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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곰돌이 Mar 12. 2024

자연의 경이로움의 포착, <나비가 숨은 어린 나무>

자연의 경이로움의 포착, <나비가 숨은 어린 나무>, 김용택, 문학과 지성사 


나비가 숨은 어린 나무


잘 왔다

어제와 이어진 

이 길 위에 

검은 바위, 어린나무만이 나비를

숨겨준다

해야 바람아 흰 구름 떼야

내 자리를 찾아온 여러 날이 오늘이다

알 수는  없지만

어느, 고요에서 태어난 바람이 온다면

가벼이 날아오를 수 있다

기다려라 마음이 간 곳으로 손이 간다

검은 바위, 어린나무만이 이 나비를 

숨겨준다


 김용택 시인,  현존하는 시인 중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시인 중 한명이다. 단지 그를 섬진강 시인 정도로 소개하거나, 기억하는 것은 그의 섬세하면서도 단아한 언어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시어는 동시적이면서도, 해야 할 말과 정서를 온전히 담아내고 있고, 다수의 주제 역시 그리움이라는 시인들의 에스페란토이지만, 김용택의 사유가 담긴 김용택어이다. 이번에 읽은 시집이자, 가장 근래 출간된 시집 <나비가 숨은 어린나무> 는 김용택 시인의 열 세 번째 시집으로, 일상적 언어와 자연의 성스러움이 조화된 단아한 시집이다. 나름 시와 조우하던 시간이 많던 개인으로 느끼건데, 시인은 나이를 먹을 수록 시가 짧아진다. 현자가 된 시인들은 한 글자, 글자에 많은 사유를 압축시켜 농도를 높이는 작업을 한다. 그런 작업에는 오랜 시간 동안의 인내와 사유가 필요한 쉬워보여도 쉽지 않는 작업이다. 오규원 시인의 <두두>나 황동규 시인의 <사는 기쁨>이 그렇다. 김용택 시인의 시 세계는 원래 길기보다 단아한 편이었지만, <나비가 숨은 어린나무>에는 시의 농도가 높아진 것 같다.


 강 길을 걸으면 어린 산이 따라올 때가 있다 어린 산이 따라오면 돌아보며 이리 오라고 손짓을 한다 그러면 어린 산이 얼른 몇 발자국 달려와 내 손을 잡는다 

-산문시, 그리고 아이 중


하늘이 깨끗하였다

바람이 깨끗하였다

새소리가 깨끗하였다

달아나고 싶은 

슬픈 이슬들이

내 몸에서 돋아났다

-아름다운 산책


 시집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정서는 신비함이다. 자연의 신비함에 느껴지는 경이는 시인의 모습은 일흔이 넘은 시인을 어린 아이로 만들며 시인은 그 성스러움을 단아한 시로 담아낸다. 시집에서 시인만의 개성이 느껴진 시는 <사람들이 버린 시간 속에 산다>이다. 


사람들이 버린 시간 속에 산다

담요로 무릎을 덮고

강 쪽으로 앉아 시를 읽는다

지붕에는 눈이 쌓이고

눈을 안고 물속으로

가라앉는 돌이 되어

- 김용택 시 ‘사람들이 버린 시간’


 시인의 시간은 평범한 사람들의  시간과 다르게 흐른다. 끊임 없이 변하는 세계에서, 일직선으로, 누구나 동일한 시간을 갖지만 시인의 시간은 저마다 천차만별이다. 시인은 변증법적 세계에서, 유일하게 신학적, 형이상학적인 존재이다. 가령 지붕에 눈이 쌓이는 일상의 시간은, 시인에게는 하나의 세계가 열리고 닫히는 탄생과 종말이라는 우주적인 시간이 될 수 있다. 그런 시간의 확장을 여는데 핵심적으로 힘을 발휘하는 동력은 시적 상상력이다. 이제는 한국시에 정점 오른 시인, 김용택은 간결한 언어로 깊은 상상력을 만들어낸다. 가라앉는 돌이 되어, 시간을 거스르며 시를 읽는 단순한 풍경에서 시인의 그동안 세월들이 스쳐지나간다. 그가 주웠던 시간, 사람들이 버린 시간을 떠올리며 시집에 대한 글을 마무리한다.


(2024 2월 28일, 증산에 있는 구립도서관과 불광천을 지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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