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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곰돌이 Oct 19. 2024

불멸하는 영혼의 반련자, 첫사랑

 밤이 깊어질수록 나의 고독은 더욱 짙어졌다. 총총한 별이 도시 문명의 환락에 의해 가려지는 것처럼 말이다. 마음속에 자리 잡은 그녀, 결코 닿을 수 없는 첫사랑의 기억이 나를 잠 못 이루게 한다. 그녀는 언제나 나에게 완벽한 존재였고, 그 빛이 너무나도 눈부셔 나는 감히 다가설 수가 없었다. 마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꿈결 속에서만 존재하는 여신처럼. 그래서인지 고쳐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고백할 용기가 없었던 이유는 단순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를 사랑하기엔 내가 불충분하다는 생각이 갈수록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녀와의 세계는 너무나도 달라 보였고,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저 고요히 바라볼 뿐이었다. 내 감정의 무게가 나를 지금처럼 외롭게 만들 줄은 몰랐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한편으로 아쉬움도 있지만 나 없이도 찬란히 빛나는 그녀를 보니 결코 후회하지는 않는다. 별은 반딧불 없이도 빛나니까.


 술 없이 잠들 수 없는 시간이 흐르면서도 여전히 그녀의 모습은 사라지지 않았다. 반쯤 취한 채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다른 사람의 곁에 서 보기도 했지만, 결국 그 모든 노력은 헛된 일이었다. 그녀를 대신하려 했던 마음은 결국 상대방에게도 상처가 되었다. 사랑하는 척, 웃는 척, 괜찮은 척하는 나날들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렇게 또 한 번 홀로 남아 깊은 밤을 맞이하며 깨달았다. 내 첫사랑은 내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나만의 비밀이었다는 것을. 그녀는 거절당한 적도, 이루어진 적도 없는 내 마음의 한 페이지로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게오르그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 속 총체성의 상실이 내게 와닿았다. 그녀를 통해 내가 가졌던 삶의 총체성, 그 온전함이 사라지자 내 마음은 어딘가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그 사랑으로 가득 찼던 세계는 이제 흔적만 남았고, 나는 그 흔적을 따라 길을 잃었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이 고독 속에서 나는 비로소 진리를 찾았다. 비록 내 이야기는 미완성의 상태로 남아 있지만, 그 사랑은 내 가슴속에서 여전히 진실하며, 그 자체로 완전하다. 그로 인해 무지와 무력의 밤은 더욱 길어졌지만, 그 속에서 나는 나의 본모습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녀에 대한 첫사랑의 기억은 고독 속에서도 슬프도록 찬란하게 빛나는 등불이 되어준다.


 그녀는 도시의 유혹도, 자본의 타락에서도 버틸 수 있게 하는 나의 고독한 창공에 빛나는 유일한 선험적 좌표이다. 그녀와 함께 나누던 말과 문자들은 모두 서사시가 되어 영혼을 지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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