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시외버스터미널과 유적지들이 다 밀집해있어서 여러 곳에 설치되어있는 무인 자전거를 이용하면 더욱 간편하게 이동이 가능할 듯하다. 아무래도 시골 동네다 보니 대중교통을 활성화하는데 좀 제약이 있는 모양이다.




공산성을 비롯한 공주의 여러 유적지에는 주차시설과 관련한 공사가 한참이다.


201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백제문화유산지 구라는 이름으로 등재되면서 공주에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하여 주차장을 신설하고 있다. 공산성을 비롯하여 무령왕릉과 송산리 고분군이 있는 유적지 등도 주차시설을 증대하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유명세에 비하여 여러 편의시설이 좀 부족한 편인데 그런 부분들을 보완해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아무래도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유적지이다 보니 입장료가 있었는데, 대전시 유성구에 거주 중인 주민인 경우에는 신분증을 제출하면 무료로 관람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 외에도 여러 협약에 의해서 무료로 관람이 가능한 경우가 있다 하니 유의할 것! 아쉽게도 최근에 유성구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기 때문에 이 혜택은 누릴 수 없었다. 그렇기는 해도 역사적인 의미가 깊은 유적 지치고 입장료가 높지 않았기에 부담 없이 관람료를 낼 수 있었다.




공산성과 무령왕릉과 관련한 팸플릿. 무령왕릉은 저번에 다녀왔기에 굳이 또 갔다 오진 않았다.


확실히 공산성은 유네스코에 등재된 유적지라서 그런지 안내소라든가 팸플릿 같은 것들이 잘 마련되어 있어 좋았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이런 팸플릿들이 관람할 때 큰 도움이 된다. 인증숏 찍기에도 팸플릿 만한 게 없고. 디자인은 약간 촌스러운 것 같긴 한데... 관광 지니까 여러모로 더 신경을 써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201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


가봄 기자단 활동을 하면서 백제역사유적지구를 굉장히 많이 다녀왔는데 한 번도 이 백제역사 유적지구에 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던 것 같아 소개한다. 백제역사 유적지구는 충청남도 공주시와 부여군, 전라북도 익산시에 분포하는 백제와 관련된 8곳의 역사 유적을 가리킨다. 공주·부여·익산은 삼국시대 백제의 왕도 또는 왕성이 있던 곳으로, 이 지역의 고고학 유적과 건축물들은 한국과 중국 및 일본의 고대 왕국들 간의 상호 교류를 통하여 이룩된 백제의 건축기술 발전과 불교 확산에 대한 증거를 보여준다. 또한 수도의 입지 선정, 불교 사찰과 고분, 석탑의 배치 등을 통하여 백제의 고유한 문화와 종교, 예술미를 보여주는 탁월한 증거로서 2015년 한국의 12번째 세계유산(문화)으로 등재되었다.  


크게  3개 지구로 구성되어 있는데, 송산리 고분군과 공산성이 있는 공주를 비롯하여 부소산성과 정림사지 석탑·나성 ·능산리 고분군 등이 있는 부여, 왕궁리 유적지와 미륵사지 석탑이 있는 전북 익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공주부여의 경우에는 백제역사 유적지 구로 지정된 일부 유적지를 이미 방문한 적이 있으나, 전북 익산은 교통편이 공주보다 더 악질이어서 자차 없이는 가기 너무 힘들 것 같았다. 도대체가 유네스코로 지정이 되어있어도 이렇게 유적지 방문이 힘든지 잘 모르겠지만, 오히려 이렇게 보호대상이 되어서 더 접근이 어려운가 싶기도 하고... 암튼 익산 여행은 결국 포기했다는 후문이다.





금서루 입구에 쭉 진열된 비석들.


본격적으로 공산성을 등반(?) 하기 전, 금서루 입구에는 이렇게나 많은 비석들이 쭈르륵 세워져 있다. 이는 공주와 관련한 인물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둔 비석이라고 하며, 공주시 곳곳에 흩어져 있던 비석들을 모아서 진열했다고 한다. 대다수는 인물의 공덕을 칭송하는 내용을 새긴 송덕비라고 한다. 우의정, 도순찰사, 관찰사, 암행어사, 목사, 판관, 군수, 우영장, 중군 등 주로 충청감영과 공주목 관아에 배치되었던 관리의 송덕비가 많다고 한다.


쭉 나열되어 있는 비석이 인상 깊었지만 공주에 있던 비석을 굳이 여기다가 가져다 놨다니, 굳이 왜 그랬을까 약간 의아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공산성에 대한 내용도 자세하게 안내되어 있는 편인데,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이런 식으로 유적지 설명이 잘 되어 있어 좋았다. 유네스코 등재되어서인지 디자인이나 설명의 디테일도 굉장히 신경 쓴 모습이어서 좋았다. 글이 잘 안 보이거나, 좀 난잡하게 디자인해놓은 설명 배너들도 많은데 가독성이나 디자인에 힘을 줘서 더욱 편안하게 설명을 읽어볼 수 있었다.



공산성 금서루.


공산성에는 4개의 성문이 존재하는데, 그중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성문 가운데 서쪽에 위치한 '금서루'이다. 원래는 성안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흔적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가 1993년에 복원되었다고. 지금 지어져 있는 문루는 본래 서문이 있던 위치에서 약간 남쪽으로 이동하여 지어졌다고 한다. 아무래도 백제시대에 존재하던 유적지이다 보니 소실된 것들도 많았던 것 같다. 하기사, 조선시대 유물들도 여럿 소실되었을 텐데 백제의 유적들이 남아있기가 쉽지는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아이들을 위한 체험프로그램도 다채롭게 준비되어 있다.


아무래도 유적지이다 보니 아이들과 함께 방문하는 부모들도 많을 텐데, 그냥 등산만 하기엔 지루한 아이들을 위하여 이런 체험 프로그램도 다채롭게 준비되어 있었다. 다른 체험은 좀 진부해서 잘 모르겠는데 활쏘기 체험은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외에도 다양한 체험이 있으니 시간대를 맞춰 체험을 하며 둘러봐도 좋을 것 같다.


공산성.


개인적으로 저렇게 백제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노란색의 깃발과 길게 조성되어 있는 산성이 어우러진 게 예스럽고 좋았다. 삼국시대를 그린 사극을 보는 느낌이어서 좋았고, 마침 아침에 방문하게 되어 아침햇살이 예쁘게 내리쬐는 모습도 좋았다. 


성체 총길이 2,660m(석성 1,925m, 토성 735m)로, 토성구간과 석성 구간으로 구분된다. 대부분이 석성 구간인데 처음에는 토성을 쌓았지만 나중에 여러 차례 고쳐 쌓으면서 석성으로 변화되었다고 한다. 공산성은 거의 석성으로 남아 있고, 대부분 조선시대에 쌓은 것이지만, 부분적으로 백제시대에 쌓았던 석성의 흔적도 발견된다. 성곽의 현황을 통해 최초 백제시대에 토성으로 쌓았고 부분적으로 토성을 석성으로 고쳐 쌓았음을 알 수 있다. 백제 멸망 후 본격적으로 석축으로 쌓는 개축과 보축의 과정이 있었다고 한다.


공산성 옆에는 이렇게 금강이 펼쳐져 있고, 그 사이를 금강철교가 가로지르고 있다.


공산성을 등반하다 보니 금강과 함께 커다란 금강철교가 눈에 띈다. 공주가 발전하면서 금강을 건너는 사람들과 물자가 크게 늘어나, 나룻배로는 한계가 있어 이곳에 배다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무다리이다 보니 오랜 세월을 견디기엔 한계가 있었는데, 1932년에 좋은 기회로 다리를 짓는 기회를 얻어 금강을 가로지르는 금강철교를 건설하게 되었다고 한다. 


공산성과 공산성에서 내려다본 풍경


이곳 공주 공산성은 백제가 서울 한성에서 웅진으로 도읍을 옮긴 이후, 웅진 도성 안에 있었던 왕성이라고 한다. 북쪽으로 금강이 흐르는 해발 110m 공산의 능선과 계곡을 따라 쌓은 천연의 요새로, 성벽의 전체 길이는 2,660m에 이른다고 한다. 백제시대에는 흙으로 쌓은 토성과 돌로 쌓은 석성이 함께 있었으나 조선시대에 석성으로 다시 쌓았다고. 성의 이름은 처음엔 웅진성으로 불렸다가 고려시대 초에는 공산성, 조선 인조 이후에는 쌍수 산성으로 불렸다. 


주로 쓰는 성은 아니었지만, 백제 무왕 31년에 사비 궁궐을 수리할 때 5개월 머무르기도 했고, 660년 백제 멸망기에 의자왕이 일시적으로 머무르기도 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인조가 이곳으로 피난을 오기도 하였다고. 그렇다 보니 백제시대 추정 왕궁터를 비롯한 백제의 왕궁 관련한 다양한 유적이 분포되어 있다고 한다. 


성곽을 오르내리는 길. 아이들이 오르기 편하게 다소 촘촘하게 계단이 만들어져 있었는데, 이 때문에 어른들은 조심히 오르내려야 할 것 같았다.


경사가 높아서 오르내리기에 어려움이 많았는데, 그래도 길은 잘 조성된 편이었다. 다만, 어린아이가 다치지 않도록 계단을 촘촘하게 만들어놓아 오히려 어른들은 더욱 조심히 내디뎌야 한다. 넘어지지 쉬우니 각별히 조심하여 오르내리는 것이 좋을 듯하다.



실수로 진남루는 다녀오지 못했지만, 성의 주문인 공북루는 사진으로 담을 수 있었다. 북문인 공북루는 남문인 진남루와 함께 공산성의 주문으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산성의 주문()은 남문인 진남루와 북문인 공북루인데, 실수로 진남루는 다녀오지 못했다. 공북루는 1603년(선조 36)에 옛 망북루(望北樓)터에 세운 것으로 고주()를 사용한 정면 5칸, 측면 3칸의 2층 다락집이다. 


공산성에는 이렇게 왕궁 관련 유적들이 곳곳에 출토되었다.


앞서 설명했던 바와 같이 공산성에는 여러 왕궁 유적들이 출토되기도 하였는데, 왕국 유적의 흔적들을 확인할 수 있도록 설명과 함께 볼 수 있었다. 공북루 남쪽의 넓은 골짜기에 자리 잡은 백제시대 대규모 왕궁 관련 유적으로 기와 건물지와 도로, 축대, 배수로, 저수시설 등 다양한 시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백제 왕실의 생활문화를 살필 수 있는 화려한 유구 와 유물이 출토되어 백제 웅진기 백제문화를 살피는데 좋은 자료가 되었다고 한다.


공산성 역사 체험장.


백제 웅진기의 성의 모습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백제 공산성, 산성이다 보니 좀 험한 등반이 예상되어 있으므로 편한 신발을 신고 각오하고 올 필요가 있을 듯하다. 1~2시간의 코스이니 시원한 물통도 함께 가져오면 관람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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