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경이로움의 포착, <나비가 숨은 어린 나무>, 김용택, 문학과 지성사
나비가 숨은 어린 나무
잘 왔다
어제와 이어진
이 길 위에
검은 바위, 어린나무만이 나비를
숨겨준다
해야 바람아 흰 구름 떼야
내 자리를 찾아온 여러 날이 오늘이다
알 수는 없지만
어느, 고요에서 태어난 바람이 온다면
가벼이 날아오를 수 있다
기다려라 마음이 간 곳으로 손이 간다
검은 바위, 어린나무만이 이 나비를
숨겨준다
김용택 시인, 현존하는 시인 중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시인 중 한명이다. 단지 그를 섬진강 시인 정도로 소개하거나, 기억하는 것은 그의 섬세하면서도 단아한 언어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시어는 동시적이면서도, 해야 할 말과 정서를 온전히 담아내고 있고, 다수의 주제 역시 그리움이라는 시인들의 에스페란토이지만, 김용택의 사유가 담긴 김용택어이다. 이번에 읽은 시집이자, 가장 근래 출간된 시집 <나비가 숨은 어린나무> 는 김용택 시인의 열 세 번째 시집으로, 일상적 언어와 자연의 성스러움이 조화된 단아한 시집이다. 나름 시와 조우하던 시간이 많던 개인으로 느끼건데, 시인은 나이를 먹을 수록 시가 짧아진다. 현자가 된 시인들은 한 글자, 글자에 많은 사유를 압축시켜 농도를 높이는 작업을 한다. 그런 작업에는 오랜 시간 동안의 인내와 사유가 필요한 쉬워보여도 쉽지 않는 작업이다. 오규원 시인의 <두두>나 황동규 시인의 <사는 기쁨>이 그렇다. 김용택 시인의 시 세계는 원래 길기보다 단아한 편이었지만, <나비가 숨은 어린나무>에는 시의 농도가 높아진 것 같다.
강 길을 걸으면 어린 산이 따라올 때가 있다 어린 산이 따라오면 돌아보며 이리 오라고 손짓을 한다 그러면 어린 산이 얼른 몇 발자국 달려와 내 손을 잡는다
-산문시, 그리고 아이 중
하늘이 깨끗하였다
바람이 깨끗하였다
새소리가 깨끗하였다
달아나고 싶은
슬픈 이슬들이
내 몸에서 돋아났다
-아름다운 산책
시집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정서는 신비함이다. 자연의 신비함에 느껴지는 경이는 시인의 모습은 일흔이 넘은 시인을 어린 아이로 만들며 시인은 그 성스러움을 단아한 시로 담아낸다. 시집에서 시인만의 개성이 느껴진 시는 <사람들이 버린 시간 속에 산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