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내 인생의 스승으로 모시고 싶은, 댄디하면서도 인간 해방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선생을 만났다. 그 분이 살면서 존경의 감정을 느낀 두 명이 있다고 하는데, 존 버거와 캔 로치라고 한다. 존 버거, 당연히 이름은 익숙하지만 언젠가 《A가 X에게》를 읽어야 겠다는 생각하에 계속 미뤄둬 한 번도 저작을 읽어본 적 없다. 그러다 선생의 '존경'의 호칭을 듣고 대표작을 찾아읽었다. 방송으로도 제작된 7편의 에세이인데, 그림이 많아 수월하게 읽혔다.
《다른 방식으로 보기》(Ways of Seeing)은 예술에 담긴 숨은 의미를 샅샅이 드러내며, 우리가 이미지를 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한다. 이 책은 TV 시리즈에서 시작되어 당대의 예술과 이미지를 이해하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1972년에 나온 책이면서도 현대의 고전에 반열에 올랐다 할 수 있겠다. 존 버거의 통찰은 단순히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 이상의 깊이를 보여주며, 이미지가 어떻게 권력과 사회적 관계를 반영하는지를 탐구한다. (특히 마르크스주의적 향기가 무척 강하다.)
개인적으로 3장에서 다루는 누드화에 대한 고찰은 강렬하게 다가온다. 버거는 남성의 시선 속에 갇혀 있는 여성 누드화가 어떻게 여성의 주체성을 지우고, 그녀들을 순진한 외양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지를 파헤친다. 누드화는 단순히 아름다움의 탐색이 아니라, 관찰자의 성적 정치학을 담은 장치라는 것이다. 그는 여성의 몸이 캔버스 위에서 어떻게 남성적 소유욕과 쾌락의 대상으로 변모했는지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이러한 통찰은 다시 한번 우리가 이미지를 보는 방식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관찰자의 욕망에 길들여진 시선은 실제 존재하는 개인의 복잡한 내면을 외면한 채,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을 확대해석한다. 그동안 누드화를 성 해방의 징표로 긍정적으로만 보던 내게 충격적으로 다가온 대목이다.
작품 전체에서 기술 복제가 가져온 복제 시대의 풍경 속에서 버거는 예술작품의 ‘아우라’가 어떻게 새롭게 해석되는지를 탐구한다. 스스로도 발터 벤야민의 사유를 많이 빌렸다고 하는 만큼, 벤야민의 시선에서 예술작품을 바라본다. 디지털 복제로 인한 이미지의 범람 속에서 우리는 작품을 어떻게 감각하고 있는가? 그는 복제가 작품의 정체성을 흐리게 할 수 있지만, 동시에 새로운 맥락과 의미의 장을 열어준다고 역설한다. 이 과정에서 이미지의 의미는 고정되지 않고, 다양한 문화적 배경과 개인의 경험 안에서 부유하며 끊임없이 재구성된다. 버거는 관람자와 작품의 관계에서 진정한 의미를 찾는다. 그는 관람자가 그저 시각적 쾌락의 수용자가 아닌, 작품과 상호작용하며 의미를 창출하는 능동적인 존재임을 일깨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삶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다.
《다른 방식으로 보기》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 우리에게 이미지의 세계를 새롭게 탐험하는 길을 제시한다. 버거의 시선은 여전히 현대 사회에서 이미지가 차지하는 막강한 위치를 꿰뚫고 있으며, 예술과 시각문화에 담긴 진실을 탐구하는 데 있어 영원한 길잡이가 된다. 가히 명성에 걸맞는 저작이다.