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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곰돌이 Apr 30. 2024

선험적 에로스 상실의 슬픔, <이응, 이응>

젊은작가상2024 수상집

김멜라 《이응, 이응》
-선험적 에로스 상실의 슬픔

김멜라의 소설은 우리 문단에서 가장 돋보이는 전방위적인 방식으로 극단적인 허무감 속 사랑을 포착한다. 2022년 젊은 작가상 수상집에 실린 《저녁놀》은 여성용 성인기구의 눈으로 괴로운 사회에서 한 줄기의 발랄한 빛에 주목한다. 커밍아웃하지 레즈비언 커플의 사랑을 나누는 알콩달콩함은 통해 삭막한 체제에서 유일하게 물화되지 않은 풋풋함은 다채롭다. 작가는 무지개빛 사랑을 통해 세상이 막연히 공허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2023 젊은 작가상 수상집에 실린 <제 꿈 꾸세요>는 자살을 기도하다 죽은 삼십대 여성의 공허함을다룬다. 죽으면 끝이 아니라는 허무감에 대한
누군가의 꿈에 나타나야 하지만, 그 누구의 꿈에도 나타나지 않아야 겠다고 느끼는 영혼의 고독감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깊은 슬픔이 느껴진다.  

 사랑을 포착하는 <저녁놀>과 죽음을 포착하는 <제 꿈 꾸세요>는 삶과 죽음을 다루며 공허함에 저항하나, <이응, 이응>은 에로스가 상실된 상황에서 실존에 대한 해답이 무엇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 다룬다. 2010년대 한국 문단은 섹스에 대한 각주라고 할 만큼, 연애 서사를 중점적으로 진행되었는데,  <이응, 이응>은 이를 비웃는 듯 섹스가 없다. 소설 속 이미 '섹스'는 '이응'으로 대체되었고,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성행위는 이응이라는 섹스 토이로 대체되었다. 섹스의 종말은 에로스의 종말이다. 프랑스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사랑이 위기를 맞고 있다고  했다. 본래 사랑이란 위험성을 담보로 해야 성립할 수 있으나, 타인과 애정을 나누기 위한 과정이 생략된 오늘날의 연애 방식(데이팅앱-결혼정보회사)과 욕구 해소  방식(포르노, 성매매)의 극단화된 형태가 바로 섹스토이, '이응'이다.
 이응은 타자로서 존재하지 않고, 온전히  나에게 맞춰준다. 캡슐형태의 토이는 가상 체험을 통해 섹스를 구현한다. 버튼을 통해 느껴지는 쾌감은 타자와의 맞추는 과정을 생략하고, 타자의 종말을 야기한다. 애정 표현, 감정소모, 설렘 등 타인과의 성스러운 접촉을 불필요한 과정으로 전락시킨 '섹스토이'는 '타자의 변증법'을 생략한다. 철학자 한병철이 말한  '긍정성 과잉'만 존재한 시대는 변증법이 종말한 시대이고, 그런 사회는 어떠한 희망도  없이 무기력할 뿐이다. <이응, 이응>의 세계관은 디스토피아이고, 그런 폐허에서 실존에 대한 불안에 대한 해소는 이응이었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포옹 클럽인 '위옹'이 만들어진다. 소설 속 주인공은 이응과의 관계를 청산하며 모호한 결말로 끝나는데, 과연 이응과 영구적인 결별을 하고 타자와의 포옹을 이어갈 것인지 알 수 없다.

김멜라의 <이응, 이응>은 이응의 등장으로 유토피아의 탈을 쓴 디스토피아에서, 헤테로토피아의 제의로서 포옹을 제기한다. 허무함의 호수에서 포옹으로 위태롭게 부유하는 김멜라의 소설을 통해 헤테로피아로 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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