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정점에 오른 절대소설, 횔덜린 《휘페리온》
프리드리히 횔덜린은 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훗날 하이데거의 평가로 인해 시인들의 시인으로 불리는 성좌에 등극한 거룩한 존재이다. 시인이자 문인을 넘어, 대문호들만 등극할 수 있다는 사상가의 반열에 오른 작가이자, 문학 그 이상의 것을 담아내었다. 그가 남긴 유일한 소설인 《휘페리온》(Hyperion)은 18세기 말 독일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서간체 소설로, 횔덜린 사상의 정수가 담겨있다. 사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처럼 서간체라는 특징을 띄지만, 엄밀히 말하면 현대적 의미에서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힘들다. 루카치가 정립한 현대적 의미로서의 소설은(roman) 자아와 세계의 갈등으로 부터 시작되는 문제적 개인의 서사라고 할 수 있는데, 고대 그리스 정신의 소유자인 휘페리온의 경우 이러한 대립이 두드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혁명과 사랑이라는 인생에 있어 두 가지 커다란 목적을 상실했고 이 과정에서 실존적 고통을 느끼지만, 결국 다시 자아와 자연의 조화를 통해 자신의 영혼에서 자연과의 일체감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횔덜린의 연인이자 디오티마의 실제 모델인 주제테는 《휘페리온》을 소설이 아닌 아름다운 시로 보았으며, 일각에서는 독일 특유의 교양소설로 보기도 한다. 그렇지만 《휘페리온》의 독창성은 낭만주의 비평가 슐레겔이 만들어낸 개념인 '절대 소설'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합하다. 절대소설이란 교양소설보다 낭만적이고, 자유롭고, 정치적인 시의 기능을 하는 산문을 말한다. 슐레겔은 절대 소설은 문학을 넘어 철학을 해야 한다고 봤으며, 일종의 사상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층위에서, 서사문학에 정정에 있는 《휘페리온》은 소설을 초과한 교양소설이다.
휘페리온의 내적 갈등과 고뇌를 통해 이상과 현실, 사랑과 상실을 탐구하는 작품으로 신이 떠나간 시대에 살아가는 근대인의 슬픈 초상을 담아낸다. 이 소설은 고대 그리스를 배경으로 하며, 자유를 갈망하는 한 청년의 삶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고대 그리스는 횔덜린 뿐 아니라, 노발리스 등 낭만주의자들이 그토록 동경한 시대이기도 한데, 이 시대는 자아의 영혼이 세계로 퍼졌다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는 형이상학적 원환이 가능한 시대이다. 휘페리온은 어린 시절부터 그리스의 영광과 자유를 동경하며 자랐고, 그의 이상은 고대 그리스의 민주적 정신과 자연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표현된다. 그는 그리스를 구원하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을 품고, 이에 대한 사명감을 가지고 성인이 된다. 어른이 된 휘페리온은 그리스 독립 전쟁에 참여하며 혁명에 가담하지만, 전쟁의 잔혹성과 동료들의 배신으로 인해 이상과 현실 사이의 큰 괴리를 깨닫게 되며 좌절을 맛본다. 특히 혁명에 대한 그의 열망은 현실 속에서 번번이 좌절되며, 그가 꿈꾸던 이상은 점차 허물어져 간다. 그러런 중 그는 한 여성, 디오티마를 만나게 된다. 디오티마는 휘페리온에게 영감과 위안을 주는 존재로, 그녀와의 사랑은 그에게 실존적 의미를 부여한다. 동시대 걸작인 베르테르에게 로테가 있다면, 횔덜린에게는 디오티마가 있다. 디오티마는 휘페리온에게 이상적인 사랑을 상징하며, 그녀와의 관계는 그의 정신적, 감정적 성장을 촉진한다. 그러나 이들의 사랑은 (당연히) 오래가지 못 한다. 디오티마는 결국 병으로 죽게 되고, 이는 휘페리온에게 커다란 상실감을 안겨주며 생애 두 번째 좌절을 경험한다. 디오티마의 죽음은 그에게 절망을 안기며, 그가 지닌 모든 이상과 희망은 산산조각 난다. 디오티마의 죽음 이후, 휘페리온은 내적 갈등과 절망 속에서 방황화며, 혁명에서의 실패와 사랑의 상실로 인해 실존에 대한 해답을 잃고, 그의 영혼은 깊은 상처를 입고 크게 방황하게 된다. 결국 휘페리온은 현실의 냉혹함을 받아들이게 되며, 이상과 현실의 조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그는 이 과정에서 자연과의 일체감을 발견하며, 자신의 존재와 세계를 발견해 새로운 세계를 구축한다. 소설의 결말에서 휘페리온은 혁명과 사랑에서 모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내적인 평화를 찾는 경지에 오른다. 비록 휘페리온이 현실 속에서 이상을 실현하지 못했지만, 자연 속에서 새로운 조화를 발견하며 자신의 고통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며, 낭만적인 은자로서의 삶을 결심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인간 존재의 한계와 가능성을 깊이 깨닫게 되며 한층 높은 자원의 영혼 소유자로서 도약한다.
《휘페리온》은 횔덜린의 철학적 사유-낭만주의자들의 이상-와 시적 감수성이 담겨있다. 서사보단 시적인 문장의 수려함과 독창성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휘페리온의 이야기를 통해 횔덜린은 인간 존재의 복잡성과 그 속에서 겪는 고통, 이상과 현실의 충돌을 깊이 있게 탐구한다. 이 작품은 또한 낭만주의 작품답게, 고대 그리스에 대한 횔덜린의 열정과 그 시대의 정신적 유산에 대한 그의 경외심을 반영하고 있고, 더욱 높은 차원의 영혼을 소유함으로서 스스로 경이로운 존재가 된다.
이 과정에서 휘페리온은 자신이 꿈꾸던 이상과 현실의 간극에서 괴로워하지만, 결국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인간 존재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는 도약하는 계기가 된다.
《휘페리온》은 신이 떠나간 시대, 자유라고 불리는 궁핍한 시대에 살아가는 근대인의 초상과 그 초상에 담기지 않은 더 성숙한 영혼을 담아내고 있다. 절대 소설로서, 길은 시대를 비춰 절대적 성좌가 되어 방황하는 영혼을 구원하려는 시도는 오늘날에도 이 책이 읽혀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