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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곰돌이 Feb 24. 2024

시적 상상력과 향수, <깊은 곳에 그물을 드리우라>

시간의 학대받는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취해라! 술이든, 시든, 덕이든, 당신 마음대로!

-보들레르, 취해라 중     


 내게 좋은 시란 푼크툽이다. 깊게 찔러와 마음 안에 기생하는 시들, 그것이 바로 좋은 시이고, 그런 푼크툽의 경험들은 술처럼 나를 취하게 만든다. ‘취한 사람은 누구나 시인이 된다’던 아현역 어느 술집 조명의 문구는 나에게는 빼어난 아포리즘이다. 즉, 명시란 푼크툽으로 다가와 나를 찔러 취하게 만들어 시인의 세계로 이끄는 것이다. 그런 시가 실린 시집을 읽으면, 술기운을 받고 황홀해진다. 하이데거의 말대로, 인간의 언어로 세계의 근본기분을 담아내기 힘든것처럼, 경이롭다-황홀하다는 단어로 느껴지는 감정을 표현하기 힘들다. 내게 그런 시집 중, 단지 텍스트 속 시인이 아닌 스승으로 존재한 시인의 이름은 남진우 백작이다. 남진우 시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타자 같고, 남진우 선생님이라고 하기에 그 분께서 나를 제자로 생각하지 않을 수 있기에, 그를 예찬하기 위해 붙여진 별칭, 백작을 사용하고자 한다.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당선된 남진우 백작은 한국 문단에 가장 중요한 바슐라리언이자, 기형도와 더불어 대표적인 그로테스크 리얼리스트이다. 그의 첫 번째 시집이자, 문학동네 포에지로 복원된 시집 <깊은 곳에 그물을 드리우라>는 텍스트에 담긴 아우라가 가득해 그것에 잠식되어 취해가도록 만든다. 김현에 이은 2세대 바슐라리언이자, 기형도, 황인숙과 더불어 <시운동>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활약한 그의 시적 세계는 사실 80년대 민중시와는 괴리가 있다. 그의 평론집 <숲으로 된 성벽>에서 나왔듯이, 김현에 대한 동경이 있는 문인으로서 보여주는 시적 상상력으로 여는 찬란한 세계는 황홀하다.      


 기독교 성경에서 모티브를 따온 표제시 <깊은 곳에 그물을 드리우라>와 <성찬식>, <부활>등의 시에서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그로테스크한 현대시로 녹여냈다. 그 외에도 전체적으로 중세적, 봉건적 향수가 강한 시들에는 현재 체제에 대한 괴로움이 뭍어나, 경험된 적 없는 과거를 그리워한다. 횔덜린이 고대 희랍 세계를 그리워한다면, 남진우 백작에게는 그리스도의 위세가 강했던 봉건적인 중세에 대한 향수가 느껴진다. 그런 세계에서 핵심이 되는 원소는 단연코 불일 것이다. 불은 바슐라르의 <불의 정신분석>, <촛불의 미학>에서 나왔듯이, 극단적으로 살아있는 것이고, 촛불은 시인의 몽상의 매개체가 된다. <불과 재>, <나는 불꽃을 바라본다>, <불새>, <성찬식>등의 시는 텍스트에 불의 세계를 향한 초대장을 심어두었다. 그의 시를 제대로 읽는다면, 불에 타고 있는 황홀한 풍경을 보며 다채로움을 느끼게 된다. 그것이 바로 시적인 취기라고 정의 내릴 수 있겠다. 나는 그 특이한 경험에 대한 아름다움을 경험했고, 그 경험은 나의 상상계를 점차 포식해간다. 그런 고통을 덜어내고자 상징계로 이 글을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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